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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가 누구냐? 저 사람이 누구냐?"/신원식 신부님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5-08-22 조회수1,214 추천수10 반대(0) 신고

 

어제 "8월 21일(일)요일 가톨릭 출판사" 에서 있었던 피정에서 해주신

 

신원식 신부님의 강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활동하셨던 시대의 민족적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다윗과 솔로몬 왕 시대의 이스라엘은 여러나라들로부터 조공도 받고 잘 살았습니다. 그 이후에 남과 북으로 갈라져 북쪽은 이스라엘, 남쪽은 유다 왕국이 됩니다. 북쪽은 바빌론 아씨리아에게 망하고 남쪽 유다는 좀 더 버티다가 다른나라에 포로로 끌려다니는 비운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자유롭게 하느님께 경배하는 신앙생활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탄생 당시 60여년간 로마의 지배를 받아 왔습니다. 우리나라도 36년간 일제의 지배를 받아왔기 때문에 그 폐혜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몇백년 동안 지배당했다가 겨우 살만하니까 기원전 63년에 또다시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자기 땅이 없는 사람들, 밑바닥의 사람들로 농사를 짓거나 날품팔이를 하는 등 80%이상이 아주 가난하고 5%의 사람들만이 경제적으로 부유했습니다. 우리나라도 5%의 사람들이 전국토의 50%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자기 땅이 있는 사람들도 30-50%의 세금을 내야하기 때문에 힘들어서 절실하게 구세주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어떤 이는 산속에서 수도생활하는 것처럼 기도하면서 기다렸고 게릴라처럼 싸우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로마의 막강한 군사력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자기들이 목숨 바쳐 싸우면 하느님께서 구세주를 보내주시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활동하시던 시대의 커다란 민족적 배경이었습니다.

 

작은 배경은 예수님과 제자들을 둘러싼 배경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복음을 전하고 활동을 하셨습니다. 공짜로 5000명에게 빵도 주셨습니다. 우리도 60년대에 신자들에게 밀가루를 주었습니다. 그 신자들이 많이 떠났습니다.

 

예수님이 정말로 주고 싶어하는 것을 줄 때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는 "저 사람 이상하다. 저 사람 잡아 죽여야겠다."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제자들과 함께 잠시 피신하여 필립보의 가이사르 지방에 이르신 것입니다.

 

그 때 당시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 듣고 받아 들인 사람은 소수입니다. 합해봐야 수십명, 제자들과 주변 사람들인 것입니다. 예수님도 답답하셨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통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합디까?" 하고 물어 보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위대한 예언자가 다시 태어나서 다윗왕처럼 주먹으로 자기들을 해방시켜 줄 것을 기대했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예언자가 탄생한 것이라고 말했고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해서 "살아 있는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말합니다.

 

만약 우리에게 묻는다면 "그리스도입니다.(구세주입니다.)" 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물음을 좀 바꾸어보면 "나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노무현씨가 누구냐?" 하고 물으면 우리나라 대통령이라고 대답할 수 있으나 "나에게 노무현씨가 누구냐?" 라고 묻는다면 나하고는 별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고 답변할 것입니다.

 

"나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누구입니까?" 라는 질문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화두이고 죽을 때까지 붙잡고 가야 할 물음일 것입니다. 오늘 강론을 준비하면서 제 자신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입니다. 어느 때는 알 것 같다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 안다면 제자들이 바뀐 것처럼 제 삶이 바뀌었을 것입니다.

 

아직 제 삶이 안 바뀌었으니까 예수님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나에게 예수님에 대한 지식을 갖는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묻기보다 "내가 누구냐?, 저 사람이 누구냐?" 라고 묻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예수님이 누구냐?" 라는 것은 존재의 근거를 찾게 합니다. "손가락이 무엇이냐?" 에 대답하려면 "사람이 무엇이냐?" 부터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손가락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누구냐?" 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가치이고 가장 중요한 것이고, 예수님을 알아가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모든 것을 쏟아야하고 우리의 일생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합니다.

 

신앙 생활에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취미 활동이나 직업 활동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취미 활동은 내가 살아가는 데 안해도 되는 것이고, 직업은 좋아서 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처럼 그냥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안 가 있습니다.

 

신앙 생활을 하면서 "예수님이 누구인지?" 그것을 알아가는 것이 일생 일대의 과제입니다. 내가 태어난 것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아가려고 태어난 것입니다. 내 모든 것을 바쳐서 추구해야 될 문제입니다. 예수님을 조금씩 조금씩 알아가면 우리가 살아 있을 때 예수님과 완전히 일치할 수 있다고, 그것이 가능하다고 성인들은 말합니다.

 

적당히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인지?" 아는 것이 내 삶의 이유, 목표,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아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 첫째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실 우리 힘으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자기 힘으로 안 것이 아니었듯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셔야 알 것입니다. 그것에는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을 작은 것 한가지라도 실천하는 것입니다. 시골에 가서 농사일을 도와 주면서 "이 사람들이 나보다 훨씬 더 그리스도적이다." 라는 것을 느낍니다.

 

유기농을 하기 위해 농약을 치지 않으면 소출이 훨씬 적습니다. 어떤 젊은이는 3년만에 1억 가까이 빚을 진 분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약 안치고 부지런히 일합니다. 생명 존중에 대한 사명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존에 위협을 받으면서까지 합니다.

 

웰빙이라 하여 잘 팔릴 것 같으나 잘 안 팔립니다. 자기 생존에 위협을 받으면서도 힘들게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신자가 아닌 분도 있다)있습니다. 저보다는 훨씬 더 그리스도적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예수님을 알아가면서 하나 하나 우리 삶에서 실천해 나아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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