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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십자가와 나 - "운명의 변화"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05-08-23 조회수840 추천수9 반대(0) 신고
주님은 더욱 커지셔야하고 나는 작아져야 합니다. (요한 3,30)
예수님, 저는 예수님께 의탁합니다.
오소서, 성령이여. 저희 마음을 성령으로 가득 채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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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나 - "운명의 변화"]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십자가를 싫어하고 십자가를 조소합니다.
십자가는 나의 실패와 죄를 지적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고난과 희생을 암시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도 처음에는 십자가를 싫어했습니다. "주여 십자가의 사건이
일어나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그것이 베드로의 소원이었습니다.

현대인들도 십자가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그리스도교의 핵심이고 성경의 핵심입니다.
그리스도교의 핵심은 엄격히 말해서 고귀한 가르침도 아니고,
사랑의 윤리도 아니고, 사회정의도 아닙니다.
그리스도교의 핵심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입니다
.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십자가가 무슨 일을 합니까?


첫째, 십자가는 나의 운명을 변화시킵니다.

사울의 운명도 십자가로 인해서 바뀌어졌습니다.
사울은 본래 십자가를 싫어하고 멸시하고 반대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스테파노가 "십자가, 십자가" 하면서 설교할 때 그를 죽인 사람이었
습니다. 그러던 사울의 운명이 바뀌어졌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나는 네가 박해
하는 예수다
"(사도행전 9,4-5) 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을 만났을 때
사울의 운명이 바뀌어졌습니다. 사울이 사도 바오로로 바뀝니다.
사도 바오로는 나중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내어 주신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
(갈리디아 2,19-20).

십자가는 인생의 운명과 가치를 바꾸어 놓는 천국의 열쇠가 되고
하늘의 문이 됩니다. 용서와 사랑의 마당이 되고 무대가 됩니다.
십자가를 얼마나 중요시 하느냐에 따라, 삶의 중심을 차지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가 결정됩니다
.
우리들의 삶도 십자가 앞에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들 앞에 커다란 나무 십자가를 높이 매 단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운명이 변화를 받으라는 뜻입니다.


둘째, 십자가는 나의 말을 변화시킵니다.

사람은 자기에 대한 말을 하기를 좋아합니다.
자기의 지식, 경험, 성공담, 군대 생활, 가정생활, 학문 등등
자기에 대한 말을 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십자가는 나의 말과 말의 내용을 바꾸어 놓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십자가를 경험한 후부터 설교할 때 많이 배운 지식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말, 유창한 웅변을 하지 않았습니다.
기적이나 체험을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오로지 한 가지 만을 핵심적으로 말하고 설교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형제 여러분,
내가 여러분을 찾아 갔을 때에 나는 유식한 말이나
지혜를 가지고 하느님의 그 심오한 진리를 전하려고 하지는 않았습
니다. 그것은 내가 여러분과 함께 지내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 특히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기
때문입니다
." (고린토 전 2,1-2)

사도 바오로는 십자가만을 설교했고 십자가만을 전파했고 십자가에
대해서만 글을 쓴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무식하다
는 비난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오로는 그와 같은 비난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십자가만을 말하고 십자가만을 전파했습니다.

십자가가 우리 자신의 말을 변화시키기를 바랍니다.
오직 내 입술이 십자가를 말하고 내 영혼이 십자가를 노래하고
내 몸이 십자가를 증거하기를 바랍니다
.
이것이 하느님께서 우리의 입술과 영혼과 몸을 지으신 목적입니다.


셋째,십자가는 나의 자랑을 변화시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자랑하기를 좋아합니다.
자기의 가문, 지식, 미모와 자기의 재능을 자랑하기를 좋아합니다.
자기의 이름 석자를 자랑하기를 좋아합니다. 사도 바오로도 전에는
자기의 가문과 자기의 학문과 자기의 종교적 열심을 자랑했습니다.
나중에는 낙원에 이끌려 올라갔던 신비한 체험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체험한 사도 바오로는
이와 같은 자기에 관한 자랑들을 모두 포기했습니다.
그와 같은 것들이 모두 쓰레기와 같이 보인다고 고백했습니다.
"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들을 모두 쓰레기로
여기고 있습니다
."(필립비 3,8).
갈라디아 6,14에서 표현한 대로 사도 바오로는 이제는 "
나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
니다
"라고 분명하고 단호하게 고백했습니다.

십자가는 무겁고 고통스럽고 때로는 귀찮기도 합니다.
그러나 좋아하고 자랑하고 싶은 사람은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사도 바오로는 고난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다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오히려 기뻐했습니다.
"내 몸에는 예수의 낙인이 찍혀 있습니다"(갈라디아 6,17).
사도 바오로이야 말로 십자가의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신자 여러분!, 십자가를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십자가를 자랑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십자가를 귀찮아 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십자가를 좋아서 짊어지고
다니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붙잡혀서 누군가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그것이 돈일 수도 있고 명예일 수도 있고 쾌락일 수도 있고 죄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
우리들을 사로잡고 있는 가장 큰 원수는
자기 자신일 것입니다
. 자기 자신의 못된 기질일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것들에 붙잡혀서 사는 노예 생활에서 벗어 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운명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한 가지
길이 있습니다. 오직 한 가지 길만이 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를 체험하는 길입니다. 십자가를 붙잡는 길입니다.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는 길입니다
. 그러면 세상이 죽고 자기가
죽는 운명의 변화가 일어나며 진정한 자유와 진정한 행복을 체험합
니다. 이와 같은 운명의 변화가 십자가를 통해서 일어났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우리 대신 심판과 저주를 받으신 십자가를 바라볼
때 그와 같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하늘 영광 떠나서 이 세상에
섬기러 오신 주님, 하늘의 별을 만드신 그 손과 발에 상처를 입으시
고 죽으신 주님을 바라볼 때 그와 같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

"십자가와 나"
나는 지금 십자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십자가를 무시하고 싫어합니까? 십자가를 사랑하고 자랑합니까?
십자가는 하느님의 아들이 나 대신 심판과 저주를 받으신 곳입니다.

십자가는 어떠한 무서운 죄를 범한 죄인도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하느님의 용서와 사랑의 두 팔입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도 붙잡아야만 하는 유일한 의요 유일한 공로입니다
.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으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에 달린 오른 편
강도처럼 그저 십자가를 바라보고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오로처럼 한 평생 십자가만을 말하고 십자가만을 자랑하고
십자가만을 짊어지고 다니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enoch님 참고)


예수.kr 관리자  ( http://예수.kr 혹은 http://www.catholic.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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