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갓 출가한 수행자처럼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5-09-01 조회수1,063 추천수11 반대(0) 신고
9월 1일 연중 제22주간 목요일-루가 5장 1-11절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아라.”



<갓 출가한 수행자처럼>


언젠가 한 수녀회 연례피정 강의를 맡았었는데, 그때 당시 강의 주제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아라” 였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이런 강조점을 되풀이했습니다.


“ ‘깊은 곳’으로 나아가십시오. 대어(大魚)들은 깊은 물에 놉니다. 얕은 곳에 있어봐야 잔챙이들밖에 잡히지 않습니다. 잔챙이 100마리 잡은 것보다 대어(大魚) 한 마리 잡는 것이 훨씬 기분 좋습니다.


깊은 곳으로 가면 파도도 높고, 배 멀미도 나고, 생명의 위협도 느끼고, 육지가 그립기도 하듯이 우리 사목의 깊은 곳으로 가면 거기서 받는 느낌이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고상하지도 여유롭지도 않습니다. 계속 와 닿는 갖은 도전들로 늘 흔들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디 ‘깊은 곳’으로 나아가십시오.”


연례 피정이 끝나는 날 몇몇 수녀님들께서 제게 이런 말씀을 나눠주셨습니다.


“ 그 ‘깊은 곳’이 먼 곳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의외로 아주 가까이 있었습니다. 나와 너무도 다른 이웃들, 가급적 대면하기 싫은 관료주의에 물든 사람들, 수도생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지만 때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할 바로 그 고통의 자리가 ‘깊은 곳’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깊은 곳’은 머나먼 다른 하늘 아래, 딴 세상에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일상사 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가 매일 만나는 이웃들과의 관계가 바로 ‘깊은 곳’입니다.


다른 한편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결국 우리가 극복해야할 철저한 이기심과 사욕이 또한 ‘깊은 곳’입니다.


우리 존재 근원에 자리 잡고 있는 분노와 복수심, 상처가 또 다른 ‘깊은 곳’입니다.


‘깊은 곳’은 다른 곳보다도 물살이나 파도가 만만치 않기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두려운 곳, 그래서 가기 부담스러운 곳입니다. 그래서 그곳으로 나아갔더라도 빨리 도망쳐 나오고 싶은 곳입니다.


그곳은 선뜻 갈 마음이 내키지 않는 곳, 가면 피곤한 곳, 귀찮은 곳이겠지요. 다들 가기 싫어하는 곳이지만 그 누군가가 반드시 가야하는 곳, 갖은 도전들이 즐비하게 도사리고 있기에, 나름대로의 준비를 갖추고 가야 하는 곳이 ‘깊은 곳’입니다.


피정을 끝낸 우리, 미사를 끝낸 우리, 기도를 마친 우리가 가야할 곳은 저 ‘깊은 곳’입니다. 저 험난한 세상 한 가운데입니다. 시끄럽고 냄새나고 지저분한 저잣거리 그 한가운데입니다.


그 곳은 아무도 우리를 반겨주지 않는 곳, 우리가 가면 ‘뭐 하러 여기 왔나?’하며 멀뚱멀뚱 우리를 쳐다보는 곳, 그래서 선뜻 가고 싶지 않은 곳입니다. 그렇게 깊은 곳의 현실은 냉정합니다. 그렇게 비정합니다.


그래서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작은 조각배, 그 한가운데, 예수님을 모실 자리를 마련해야 하겠지요.


갑판 위에 우리의 두 발을 단단히 고정시키고 언제나 갓 출가한 수행자처럼, 갓 수도생활을 시작한 지원자처럼 조심조심 나아가야 할 곳이 바로 ‘깊은 곳’입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