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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82) 징그러움에 울컥하여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9-03 조회수1,067 추천수13 반대(0) 신고

2005년9월3일 토요일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ㅡ골로사이서1,21-23;루가6,1-5ㅡ

 

                       징그러움에 울컥하여

                                                 이순의

 

 

하얀 봉투에 많지 않은 예물을 담아서 미사지향을 썼다. <축 결혼 19주년! 벌써 20년째 사네! 곧, 벌써 죽네. 하것지!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피식 웃음이 나오다가 말더니 가슴이라는 폭포 아래서는 거품들이 요동을 쳤다. 어제 낮이었다.

 

오늘 아침!

수험생 기도를 가다가 말고 중간에 어느 집 화단 시멘트 벽돌에 걸터 앉았다. 저만치에 천안나 선생의 뒷모습이 바쁘다. 종종거리면 동행이 될 것 같은데.... 다리에 힘이 풀어지고.... 마음이 그냥 멈추라 하고..... 인정으로 잡은 끈이 싫은.....

 

세상에는!

술만 먹고 날이면 날마다 마누라를 장작 패듯이 패는 남편도 있다든데! 어린 나이에 가출하고 사고쳐서 부모 가슴에 못 박는 자식도 많다든데! 치매 걸려서 똥 오줌에다가 악담만 악담만 하는 어른들은 더 많다든데! 먹을 것이 없어서, 병이 들어서, 일자리가 없어서.....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불행들이 있고 그 불행 속에서도 살아낼 수 밖에 없는 것이 사람이라든데!

 

그 감사가!

항상 마음이 따수운 남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고 착한 아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은 혼자서도 당신의 몫을 잘 살으시는 시모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끼니를 굶지 않았음에 감사하고, 죽을 것 같은 고통에 들지 않아서 감사하고, 앞으로도 얼마든지 일 할 수 있는 직업을 주셔서 감사하고.... 그렇게 많다는 불행들 속에서 우리를 건져 주시고, 이만큼의 알콩달콩한 생활을 주심에 감사드리고!

 

그런데 그것들이 너무 징그러워 울컥하고 몸서리가 나서 진저리를 치는! 19년을 그런식으로 내가 나에게 최면을 걸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야 말았다. 항상 거짓말만 하고 순간을 모면하려는 남편이었는데.. 벌어 준다고 가져간 돈 보다 떼이고 들어오는 돈이 더 많은 남편이었는데... 명목이 재활용이지 헌것만 헌것만 줍거나 얻어다가 쓰고, 입고, 사용하는 내 자신의 궁핍한 몰골이 하느님 보시기에 당연한 알뜰함이라고... 자식이라는 든든함을 이용하여 남편의 끈들을 놓지 못하고 알아듣지도 알아주지도 않는 그 질김에 지겨운! 

 

내가!

호강을 시켜 달라고 한 적도 없고, 호위를 시켜달라고 한 적도 없고, 호식을 하자고 한 적도 없는데.... 늘 짝궁은 호강시켜주고, 호위 시켜주고, 호식하려고 그런단다. 그놈의 호강이랑 호위랑 호식이를 언제 만날지도 모르고 그저 그런가 보다 살은 세월이 19년이라니! 얼마나 징그러웁든지?! 울컥 구토증이 났다. 그리고 또 20년을 채워 살아 보겠다고 주님께 미사 지향을 드렸다니.... 또 앞으로 그렇게 그런식으로 내가 나에게 최면술을 걸고, 신앙을 동원하여 19년을 살고 나면 40년째 미사 지향을 넣을 것 같은 예감에 길에서 토악질이 나왔다. 

 

성당에 가서 수험생을 위한 기도가 하기 싫었다. 그곳에 가면 나는 또 나에게 최상의 질 좋은 최면을 걸고 돌아올 것이 지당한 사실이라는 것을 잘 알아버린 것이다. 어떻게 하면 짝궁의 마음을 기도보다도 확실하게 바꿀 것인가?! 간단했다. 너무나 간단했다. 그 길로 그대로 걸어서 잠실 5단지 앞 길을 지나서 한강으로 가 뛰어 내리면 되는 것이다. 그때서야 피를 토하며 각시의 말을 들어주지 않은 지난 시간들을 후회하게 될 것 같은! 짝궁의 말대로 배움도 없고, 돈도 없고, 취미도 없고, 분위기도 없고... 있는거라고는 무식이 있고, 가난이 있고, 고집이 있고..... 그런 짝궁에게 참고 살아 줄 여자는 세상천지에 없다고 했으니 그 길로 걸어서 한강으로 가면 저놈의 인간성에 피고름을 짜게 해 주고 싶은!

 

그냥 산에서 농사만 지어서 욕심없이 살자고 그렇게 신신 당부를 했는데 간밤에 짝궁은 또 다른 지방에로 갔다. 그곳에 있는 남의 농작물들이 동생들과 동업이 되어 있다는.... 물론 거기도 선대금을 준 것 같고, 짝궁이 나서지 않으면 그 생산작물들을 거둘 수 없는 것 같은.... 깊은 말을 안해 주어서 그 관계에 대하여 자세히는 모르지만.... 나는 다시 돌아버릴 것 같았다. 19년 동안이나 제 자식과 제 마누라 건수도 변변히 못해 온 인간이 세상에 건수할 것이 그리도 많아서.... 내가 하늘이라해도 도무지 어디로 방향을 잡아서 살게 해 주어야 할지를 모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분노를 삭히고 성당에를 가다가 그만 중간에 멈추어 남의 화단 벽돌에 걸터 앉아서 전화기의 단추를 누르고.... 안나 선생은 수험생을 위한 기도를 열심히 하고있을 시간에 나는 골목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네놈 마누라의 시체가 한강에 둥둥 떠 다니거든 그거 주워다 놓고 피고름을 토하며 살아라. 이놈아! 그러기 전에는 도저히 말귀가 뚫어질 인간이 아니다. 자식들이 크니까 그만 두라고 했지?! 자식들이 크니까 모든 욕심을 다 버려야 한다고 했지?! 자식들이 크니까 울타리가 분명해야 한다고 했지?! 진짜로 언제나 말귀가 뚫어질래? 너같은 인간이랑 20년을 채워서 살아 보것다고 미사지향을 둔 내 발등을 찧어야 정신을 차릴래? 미사 지향을 취소하고 물컹한 시체를 한강으로 찾으러 오라고 해야 정신을 차릴래?>

 

결국 나는 수험생 기도의 말미에라도 참여하기가 싫어졌다. 최상의 고급 최면술을 걸기는 더욱 싫어서 미사참례는 포기해 버렸다. 어쩌면 19년동안 해온 나의 신앙생활이 저 사람을 저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짝궁도 한 말이 있다. <내가 장모님 돈은 갔다 써 버리고 안 갚은 적은 있어도 우리 엄마 돈은 1원도 축낸 적이 없고, 큰처형 돈은 이자 한 푼 안주고 안갚은 적은 있어도, 그 세월을 같이 묻어서 장사를 해 온 내 동생들한테는 물 한 모금도 신세를 진적이 없네. 그런데 동생들은 형 도와준다고 엄마한테 돈 갔다쓰고 형 줬다고 해 버리고, 장사 끝나고 수금한 간봉에서 빼다가 지네 마신 물값 줘버리는 걸 보면서도..... 내가 형이라서 참!>

 

그러니 그동안 장부정리를 하고 안하고의 차원을 이제는 왈가왈부 해서도 안되고, 그것에 대하여 새삼스럽게 따지지도 말아야하고, 동생들의 능력껏 벌어서 제 자식들 키우면 되고, 우리 능력껏 벌어서 우리 자식 키우면 되는 것이다. 나는 그것만을 바라는 것이다. 저희들 복이 짝궁보다 많아서 부자로 잘 살더라도 나는 그들과 상종조차도 하기가 싫은 사람이다. 제발 부자로 잘 살아서 우리를 처다보지도  않기를 바란다. 그런데 짝궁이랑 싸운지 몇 일이나 되었다고.... 물론 이미 싸우기 전에 저질러진 일이었겠지만 그 거짓의 징그러움이 울컥하여 견딜 수가 없다.

 

세상에는!

날이면 날마다 마누라밖에 모르고, 돈도 잘 벌고, 메너가 짱에다가, 고급 식사에, 퓨전 여행에, 이벤트성 취미꺼정 살리고 살려서 여왕마마 대우 해 주는 남편들도 많다든데! 좋은 것 보자고, 멋있는데 가자고, 원하는 것 사자고, 잘 가르쳐 준 자식에, 집이랑 빌딩이랑 열쇠가 몇 개씩에다가, 혼사로 맺어진 사돈지간도 가족이라고 친정 부모님을 극진히도 꼭꼭 챙겨주시는 시부모님은 더 많다든데! 세상에는 나 같은 무지랭이 인생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너무나 많은 행복들이 있고, 그런 행복들 속에서도 불평을 하고, 그 불평을 채워주려고 전전긍긍하는 남편들도 너무나 많다든데! 그런 행복들 속에서도 만족스럽지 않아서 이혼을 하고, 우리 같은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위자료를 받아서 궁상스럽고, 구차한, 인간들의 꼴을 안보고도 너무나 재미나고 멋지게 즐기며 잘도 산다든데....

 

그런데 나는 어제!

빈약하디 빈약한 봉헌금을 하얀 봉투에 담아 19년을 살아 왔으므로 20년째도 이 초라한 봉헌금 보다 훨씬 행복하게 해 주시라고 간청을 드렸으니... 하룻만에 그 사실이 얼마나 징그럽고 울컥한 후회가 엄습해 오든지?! 그리고 또 앞으로도 20년을 살게 될거라는 생각을 하니 기가 막히고, 심장이 절통을 하고, 노여움이 오금지를 가르고.... 인생이 진저리가 난다.

 

진짜로 불쌍해서 살았는데.....

그 작은 봉헌금은 나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행복하다-고 마음의 최면술을 걸게 해 주시라는 요청이었고, 19년 세월동안 그렇게 해서 행복한 세월이 갔다. 그런데 스무 번째인 또 한 해의 행복을 요청하고.....

당장 나는 나에게 행복이라는 최상급의 최면술을 동원하지 않으면 오늘 밤에는 미생물들의 도움을 받아 이승의 흔적들을 지우느라고 고생을 하겠지?! 나는 어제도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축 결혼 19주년! 벌써 20년째 사네! 곧, 벌써 죽네. 하것지!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미사지향을 이렇게 썼던!

 

ㅡ"사람의 아들이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다." 루가6,5ㄴㅡ  

 

 

   

건축 공사장의 벽이 무너지려고 합니다.

발파의 하중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야할 벽을

저렇게 쇠막대기로 얽어 매어 놓았더이다.

그 옆에 멀찍이 선 자전거 바퀴의 둥근 평화가 너무나 호사스러워 보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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