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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성녀 박아기 안나,이소사 아가다,김업이 막달레나시여~!
작성자조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5-09-04 조회수729 추천수8 반대(0) 신고
      한국 성인 103위 가운데 가장 많은 성인이 치명한 곳에 세워진 순교 기념탐
《한국 성인 103위 가운데 가장 많은 성인이 치명한 곳에 세워진 순교 기념탐"-서소문헌양탑》
      ◈ 한국 순교자들에게 바치는 기도 ◈
      
      ◇ 이 땅의 모든 순교자여,
         당신들은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굳은 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나이다.
      
      ◆ 저희는 현세에서 악의 세력과 치열하게 싸우며 당신들이 거두신 승리의 영광을 노래하고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찬양하오니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위대하신 순교자들이여, 천상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와 함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하느님의 자비를 얻어주소서.
      ◆ 지금도 어둠의 세력이 교회를 박해하고 있사오니 하느님께서 전능하신 팔로 교회를 붙들어 보호하시며 아직 어둠 속에 있는 지역에까지 널리 펴시도록 빌어주소서.
      ◇ 용감하신 순교자들이여, 특별히 청하오니 우리 나라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 당신들은 이땅에서 많은 고난을 겪으며 사시다가 목숨까지 바치셨사오니
      ◇ 전능하신 하느님께 빌어주시어 교회를 이땅에서 날로 자라게 하시며 사제를 많이 나게 하시고
      ◆ 신자들이 주님의 계명을 잘 지키고 냉담자들은 다시 열심해지며 갈린 형제들은 같은 믿음으로하나 되고 비신자들은 참신앙으로 하느님을 알아 천지의 창조주 인류의 구세주를 찾아오게 하소서.
      ◇ 참으로 영광스러운 순교자들이여, 저희도 그 영광을 생각하며 기뻐하나이다. 간절히 청하오니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 빌어주시어 저희와 친척과 은인들에게 필요한 은혜를 얻어주소서.
      ◆ 또한 저희가 죽을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한결같이 믿어 증언하며 비록 피는 흘리지 못할지라도 주님의 은총을 입어 선종하게 하소서.
      ◇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여,
      ◆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박아기 안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강원도 강촌(江村) 출신의 박 안나는 서울의 한강변에 살면서 어머니와 함께 
    교리를 배워 입교했다. 머리가 둔해 교리를 명확하게 알지는 못했으나 진심
    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게 해 달라고 매일 기도했다. 
    
    18세 때 비교적 부유한 교우 태문행(太文行)과 결혼하여 2남 3녀를 두었고 또 정성껏 그들을 교육시켰다.기해 박해 초인 1839년 4월 박 안나는 남편,큰아들 응천(應天)과 함께 체포되었는데 포청에서의 고문으로 남편과 큰아들은 배교 하고 석방되었으나 박 안나만은 배교를 거부하고 혹형과 고문을 이겨냈다.
    연일 계속되는 혹형으로 살이 터지고 뼈가 튀어 나왔으나 언제나 평온하였고 때때로 위문오는 가족들에게도 권면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형조로 이송되어 서도 형관이 배교하고 석방되어 가족들에게 돌아가라고 유혹하며 혹은 위협하 고 고문하였으나 박 아기는 끝까지 신앙을 지켜 1839년 5월 24일 8명의 교우 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그때 나이는 57세였다.
     
    †성녀 이소사 아가다,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이 아가타는 경기도 이천(利川) 출신으로 17세 때 결혼했으나 남편을 여의고 
    친정으로 돌아와 어머니, 동생 이 호영과 함께 입교하였다. 아버지가 대세 
    (代洗)를 받고 사망하자 동생을 따라 서울로 이사하였다. 
    
    1835년 2월 (음력 정월) 한강변 무쇠막에서 동생 이 호영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에서 여인으로는 차마 견디기 어려운 형벌과 고문을 참아냈고 형조로 이송되어 동생과 함께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사형 집행이 연기되어 옥살이를 더 해야 했다.
    고통스러운 옥중 생활 속에서도 동생과 함께 한날 한시에 순교하자고 위로 하고 격려하며 인내와 극기로써 생활하였다. 동생을 먼저 순교의 영광을 입게 하고 자신은 동생이 옥사한지 7개월 후인 1839년 5월 24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8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56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3은 동생)
     
    †성녀 김업이 막달레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김업이 막달레나는 어려서부터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며 본래 수정(守貞)을 
    원했었는데, 혼기에 이르러 어머니의 권유로 교우 청년과 결혼했다.중년이 
    되어 남편과 자식을 모두 잃고는 친정으로 돌아와 노모와 함께 애고개 
    (지금의 아현동)에서 망건을 만들어 팔며 살았다. 
    
    항상 노모에게 순종하는 좋은 표양과 밝은 교리지식으로 외교인들에게 전교 하며 순교할 결심으로 수계하던 김 업이 막달레나는 1836년 10월 김 아기 아가타,한 아기 바르바라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포청과 형조에서 김업이 막달레나는 천주교 서적을 숨긴 죄로 매우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으나 모두 참아내고 형조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형집행이 유예되어 3년을 옥살이한 끝에 1839년 5월 24일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자신의 소원대로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그때 나이는 66세였다. (5, 10과 함께 체포됨)
      ▒ 인연 ▒
      
      "인연이 그런 것이란다. 억지로는 안되어.
      아무리 애가 타도 앞당겨 끄집어 올 수 없고,
      아무리 서둘러서 다른 데로 가려 해도 달아날 수 
      없고잉. 지금 너한테로도 누가 먼 길 오고 
      있을 것이다. 와서는, 다리 아프다고 
      주저앉겄지. 물 한 모금 달라고."
      
      - 최명희의 《혼불》중에서 -
      물 한 모금의 인연도 억지로는 안됩니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필연의 뿌리가 있습니다. 놀라운 섭리가 그 안에 있습니다. 하늘이 내린 특별한 선물로 받아들이고 더 귀하고 소중하게 키워가야 합니다. 그냥 맺어진 인연이 결코 아니니까요.
      - 고도원의 아침편지 중에서 -
    
    ♬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 ♬
    
    내가 사랑 받았고 은총 속에 산 것은 성령께서 나에게 가르쳐주셨도다 주의 참된 평화여 신성한 감격이여 주는 나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주님 안에 영원히 나의 삶을 드리니 나의모든 괴로움 멀리 사라지도다 항상 주께 바라면 근심걱정 없으리 주는 나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주님과의 사랑을 끊을자 그누군가 주는 나의 힘이요 나의 기쁨 되도다 주님안에 영원히 평화 누리게 되리 주는 나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함께 기도하고,연구하고 싶은...[앗↑나]가요*^^*
    
    
    
    《소스입니다.》
    <PRE><FONT style="FONT-SIZE: 10pt" face=돋움체 color=brown><UL>
    <UL><IMG alt="한국 성인 103위 가운데 가장 많은 성인이 치명한 곳에 세워진 순교 기념탐"
     src="http://holyplace.catholic.or.kr/images/서소문헌양탑.jpg"> </UL></UL>
    《한국 성인 103위 가운데 가장 많은 성인이 치명한 곳에 세워진 순교 기념탐"-서소문헌양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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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순교자들에게 바치는 기도 ◈
    <PRE><FONT style="FONT-SIZE: 11pt" face=돋움체 color=brown>
    ◇ 이 땅의 모든 순교자여,
       당신들은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굳은 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나이다.
    <BR>
    ◆ 저희는 현세에서 악의 세력과 치열하게 싸우며
       당신들이 거두신 승리의 영광을 노래하고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찬양하오니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BR>
    ◇ 위대하신 순교자들이여,
       천상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와 함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하느님의 자비를 얻어주소서.
    <BR>
    ◆ 지금도 어둠의 세력이
       교회를 박해하고 있사오니
       하느님께서 전능하신 팔로 교회를 붙들어 보호하시며
       아직 어둠 속에 있는 지역에까지
       널리 펴시도록 빌어주소서.
    <BR>
    ◇ 용감하신 순교자들이여, 특별히 청하오니
       우리 나라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BR>
    ◆ 당신들은 이땅에서 
       많은 고난을 겪으며 사시다가
       목숨까지 바치셨사오니
    <BR>
    ◇ 전능하신 하느님께 빌어주시어
       교회를 이땅에서 날로 자라게 하시며
       사제를 많이 나게 하시고
    <BR> 
    ◆ 신자들이 주님의 계명을 잘 지키고
       냉담자들은 다시 열심해지며
       갈린 형제들은 같은 믿음으로하나 되고
       비신자들은 참신앙으로 하느님을 알아
       천지의 창조주
       인류의 구세주를 찾아오게 하소서.
    <BR>
    ◇ 참으로 영광스러운 순교자들이여,
       저희도 그 영광을 생각하며 기뻐하나이다.
       간절히 청하오니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 빌어주시어
       저희와 친척과 은인들에게
       필요한 은혜를 얻어주소서.
    <BR>
    ◆ 또한 저희가 죽을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한결같이 믿어 증언하며
       비록 피는 흘리지 못할지라도
       주님의 은총을 입어 선종하게 하소서.
    <BR>
    ◇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여,
    <BR>
    ◆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PRE></UL></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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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성녀 박아기 안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PRE><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음체 color=#32449c> 
    <IMG src="http://pds.catholic.or.kr/Archives/ncbbs/baltimore/pds1/0/9.6.jpg"> 
    강원도 강촌(江村) 출신의 박 안나는 서울의 한강변에 살면서 어머니와 함께 
    교리를 배워 입교했다. 머리가 둔해 교리를 명확하게 알지는 못했으나 진심
    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게 해 달라고 매일 기도했다. 
    <BR> 
    18세 때 비교적 부유한 교우 태문행(太文行)과 결혼하여 2남 3녀를 두었고 또 
    정성껏 그들을 교육시켰다.기해 박해 초인 1839년 4월 박 안나는 남편,큰아들 
    응천(應天)과 함께 체포되었는데 포청에서의 고문으로 남편과 큰아들은 배교 
    하고 석방되었으나 박 안나만은 배교를 거부하고 혹형과 고문을 이겨냈다. 
    <BR> 
    연일 계속되는 혹형으로 살이 터지고 뼈가 튀어 나왔으나 언제나 평온하였고 
    때때로 위문오는 가족들에게도 권면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형조로 이송되어 
    서도 형관이 배교하고 석방되어 가족들에게 돌아가라고 유혹하며 혹은 위협하 
    고 고문하였으나 박 아기는 끝까지 신앙을 지켜 1839년 5월 24일 8명의 교우 
    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그때 나이는 57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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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성녀 이소사 아가다,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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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G src="http://pds.catholic.or.kr/Archives/ncbbs/baltimore/pds1/0/9.7.jpg"> 
    이 아가타는 경기도 이천(利川) 출신으로 17세 때 결혼했으나 남편을 여의고 
    친정으로 돌아와 어머니, 동생 이 호영과 함께 입교하였다. 아버지가 대세 
    (代洗)를 받고 사망하자 동생을 따라 서울로 이사하였다. 
    <BR> 
    1835년 2월 (음력 정월) 한강변 무쇠막에서 동생 이 호영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에서 여인으로는 차마 견디기 어려운 형벌과 고문을 참아냈고 형조로 
    이송되어 동생과 함께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사형 집행이 연기되어 
    옥살이를 더 해야 했다. 
    <BR> 
    고통스러운 옥중 생활 속에서도 동생과 함께 한날 한시에 순교하자고 위로 
    하고 격려하며 인내와 극기로써 생활하였다. 동생을 먼저 순교의 영광을 
    입게 하고 자신은 동생이 옥사한지 7개월 후인 1839년 5월 24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8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56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3은 동생) 
    <PRE><FONT style="FONT-SIZE: 14pt" face=돋음체 color=#32449c> 
    <B>†성녀 김업이 막달레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PRE><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음체 color=#32449c> 
    <IMG src="http://pds.catholic.or.kr/Archives/ncbbs/baltimore/pds1/0/9.8.jpg"> 
    김업이 막달레나는 어려서부터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며 본래 수정(守貞)을 
    원했었는데, 혼기에 이르러 어머니의 권유로 교우 청년과 결혼했다.중년이 
    되어 남편과 자식을 모두 잃고는 친정으로 돌아와 노모와 함께 애고개 
    (지금의 아현동)에서 망건을 만들어 팔며 살았다. 
    <BR> 
    항상 노모에게 순종하는 좋은 표양과 밝은 교리지식으로 외교인들에게 전교 
    하며 순교할 결심으로 수계하던 김 업이 막달레나는 1836년 10월 김 아기 
    아가타,한 아기 바르바라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BR> 
    포청과 형조에서 김업이 막달레나는 천주교 서적을 숨긴 죄로 매우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으나 모두 참아내고 형조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형집행이 유예되어 3년을 옥살이한 끝에 1839년 5월 24일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자신의 소원대로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그때 나이는 66세였다. (5, 10과 함께 체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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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연  ▒
    <PRE><FONT style="FONT-SIZE: 11pt" face=돋움체 color=brown>
    "인연이 그런 것이란다. 억지로는 안되어.
    아무리 애가 타도 앞당겨 끄집어 올 수 없고,
    아무리 서둘러서 다른 데로 가려 해도 달아날 수 
    없고잉. 지금 너한테로도 누가 먼 길 오고 
    있을 것이다. 와서는, 다리 아프다고 
    주저앉겄지. 물 한 모금 달라고."
    <BR>
    - 최명희의 《혼불》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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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 한 모금의 인연도 억지로는 안됩니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필연의 뿌리가 있습니다.
    놀라운 섭리가 그 안에 있습니다. 하늘이 내린 
    특별한 선물로 받아들이고 더 귀하고 
    소중하게 키워가야 합니다.
    그냥 맺어진 인연이 결코 아니니까요.
    <BR>
                          - 고도원의 아침편지 중에서 - </B></PRE></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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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 ♬
    <BR>
    내가 사랑 받았고 은총 속에 산 것은 성령께서 나에게 가르쳐주셨도다
    주의 참된 평화여 신성한 감격이여 주는 나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BR>
    주님 안에 영원히 나의 삶을 드리니 나의모든 괴로움 멀리 사라지도다
    항상 주께 바라면 근심걱정 없으리 주는 나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BR>
    주님과의 사랑을 끊을자 그누군가 주는 나의 힘이요 나의 기쁨 되도다
    주님안에 영원히 평화 누리게 되리 주는 나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PRE><UL> <B><FONT style="FONT-SIZE: 9pt" face=돋음체 color=gr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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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기도하고,연구하고 싶은...[앗↑나]</B>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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