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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83) 내 짝궁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9-04 조회수926 추천수14 반대(0) 신고

2005년9월4일 연중 제23주일 ㅡ에제키엘33,7-9;로마서13,8-10;마태오18,15-20ㅡ

 

        내 짝궁

                이순의

 

 

주일미사에 갈 욕심이 없었으므로 교중미사 시간에 임박하여 잠을 깼다. 오십견의 통증이 너무 오래가고 있어서 간밤에 잠을 편히 자지 못 한지가 여러 달이 되었다. 오늘 아침에도 온 몸은 천 근에 만 근이다. 먼저 전화기를 살펴 보았다. 짝궁이 먼데 있기 때문에 아침이면 전화기의 발신자를 먼저 확인한다. 짝궁이 먼저 전화를 한 적이 1년 중에 하루나 이틀 뿐이지만 그래도 그건 습관처럼 해온 아침 기상법이다. 찍힌 번호가 없어도 먼저 짝궁에게 전화를 하는 쪽은 나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발신자 전화 번호가 찍혀있다. <짝궁>이라고.

 

어제 오후 늦게 지방을 갔던 짝궁이 산에 가는 길에 아주 잠깐 집에 들렸다. 갑자기 들려가는 짝궁은 늘 손님 같다. 아들녀석은 아들녀석대로 앉아야 할지 서야 할지를 가늠하지 못하고 서성이는데, 나는 나대로 어떤 찬을 내어 놓아야 할지 막연해진다. 그래도 짝궁이 갑자기 들렸으니 밥상을 차리고, 갈아입을 와이셔츠를 다리고, 서먹한 분주함이 연속 되었다. 가장이 없는 찬이 얼마나 풍요로운 밥상이었을까 마는 그래도 달게 먹어준다. 또 그럴 줄 알고 상을 받을 것이라는 게 오래 부부로 살아온 서로의 관심의 결과일 것이다.

 

<나는 돌아다니는 사람이라서 잘 먹고 살아. 먹을 것도 좀 넉넉히 사다가 놓고 먹어야지 집에 있는 사람이 고생이네.>

돈도 많이 주지 않아서 빌려서 썼는데 가장이라는 인정을 장황하게 늘어 놓는다. 지난 번에 잠깐 산에 다녀왔을 때 보다 훨씬 더 말라있다. 검게 탄거야 농군으로 간 이상 어쩔 수 없다지만.... 훨씬 수척해진 모습은 떠나고 난 뒤에 우리 모자의 가슴을 무척 아리게 했다. 그런데 밥상을 물린 짝궁이 할 말이 있어서 들렸으니 앉으라고 했다.

 

<내가 곰곰히 생각을 해 보니 19년 세월이 누적이 되어서 이제는 어떠한 말을 해도 믿지를 않고..... 그 세월을 내가 오뉴월 개새끼 쏘다니듯이 쏘 다녀도 믿어 주어서 살아왔는데..... 그 믿음이 깨졌다는 생각이 드네. 이게 우리를 부부라고 할 수가 있것는가?! 믿음을 주지 않아서 발생한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네. 그러나 나는 자네가 죽기를 바라고 산 사람은 아니네. 정말로 열심히 살면 하늘이 복을 주실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라서 고생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고, 열심히 산들 무슨 소용이 있으며, 나를 따라 사는 자네한테 못할 짓만 하는 것 같고.....

 

나도 혼자 몸으로 객지에 나가서 말도 못허게 고생을 하네. 자네가 지난 세월을 이러지 않아도 충분히 힘들다는 말이네. 내 어머니가 자식이 얼마만큼 힘든지를 알것는가? 동생들이 그 세월을 형하고 장사를 해도 그 고통이 어떤 고통인지를 어찌께 알것는가? 그저 내 몸 갈아서 물건 보내주어서 팔면 되고, 일당 받으면 되고, 더 주면 좋고, 덜 주면 섭섭하고, 1원도 손해 난 적이 없는 세월을 살은 동생들이 무엇을 알것는가? 빚을 지고라도 사람의 행세를 하며 살아온 자네하고, 형을 위해서는 1원도 손해본 적이 없는 동생들하고는 생각 자체가 다를 수 밖에 없네.

 

자네가 나랑 부부로 같이 살아서 돈도 힘들고,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들고, 정신도 힘들고, 어머니에 동생들꺼정 짊어진 그 짐은 또 얼마나 힘이든가?! 다 힘이 들었어도 나를 믿어 준다는 그 마음 하나로 버티고 살았는디..... 더 이상 나를 믿고 살아달라고 말을 하기에는 너무나 염치가 없고, 자네가 원하는 대로 해 줌세. 이혼을 하자고 하면 이혼을 해 주고, 동생들을 끊으라고 하면 동생들을 끊어주고, 다 버리고 절로 가자고 하면 절로 가고, 자네가 해 주란 대로 해 줄 것이네. 나는 자네랑 살라고 이 고생도 하는 것이지 자네를 죽이자고 이렇게도 복없는 세월을 뛰어다니지 않았네. 그래도 하늘의 뜻을 몰라서 맨날 맨날 헛구멍만 쑤시고 다니니....

 

바로 산으로 가려다가 그래도 얼굴이라도 보고 갈라고 들렸네. 결혼 생활의 대부분을 혼자 견디고 살아온 자네 한테 아들을 잘 못 키웠다고도 하지 않을 것이고, 어머니 한테 잘해달라고도 하지 않을 것이고, 아들이 수능 끝날때 까지만 살자고 해도 그렇게 해 줄 것이고, 장돌뱅이 내 팔자에 우리가 언제 같이 부부답게 살았든가 마는 서류조차도 정리해 주라고 하면 다 해 줌세. 자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 줄 것이네. 나는 자네를 살리고 싶은 사람이지 죽이려는 사람은 결코 아니네. 사람이 자꾸 죽는다 죽는다 하게 되면 진짜로 죽는 법이네. 아무리 자격이 없는 남편이지만 그런 험한 꼴은 보기가 싫으네. 그러니 자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 줌세. 진짜로 나는 살고 싶은 사람이지 죽고 싶은 사람이 아니네.>

 

그리고 아침 전화기에 발신자가 <짝궁>이라고 먼저 찍혀 있다. 단추를 눌러 신호음이 떨어지자 짝궁의 음성은 대뜸 <해가 중천인데 미사에 안가고 뭐하는가?> 라고 들려온다. 그만 엉엉엉 울어버리고야 말았다. 울지마라고, 또 열심히 일해서 어떻게든지 살아낼 것이니까 울지 마라고 짝궁의 음성은 사기충전에 의기양양에 생기발랄까지 용기가 불끈불끈 솟고 있었다. 짝궁은 지금 거름을 뿌리고 있다고 했지만 나는 오늘은 미사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런데 하느님을 배신허면 천벌 받는다고 그렇게 가르쳐 놓고 자네가 하느님을 배신허면 되느냐고 어서 준비하고 미사에 가라고 종용한다. 그리고......

 

<내가 당신 가슴에 못 박고 사는거야?>

짝궁은 절대 아니라고 했지만 결국은 착한 짝궁의 가슴에 못을 박고 사는 사람은 나 뿐이다. 

 

 

 

 

 

ㅡ내가 다시 말한다.너희 중에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마음을 모아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는 무슨 일이든 다 들어주실 것이다. 마태오 18,19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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