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성 남명혁 다미아노,성 권득인 베드로,성 장성집 요셉이시여~!
작성자조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5-09-06 조회수767 추천수8 반대(0) 신고
    
    ◈ 한국 순교자들에게 바치는 기도 ◈
    
    
    ◇ 이 땅의 모든 순교자여,
       당신들은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굳은 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나이다.
    
    ◆ 저희는 현세에서 악의 세력과 치열하게 싸우며 당신들이 거두신 승리의 영광을 노래하고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찬양하오니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위대하신 순교자들이여, 천상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와 함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하느님의 자비를 얻어주소서.
    ◆ 지금도 어둠의 세력이 교회를 박해하고 있사오니 하느님께서 전능하신 팔로 교회를 붙들어 보호하시며 아직 어둠 속에 있는 지역에까지 널리 펴시도록 빌어주소서.
    ◇ 용감하신 순교자들이여, 특별히 청하오니 우리 나라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 당신들은 이땅에서 많은 고난을 겪으며 사시다가 목숨까지 바치셨사오니
    ◇ 전능하신 하느님께 빌어주시어 교회를 이땅에서 날로 자라게 하시며 사제를 많이 나게 하시고
    ◆ 신자들이 주님의 계명을 잘 지키고 냉담자들은 다시 열심해지며 갈린 형제들은 같은 믿음으로하나 되고 비신자들은 참신앙으로 하느님을 알아 천지의 창조주 인류의 구세주를 찾아오게 하소서.
    ◇ 참으로 영광스러운 순교자들이여, 저희도 그 영광을 생각하며 기뻐하나이다. 간절히 청하오니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 빌어주시어 저희와 친척과 은인들에게 필요한 은혜를 얻어주소서.
    ◆ 또한 저희가 죽을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한결같이 믿어 증언하며 비록 피는 흘리지 못할지라도 주님의 은총을 입어 선종하게 하소서.
    ◇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여,
    ◆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남명혁 다미아노,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문화'로도 불리는 남명혁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젊어서 무뢰배들과 어울리며 매우 난폭하고 방탕한 생활을 했으나 30세 경 입교한 후로 모든 세속의 나쁜 일과 손을 끊고 오직 신앙생활에만 전념했다.
유방제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는 열심을 더해 이광헌과 함께 회장으로 임명되어 예비자를 모아 가르치고 병약자들을 찾아 위로하고 격려했으며 또 '성의회' (聖衣會)라는 신심단체에 가입하여 신부를 도와 열심히 교회 일을 했다.
그는 1839년 기해박해 초 한 예비 교우의 밀고로 4월 7일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체포되었는데 이때 그의 집에서 제의류(祭衣類), 경본(經本), 주교관(主敎冠) 등이 발견되어 서양 신부를 체포하기에 혈안이 된 포청과 형조의 관원들에게 매우 혹독한 형벌을 당해야 했다.
그러나 남명혁은 모든 고통을 참아냈고, 함께 체포된 아내에게 "이 세상은 잠시 머무는 곳이고 우리의 본향은 천국이니 주를 위하여 죽어서 광명한 곳에서 영원 히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고 격려의 편지를 써 보낸 뒤 5월 24일 이 광헌 등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평소 '성의회의 치명자 남 다미아노'로 불려지길 원했던 성의회원 남명혁은 자신의 원대로 한창 나이인 38세로 순교하였다. (29는 처)
 
†성 권득인 베드로,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서울에서 태중 교우로 태어난 권득인 베드로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16세 
되던 해에 어머니마저 여윈 후 결혼했다. 얼마 동안은 약장사를 하는 형과 
함께 살다가 분가하여 성패(聖牌)와 성물을 만들어 팔며 어렵게 생계를 꾸려 
나갔는데 항상 새벽닭이 울 때 일어나 촛불을 켜놓고 날이 밝을 때까지 기도 
하는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이러한 깊은 신앙으로 인해 권 득인은 1839년 1월 16일 처남,아내,어린 자녀 등 4명와 가족 그리고 김로사와 함께 체포되어 포청과 형조에서 매우 흑독한 형벌과 고문을 당해야 했으나 요지부동이었다. 가족들이 배교하고 석방되자 가족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순교를 권하는 편지를 써 보냈다.
그후 권득인은 5개월 동안 옥중에서 굶주림과 추위를 이겨내고 드디어 5월 24일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했다. 그때 나이는 35세였다. (17과 함께 체포됨)
 
†성 장성집 요셉,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서울에서 태어나 한강변 서강(西江)에서 살았던 장성집은 30세경에 교리를 
배우고 열심한 예비 교우로 생활했다. 그러나 점차 교리에 대해 회의를 
품어 신앙생활을 중지하고 세속 향락과 재산 모으는 일에 몰두했다. 

교우 친구들의 권면과 가르침으로 회개한 이후로는 자신의 죄를 보속하고 세속의 유혹을 피하기 위해 방에 틀어박혀 추위와 굶주림을 무릅쓰고 기도와 성서연구에만 몰두했다.
이러한 태도에 집안 어른들이 "예전처럼 자유롭게 드나들며 생활하는 것이 너의 신앙생활에 무엇이 그렇게 방해되느냐?"고 만류하자 장성집은 "제가 전에 지은 죄는 모두 넉넉한 의식(衣食)을 얻어보려는 욕심에서 나온 것 입니다.
다시 그런 죄를 짓는 것보다는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는 것이 더 낫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뜻이 변할 수 없음을 밝혔고 마침내 1838년 4월 세례와 견진성사를 받았다.
이렇게 굳은 결심으로 신앙에 귀의한 장 성집은 l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순교할 목적으로 자수를 결심했다가 대부의 만류로 자수하지 않았지만 몇일 후인 4월 7일 체포되었다.
중병이 들어 포졸들이 가마에 태우려 했으나 장성집은 포청까지 걸어서 갔다. 포청에서도 신문하는 형관에게 맑은 정신으로 교리를 자세히 설명하고 혹형 과 고문을 참아냈다. 그후 장성집은 5월 26일 마지막으로 치도곤 25도를 맞고 옥사함으로써 순교하였다. 그때 그의 나이 54세였다.

▣ 따뜻한 가슴 하나로 ▣

우리가 불행한 것은 
가진 것이 적어서가 아니라 
따뜻한 가슴을 잃어가기 때문이다. 
따뜻한 가슴을 잃지 않으려면 
이웃들과 정을 나누어야 한다.
행복은 이웃과 함께 누려야 하고 
불행은 딛고 일어서야 한다.
- 법정의《홀로 사는 즐거움》중에서-
따뜻한 가슴 하나로 
좋은 이웃이 되고 말고 합니다.
따뜻한 가슴 하나로 행복과 불행이 갈립니다.
따뜻한 가슴 하나면 아픔과 흐느낌이 잦아들고
따뜻한 가슴 하나가 낙담과 좌절 중에도 
희망과 용기의 불을 지펴냅니다. 
                      - 오늘의 고도원의 아침편지입니다 - 
      함께 기도하고,연구하고 싶은...[앗↑나]가요*^^*
    소스입니다. - ※ 사진은 개인적으로 컴에 저장하셨다가 사용하셔야 되겠습니다. <PRE><FONT style="FONT-SIZE: 13pt" face=돋움체 color=brown><B> ◈ 한국 순교자들에게 바치는 기도 ◈ <PRE><FONT style="FONT-SIZE: 11pt" face=돋움체 color=brown> ◇ 이 땅의 모든 순교자여, 당신들은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굳은 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나이다. <BR> ◆ 저희는 현세에서 악의 세력과 치열하게 싸우며 당신들이 거두신 승리의 영광을 노래하고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찬양하오니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BR> ◇ 위대하신 순교자들이여, 천상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와 함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하느님의 자비를 얻어주소서. <BR> ◆ 지금도 어둠의 세력이 교회를 박해하고 있사오니 하느님께서 전능하신 팔로 교회를 붙들어 보호하시며 아직 어둠 속에 있는 지역에까지 널리 펴시도록 빌어주소서. <BR> ◇ 용감하신 순교자들이여, 특별히 청하오니 우리 나라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BR> ◆ 당신들은 이땅에서 많은 고난을 겪으며 사시다가 목숨까지 바치셨사오니 <BR> ◇ 전능하신 하느님께 빌어주시어 교회를 이땅에서 날로 자라게 하시며 사제를 많이 나게 하시고 <BR> ◆ 신자들이 주님의 계명을 잘 지키고 냉담자들은 다시 열심해지며 갈린 형제들은 같은 믿음으로하나 되고 비신자들은 참신앙으로 하느님을 알아 천지의 창조주 인류의 구세주를 찾아오게 하소서. <BR> ◇ 참으로 영광스러운 순교자들이여, 저희도 그 영광을 생각하며 기뻐하나이다. 간절히 청하오니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 빌어주시어 저희와 친척과 은인들에게 필요한 은혜를 얻어주소서. <BR> ◆ 또한 저희가 죽을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한결같이 믿어 증언하며 비록 피는 흘리지 못할지라도 주님의 은총을 입어 선종하게 하소서. <BR> ◇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여, <BR> ◆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PRE></UL></B> <PRE><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음체 color=#32449c> <B>†성 남명혁 다미아노,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IMG src="http://pds.catholic.or.kr/Archives/ncbbs/baltimore/pds1/0/9.12.jpg"> <BR> '문화'로도 불리는 남명혁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젊어서 무뢰배들과 어울리며 매우 난폭하고 방탕한 생활을 했으나 30세 경 입교한 후로 모든 세속의 나쁜 일과 손을 끊고 오직 신앙생활에만 전념했다. <BR> 유방제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는 열심을 더해 이광헌과 함께 회장으로 임명되어 예비자를 모아 가르치고 병약자들을 찾아 위로하고 격려했으며 또 '성의회' (聖衣會)라는 신심단체에 가입하여 신부를 도와 열심히 교회 일을 했다. <BR> 그는 1839년 기해박해 초 한 예비 교우의 밀고로 4월 7일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체포되었는데 이때 그의 집에서 제의류(祭衣類), 경본(經本), 주교관(主敎冠) 등이 발견되어 서양 신부를 체포하기에 혈안이 된 포청과 형조의 관원들에게 매우 혹독한 형벌을 당해야 했다. <BR> 그러나 남명혁은 모든 고통을 참아냈고, 함께 체포된 아내에게 "이 세상은 잠시 머무는 곳이고 우리의 본향은 천국이니 주를 위하여 죽어서 광명한 곳에서 영원 히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고 격려의 편지를 써 보낸 뒤 5월 24일 이 광헌 등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평소 '성의회의 치명자 남 다미아노'로 불려지길 원했던 성의회원 남명혁은 자신의 원대로 한창 나이인 38세로 순교하였다. (29는 처) <PRE><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음체 color=#32449c> <B>†성 권득인 베드로,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IMG src="http://pds.catholic.or.kr/Archives/ncbbs/baltimore/pds1/0/9.13.jpg"> 서울에서 태중 교우로 태어난 권득인 베드로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16세 되던 해에 어머니마저 여윈 후 결혼했다. 얼마 동안은 약장사를 하는 형과 함께 살다가 분가하여 성패(聖牌)와 성물을 만들어 팔며 어렵게 생계를 꾸려 나갔는데 항상 새벽닭이 울 때 일어나 촛불을 켜놓고 날이 밝을 때까지 기도 하는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BR> 이러한 깊은 신앙으로 인해 권 득인은 1839년 1월 16일 처남,아내,어린 자녀 등 4명와 가족 그리고 김로사와 함께 체포되어 포청과 형조에서 매우 흑독한 형벌과 고문을 당해야 했으나 요지부동이었다. 가족들이 배교하고 석방되자 가족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순교를 권하는 편지를 써 보냈다. <BR> 그후 권득인은 5개월 동안 옥중에서 굶주림과 추위를 이겨내고 드디어 5월 24일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했다. 그때 나이는 35세였다. (17과 함께 체포됨) <PRE><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음체 color=#32449c> <B>†성 장성집 요셉,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IMG src="http://pds.catholic.or.kr/Archives/ncbbs/baltimore/pds1/0/9.14.jpg"> 서울에서 태어나 한강변 서강(西江)에서 살았던 장성집은 30세경에 교리를 배우고 열심한 예비 교우로 생활했다. 그러나 점차 교리에 대해 회의를 품어 신앙생활을 중지하고 세속 향락과 재산 모으는 일에 몰두했다. <BR> 교우 친구들의 권면과 가르침으로 회개한 이후로는 자신의 죄를 보속하고 세속의 유혹을 피하기 위해 방에 틀어박혀 추위와 굶주림을 무릅쓰고 기도와 성서연구에만 몰두했다. <BR> 이러한 태도에 집안 어른들이 "예전처럼 자유롭게 드나들며 생활하는 것이 너의 신앙생활에 무엇이 그렇게 방해되느냐?"고 만류하자 장성집은 "제가 전에 지은 죄는 모두 넉넉한 의식(衣食)을 얻어보려는 욕심에서 나온 것 입니다. <BR> 다시 그런 죄를 짓는 것보다는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는 것이 더 낫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뜻이 변할 수 없음을 밝혔고 마침내 1838년 4월 세례와 견진성사를 받았다. <BR> 이렇게 굳은 결심으로 신앙에 귀의한 장 성집은 l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순교할 목적으로 자수를 결심했다가 대부의 만류로 자수하지 않았지만 몇일 후인 4월 7일 체포되었다. <BR> 중병이 들어 포졸들이 가마에 태우려 했으나 장성집은 포청까지 걸어서 갔다. 포청에서도 신문하는 형관에게 맑은 정신으로 교리를 자세히 설명하고 혹형 과 고문을 참아냈다. 그후 장성집은 5월 26일 마지막으로 치도곤 25도를 맞고 옥사함으로써 순교하였다. 그때 그의 나이 54세였다. <PRE><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움체 color=brown><B> ▣ 따뜻한 가슴 하나로 ▣ <PRE><FONT style="FONT-SIZE: 11pt" face=돋움체 color=brown> 우리가 불행한 것은 가진 것이 적어서가 아니라 따뜻한 가슴을 잃어가기 때문이다. 따뜻한 가슴을 잃지 않으려면 이웃들과 정을 나누어야 한다. 행복은 이웃과 함께 누려야 하고 불행은 딛고 일어서야 한다. - 법정의《홀로 사는 즐거움》중에서- 따뜻한 가슴 하나로 좋은 이웃이 되고 말고 합니다. 따뜻한 가슴 하나로 행복과 불행이 갈립니다. 따뜻한 가슴 하나면 아픔과 흐느낌이 잦아들고 따뜻한 가슴 하나가 낙담과 좌절 중에도 희망과 용기의 불을 지펴냅니다. - 오늘의 고도원의 아침편지입니다 - </B> <PRE><UL> <B><FONT style="FONT-SIZE: 9pt" face=돋음체 color=green> <UL><UL><A href="http://cafe.daum.net/EnglishAnna" target=blank> <IMG src="http://www.imagestation.com/picture/sraid53/p1267c37ffdbfe50aca62ebc9cb2ddfb0/fc8b9715.gif"? grpid='LOiA&amp;fldid=AqlR&amp;dataid=203&amp;grpcode=asoul&amp;realfile=thumb_h16%255B1%"'></A></UL> 함께 기도하고,연구하고 싶은...[앗↑나]</B>가요*^^* <EMBED src=http://bcmusic.or.kr/DATAS/bc_family/bcc/music/Ave_Maria.MP3 hidden=true type=audio/mpeg loop="1" autostart="true" volume="0"></EMB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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