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김바르바라,이바르바라,김로사,김성임 마르타,이매임 데레사
작성자조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5-09-07 조회수831 추천수8 반대(0) 신고
    ◈ 한국 순교자들에게 바치는 기도 ◈
    
    ◇ 이 땅의 모든 순교자여,
       당신들은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굳은 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나이다.
    
    ◆ 저희는 현세에서 악의 세력과 치열하게 싸우며 당신들이 거두신 승리의 영광을 노래하고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찬양하오니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위대하신 순교자들이여, 천상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와 함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하느님의 자비를 얻어주소서.
    ◆ 지금도 어둠의 세력이 교회를 박해하고 있사오니 하느님께서 전능하신 팔로 교회를 붙들어 보호하시며 아직 어둠 속에 있는 지역에까지 널리 펴시도록 빌어주소서.
    ◇ 용감하신 순교자들이여, 특별히 청하오니 우리 나라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 당신들은 이땅에서 많은 고난을 겪으며 사시다가 목숨까지 바치셨사오니
    ◇ 전능하신 하느님께 빌어주시어 교회를 이땅에서 날로 자라게 하시며 사제를 많이 나게 하시고
    ◆ 신자들이 주님의 계명을 잘 지키고 냉담자들은 다시 열심해지며 갈린 형제들은 같은 믿음으로하나 되고 비신자들은 참신앙으로 하느님을 알아 천지의 창조주 인류의 구세주를 찾아오게 하소서.
    ◇ 참으로 영광스러운 순교자들이여, 저희도 그 영광을 생각하며 기뻐하나이다. 간절히 청하오니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 빌어주시어 저희와 친척과 은인들에게 필요한 은혜를 얻어주소서.
    ◆ 또한 저희가 죽을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한결같이 믿어 증언하며 비록 피는 흘리지 못할지라도 주님의 은총을 입어 선종하게 하소서.
    ◇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여,
    ◆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김 바르바라,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시골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김 바르바라는 13세 경 상경하여 부유한 교우인 
황 마리아의 집에 식모로 들어가 그때부터 교리를 배워 열심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원래 수정(守貞)을 결심했으나 혼기에 이르러 부모의 강요로 
외교인과 결혼하여 남매를 두었다. 

결혼한 지 15년 만에 남편을 여의고 딸 하나만을 데리고 신앙생활에만 전념했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이해 3월 김 바르바라는 몸 붙여 살던 집에서 집주인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으로 끌려가 거기서 심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으나 용감히 신앙을 고백하였다.3개월간의 옥살이 끝에 5월 27일 굶주림, 기갈, 염병 등으로 옥사함으로써 순교했다. 그때 나이는 35세였다.
 
†성녀 이 바르바라,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이 바르바라는 독실한 구교우 가정에서 태어나 서울의 청파동에서 자랐다. 
어려서 부모를 여읜 후로는 서울의 이 영희, 이 정희 두 이모에게 의탁하고 
살았다. 

1839년 기해 박해가 일어나자 이해 4월, 15세의 어린 나이로 체포되어 포청 에서 신문을 받은 후 형조고 이송되었다 형조에서 어린 것이 요물이라 하여 매우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당했으나 끝까지 배교하지 않자 다시 포청으로 송환되었다.
포청에서 이 바르바라는 전보다 훨씬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당해야 했으나 꿋꿋이 참고 인내하며 함께 갇혀있는 어린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다가 5월 27일 기갈과 염병 그리고 고문의 여독으로 옥사함으로써 15세의 어린 나이 로 순교했다.(22,27의 조카)
 
†성녀 김로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과부가 된 후 입교하여 열심한 신앙생활로 친정식구들을 입교시킨 김 로사는 
1839년 1월 16일 권득인(베드로)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포청과 형조에서의 
신문 중 "하느님은 신인만물(神人萬物)의 큰 주인이시라 배반할 수 없읍니다" 
하고 자신의 뜻을 밝히고, 여러 차례의 혹형과 고문을 이겨낸 후 1839년 7월 
20일 예수, 마리아를 부르면서 7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했다. 이때 나이는 56세였다.(1,7과 함께 체포됨) 
 
†성녀 김성임 마르타,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인천 부평에서 태어난 김 성임은 결혼에 한번 실패한 후 상경하여 장님 점장이 
와 재혼했다. 이때 교리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남편이 죽은 후 신앙생활을 
위해 집을 나와 교우들의 집을 전전하였다 천한 일을 하면서도 항상 밝은 
얼굴로 생활했다. 

1839년 4월 11일 김 성임은 자신이 몸붙이고 있던 이매임의 집에서 이매임, 허계임,이정희와 영희 자매, 김 루치아 등과 순교를 결심한 후 이미 체포된 남명혁(南明赫)의 집을 파수하던 포졸들에게 자수하였다.
포청과 형조에서의 혹형과 고문을 이겨내고 7월 20일 7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50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17,22,23,28,36과 함께 자수)
외교인 시절에 결혼한 이 매임은 20세에 과부가 되어 경기도 봉천의 친정으로 돌아와서 한 동네에 사는 여교우의 전교로 천주교에 입교했다. 입교 후 이 매임은 조카 이정희(李貞喜)와 영희(英喜)를 신앙으로 인도했다. 이어 조카 이영희가 수정(守貞)할 결심으로 외교인과의 결혼을 뿌리치고 서울로 피신하자 함께 따라가 살며 열심한 신앙생활을 했다.
1839년 4월초 이 매임은 허계임, 이정희, 이영희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살고 있던 김성임,김 루치아 등과 함께 남명혁과 이광헌의 어린 자녀들이 혹형을 이겨내고 신앙을 지켰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감동하여 이들 5명의 여교우와 함께 순교 할 것을 결심하고,
마침내 4월 11일 남명혁의 집을 파수하던 포졸에게 묵주를 내보이며 천주교인 임을 밝히면서 자헌하였다. 이어 7월 20일 7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했다. 그때 나이 52세였다. (36은 올케, 22, 28은 조카, 18, 22. 23, 28, 36과 함께 자수)

▣ 정신 건강 ▣

정신 건강에 꼭 필요한 것은 
정확하고 풍부한 정보, 다른 사람들과 
폭넓은 만남에서 얻는 자극, 정신 활동의 
결과물을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통로이다.
영혼의 건강에 꼭 필요한 것은 
상상력과 꿈과 사랑과 창조력을 표현하고, 
이를 개인과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용할 수 있는 기회이다.

- 스코트 니어링의《희망》중에서 -
정신 건강도 '몸의 건강'에서 비롯됩니다. 몸이 무너지면 정신도, 영혼도 함께 무너지기 쉽습니다. 좋은 물과 공기, 소박한 음식, 적당한 휴식과 운동, 일에 대한 열정과 활력, 기쁨과 감사의 태도가 몸의 건강은 물론 정신과 영혼도 건강하게 해 줍니다.
- 오늘의 고도원의 아침편지입니다 -
      함께 기도하고,연구하고 싶은...[앗↑나]가요*^^*
    소스입니다. <PRE><FONT style="FONT-SIZE: 13pt" face=돋움체 color=brown><B><UL> ◈ 한국 순교자들에게 바치는 기도 ◈ <PRE><FONT style="FONT-SIZE: 11pt" face=돋움체 color=brown> ◇ 이 땅의 모든 순교자여, 당신들은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굳은 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나이다. <BR> ◆ 저희는 현세에서 악의 세력과 치열하게 싸우며 당신들이 거두신 승리의 영광을 노래하고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찬양하오니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BR> ◇ 위대하신 순교자들이여, 천상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와 함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하느님의 자비를 얻어주소서. <BR> ◆ 지금도 어둠의 세력이 교회를 박해하고 있사오니 하느님께서 전능하신 팔로 교회를 붙들어 보호하시며 아직 어둠 속에 있는 지역에까지 널리 펴시도록 빌어주소서. <BR> ◇ 용감하신 순교자들이여, 특별히 청하오니 우리 나라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BR> ◆ 당신들은 이땅에서 많은 고난을 겪으며 사시다가 목숨까지 바치셨사오니 <BR> ◇ 전능하신 하느님께 빌어주시어 교회를 이땅에서 날로 자라게 하시며 사제를 많이 나게 하시고 <BR> ◆ 신자들이 주님의 계명을 잘 지키고 냉담자들은 다시 열심해지며 갈린 형제들은 같은 믿음으로하나 되고 비신자들은 참신앙으로 하느님을 알아 천지의 창조주 인류의 구세주를 찾아오게 하소서. <BR> ◇ 참으로 영광스러운 순교자들이여, 저희도 그 영광을 생각하며 기뻐하나이다. 간절히 청하오니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 빌어주시어 저희와 친척과 은인들에게 필요한 은혜를 얻어주소서. <BR> ◆ 또한 저희가 죽을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한결같이 믿어 증언하며 비록 피는 흘리지 못할지라도 주님의 은총을 입어 선종하게 하소서. <BR> ◇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여, <BR> ◆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PRE></UL></B> <PRE><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음체 color=#32449c> <B>†성녀 김 바르바라,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IMG src="http://pds.catholic.or.kr/Archives/ncbbs/baltimore/pds1/0/9.15.jpg"> 시골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김 바르바라는 13세 경 상경하여 부유한 교우인 황 마리아의 집에 식모로 들어가 그때부터 교리를 배워 열심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원래 수정(守貞)을 결심했으나 혼기에 이르러 부모의 강요로 외교인과 결혼하여 남매를 두었다. <BR> 결혼한 지 15년 만에 남편을 여의고 딸 하나만을 데리고 신앙생활에만 전념했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이해 3월 김 바르바라는 몸 붙여 살던 집에서 집주인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으로 끌려가 거기서 심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으나 용감히 신앙을 고백하였다.3개월간의 옥살이 끝에 5월 27일 굶주림, 기갈, 염병 등으로 옥사함으로써 순교했다. 그때 나이는 35세였다. <PRE><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음체 color=#32449c> <B>†성녀 이 바르바라,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IMG src="http://pds.catholic.or.kr/Archives/ncbbs/baltimore/pds1/0/9.16.jpg"> 이 바르바라는 독실한 구교우 가정에서 태어나 서울의 청파동에서 자랐다. 어려서 부모를 여읜 후로는 서울의 이 영희, 이 정희 두 이모에게 의탁하고 살았다. <BR> 1839년 기해 박해가 일어나자 이해 4월, 15세의 어린 나이로 체포되어 포청 에서 신문을 받은 후 형조고 이송되었다 형조에서 어린 것이 요물이라 하여 매우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당했으나 끝까지 배교하지 않자 다시 포청으로 송환되었다. <BR> 포청에서 이 바르바라는 전보다 훨씬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당해야 했으나 꿋꿋이 참고 인내하며 함께 갇혀있는 어린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다가 5월 27일 기갈과 염병 그리고 고문의 여독으로 옥사함으로써 15세의 어린 나이 로 순교했다.(22,27의 조카) <PRE><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음체 color=#32449c> <B>†성녀 김로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IMG src="http://pds.catholic.or.kr/Archives/ncbbs/baltimore/pds1/0/9.17.jpg"> 과부가 된 후 입교하여 열심한 신앙생활로 친정식구들을 입교시킨 김 로사는 1839년 1월 16일 권득인(베드로)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포청과 형조에서의 신문 중 "하느님은 신인만물(神人萬物)의 큰 주인이시라 배반할 수 없읍니다" 하고 자신의 뜻을 밝히고, 여러 차례의 혹형과 고문을 이겨낸 후 1839년 7월 20일 예수, 마리아를 부르면서 7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했다. 이때 나이는 56세였다.(1,7과 함께 체포됨) <PRE><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음체 color=#32449c> <B>†성녀 김성임 마르타,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IMG src="http://pds.catholic.or.kr/Archives/ncbbs/baltimore/pds1/0/9.18.jpg"> 인천 부평에서 태어난 김 성임은 결혼에 한번 실패한 후 상경하여 장님 점장이 와 재혼했다. 이때 교리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남편이 죽은 후 신앙생활을 위해 집을 나와 교우들의 집을 전전하였다 천한 일을 하면서도 항상 밝은 얼굴로 생활했다. <BR> 1839년 4월 11일 김 성임은 자신이 몸붙이고 있던 이매임의 집에서 이매임, 허계임,이정희와 영희 자매, 김 루치아 등과 순교를 결심한 후 이미 체포된 남명혁(南明赫)의 집을 파수하던 포졸들에게 자수하였다. <BR> 포청과 형조에서의 혹형과 고문을 이겨내고 7월 20일 7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50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17,22,23,28,36과 함께 자수) <BR> <IMG src="http://pds.catholic.or.kr/Archives/ncbbs/baltimore/pds1/0/9.19.jpg"> 외교인 시절에 결혼한 이 매임은 20세에 과부가 되어 경기도 봉천의 친정으로 돌아와서 한 동네에 사는 여교우의 전교로 천주교에 입교했다. 입교 후 이 매임은 조카 이정희(李貞喜)와 영희(英喜)를 신앙으로 인도했다. 이어 조카 이영희가 수정(守貞)할 결심으로 외교인과의 결혼을 뿌리치고 서울로 피신하자 함께 따라가 살며 열심한 신앙생활을 했다. <BR> 1839년 4월초 이 매임은 허계임, 이정희, 이영희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살고 있던 김성임,김 루치아 등과 함께 남명혁과 이광헌의 어린 자녀들이 혹형을 이겨내고 신앙을 지켰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감동하여 이들 5명의 여교우와 함께 순교 할 것을 결심하고, <BR> 마침내 4월 11일 남명혁의 집을 파수하던 포졸에게 묵주를 내보이며 천주교인 임을 밝히면서 자헌하였다. 이어 7월 20일 7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했다. 그때 나이 52세였다. (36은 올케, 22, 28은 조카, 18, 22. 23, 28, 36과 함께 자수) <PRE><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움체 color=brown><B> ▣ 정신 건강 ▣ <PRE><FONT style="FONT-SIZE: 11pt" face=돋움체 color=brown> 정신 건강에 꼭 필요한 것은 정확하고 풍부한 정보, 다른 사람들과 폭넓은 만남에서 얻는 자극, 정신 활동의 결과물을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통로이다. 영혼의 건강에 꼭 필요한 것은 상상력과 꿈과 사랑과 창조력을 표현하고, 이를 개인과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용할 수 있는 기회이다. <br> - 스코트 니어링의《희망》중에서 - <br> 정신 건강도 '몸의 건강'에서 비롯됩니다. 몸이 무너지면 정신도, 영혼도 함께 무너지기 쉽습니다. 좋은 물과 공기, 소박한 음식, 적당한 휴식과 운동, 일에 대한 열정과 활력, 기쁨과 감사의 태도가 몸의 건강은 물론 정신과 영혼도 건강하게 해 줍니다. <br> - 오늘의 고도원의 아침편지입니다 - </B> <PRE><UL> <B><FONT style="FONT-SIZE: 9pt" face=돋음체 color=green> <UL><UL><A href="http://cafe.daum.net/EnglishAnna" target=blank> <IMG src="http://www.imagestation.com/picture/sraid53/p1267c37ffdbfe50aca62ebc9cb2ddfb0/fc8b9715.gif" ? grpid='LOiA&amp;fldid=AqlR&amp;dataid=203&amp;grpcode=asoul&amp;realfile=thumb_h16%255B1%"'></A></UL> 함께 기도하고,연구하고 싶은...[앗↑나]</B>가요*^^* <EMBED src=http://sungga.catholic.or.kr/asf/1998070286.asf hidden=true type=video/x-ms-asf loop="-1" 0? autostart="true volume=">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