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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384) 홀로 부는 축하케익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9-07 조회수1,535 추천수10 반대(0) 신고

2005년9월7일 연중 제23주간 수요일ㅡ골로사이서3,1-11;루가6,20-26ㅡ

 

         홀로 부는 축하케잌

                                  이순의

 

 

 

 

 

어둠이 깔린 거리의 퇴근시간은 종종거리는 사람들과 늘어진 자동차 바퀴들의 잰 굴림들로 번뜩거린다. 사랑으로 끈끈한 가족이 있고, 찾아 들어야 할 종착지인 가정이 있어서 조바심들을 낸다. 지갑이 텅 비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은행의 현금인출기 앞에 섰다. 의무적으로 인사하고 지시하는 기계 아가씨의 음성을 따라 의무적으로 행동한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지금 돈을 세고 있습니다.> 그리고 곧 카드와 거래 명세표가 작은 입술로 토하여 나오고, 그 작은 조무래기 들을 집어 들면 큰 입술주머니는 딸깍 뚜껑을 벌려 원하는 만큼의 푸른 지폐를 내어 놓는다.

 

<당기시오>라고 써진 유리문을 당기고 나서면 내 머리의 정수리 위로 유난히도 하얀 간판등은 형광 불빛을 찬란히 쏟아 놓는다. 그래서 어둠이 낯설지 않은 거리의 인파 속에서 두려움 없이 묻혀 걷고...... 빵집 앞에서 멈추었다. 어두운 저녁의 진열장에는 이 빠진 빈자리가 드문하고, 구수한 냄새는 옅어져 흐리고, 고깔 쓴 전등은 졸립다. 벌써 몇 년째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짝궁 없는 결혼 기념일을 홀로 찾아서 달콤한 케잌에 촛불을 켜겠다고 빵집을 찾은지가 언제부터였는지? 그래도 이 땅 가까이에 내 짝궁이 숨쉬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케잌을 고른다.  

 

올 해는 아들녀석이 고등학교 3학년이라서 같이 앉을 수도 없었다. 기다릴까 하다가 그냥 내 마음이랑 멀리 있는 짝궁이랑 둘이만 있고 싶어졌다. 좁은 내 골방에 들여놓을 상 조차 번거로워 그냥 상자 위에 달랑 케잌을 꺼내 놓았다. 그리고 큰 초 하나를 꽂아 세우고, 나머지 아홉 개의 작은 초를 나란히 세웠다. 성냥에 불을 붙여 하나 하나에 생명을 심었다. 그 불꽃이 살아서 가물거리기 시작했다. 허허로운 마음 탓이었을까?! 올 해는 특별한 기도문도 따라주지 않았다. 그냥 곱고 부드러운 살결 위에서 예쁘게 타는 촛불을 바라보며 물끄러미 앉아 있었다. 나는 아직도 내 짝궁의 옆지기임을 새김질하고 있었을까?

 

촛농이 흘러서 고운 살결에 얼룩이지고.... 혼자서 <후우~~!> 하고 불어서 껐다. 작은 방 안에 연기가 자욱하고..... 그때서야 외로움이 가슴을 스치다가 하얀 기체가 그려 준 무늬를 따라서 함께 사위어 들었다. 고단한 짝궁은 잠이 들었을 것이고.... 나는 짝궁이 힘들어 하는 노동을 알고 있지만 얼마나 힘이 들어서 고생인지는 다 알지 못한다. 짝궁은 짝궁대로 나 홀로 아이를 키우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은 하고 있겠지만 그 어려움이 어떤 어려움인지를 실감하지 못하는..... 그렇게라도 우리는 부부로 살은지 벌써 19년 되었다. 케잌을 사서 들고 오다가 놀이터 벤취에 잠시 앉아 전화를 했다. <함께 앉아서 케잌의 촛불은 켤 수 없지만 당신에게 축하는 꼭 전해주고 싶어. 축하합니다.>라고! 몇 년째 짝궁의 대답은 하나다. <미안허네.> 

 

 

 

 

촛불꺼진 케잌은 다시 상자에 담아 그대로 냉장고에 두었다. 혼자서 먹는 케잌은 결코 달콤할 수 없기 때문이다. 늦은 저녁에 아들녀석이 돌아와 <엄마 축하해.>라고 말해 준 한마디의 선물값으로 달게 먹는다. 혼자 부는 축하 케잌을 먹어 줄 아들이 없었다면 어쩔뻔 했는가?! <고맙다. 우리 아들!> 우리는 축하 케잌을 먹어 줄 그 아들이 있어서 19년을 살았고, 또 앞으로도 그 아들에게 결혼 기념 케잌을 먹이기 위해서라도 부부로 살아야 한다. 그 아들이 있어서 희망을 삼지 않겠는가?! 축하합니다. 내 짝궁!

 

 

 

 

ㅡ그리고 거짓말로 서로 속이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옛 생활을 청산하여 낡은 인간을 벗어버렸고 새 인간으로 갈아입었기 때문입니다. 새 인간은 자기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 참된 지식을 가지게 됩니다. 골로사이서3,9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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