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퍼온 글) 포도알 같은 눈물
작성자곽두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9-09 조회수848 추천수6 반대(0) 신고
 

포도알 같은 눈물


 

월말이 임박한 주말이라 더 바쁜 오후 6시 20분쯤 전화벨이 울렸다.

흙 냄새가 밴 청량한 여자의 목소리. 농사를 지으며 고향을 지키는

시골총각과 결혼한 제자였다.


“선생님 몇 시에 퇴근하세요?” 

“응, 7시쯤 퇴근 할 것 같은데…”

“그러시면 사무실 근처에 가서 전화드릴테니 좀 기다리시면 어떨까요.”


제자의 전화를 받고 약속장소로 나가 악수를 하는데, 흙과 농작물에

거칠어진 손이 닿는 순간, 남자의 손과 여자의 손이 바뀐 듯한 부끄러움

한 자락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한 마디 위로의 말이라도 해야

미안한 마음을 달랠 수 있을 것 같았다.

“손이 꺼칠하구나. 수고가 많지.” 

“선생님, 저희 포도 오늘 첫 수확을 했어요. 맛이 어쩌려나 모르겠어요.”


포도상자를 건네는 제자의 얼굴에 환한 초저녁 달덩이 미소가 피어올랐다.

바쁜 일손 한 번 거든 일 없는 내가 받아도 되는 건지 망설일 시간도

없이 두 손에 안긴 포도상자를 트렁크에 실었다.

부군이 얼른 포도 한 상자를 더 싣는다.


“선생님, 한 상자는 이 선생님께 전해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전해 드려야

하는데 지금이 가장 바쁜 철이라 죄송합니다.”


거친 손을 잡아 줄 시간도 주지 않고 1톤 트럭에 오른다. 부릉부릉 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유유히 멀어지는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손을

흔든다.


“선생님 건강하세요.” 

“응, 잘 가. 건강하고….”


1톤 트럭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며 서 있었다. 친정에 왔다가

시댁으로 돌아가는 딸을 보내는 아버지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눈가에

포도알 같은 눈물이 고인다.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 한 송이 포도가

영글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방울을 흘렸을까.


저녁밥상 화제로 떠오른 포도상자와 25년 전 고등공민학교 제자들

이야기, 밥상을 물리고 접시에 둘러앉아 포도알을 씹는다. 제자가

흘렸을 땀방울이 입안에서 톡톡 터진다. 달콤한 맛과 진한 사랑의

향기가 가슴까지 찡하게 전해진다. 힘들여 가꾼 것을 나누는 손길은

순수한 농부의 천심, 제자의 스승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권희원   사진:다운   

 

-름다운 상을 드는 람들

  http://www.asemansa.org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