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란
밤이슬 다 모으고도 모자라
비를 기다리는 토란을 아십니까
내가 아직 어렸을 때
최고의 우산은 토란잎이었지요
잎 하나의 우산을 쓰고
삼십오 년 세상의 빗속을 뛰어다닐 때
속까지 젖는 것은 언제나 나였습니다
지리산이 젖고
섬진강이 젖은 오늘
이제서야 나는 한 잎의 토란입니다
시시로
물의 순은빛 눈동자를 머금지만
그마저 소소한 바람에게 내어주고
저 홀로 푸른 토란입니다
수천 수만의 빗방울이 집적거려도
토란은 그저 젖지 않는 토란일 뿐
내 곁을 스쳐간 사람들
그들도 하나씩
물의 눈동자로 구르지만
몸 한번 뒤척여
슬그머니 놓아주고 싶습니다
글:이원규의 시집 <옛 애인의 집>에서
삽화:문정섭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
http://www.asemansa.org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