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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벽을 열며 / 빠다킹신부님의 묵상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09-11 조회수720 추천수6 반대(0) 신고

 

 

                     2005년 9월 11일 연중 제24주일 가해

 

                                            

 

 

제1독서 집회서 27,33─28,9

 

원망과 분노는 가증스러운 것이니 죄인이 좋아하는 것이다.

 

보복하는 자는 주님의 보복을 받을 것이며, 주님께서 그의 죄를 엄격히 헤아리실 것

 

이다.

 

이웃의 잘못을 용서해 주어라. 그러면 네가 기도할 때에 네 죄도 사해질 것이다.

 

자기 이웃에 대해서 분노를 품고 있는 자가 어떻게 주님의 용서를 기대할 수 있으

 

랴? 남을 동정할 줄 모르는 자가, 어떻게 자기 죄에 대한 용서를 청할 수 있겠는가?

 

자기도 죄짓는 사람이 남에게 원한을 품는다면, 누가 그를 용서해 주겠는가? 네 종

 

말을 생각하고 미움을 버려라. 한 번은 죽어 썩어질 것을 생각하고 계명에 충실하여

 

라.

 

계명을 생각하고 네 이웃에게 원한을 품지 마라. 지극히 높으신 분의 계약을 생각하

 

고 남의 잘못을 눈감아 주어라.

 

제2독서 로마서 14,7-9

 

형제 여러분, 우리들 가운데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사람도 없고 자기 자신을 위

 

해서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해서 살고 죽더라도 주님을 위

 

해서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도 주님의 것이고 죽어도 주님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의 주님도 되시고 산 자의 주님도 되시기 위해서 죽으셨다

 

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복음 마태오 18,21-35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와서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

 

답하셨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하늘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왕이 자기 종들과 셈을 밝히려 하였다. 셈

 

을 시작하자 일만 달란트나 되는 돈을 빚진 사람이 왕 앞에 끌려왔다.

 

그에게 빚을 갚을 길이 없었으므로 왕은 ‘네 몸과 네 처자와 너에게 있는 것을 다 팔

 

아서 빚을 갚아라.' 하였다.

 

이 말을 듣고 종이 엎드려 왕에게 절하며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곧 다 갚아 드리겠

 

습니다.' 하고 애걸하였다. 왕은 그를 가엾게 여겨 빚을 탕감해 주고 놓아 보냈다.

 

그런데 그 종은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밖에 안 되는 빚을 진 동료를 만나자 달

 

려들어 멱살을 잡으며 ‘내 빚을 갚아라.' 하고 호통을 쳤다.

 

그 동료는 엎드려 ‘꼭 갚을 터이니 조금만 참아 주게.' 하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그는

 

들어주기는커녕 오히려 그 동료를 끌고 가서 빚진 돈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

 

어 두었다.

 

다른 종들이 이 광경을 보고 매우 분개하여 왕에게 가서 이 일을 낱낱이 일러바쳤다.


 

그러자 왕은 그 종을 불러들여 ‘이 몹쓸 종아, 네가 애걸하기에 나는 그 많은 빚을 탕

 

감해 주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할 것이 아니냐?' 하며 몹시 노하여 그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그를

 

형리에게 넘겼다.

 

너희가 진심으로 형제들을 서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

 

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




성지에서 생활을 하다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을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쓰레기

 

를 아무데나 버리는 사람, 옆에서 기도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웃고 떠드는

 

사람, 버너를 사용할 수 없다고 말을 해도 구석진 곳에서 고기를 구워서 소주와 함께

 

드시는 분, 등등……. 그러면 화가 나고, 괜히 미워집니다. 얼굴을 붉히지 않고, 좋은

 

말로 이야기하자는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몇 번을 이야기해도 전혀 소

 

용이 없을 때, 더군다나 오히려 다른 성지에서는 안 그런데 왜 여기는 깐깐하냐고 말

 

씀하시면서 화를 내시면 저 역시 성인이 아니기 때문에 화가 납니다. 그러면서 이렇

 

게 속으로 말하지요.

 

‘아니, 저렇게 몰지각한 사람이 어디에 있어?’

그런데 얼마 전에 어떤 신부님에게 이런 소리를 들었답니다.

“조 신부, 왜 이렇게 신자들에게 쌀쌀맞게 굴어?”

저는 그 몰지각한 사람들이 그 신부님께 가서 일렀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래서 다시 목소리를 높이어서 이런 사람들이 어디에 있냐면서 신부님께 말씀을 드

 

렸지요. 그런데 신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세요.

“내가 말한 사람은 그런 사람들이 아닌데……. 다름이 아니라, 조신부의 새벽 메일

 

을 보던 사람인데 성지에 가서 조신부를 보았고, 너무나 반가워서 ‘신부님~~·’하면

 

서 신부님 앞으로 갔는데, 신부님께서는 이상한 사람 보듯이 쳐다보면서 성의 없이

 

‘안녕하세요~’라고만 이야기했다고 하더구만. 그 신자가 얼마나 반가웠으면 그랬겠

 

나. 그때 좀 친절하게 굴면 얼마나 좋아?”

제가 오해를 했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또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답니다. 저는 저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 또한 성지의 몰지각한 사람에 대해서만 생각을 했지, 내가 다른 사

 

람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마 많은 분

 

들이 생활하면서 이런 체험들을 자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나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

 

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들은 힘주어서 말합니다.

“아니 내게 어쩌면 저럴 수가 있어? 사람이 되어가지고 어떻게 저런 행동을 할 수 있

 

단 말이야. 나는 저런 사람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우리는 내 자신을 다시금 되돌아 봐야 합니다. 나를 두고서 그

 

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을까요?

저 또한 마찬가지지요. 사실 처음 보는 사람을 몇 십 년 만난 친구처럼 대한다는 것

 

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앞선 그분을 보고서 그저 가벼운 목례만 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저의 그 성의 없는 인사로 저는 잘 몰랐지만, 그분께서는 상처를 받으셨던 것

 

입니다.

 

이렇게 나만 아픔과 상처를 받는 것이 아니라, 나 역시 그 아픔과 상처를 많은 사람

 

들에게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주었던 그 아픔과 상처에 대한 용서를 상대방

 

에게 청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그 전에 나에게 준 그 아픔과 상처에 대한 용서

 

를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제1독서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도 죄짓는 사람이 남에게 원한 을 품는다면, 누가 그를 용서해 주겠는가?”

주님께서도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고 말씀하심으

 

로써, 내가 먼저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지금 내 자신은 어떤가요? 내가 용서를 해야, 나의 죄 역시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용서할 수 없다면, 용서받을 생각도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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