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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 시대가 요구하는 사목...
작성자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쪽지 캡슐 작성일2005-09-12 조회수750 추천수4 반대(0)

약한 사람 - 하느님의 사람


예전에 있던 본당에서 노숙자와 행려자들을 위한 ‘우리물터’라는 빨래터와 목욕 시설을 자그마하게 운영했습니다. 5월에 문을 열었는데 첫 날 할아버지 노숙자 한 분이 방문 하셨습니다. 그분께서 옷을 벗으시는데 봄날임에도 불구하고 열여섯 가지를 벗으시더군요. 더 기가 막혔던 일은 바로 그 한 분이 벗겨낸 ‘때’로 하수구가 막힌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씻을 곳이 없었길래’ 하는 마음에 이런 시설을 만든 게 정말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목욕을 다 마치시더니 가시면서 돈 만 원을 내놓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닙니다. 할아버지, 여기는 돈 내고 이용하시는 곳이 아니에요.” 극구 아니라고 손을 내젓는 우리에게 할아버지께서는 ‘아 그렇더라도 좋은 일에 쓰라고….’ ‘이렇게 이용하게 해줘서 감사하다’고 하시면서 떠나가셨습니다. 아마도 다른 목욕탕에서는 받아들여주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당신이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에 너무나 감격해 하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누구나 어떤 처지에 있던지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터를 운영하면서 정말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어떤 젊은 친구 한 분은 노숙생활을 하다가 간신히 신문보급소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낮에는 신문을 돌리고 밤에는 보급소 한 구석에서 잠자며 생활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이 친구가 물터에 나타났길래 ‘왜 다시 노숙생활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밤이면 너무나 외로워서 차라리 길거리 무료급식을 받으며 옆의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낫다 싶어 다시 노숙생활로 돌아왔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말이지 목욕할 때 등을 밀어주면서 보면 어디 한 군데라도 상처와 장애를 가지지 않은 분이 없습니다.


그런데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 가운데도 이런 분들을 곱지 않은 눈으로 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왜 노숙자와 행려자들 도와주는가?”, “그네들은 도움을 받을 자격도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함께 살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함께 살 수 있는 기준이 쓸모가 있는가 없는가로 되어버렸습니다. 그렇다면 보잘것없고 연약한 이들은 다 이 세상에 살 자격이 없다는 것인지? 아직 힘이 없고 남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갓난아기와 장애인들, 오늘날 우리를 이렇게까지 살게 만든 노인분들조차도 사회에서 더 이상 쓸모가 없다는 것인지? 사람은 그저 사람일 뿐입니다.


사람은 각자의 능력에 맞게 일할 수 있고 필요한 만큼은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물적인 면에서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적인 면을 포함해서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 수 있도록 이끌어줘야 하며, 사목자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중개 역할을 통해 서로가 나눌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세례자 요한처럼 끊임없이 촉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요청되는 정의구현이며, 이 시대가 요구하는 사목이 아닐까요. http://club.catholic.or.kr/gaudium95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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