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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 유진길 아우구스띠노,허계임 막달레나,남이관 세바스티아노시여~!
작성자조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5-09-12 조회수692 추천수6 반대(0) 신고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유진길 아우구스띠노,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용심’으로도 불렸고 또 순교 당시 정3품 당상역관(堂上譯官)의 높은 
벼슬에 있었던 유진길 아우구스티노는 서울의 유명한 역관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고 특히 철학과 종교 문제에 관심을 갖고 세상만물의 기원과 종말에 대해 명확히 알고자 10년 동안 불교와 도교를 깊이 연구했다.
그러나 ‘만 권의 책과 동서고금의 학문이 가슴에 가득한 사람’이라는 세상 사람들의 칭찬과는 달리 유진길은 오히려 진리를 찾지 못해 방황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823년 우연히 「천주실의」의 일부분을 구해 읽고는 사방에 수소문한 끝에 한 교우를 만나 천주교 진리를 터득하고 곧 입교했다.
1824년 동지사(冬至使)의 수석 역관으로 북경에 가서 성세성사를 받았다. 그 후 유 진길은 북경교회와의 연락을 담당하며 전후 8차에 걸쳐 북경을 왕래하면서 정하상 바오로, 조신철 가롤로와 함께 성직자영입운동을 전개하였다.
마침내는 교황에게 성직자의 파견을 간청하는 편지를 북경주교에게 전달 했고 그 결과 유방제 신부, 나(모방) 신부,정(샤스땅) 신부, 범(앵베르) 주교 등이 입국하게 되었다. 유진길은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7월 17일 체포되었다.
포청에서 주교와 신부들의 은신처를 대라는 관헌으로부터 매우 가혹한 형벌을 받았으나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주교와 신부들이 체포되자 의금부에서 그들과 함께 사형선고를 받았다.마침내 유진길은 9월 22일 정하상과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49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고 순교 했다. (48은 아들)

†성녀 허계임 막달레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경기도 용인(龍仁)에서 태어난 허계임 막달레나는 과부가 되어 친정으로 
돌아 온 시누이 이매임 데레사로부터 천주교를 알게 되자 이정희와 영희 
두 딸과 함께 천주교에 입교했다. 1839년 3월, 허계임은 성사를 받으러 
당시 시흥지방 봉천(奉天)에서 상경하여 시누이와 두 딸이 살고 있는 
집에 머물게 되었다. 

남명혁과 이광헌의 어린 자녀들이 혹형과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켰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시누이와 두 딸 그리고 김성임,김 루치아 등과 순교를 결심하고 4월 11일 남명혁의 집을 파수하던 포졸에게 묵주를 내보이며 자헌했다.
포청과 형조에서 허계임은 배교를 강요하는 수차의 형문을 당했으나 다 이겨내고, 9월 26일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되어 순교하니 그의 나이 67세였다. (19는 시누이, 22, 28은 딸, 18, 19, 22, 23, 28과 함께 자수)

†성 남이관 세바스티아노,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서울의 양반 교우 가정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남이관은 18세 때 교우인 조증이 바르바라와 결혼했다. 1801년의 신유박해 때 아버지와 함께 체포되었다.
아버지 남필용(南必容)은 전라도 강진(康津)으로 귀양가 그곳에서 죽었고, 남 이관은 경상도 단성(丹城)으로 귀양갔다가 30년만인 1832년 풀려 나와 처가인 이천(利川)에서 살았다. 그후 상경하여 처가가 정하상 바오로와 인척인 관계로 그의 신부영입운동을 도와 1833년 중국인 유방제 신부를 맞아들이게 했고,
그에게서 성세와 견진성사를 받은 후 회장으로 임명되어 열심히 교회 일을 도왔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남이관은 자신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처가인 이천으로 내려가 숨었다. 그러나 9원 16일에 체포되어 서울 포청으로 압송되었다.
포청에서 간단한 신문을 받은 후 김제준과 함께 국사범으로 간주되어 의금 부로 이송되어 여기에서 유진길, 정하상과 함께 신문을 받고, 다시 형조로 이송되어 거기서 사형을 선고받았다.9월 26일 남이관은 8명의 교우와 함께 60세의 나이로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되어 순교했다. (51은 아내)

▣ 만남과 마주침 ▣

진정한 만남은 상호간의 눈뜸이다. 
영혼의 진동이 없으면 그건 만남이 아니라 
한때의 마주침이다. 그런 만남을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끝없이 가꾸고 다스려야 한다. 
좋은 친구를 만나려면 먼저 나 자신이 
좋은 친구감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친구란 내 부름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이다.

- 법정의《오두막 편지》중에서 -
우연히 만나 우연으로 끝나면, 그것은 마주침입니다. 우연처럼 만났으나 필연으로 이어지면, 만남입니다. 그 필연은 그냥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남이 가져다 주지도 않습니다. 오랜 자기 준비와 기다림 끝에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만남은 필연이며, 새로운 역사가 펼쳐지는 위대한 창조의 순간입니다. - 고도원의 아침편지 중에서 -

♬ 103위 순교 성인 ♬ - 성가 285

순교로 빛을 밝힌 백삼위 성인 오롯이 바친 넋에 새순이 돋아 순례의 교회안에 큰 나무되니 님따른 그 생애가 거룩하여라 영원히 받으소서 희망의 찬미 찬송을 이름 모를 순교자여 새빛되소서.
이 땅에 빛을 주신 야훼 하느님 태총의 혼돈에서 창조이루듯 한민족 새얼속에 나게 하시니 구원의 기쁜소식 누리 비추네 이백년 이어 받은 신앙의유산 기리며 온세상에 드높이리 성삼의 영광.
생명의 빛을 받아 새로난 겨례 일치의 성령안에 함께 모여서 복되신 마리아의 삶을 따르니 복음을 살아가는 증인이어라 만백성 찬양하라 사랑의 승리기쁨을 이 땅위에 빛나시는 하느님 이름.

함께 기도하고,연구하고 싶은...[앗↑나]가요*^^*
    소스입니다 <PRE><FONT style="FONT-SIZE: 14pt" face=돋움체 color=red><B>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PRE><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움체 color=#32449c><B> †성 유진길 아우구스띠노,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IMG src="http://pds.catholic.or.kr/Archives/ncbbs/baltimore/pds1/0/9.35.jpg"> ‘용심’으로도 불렸고 또 순교 당시 정3품 당상역관(堂上譯官)의 높은 벼슬에 있었던 유진길 아우구스티노는 서울의 유명한 역관 집안에서 태어났다. <BR>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고 특히 철학과 종교 문제에 관심을 갖고 세상만물의 기원과 종말에 대해 명확히 알고자 10년 동안 불교와 도교를 깊이 연구했다. <BR> 그러나 ‘만 권의 책과 동서고금의 학문이 가슴에 가득한 사람’이라는 세상 사람들의 칭찬과는 달리 유진길은 오히려 진리를 찾지 못해 방황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823년 우연히 「천주실의」의 일부분을 구해 읽고는 사방에 수소문한 끝에 한 교우를 만나 천주교 진리를 터득하고 곧 입교했다. <BR> 1824년 동지사(冬至使)의 수석 역관으로 북경에 가서 성세성사를 받았다. 그 후 유 진길은 북경교회와의 연락을 담당하며 전후 8차에 걸쳐 북경을 왕래하면서 정하상 바오로, 조신철 가롤로와 함께 성직자영입운동을 전개하였다. <BR> 마침내는 교황에게 성직자의 파견을 간청하는 편지를 북경주교에게 전달 했고 그 결과 유방제 신부, 나(모방) 신부,정(샤스땅) 신부, 범(앵베르) 주교 등이 입국하게 되었다. 유진길은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7월 17일 체포되었다. <BR> 포청에서 주교와 신부들의 은신처를 대라는 관헌으로부터 매우 가혹한 형벌을 받았으나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주교와 신부들이 체포되자 의금부에서 그들과 함께 사형선고를 받았다.마침내 유진길은 9월 22일 정하상과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49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고 순교 했다. (48은 아들) <PRE><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움체 color=#32449c><B> †성녀 허계임 막달레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IMG src="http://pds.catholic.or.kr/Archives/ncbbs/baltimore/pds1/0/9.36.jpg"> 경기도 용인(龍仁)에서 태어난 허계임 막달레나는 과부가 되어 친정으로 돌아 온 시누이 이매임 데레사로부터 천주교를 알게 되자 이정희와 영희 두 딸과 함께 천주교에 입교했다. 1839년 3월, 허계임은 성사를 받으러 당시 시흥지방 봉천(奉天)에서 상경하여 시누이와 두 딸이 살고 있는 집에 머물게 되었다. <BR> 남명혁과 이광헌의 어린 자녀들이 혹형과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켰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시누이와 두 딸 그리고 김성임,김 루치아 등과 순교를 결심하고 4월 11일 남명혁의 집을 파수하던 포졸에게 묵주를 내보이며 자헌했다. <BR> 포청과 형조에서 허계임은 배교를 강요하는 수차의 형문을 당했으나 다 이겨내고, 9월 26일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되어 순교하니 그의 나이 67세였다. (19는 시누이, 22, 28은 딸, 18, 19, 22, 23, 28과 함께 자수) <PRE><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움체 color=#32449c><B> †성 남이관 세바스티아노,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IMG src="http://pds.catholic.or.kr/Archives/ncbbs/baltimore/pds1/0/9.37.jpg"> <br> 서울의 양반 교우 가정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남이관은 18세 때 교우인 조증이 바르바라와 결혼했다. 1801년의 신유박해 때 아버지와 함께 체포되었다. <BR> 아버지 남필용(南必容)은 전라도 강진(康津)으로 귀양가 그곳에서 죽었고, 남 이관은 경상도 단성(丹城)으로 귀양갔다가 30년만인 1832년 풀려 나와 처가인 이천(利川)에서 살았다. 그후 상경하여 처가가 정하상 바오로와 인척인 관계로 그의 신부영입운동을 도와 1833년 중국인 유방제 신부를 맞아들이게 했고, <BR> 그에게서 성세와 견진성사를 받은 후 회장으로 임명되어 열심히 교회 일을 도왔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남이관은 자신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처가인 이천으로 내려가 숨었다. 그러나 9원 16일에 체포되어 서울 포청으로 압송되었다. <BR> 포청에서 간단한 신문을 받은 후 김제준과 함께 국사범으로 간주되어 의금 부로 이송되어 여기에서 유진길, 정하상과 함께 신문을 받고, 다시 형조로 이송되어 거기서 사형을 선고받았다.9월 26일 남이관은 8명의 교우와 함께 60세의 나이로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되어 순교했다. (51은 아내) <PRE><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움체 color=brown><B> ▣ 만남과 마주침 ▣ <PRE><FONT style="FONT-SIZE: 11pt" face=돋움체 color=brown> 진정한 만남은 상호간의 눈뜸이다. 영혼의 진동이 없으면 그건 만남이 아니라 한때의 마주침이다. 그런 만남을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끝없이 가꾸고 다스려야 한다. 좋은 친구를 만나려면 먼저 나 자신이 좋은 친구감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친구란 내 부름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이다. <br> - 법정의《오두막 편지》중에서 - <br> 우연히 만나 우연으로 끝나면, 그것은 마주침입니다. 우연처럼 만났으나 필연으로 이어지면, 만남입니다. 그 필연은 그냥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남이 가져다 주지도 않습니다. 오랜 자기 준비와 기다림 끝에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만남은 필연이며, 새로운 역사가 펼쳐지는 위대한 창조의 순간입니다. - 고도원의 아침편지 중에서 - </B> <PRE><FONT style="FONT-SIZE: 11pt" face=돋움체 color=#32449c> ♬ 103위 순교 성인 ♬ - 성가 285 <br> 순교로 빛을 밝힌 백삼위 성인 오롯이 바친 넋에 새순이 돋아 순례의 교회안에 큰 나무되니 님따른 그 생애가 거룩하여라 영원히 받으소서 희망의 찬미 찬송을 이름 모를 순교자여 새빛되소서. <br> 이 땅에 빛을 주신 야훼 하느님 태총의 혼돈에서 창조이루듯 한민족 새얼속에 나게 하시니 구원의 기쁜소식 누리 비추네 이백년 이어 받은 신앙의유산 기리며 온세상에 드높이리 성삼의 영광. <br> 생명의 빛을 받아 새로난 겨례 일치의 성령안에 함께 모여서 복되신 마리아의 삶을 따르니 복음을 살아가는 증인이어라 만백성 찬양하라 사랑의 승리기쁨을 이 땅위에 빛나시는 하느님 이름. <PRE><UL> <B><FONT style="FONT-SIZE: 9pt" face=돋음체 color=green> <UL><UL><A href="http://cafe.daum.net/EnglishAnna" target=blank> <IMG src="http://www.imagestation.com/picture/sraid53/p1267c37ffdbfe50aca62ebc9cb2ddfb0/fc8b9715.gif" ? grpid='LOiA&amp;fldid=AqlR&amp;dataid=203&amp;grpcode=asoul&amp;realfile=thumb_h16%255B1%"'></A></UL> 함께 기도하고,연구하고 싶은...[앗↑나]</B>가요*^^* <EMBED src=http://music.catholic.or.kr/sungga/asf/1998070285.asf hidden=true type=video/x-ms-asf volume="0" autostart??true? loo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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