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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86) 메밀꽃 소식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9-14 조회수981 추천수12 반대(0) 신고

2005년9월14일 수요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ㅡ민수기21,4ㄴ-9;요한3,13-17ㅡ

 

                메밀꽃 소식

                             이순의

 

 

<가을의 느낌이 아침 저녁으로 더욱 가깝게 다가오네요,

이곳 우리 집은 정원이 넓게 자리하고 있는 마을인지라 더욱 그러합니다,

서울에도 이 가을의 정취가 전해지기를,

그리고 5분 거리 도로 옆 너른 밭에는 메밀꽃이 피어가는 중이라 하얀 풍경이 그야말로 소설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언니가 이곳에서 그걸 본다면 글이라도 한편 쓰련만,,,>

 

먼데 남녁에서 편지가 왔습니다. 메밀꽃 소식을 담고서! 그런데 저는 먼데 산에서 지난 여름에 메밀꽃 손님을 만났습니다. 더운 여름 방학 날에 짝궁을 만나러 산에 갔더니 강가에 온통 메밀꽃 손님들로 눈(雪) 밭을 일구고 있었습니다. 틈이 난다면 사진에 담아 올 욕심은 당연했습니다. 고생하는 짝궁을 보러 산에까지 갔는데 철없는 악동들 처럼 디카만 휘두르고 다닐 수는 없었으므로 마음만 곁눈질을 하였지요. 그런데 자고 가라고 할 줄 알았던 짝궁이 바로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섭섭하였지만 그래도 그 이유가 타당하였으므로 슬슬 걸어 오다가 강변에 들려 메밀꽃을 만날 참이었습니다.

 

산에는 따수운 계절이 더디 오시기도 하시지만 머물러 계시는 시간도 잠깐이시라, 찬 기운이 오시기 전에 재촉하여 가시는 걸음이 바쁘십니다. 그래서 산에서는 벌써 떠나고 계시지 않은 꽃 손님들이 얼마 전에야 남녁에 당도 하셨다는 기별이었습니다. 그렇게 몇 일 머물다 말고 가실 손님들을 산에서 요행으로 만났는데 저는 그 모습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그 눈밭의 한 가운데 서서도 저는 그 손님들의 흐드러져 풍성한 모습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안타까운 그 마음이 얼마나 섭섭하든지, 남녁에서 온 편지 한 장에 서글퍼 집니다. 그 이유는 하얀 고무신 때문입니다. 하얀 고무신 때문에 메밀 밭에 서서도 그 꽃손님들의 모습을 담아 오지 못했습니다. 

 

산에서 일을 하는 짝궁의 발에는 하얀 고무신이 누리끼리한 흙때를 뒤집어 쓰고 신겨져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이 모두 하얀 고무신을 신고 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섬마을에 살을 적에 저도 아들녀석도 하얀 고무신을 신고 살았습니다. 어쩌다가 오는 짝궁도 섬 마을에 오면 하얀 고무신만 신었습니다. 하얀 고무신은 시골살이에 매우 편안한 신발이지요. 왜 그런지는 잘 모르지만 하얀 고무신이 편해서 온 가족이 고무신만 신었습니다. 슬리퍼도 불편하고, 운동화나 구두도 불편한데 고무신은 너무나 편안합니다. 신고 벗기도 편하지만 시골 어디든지 찾아가고 들려보아도 가푼가푼하여 마음까지 편한 신발이었지요.

 

그런데 산에서 만난 아빠의 하얀 고무신을 본 아들녀석이 그 옛날의 추억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집에 갈 적에 하얀 고무신을 꼭 사가야 한다고 우겼던 것이지요. 그냥 돌아 가라고 돌려 보낸 짝궁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시골의 아스팔트 도로를 걸어 나오면서 모자의 마음은 제 각각의 색깔을 그림으로 그리며 걷고 있었습니다. 어미는 어미 대로 강가에 들려 메밀꽃 손님을 만날 참이었고, 아들은 아들 대로 하얀 고무신을 사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대로 각각의 즐거움을 안고 시골길을 걸어서 강둑 옆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감탄사를 토해냈습니다. 그 희고 결고운 눈밭에 굴러보면 뽀드득 하고 소리가 날 것만 같은 경치에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강둑에는 사고 방지 울타리가 강의 길이만큼 길게 이어져 있었습니다. 엄마인 제가 넘어 가기에는 너무 높았고, 기골이 장대한 아들녀석은 쉽게 넘을 수 있는..... 저는 아들의 도움을 필요로 했습니다. 좀 넘겨 주기를 바라는! 그런데 고무신을 사야 하는 아들녀석은 엄마가 울타리를 넘지 말고 그냥 그대로 사진을 찍으라는 건성건성한 대꾸만 늘어 놓았습니다. 빤히 보이는 그 속내를 알면서도 그래도 울타리를 넘어야 한다는 저와 울타리는 뭐하러 넘어가느냐는 아들의 실랑이가 다툼이 되고 있을 때, 자식과 각시를 그냥 돌려 보낸 아쉬움 때문이었는지 오토바이를 탄 짝궁이 옅은 굉음을 멈추며 다가 섰습니다. 순간...!

 

우리 모자는 서로 먼저 타라고 동시에 소리를 질렀습니다. 터미널까지는 한 명씩 태워 가야 합니다. 아들녀석이 어렸던 섬마을에서는 오토바이 한 대에 우리 가족 세 사람이 모두 타고 들로 바다로 누비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들녀석의 몸무게가 아빠인 짝궁의 몸무게를 능가하므로 절대로 함께 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들녀석이 먼저 타고 가면 짝궁이 돌아오는 시간을 벌어보고 싶었습니다. 꼭 메밀꽃 손님들을 디카에 모셔다가 많은 벗님들께 그 고움을 자랑하고 싶었지요. 그런데 아들녀석의 하얀 고무신 생각은 판단력을 감소시키고야 말았습니다. 엄마가 먼저 가서 하얀 고무신을 사 놓으면 그동안에 자기가 타고 갈 것이다 라고.

 

차표를 사 놓고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에 하얀 고무신은 꼭 사주겠다고 아무리 말을 하여도 이미 판단력의 중추신경은 정지 되었고 옹고집만 무거워지는..... 그러니까 아직은 어른이 아닌 십대의 청소년이겠지요.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되는 순간이었지만 검게 탄 짝궁의 모습 앞에서 말도 안되는 실랑이 질로 시간을 지체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은 눈치 빠른 어미가 먼저 오토바이 뒤에 탓지요. 터미널 앞의 신발 가게에서 고무신을 사고, 서울행 차표를 사고, 그러고도 20분이 남았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아들녀석은 아빠의 오토바이를 타고 왔습니다. 얼마나 아쉬운 시간이던가요?! 순서만 바꾸어 오토바이에 탔으면 얼마나 고운 메밀꽃 설경들을 차지할 수 있었는데..... 

 

다시 돌아가 사진을 찍기에는 너무나 애매한 시간이었지요. 그런데 차선으로 당도한 아들녀석이 한 일은 고무신의 치수가 맞지 않아서 바꿔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더욱 시간이 아까웠지요. 제 놈이 먼저 와서 제 발에 맞춰서 고무신을 샀다면 바꾸러 갈 일도 없었고, 메밀꽃 손님들의 기념 사진을 못 찍어 드리는 일도 없었을텐데.....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고단한 짝궁의 고생 앞에서 호사를 부리는 것 같아 아무 소리도 못하고 <끙!>하고 참았더랍니다. 그냥 멀뚱허니 대합실 의자에 앉아서 말을 가두었지요. 그제서야 중추신경에 혈맥이 통하였는지?!

"엄마. 미안해."

 

야~~! 사람 죽여 놓고 미안하다고 하면 다냐고 화를 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디카가 없었다면 눈요기로 반가운 인사를 나누면 되었을 메밀꽃 밭이었을텐데 작은 카메라 하나의 소유가 이렇게도 나의 마음을 어지럽게 한다는 성찰에 돌입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달리 아들녀석에게 꾸지람은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살아 가면서 얼마나 많은 소유가 우리를 고달프게 하는지 모릅니다. 교육이라는 높은 고지가 생기고 보니 합격이라는 쇠줄을 일구느라고 코피가 쏟아지지요. 재산이라는 화려한 가치가 생기고 보니 축적이라는 고무공을 튕기느라고 옆 사람도 살필 겨를이 없어졌지요. 장수라는 목적의 건강을 필요로 하다보니 복제라는 생물을 일구느라고 그 희생의 고통 따위는 당연시 하는! 

 

오늘은 십자가 현양 축일입니다. 주님께서 오시기 전의 나무인 선악과는 죄를 낳았지만 주님께서 친히 오셔서 그 죄의 나무에 달리신 십자 나무는 구원을 낳았습니다. 주님께서 못 박혀 매달리시기 전의 십자가는 더러운 형틀에 지나지 않았지만 주님께서 못 박혀 죽으신 십자가는 거룩하고 자랑스러운 구원의 생명으로 탈바꿈 하였습니다. 오늘 신부님의 강론은 죄의 상징인 십자가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의 상징으로 변화되었다는 복음을 전해 주십니다. 우리는 수 없이 많은 죄의 십자가를 만들며, 지으며, 안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 들을 주님 안에서, 주님처럼, 주님과 함께, 친히 매달려 죽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선악과의 결과로 죄 중에 살게 될 것입니다.

 

소유한 만큼의 선악과는 자기 믿음의 십자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름 날의 작은 순간이지만 서로 각기 제 소유에 어두워 소비하는 어미와 아들의 모습을 바라 보았습니다. 아들녀석은 하얀 고무신을 신고 여기저기 몇 번 다녀 보더니 서울에서는 왜 하얀 고무신이 불편하냐고 물어 왔습니다. 유년의 섬마을에서 신었던 그토록 정다운 고무신이 아니더라고 불평이었습니다. 결국 하얀 새 고무신은 신발장 속에서 자리나 차지하고 있는 퇴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저렇게 대접도 못 받고 볼품없는 신세가 되어버린 천덕꾸러기 고무신은 내년이 되어 짝궁을 따라 산에로 가야만 제 할 일이 주어질 것입니다. 메밀꽃 손님들도 내년이 되어야 다시 만날 수 있는....

 

그런데 남쪽으로 간 메밀꽃 손님들이 일군 그 고운 설경은 태풍 나비의 발길질에 그만 우수수 쏟아져버렸다는.....! 먼저 전해 오신 편지의 기쁨을 안타깝게 하고 말았습니다. 메밀꽃 소식은 이렇게 안타까운 아픔으로 가시는 계절을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가을이 오셨습니다. 올 한 해는 너무나 아프게 가고 있네요.

 

 

 

ㅡ하느님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단죄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시켜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요한3, 17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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