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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녀 김효임 골룸바,김 루치아,이 가타리나,조 막달레나시여~!
작성자조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5-09-15 조회수833 추천수7 반대(0) 신고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김효임 골룸바,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동정녀인 동시에 순교자. 김효임 골룸바는 서울 근교 밤섬이란 곳의 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를 여읜 후 전가족이 다 함께 입교하고 유방제 신부 
에게 성세성사를 받았다. 두 여동생 김 효주(아녜스), 김 글라라와 함께 
수정을 결심하고 독실한 신앙생활을 했다. 

매주 두 차례의 재(齋)를 지키고, 가난한 이들을 도우니 그 덕행과 아름다운 모범에 감탄하지 않는 교우들이 없었다. 그러던 중 1839년 4월 김효임은 그간 이사한 경기도 고양군 용머리에서 동생 김효주와 함께 체포되었다.
포청에서 김효임은 남동생 김 안토니오의 피신처와 교회서적을 감춘 곳을 대라는 관헌에 의해 동생과 함께 매우 혹독한 형벌을 받았다.
두 자매는 소위 학춤이라는 혹형 외에도 달군 쇠붙이로 몸의 열세 군데나 지져대는 혹형을 받았고, 또 옷을 벗긴 채 남자 죄수의 방에 넣어졌다. 그러나 갑자기 두 자매의 몸에 신비스런 힘이 생겨 흉악한 죄수들이 두 자매를 범할 수 없었다.
이렇게 포청에서의 혹형과 고문을 이겨낸 김효임은 형조로 이송되어 형조 판서의 신문에 영리하고 겸손하게 대답하여 형조판서를 감동시켰다. 신문이 끝나자 효임은 포청에서 겪은 법외의 고문과 능욕에 항의했다. 이 때문에 포청에서 능욕을 가한 포졸들은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그후 5개월 동안 옥에서 병과 고통과 싸우며 지내던 김효임은 9월 26일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26세의 꽃다운 나이로 자신보다 20여 일 먼저 순교한 동생의 뒤를 따라갔다.(30은 동생)

†성녀 김 루치아,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김 루치아는 서울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태어날 때부터 몸이 불구 였다.그래서 '꼽추 루치아'로 불렸다.1801년의 신유박해 이전부터 천주교를 믿었으나 남편과 가족들이 모두 외교인이라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못했다.
결국 집을 나와 교우들의 집에 얹혀 살면서 병자들을 돌보며 어떠한 천한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박해로 체포되어 포청으로 끌려갔다.71세의 고령이라 형벌은 받지 않았으나 온갖 교활한 신문을 받았다. 그러나 김 루치아는 한결같이 배교를 거부하고, 마침내 7월 어느날 포청에서 기력이 쇠하여 숨을 거둠으로써 옥사, 순교하였다.

†성녀 이 가타리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시골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모와 함께 입교한 이 가타리나는 교리에 밝지 못한 
부모 때문에 14세 때 조(趙)씨란 성을 가진 외교인과 결혼하여 3남매를 두었다. 

가타리나의 권고로 남편은 대세를 받고 사망하였다. 1838년 말 고향에 사사로운 박해가 일어나자 가타리나는 가산을 버리고 자녀들과 함께 상경하여 조 바르바라 의 집에서 같이 살았다. 1839년 6월 주인집 세 모녀, 큰딸 조 막달레나와 함께 체포되었다.
포청에서 딸과 함께 문초를 받고 한 차례의 주뢰질을 당한 후 옥에 갇혔으나 옥이 워낙 비좁고 불결하여 체포된 지 3개월 후인 9월 어느 날 57세의 나이로 염병을 얻어 옥사. 순교했다. (47은 딸, 47, 56, 66과 함께 체포됨)

†성녀 조 막달레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어려서 어머니 이 가타리나에게 천주교를 배워 입교한 조 막달레나는 외교인 친척들의 반대로 7, 8세경부터 교우 집안인 외가에 가서 살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18세 때 혼담이 오가자 수정을 결심하고는 혼담을 피해 서울로 와 5, 6년 을 지냈다.
그후 다시 고향으로 내려와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외교인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죽어가는 아이들에게 대세를 주는 등 열심히 교회일을 도왔다. 그러던 중 1838년 말 고향에서 사사로운 박해가 일어나자 어머니, 두 동생과 함께 가산 을 버리고 서울의 조 바르바라의 집으로 피신했다.
1839년 6월 주인집 세 모녀, 어머니 이 카타리나와 함께 체포되었다. 포청에서 한 차례의 신문과 주뢰질을 당한 후 옥으로 끌려간 조 막달레나는 3개월 동안 비좁고 불결한 옥살이 끝에 33세의 동정녀로 염병을 얻어 옥사, 순교했다. (46은 모친, 46, 56. 66과 함께 체포됨)

▣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

표현하지 않고서는 
마음도, 정열도 전해지지 않는다.
행동으로, 대화로,글자로, 
생각을 모두 표현해야 비로서 
사람과 유대도 생긴다. 

- 이케다 다이사쿠의 <신.인간혁명-소생> 중에서 -
세상을 살아가면서 때론 절제의 미덕이 아름다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따뜻한 마음은 크게 깊게 표현할수록 관계의 끈을 튼튼하게 만듭니다. 그럴수록 서로의 소중함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 고도원의 아침편지 중에서 -
      함께 기도하고,연구하고 싶은...[앗↑나]가요*^^*

       

 
소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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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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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녀인 동시에 순교자. 김효임 골룸바는 서울 근교 밤섬이란 곳의 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를 여읜 후 전가족이 다 함께 입교하고 유방제 신부 
에게 성세성사를 받았다. 두 여동생 김 효주(아녜스), 김 글라라와 함께 
수정을 결심하고 독실한 신앙생활을 했다. 
<BR> 
매주 두 차례의 재(齋)를 지키고, 가난한 이들을 도우니 그 덕행과 아름다운 
모범에 감탄하지 않는 교우들이 없었다. 그러던 중 1839년 4월 김효임은 
그간 이사한 경기도 고양군 용머리에서 동생 김효주와 함께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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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청에서 김효임은 남동생 김 안토니오의 피신처와 교회서적을 감춘 곳을 
대라는 관헌에 의해 동생과 함께 매우 혹독한 형벌을 받았다. 
<BR> 
두 자매는 소위 학춤이라는 혹형 외에도 달군 쇠붙이로 몸의 열세 군데나 
지져대는 혹형을 받았고, 또 옷을 벗긴 채 남자 죄수의 방에 넣어졌다. 
그러나 갑자기 두 자매의 몸에 신비스런 힘이 생겨 흉악한 죄수들이 두 
자매를 범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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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포청에서의 혹형과 고문을 이겨낸 김효임은 형조로 이송되어 형조 
판서의 신문에 영리하고 겸손하게 대답하여 형조판서를 감동시켰다. 신문이 
끝나자 효임은 포청에서 겪은 법외의 고문과 능욕에 항의했다. 이 때문에 
포청에서 능욕을 가한 포졸들은 귀양을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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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5개월 동안 옥에서 병과 고통과 싸우며 지내던 김효임은 9월 26일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26세의 꽃다운 
나이로 자신보다 20여 일 먼저 순교한 동생의 뒤를 따라갔다.(30은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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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루치아는 서울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태어날 때부터 몸이 불구 
였다.그래서 '꼽추 루치아'로 불렸다.1801년의 신유박해 이전부터 천주교를 
믿었으나 남편과 가족들이 모두 외교인이라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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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집을 나와 교우들의 집에 얹혀 살면서 병자들을 돌보며 어떠한 천한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박해로 체포되어 포청으로 
끌려갔다.71세의 고령이라 형벌은 받지 않았으나 온갖 교활한 신문을 받았다. 
그러나 김 루치아는 한결같이 배교를 거부하고, 마침내 7월 어느날 포청에서 
기력이 쇠하여 숨을 거둠으로써 옥사,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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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성녀 이 가타리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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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모와 함께 입교한 이 가타리나는 교리에 밝지 못한 
부모 때문에 14세 때 조(趙)씨란 성을 가진 외교인과 결혼하여 3남매를 두었다. 
<BR> 
가타리나의 권고로 남편은 대세를 받고 사망하였다. 1838년 말 고향에 사사로운 
박해가 일어나자 가타리나는 가산을 버리고 자녀들과 함께 상경하여 조 바르바라 
의 집에서 같이 살았다. 1839년 6월 주인집 세 모녀, 큰딸 조 막달레나와 함께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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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청에서 딸과 함께 문초를 받고 한 차례의 주뢰질을 당한 후 옥에 갇혔으나 
옥이 워낙 비좁고 불결하여 체포된 지 3개월 후인 9월 어느 날 57세의 나이로 
염병을 얻어 옥사. 순교했다. (47은 딸, 47, 56, 66과 함께 체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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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성녀 조 막달레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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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어머니 이 가타리나에게 천주교를 배워 입교한 조 막달레나는 외교인 
친척들의 반대로 7, 8세경부터 교우 집안인 외가에 가서 살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18세 때 혼담이 오가자 수정을 결심하고는 혼담을 피해 서울로 와 5, 6년 
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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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다시 고향으로 내려와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외교인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죽어가는 아이들에게 대세를 주는 등 열심히 교회일을 도왔다. 그러던 
중 1838년 말 고향에서 사사로운 박해가 일어나자 어머니, 두 동생과 함께 가산 
을 버리고 서울의 조 바르바라의 집으로 피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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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9년 6월 주인집 세 모녀, 어머니 이 카타리나와 함께 체포되었다. 포청에서 
한 차례의 신문과 주뢰질을 당한 후 옥으로 끌려간 조 막달레나는 3개월 동안 
비좁고 불결한 옥살이 끝에 33세의 동정녀로 염병을 얻어 옥사, 순교했다. 
(46은 모친, 46, 56. 66과 함께 체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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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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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하지 않고서는 
마음도, 정열도 전해지지 않는다.
행동으로, 대화로,글자로, 
생각을 모두 표현해야 비로서 
사람과 유대도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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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케다 다이사쿠의 &lt;신.인간혁명-소생&gt;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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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면서 때론 절제의 미덕이 
아름다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따뜻한 마음은 
크게 깊게 표현할수록 관계의 끈을 튼튼하게 만듭니다.
그럴수록 서로의 소중함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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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도원의 아침편지 중에서 -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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