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성 이경이아가다,이인덕마리아,권진이아가다,홍영주바오로,이문우요한이시여~!
작성자조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5-09-21 조회수763 추천수10 반대(0) 신고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한국 순교자들에게 바치는 기도 ◈
    
    ◇ 이 땅의 모든 순교자여,
       당신들은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굳은 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나이다.
    
    ◆ 저희는 현세에서 악의 세력과 치열하게 싸우며 당신들이 거두신 승리의 영광을 노래하고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찬양하오니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위대하신 순교자들이여, 천상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와 함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하느님의 자비를 얻어주소서.
    ◆ 지금도 어둠의 세력이 교회를 박해하고 있사오니 하느님께서 전능하신 팔로 교회를 붙들어 보호하시며 아직 어둠 속에 있는 지역에까지 널리 펴시도록 빌어주소서.
    ◇ 용감하신 순교자들이여, 특별히 청하오니 우리 나라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 당신들은 이땅에서 많은 고난을 겪으며 사시다가 목숨까지 바치셨사오니
    ◇ 전능하신 하느님께 빌어주시어 교회를 이땅에서 날로 자라게 하시며 사제를 많이 나게 하시고
    ◆ 신자들이 주님의 계명을 잘 지키고 냉담자들은 다시 열심해지며 갈린 형제들은 같은 믿음으로하나 되고 비신자들은 참신앙으로 하느님을 알아 천지의 창조주 인류의 구세주를 찾아오게 하소서.
    ◇ 참으로 영광스러운 순교자들이여, 저희도 그 영광을 생각하며 기뻐하나이다. 간절히 청하오니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 빌어주시어 저희와 친척과 은인들에게 필요한 은혜를 얻어주소서.
    ◆ 또한 저희가 죽을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한결같이 믿어 증언하며 비록 피는 흘리지 못할지라도 주님의 은총을 입어 선종하게 하소서.
    ◇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여,
    ◆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이경이 아가다,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동정녀인 동시에 순교자인 이경이 아가타는 시골에서 교우가정에서 태어 
났다. 혼기에 이르러 어떤 내시에게 속아 결혼했으나 곧 집으로 돌아왔다. 
범 라우렌시오 주교는 그 결혼을 무효화시켰다. 

그후 아버지를 여의고 생계가 막연해지자 어머니를 시골에 사는 외삼촌 에게 맡기고 상경하여 한영이(막달레나), 권진이(아가타) 모녀의 집에서 살며 열심히 수계하였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 7월 17일 한영이, 권진이 모녀와 함께 체포되었다. 평소 권진이의 아름다움을 탐내던 밀고자 김순성의 간교로 한영이만 포청에 갇히고 이경이는 권진이와 사관청(仕官廳)에 갇히게 되었다.
사관청에서 포졸 하나가 권진이를 납치하려 하자 이경이는 권진이와 사관청을 탈출했으나 얼마 안되어 숨어 있던 교우의 집에서 다시 체포 되었고 마침내 1840년 1일 31일 5명의 교우와 함께 27세의 나이로 ‘당고개’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52, 67과 함께 체포됨)

†성녀 이인덕 마리아,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언니 이영덕 막달레나와 함께 동정녀인 동시에 순교자인 이인덕 마리아는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그해 6월 어머니, 언니와 함께 체포되어 
이듬해 1월 31일 ‘당고개’에서 5명의 교우와 함께 22세의 꽃다운 
나이로 참수되어 순교했다. (56은 언니, 46. 47. 56과 함께 체포됨) 

†성녀 권진이 아가다,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서울에서 태어난 권진이 아가타는 어려서 아버지 권 진사가 임종 대세를 
받고 죽으면서 남긴 유언을 따라 어머니 한영이 막달레나와 함께 입교했다. 

13세 경 결혼했으나 남편의 집이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남편의 친척인 정하상 바오로의 집에서 살았다. 1833년 중국인 유방제 신부가 입국한 후부터 신부의 시중을 들었다.
그후 유방제 신부가 조선을 떠나게 되자 어머니에게 돌아가, 한 집에 살게 된 이경이 아가타와 함께 열심히 수계하였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 7월 17일 한영이, 이경이와 함께 체포되었다.
평소 권진이의 아름다움을 탐내던 밀고자 김순성(일명 여상)의 간교로 어머니 한영이만 포청으로 끌려가고, 권진이는 이경이와 사관청(仕官廳)에 갇히게 되었다. 사관청에서 한 포졸이 권진이를 납치하려 하자 권진이는 이경이와 함께 사관청을 탈출하였으나 얼마 안되어 숨어 있던 교우의 집에서 다시 체포되었다.
도망쳤던 죄로 포청과 형조에서 매우 가혹한 형벌을 받아야 했으나 권진이는 끝까지 신앙을 지켜 1840년 1 월 31일 5명의 교우와 함께 ‘당고개’에서 참수형을 받아 21세의 아까운 나이로 순교했다. (52는 어머니, 52, 65와 함께 체포됨)

†성인 홍영주 바오로,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명문 양반의 후예로 서울에서 태어난 홍영주 바오로는 충청도 내포(內浦) 
지방의 여사울에서 자랐다. 대대로 이어온 신앙을 이어받아 독실한 신앙생활을 
했고,형 홍병주 베드로와 함께 충청도 내포지방의 회장으로 교회 일에 헌신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고 서양 신부들이 체포된 후 9월말에 이르러 홍영주는 형과 함께 서양 신부들의 은신처를 제공한 죄로 체포되었다. 마침내 1840년 2월 1일, 하루 먼저 순교한 형의 뒤를 따라 2명의 교우와 함께 ‘당고개’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때 나이 39세였다. (63은 형)

†성인 이문우 요한,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일명 ‘경천’으로도 불리는 이문우 요한은 경기도 이천의 양반 교우 가정에서 
태어나 5세 때 양친을 여의고 서울의 오 바르바라라는 여 교우에게 입양되어 
성장했다. 

독신생활을 원하였으나 양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성과 순종으로 양어머니의 뜻에 따라 결혼했고, 몇 년 후 아내와 두 어린 자녀가 사망하자 주위에서의 재혼 권유를 거절하고 독신으로 살면서 범 라우렌시오 주교에 의해 회장으로 임명되어 전교에 힘쓰는 한편 주교를 보좌하며 지방을 순회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로 많은 교우들이 체포되어 옥에 갇히자 사방에서 희사를 모아 체포된 교우들을 돕고, 박해 상황을 주교와 신부들에게 보고하였다. 그러던 중 11월 11일 자신도 체포되었다.
이때 "주님께서 특별한 은총으로 나를 부르시니 어찌 그분의 부르심에 대답 하지 않을 수 있는가?"하고 의연한 모습을 보였고, 오히려 당황해 하는 포졸 들을 재촉해서 포청으로 끌려갔다. 포청과 형조에서의 혹형과 고문을 참아낸 끝에 사형을 선고받고, 1840년 2월 1일 ‘당고개’에서 2명의 교우와 함께 31세의 나이로 참수되어 순교했다.

▒ 재수 좋은 사람 ▒

산다는 것은 내 삶의 방식에
얼마나 흠뻑 취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길을 만났을 때도
나는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나는 항상 재수 좋은 사람이라고 믿으면
행운은 반드시 나를 따른다.
믿는 것이 중요하다.

- 곤도 다카미의《세상에서 가장 값진 월급봉투》중에서-
재수는 요행이 아닙니다. 자기 삶의 방식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입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 확신을 갖고 흠뻑 젖어 있으면 '좋지않은 일'도 '좋은 일'로 바뀌게 되고, 어느덧 '재수 좋은 사람'이 됩니다.
    《함께 연구하고,기도하고 싶습니다.(↖클릭)》 소스입니다.
    
    <PRE><FONT style="FONT-SIZE: 14pt" face=돋움체 color=red><B>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PRE><FONT style="FONT-SIZE: 13pt" face=돋움체 color=brown><B><UL>
    ◈ 한국 순교자들에게 바치는 기도 ◈
    <PRE><FONT style="FONT-SIZE: 11pt" face=돋움체 color=brown>
    ◇ 이 땅의 모든 순교자여,
       당신들은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굳은 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나이다.
    <BR>
    ◆ 저희는 현세에서 악의 세력과 치열하게 싸우며
       당신들이 거두신 승리의 영광을 노래하고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찬양하오니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BR>
    ◇ 위대하신 순교자들이여,
       천상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와 함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하느님의 자비를 얻어주소서.
    <BR>
    ◆ 지금도 어둠의 세력이
       교회를 박해하고 있사오니
       하느님께서 전능하신 팔로 교회를 붙들어 보호하시며
       아직 어둠 속에 있는 지역에까지
       널리 펴시도록 빌어주소서.
    <BR>
    ◇ 용감하신 순교자들이여, 특별히 청하오니
       우리 나라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BR>
    ◆ 당신들은 이땅에서 
       많은 고난을 겪으며 사시다가
       목숨까지 바치셨사오니
    <BR>
    ◇ 전능하신 하느님께 빌어주시어
       교회를 이땅에서 날로 자라게 하시며
       사제를 많이 나게 하시고
    <BR> 
    ◆ 신자들이 주님의 계명을 잘 지키고
       냉담자들은 다시 열심해지며
       갈린 형제들은 같은 믿음으로하나 되고
       비신자들은 참신앙으로 하느님을 알아
       천지의 창조주
       인류의 구세주를 찾아오게 하소서.
    <BR>
    ◇ 참으로 영광스러운 순교자들이여,
       저희도 그 영광을 생각하며 기뻐하나이다.
       간절히 청하오니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 빌어주시어
       저희와 친척과 은인들에게
       필요한 은혜를 얻어주소서.
    <BR>
    ◆ 또한 저희가 죽을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한결같이 믿어 증언하며
       비록 피는 흘리지 못할지라도
       주님의 은총을 입어 선종하게 하소서.
    <BR>
    ◇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여,
    <BR>
    ◆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PRE></UL></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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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녀 이경이 아가다,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IMG src="http://pds.catholic.or.kr/Archives/ncbbs/baltimore/pds1/0/9.65.jpg"> 
    동정녀인 동시에 순교자인 이경이 아가타는 시골에서 교우가정에서 태어 
    났다. 혼기에 이르러 어떤 내시에게 속아 결혼했으나 곧 집으로 돌아왔다. 
    범 라우렌시오 주교는 그 결혼을 무효화시켰다. 
    <BR> 
    그후 아버지를 여의고 생계가 막연해지자 어머니를 시골에 사는 외삼촌 
    에게 맡기고 상경하여 한영이(막달레나), 권진이(아가타) 모녀의 집에서 
    살며 열심히 수계하였다. 
    <BR> 
    그러던 중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 7월 17일 한영이, 권진이 모녀와 
    함께 체포되었다. 평소 권진이의 아름다움을 탐내던 밀고자 김순성의 
    간교로 한영이만 포청에 갇히고 이경이는 권진이와 사관청(仕官廳)에 
    갇히게 되었다. 
    <BR> 
    사관청에서 포졸 하나가 권진이를 납치하려 하자 이경이는 권진이와 
    사관청을 탈출했으나 얼마 안되어 숨어 있던 교우의 집에서 다시 체포 
    되었고 마침내 1840년 1일 31일 5명의 교우와 함께 27세의 나이로 
    ‘당고개’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52, 67과 함께 체포됨) 
    <PRE><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움체 color=#32449c><B>
    †성녀 이인덕 마리아,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IMG src="http://pds.catholic.or.kr/Archives/ncbbs/baltimore/pds1/0/9.66.jpg"> 
    언니 이영덕 막달레나와 함께 동정녀인 동시에 순교자인 이인덕 마리아는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그해 6월 어머니, 언니와 함께 체포되어 
    이듬해 1월 31일 ‘당고개’에서 5명의 교우와 함께 22세의 꽃다운 
    나이로 참수되어 순교했다. (56은 언니, 46. 47. 56과 함께 체포됨) 
    <PRE><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움체 color=#32449c><B>
    †성녀 권진이 아가다,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IMG src="http://pds.catholic.or.kr/Archives/ncbbs/baltimore/pds1/0/9.67.jpg"> 
    서울에서 태어난 권진이 아가타는 어려서 아버지 권 진사가 임종 대세를 
    받고 죽으면서 남긴 유언을 따라 어머니 한영이 막달레나와 함께 입교했다. 
    <BR> 
    13세 경 결혼했으나 남편의 집이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남편의 친척인 정하상 
    바오로의 집에서 살았다. 1833년 중국인 유방제 신부가 입국한 후부터 신부의 
    시중을 들었다. 
    <BR> 
    그후 유방제 신부가 조선을 떠나게 되자 어머니에게 돌아가, 한 집에 살게 된 
    이경이 아가타와 함께 열심히 수계하였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 
    7월 17일 한영이, 이경이와 함께 체포되었다. 
    <BR> 
    평소 권진이의 아름다움을 탐내던 밀고자 김순성(일명 여상)의 간교로 어머니 
    한영이만 포청으로 끌려가고, 권진이는 이경이와 사관청(仕官廳)에 갇히게 
    되었다. 사관청에서 한 포졸이 권진이를 납치하려 하자 권진이는 이경이와 
    함께 사관청을 탈출하였으나 얼마 안되어 숨어 있던 교우의 집에서 다시 
    체포되었다. 
    <BR> 
    도망쳤던 죄로 포청과 형조에서 매우 가혹한 형벌을 받아야 했으나 권진이는 
    끝까지 신앙을 지켜 1840년 1 월 31일 5명의 교우와 함께 ‘당고개’에서 
    참수형을 받아 21세의 아까운 나이로 순교했다. 
    (52는 어머니, 52, 65와 함께 체포됨) 
    <PRE><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움체 color=#32449c><B>
    †성인 홍영주 바오로,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IMG src="http://pds.catholic.or.kr/Archives/ncbbs/baltimore/pds1/0/9.68.jpg"> 
    명문 양반의 후예로 서울에서 태어난 홍영주 바오로는 충청도 내포(內浦) 
    지방의 여사울에서 자랐다. 대대로 이어온 신앙을 이어받아 독실한 신앙생활을 
    했고,형 홍병주 베드로와 함께 충청도 내포지방의 회장으로 교회 일에 헌신했다. 
    <BR>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고 서양 신부들이 체포된 후 9월말에 이르러 홍영주는 
    형과 함께 서양 신부들의 은신처를 제공한 죄로 체포되었다. 마침내 1840년 2월 
    1일, 하루 먼저 순교한 형의 뒤를 따라 2명의 교우와 함께 ‘당고개’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때 나이 39세였다. (63은 형) 
    <PRE><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움체 color=#32449c><B>
    †성인 이문우 요한,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IMG src="http://pds.catholic.or.kr/Archives/ncbbs/baltimore/pds1/0/9.69.jpg"> 
    일명 ‘경천’으로도 불리는 이문우 요한은 경기도 이천의 양반 교우 가정에서 
    태어나 5세 때 양친을 여의고 서울의 오 바르바라라는 여 교우에게 입양되어 
    성장했다. 
    <BR> 
    독신생활을 원하였으나 양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성과 순종으로 양어머니의 
    뜻에 따라 결혼했고, 몇 년 후 아내와 두 어린 자녀가 사망하자 주위에서의 
    재혼 권유를 거절하고 독신으로 살면서 범 라우렌시오 주교에 의해 회장으로 
    임명되어 전교에 힘쓰는 한편 주교를 보좌하며 지방을 순회하였다. 
    <BR> 
    1839년 기해박해로 많은 교우들이 체포되어 옥에 갇히자 사방에서 희사를 
    모아 체포된 교우들을 돕고, 박해 상황을 주교와 신부들에게 보고하였다. 
    그러던 중 11월 11일 자신도 체포되었다. 
    <BR> 
    이때 "주님께서 특별한 은총으로 나를 부르시니 어찌 그분의 부르심에 대답 
    하지 않을 수 있는가?"하고 의연한 모습을 보였고, 오히려 당황해 하는 포졸 
    들을 재촉해서 포청으로 끌려갔다. 포청과 형조에서의 혹형과 고문을 참아낸 
    끝에 사형을 선고받고, 1840년 2월 1일 ‘당고개’에서 2명의 교우와 함께 
    31세의 나이로 참수되어 순교했다. 
    <PRE><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움체 color=brown><B>
    ▒ 재수 좋은 사람 ▒
    <PRE><FONT style="FONT-SIZE: 11pt" face=돋움체 color=brown>
    산다는 것은 내 삶의 방식에
    얼마나 흠뻑 취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길을 만났을 때도
    나는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나는 항상 재수 좋은 사람이라고 믿으면
    행운은 반드시 나를 따른다.
    믿는 것이 중요하다.
    <BR>
    - 곤도 다카미의《세상에서 가장 값진 월급봉투》중에서-
    <BR>
    재수는 요행이 아닙니다.
    자기 삶의 방식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입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 확신을 갖고 흠뻑 젖어 있으면
    '좋지않은 일'도 '좋은 일'로 바뀌게 되고,
    어느덧 '재수 좋은 사람'이 됩니다. </b>
    <PRE><UL><UL><FONT style="FONT-SIZE: 11pt" face=돋음체 color=#32449c> 
    <A href="http://cafe.daum.net/Coreansanctus" target=bl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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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연구하고,기도하고 싶습니다.(↖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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