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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우리 한(恨)을 풀어주시고 채워주시는 예수님
작성자송규철 쪽지 캡슐 작성일2005-09-21 조회수706 추천수6 반대(0) 신고


 

      우리 한(恨)을 풀어주시고 채워주시는 예수님



      한국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큰 정서의 흐름이 있습니다.

      하나는 한(恨)의 정서요, 다른 하나는 정(情)의 정서입니다.

      한(恨)의 정서에는 가난과 억압, 무시, 천대, 차별 같은 것이 있고

      정(情)의 정서에는 그리움, 사랑, 배려, 동정심, 슬픔, 외로움

      같은 것이 있습니다.

      한(恨)의 정서는 사람들에게 많은 왜곡과 상처를 남겼습니다.

      사람의 정신과 마음을 삐꾸러지게 하고 정신 분열을 일으키며

      분노, 실망, 좌절감, 슬픔을 갖게 합니다.

      정서는 하나의 성격처럼 기질화 된 것을 말합니다.

      자꾸 그런 상태에 빠지면 습성이 되고 기질화 되어 그런 심리 상태가

      되는데 성격화 된 감정 상태를 정서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정서화 되면 그 내면에 깊은 뿌리를 박은 것이기 때문에

      계속 그런 상태를 유지하고 그에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까 한국인의 한과 정에 대한 정서는 바로

      그런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어떻게 생명을 유지해 가고 삶의 만들어 가느냐 하면

      인간 안에 하느님이 만들어 놓으신 생명력과 욕구 때문입니다.

      생명력은 처음에 부여하시지만 그 다음부터는 에너지 즉 영양분을

      섭취해야 유지해 갈 수 있게 됩니다.

      자기가 운영해 가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인간에게는 특히 두 가지 생명의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는 신체적인 요소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 즉 마음입니다.

      이 두 가지가 다 운영되기 위해 에너지가 필요한데

      신체를 위해서는 음식 섭취가 주 에너지원이고

      마음을 위해서는 사랑이나 성취감, 만족감 같은 것이 주 에너지원이 됩니다.

      신체가 적절한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면 병들고 힘이 짜지게 되고

      정신이 만족스럽고 기쁘지 못하면 삶의 의욕이 없어져 불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에너지가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결핍될 때

      한(恨)의 정서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3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이 겨우 먹고 살았지

      여유 있게 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었습니다. 아직도 가난의 정서, 억눌림의 정서가 남아

      우리에게 어둠의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돈을 위해서라면 협박도 거짓도 마다않습니다.

      이번 테이프사건도 그런것 아니겠습니까?

      억눌림의 한은 이제 자기 돌출로 나타납니다.

      누구나 자기를 내세우려 하고 권력을 잡고 힘을 행세하려합니다.

      사장님도 교수도 기회만 되면 권력과 줄을 잡으려 하지 않습니까?

      힘 없는 사람은 힘을 뭉쳐 행세하려하구요.

      이제는 노동 운동도 힘 싸움이 되버렸습니다.

      사방에서 갑자기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음식점에 가도 하도 소란해 조용히 음식을 즐길 수 없지 않습니까?

      시민 단체마다 자기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인터넷에는 작은 사회 이슈가 생겨도 네티즌들이 난리치지 않습니까?

      정(情)의 한은 어떻습니까?

      가정 파탄과 불륜, 부도덕을 낳고 있습니다.

      원조 교제, 채팅도 그 한 몫을 하지 않습니까?

      한(恨)과 정(情)을 풀 수 없었던 많은 사람이 우울증에 빠지고 있으며

      자기 세계로 잠입하고 있습니다. 아니면 분노와 실망으로

      다른 이를 원망하거나 적대적인 행동을 서슴없이 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47세 아들이 80세 어머니를 돈 안준다고 폭행한 일이

      있지않았습니까?


      이 두 가지 한의 정서는 한국인의 불행했던 과거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그 불행의 불길이 아직도 강합니다.

      오늘 이사야서 말씀에 보면(이사야 55,1-3)

      하느님께서 인간과 계약을 맺고 인간이 그 계약을 지키면 가난의 한을

      풀어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복음에서도 예수님이 굶주린

      군중을 위해 빵의 기적을 행하십니다. 그리고 이는 바로 예수님이

      우리 한의 정서를 해결해 주실 분이시라는 것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이젠 물질 가난의 정서에서 정신적 굶주림의 시대로 넘어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 두 한의 정서는 우리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오 늘 복음 말씀의 메씨지는 우리을 풀어주실 분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인생길을 가르쳐주시고

      죄에서 해방 시키셨으며 병고를 고쳐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예수님을 통해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은총의 충만함, 자유와 평화의 축복이 있고

      하느님 사랑의 충만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영적으로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어떤 고난을 당해도 이런 예수님을 떠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사랑을 배반할 수 없다는 것을 역설합니다.

      우리는 오늘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체험하고 그 믿음을 지닐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며

      그 믿음을 지켜가고 키워가겠다고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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