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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90) 그 말씀이 딱 맞습니다.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9-23 조회수794 추천수11 반대(0) 신고

2005년9월23일 금요일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 ㅡ하깨1,15ㄴ-2,9;루가9,18-22ㅡ

 

                   그 말씀이 딱 맞습니다.

                                             이순의

 

 

 

 

"거기다 글 쓰면 뭐줘?"

-"어........?"

"거기다 글 쓰면 돈이 되느냐는 말이야?"

-"돈 안되는데?"

"그러면서 맨날 바쁘다고 그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는 말이야?"

-"그래.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쓰는데?"

"어이구? 요즘은 여자들이 나가면 얼마든지 벌어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인데, 돈도 안되는 일도 일이라고 날이면 날마다 쪼그리고 앉아서 시간을 낭비한다는 말이야?"

 

이쯤되면 나로서는 할 말이 없어진다. 돈이 안되는 일의 무가치! 그 무가치를 실행하느라고 매일이 바쁜 어리섞은 사람! 그러면서 생활이 곤곤한 이유는 당연히 받아야 할 벌 같은 것! 이해할 수 없는 가치를 누리고 사는 비현실적인 인물! 오랜 세월동안 습작을 해 왔지만 내 글이 공식화 된 것은 묵상방이 처음이다. 컴퓨터가 서툰 이유도 있지만 여기저기 쏟아 두었다가 주워모을 수 없을까 봐서 오시라는 곳마다 다 찾아 가지 않는다. 그냥 굿뉴스가 나의 까페이고, 나의 둥지이고, 나의 활동무대이며, 나의 울타리라고 여기며 살고 있다. 그런데 글을 쓰기는 써서 읽는 사람이 제법이라는 소문은 났는데.... 그럼 뭔가 좀 달라져야 한다는 게 어떤 분의 시각인 것 같았다.

 

사는 것도 그대로고, 우아해지고 품위가 있어져야 맞는데 여전히 꾀죄죄한 화장기 없는 얼굴에 털털한 옷차림 그리고 투박한 말투까지! 글을 써서 유명해지면 뭐 달라지는 것도 있어야 하고, 생기는 것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런데 1원 한 푼 생기는 게 없다고 했더니 그깐 일도 일이냐고 당장에 원가 절하에, 싸구려 짐짝에다가, 빌어먹는 주제에 먹물만 뿌리고 다니는.... 뭐 기생 언니쯤으로나 생각이 되었나 보다. 그러니 다음으로 이어지는 말은 더욱 가관이었다. 가서 한 나절 파출부를 해도 3만원은 벌어오고, 전단지라도 돌리게 되면 운동도 하고 살도 빼고 돈도 벌고, 식당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해도 한 달에 기 백만원은 벌어들인다는 지당한 논리 앞에서 그만 기가 죽고 말았다.

 

그 말씀이 딱 맞는 말씀이었다. 듣고 보니 나에게는 아무런 능력도 의욕도 없이 그저 시간이나 좀 먹고 사는 사람이 분명했다. 돈 한 푼 벌줄 모르는 무가치한 존재! 돈 한 푼도 되지 않는 글도 글이라고 쓰는 이해하지 못할 위인! 그러면서 그 글이 어떻게 타당성을 가지는지 우숩기 그지없는 현실! 정말로 맞는 말이었다. 적어도 그분 앞에서 그 순간만큼은 부끄러움이었다.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서 한 푼의 금전적 가치도 지니지 못한 나의 분신들이 한없이 초라한 몰골로 전락하고 말았다. 정말로 수치스러웠다. 하루 일당 3만원짜리 만도 못한, 종일토록 의자에 앉아서 뱃살이나 찌우는, 아르바이트감도 되지 못하는, 그런 무가치로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니.....   

 

어떨결에 한 변명이 있기는 있었다. 그런데 그 변명 때문에 내 자신이 더 화가 났다. 차라리 무시당하고 말을 것이지 뭐하러 변명은 해 가지고 후회는 하는가?!

"혹시 알아요? 다음에 책으로 나오면 대박이 날지?"

그런데......

"어이구? 요즘에 아이디어 좋고 재미있는 책들이 홍수인데도 인터넷 때문에 책이 안팔린데요. 정신 차리셔! 그리고 그런 책을 누가 돈 주고 사 본데? 공짜로 주면 모를까? 다음에 책 나오면 싸인 해서 나도 한 권 줘봐바!" 

웃어 넘기기에는 마음 속이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 다음에 우리 아들이라도 보라고 하지 뭐! 철들고 세상살이에 여물어지면 엄마거니까 새록새록 새기며 읽어줄거 아니여? 사진은 사진 대로 자료가 될 것이고....." 

 

그러고 보니 훗날에 내 아들도 읽어 줄지 안 읽어 줄지 모르는 일이다. 세상에서 엄마 글이 제일 좋다고 하던 녀석도 머리가 굵어지면서 이유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런것은 써라. 저런것은 쓰지마라. 주문이 많아졌고, 때로는 진땀을 쏟아가며 완성해 놓은 글을 삭제 시켜버리겠다고 엄포를 놓아서 꼼짝도 못하고 좁은 골방에서 혼자 울어야 했던 적도 여러번 있었다. 그러면서 아들녀석에게 묵상글을 읽어 달라고 요청하지 않게 되고.... 더구나 엄마 글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는 말은 포기 한 지가 오래 되었다. 요즘은 입시 준비 때문이기도 하지만 언제 엄마 글을 읽어 주는지 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감히 세월을 살은 아들녀석이 엄마글을 읽고 엄마 사진을 본다는 것은 상상조차도 교만스러운 발상이 아니던가?! 생각이 이쯤에 이르고 보니 정말로 외로운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을 쏟아서 봉헌 드린 사연들이 갑자기 무가치에 무의미가 되어버린 것이다. 얼마나 고집스러운 주관으로 역어 온 완성이던가?! 기교를 선택하기 보다는 차라리 미완성을 너그럽게 수용해 버린 작업이 아니던가?! 글은 글 대로 내면의 감성을 철저하게 존중해 주느라고 이론의 부족함을 인정해야만 했고, 사진은 사진 대로 보여지는 진실을 외곡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며 얼마나 열심히 마련해 왔던가?!

 

그런데 그 모두가 비현실의 허상이라는!

 

오늘은 오상의 비오 신부님 축일이다. 대부분의 성인들을 보면 그리스도적 삶을 행동으로 살아 내거나 죽어서 그 반열에 오른 경우가 많다. 그런데 드물게 미묘한 열정으로 성인의 반열에 오르신 분들이 계시다. 그 대표적 인물로는 소화 데레사 성녀나 오상의 비오 신부님을 들수 있다. 이분들의 그리스도적 삶은 현실적이지 못했다. 공동체의 동료들 조차 가늠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운 이상한 현상에 대하여 스스로 침묵하고 견디며 순명하여 승화해 가는 과정을 마련하신다. 그렇다고 이분들이 행동하여 빈민자를 구제하러 다닌다거나, 복음을 전파 하려고 순례를 하거나 선교지를 찾아서 순교적인 삶을 살아 낸 것은 더욱 아니다.

 

어찌보면 아버지께서 점지하여 주신 팔자가 그러했을 것이다. 주어진 자리에서 답답하리 만치 이상한 삶을 견디어 내야하고 기뻐해야 하는..... 나 같았다면 차라리 성 프란치스코 처럼 나가서 돌아 다니고 말지! 성녀 제노베파 처럼 백성을 이끌고 군대와 맞서 결판을 내고 말지! 허구헌날 앉은 자리에서 동료들 눈치나 보고, 윗어른들께 똑별난 이유도 없이 걱정이나 끼쳐 드려야 하는..... 그럼에도 살아 내신 그 삶은 이름없이 살다 가신 수 없이 많은 주님의 종들 중에서 으뜸의 자리를 장식하고 계시지를 않는가?! 주어진 몫에 순종한다는 사명을 표본처럼 증거하고 계시는 비오 성인이 아니시던가?! 아버지께서 주신 삶에 충실하고, 감사하며, 온전히 살아 낸!

 

나에게 주신 아버지의 뜻은 무엇일까?

 

요즘들어 부쩍 내가 주님께 순종하지 못하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골똘히 생각해 보곤 한다. 내가 주님의 뜻에 맞는 삶을 살고 있다면 이토록 세속적으로 어긋나 어려운 생활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깊이 몰입하게 된다. 그런데 그 해답 또한 너무나 황당하게 얻어진다. 어긋나 어려운 것 또한 아버지의 뜻이라는! 나에게 부자 인생을 배정하셨더라면 잘나가는 짝을 주셨거나? 아니면 짝궁은 그대로인데 하는 일마다 팡팡팡 잘 터지거나? 또 아니면 나라도 건강하여 손수 벌어다가 짝궁에게 용돈 팍팍팍 주는 그런 여걸이 되었든가? 그런데 짝궁도 어려운 사람인데 나꺼정 건강하지 못하고, 더구나 20년 동안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세속적 풍요를 약속하지 않으시니.....

 

우리 가족도 주어진 몫에 순종하며 표본처럼 재미있게 살았는데, 아무래도 성인 될 팔자는 아니었든가 보다. 결혼 20년 만에 우리 성가정은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런데다가 돈벌이도 안되는 묵상글이나 쓰고 나자빠져 있는 내 탓이 크다고 하니..... 더욱 감이 잡히지 않는 것은 일순간에 나의 봉헌들을 무용지물로 전락 시켜버린 그분의 말씀이 하늘에서 오시는 말씀인지? 아니면 나의 위기를 노린 사탄의 말씀인지? 분간해 낼 능력이 나에게 없다는 점이다. 하기야 성인을 알아보지 못하신 수도원장님도 비오신부님께 쉽게 대하시지는 않았던 모양인데 성인은 커녕 수도원장님도 아닌 내가 그 해답을 알아낸다면 이미 돋자리를 깔고 앉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오늘도 주님의 뜻을 알아내지 못했다. 그런데도 또 주님의 뜻대로 하루 해가 떳다가 하루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저렇게 날마다 뜨는 해와 날마다 지는 해를 주님이 아니라면 누가 감히 뜨게 하고 누가 감히 지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오늘 하루의 나의 일상도 주님께서 주관하셨다고 믿으며, 따끔한 핀잔을 놓으신 그분의 딱 맞는 말씀도 깊이 생각해 보고 있다. 아기를 돌보던 일을 그만 둘적에도 생활이 넉넉하여 그만 둔 것은 아니었다. 기관지 파열로 토혈을 하는 바람에 주님의 뜻이라고 여기며 그만 두었었다. 이제 완치가 되었고 다시 일을 시작 할 때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분의 말씀이 내 귀에 꼭꼭 박혀 들렸는지도 모른다.

 

아들의 수능 시험이 끝나고 대학에 가면 내년에는 짝궁을 따라서 산으로 가려고 했는데 나는 아직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른다. 하루 하루의 일상을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라서 살을 참이다. 이렇게 쓰는 묵상글도 주님께서 나에게 허락 하시는 날 까지만 쓸 수 있을 것이다. 단 한 번도 나의 의지로 완성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따로 배운적도 없는 장문의 묵상 글을 오로지 주님께 의탁하는 영감 하나로 쓸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은총이었다. 분명히 특별한 은총이었다. 때로는 온 몸이 짠 물을 뒤집어 쓴 듯이 싸각 거리는 소금기를 느끼며 혼을 짜서 썼고, 때로는 기쁨이 충만하여 그 흥겨움에 신바람이 나서 썼고, 때로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쏟으며 그 비통함에 몸조차 가누기 힘들어도 써야만 했다.

 

그런데 단 돈 1원짜리도 되지 않는다는.......! 그분의 말씀이 딱 맞다. 그러나 주님을 믿는 나는 주어진 몫에 순종한다는 사명을 표본처럼 증거하며, 아버지께서 주신 삶에 충실하고, 감사하며, 온전히 살아 낼 것이다.

 

 

 

 

ㅡ예수께서는 이어서 이렇게 말씀 하셨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격고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루가9,22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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