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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성 이간난 아가다,정철염 가타리나,유정률 베드로시여~!
작성자조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5-09-24 조회수749 추천수6 반대(0) 신고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한국 순교자들에게 바치는 기도 ◈
    
    ◇ 이 땅의 모든 순교자여,
       당신들은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굳은 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나이다.
    
    ◆ 저희는 현세에서 악의 세력과 치열하게 싸우며 당신들이 거두신 승리의 영광을 노래하고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찬양하오니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위대하신 순교자들이여, 천상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와 함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하느님의 자비를 얻어주소서.
    ◆ 지금도 어둠의 세력이 교회를 박해하고 있사오니 하느님께서 전능하신 팔로 교회를 붙들어 보호하시며 아직 어둠 속에 있는 지역에까지 널리 펴시도록 빌어주소서.
    ◇ 용감하신 순교자들이여, 특별히 청하오니 우리 나라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 당신들은 이땅에서 많은 고난을 겪으며 사시다가 목숨까지 바치셨사오니
    ◇ 전능하신 하느님께 빌어주시어 교회를 이땅에서 날로 자라게 하시며 사제를 많이 나게 하시고
    ◆ 신자들이 주님의 계명을 잘 지키고 냉담자들은 다시 열심해지며 갈린 형제들은 같은 믿음으로하나 되고 비신자들은 참신앙으로 하느님을 알아 천지의 창조주 인류의 구세주를 찾아오게 하소서.
    ◇ 참으로 영광스러운 순교자들이여, 저희도 그 영광을 생각하며 기뻐하나이다. 간절히 청하오니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 빌어주시어 저희와 친척과 은인들에게 필요한 은혜를 얻어주소서.
    ◆ 또한 저희가 죽을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한결같이 믿어 증언하며 비록 피는 흘리지 못할지라도 주님의 은총을 입어 선종하게 하소서.
    ◇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여,
    ◆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이간난 아가다,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서울의 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난 이간난 아가타는 18세 때 결혼하여 3년만에 
과부가 되어 친정으로 돌아왔다. 이때 외할머니의 권유로 입교하고 유방제 
신부로부터 성세(세례)성사를 받았다. 

1846년 김대건 신부가 체포되고 병오박해가 일어나자 이 간난은 현석문 가롤로 회장이 마련한 집에 피신해 있었으나 7월 11일 피신해 있던 집에서 현석문, 김임이, 정철염 등과 함께 체포되어 9월 20일 매를 맞아 반죽음이 된 상태로 6명의 교우와 함께 33세의 나이로 교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72, 77, 79와 함께 체포됨)

†성녀 정철염 가타리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녀 정철염 가타리나는 경기도 수원의 교우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하여 포천의 김씨 성을 가진 한 양반집 하인으로 들어 갔는데, 주인집 가족의 한 교우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했다.
20세 되던 해 동지날 주인으로부터 미신행위에 참석하라는 지시를 받고 이를 거부함으로써 주인에게 혹독한 벌을 받았고, 이듬해 봄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자 그녀는 서울로 피신하여 교우들 집에 몸붙여 살았다.
그후 1845년 김대건 신부의 하녀로 들어갔고, 이듬해 5월 김 신부가 체포 되자 현석문 가롤로 회장이 새로 마련한 집에 피신해 있다가 7월 11일 현 회장, 이간난, 김임이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포청에서 매우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당했으나 성녀 정철염은 용감히 이겨 냈다.9월 20일 매를 맞아 거의 반죽음이 된 상태로 포청에서 6명의 교우와 함께 교수형을 받아 30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72, 77, 78과 함께 체포됨)

†성인 유정률 베드로,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유정률 베드로는 평남 대동군 율리면 답현리(畓峴里. 일명 논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일찍 부모를 여읜 후로 짚신을 엮어 팔아 어렵게 생활 
했다. 

1864년경 천주교를 알게 되자 교리를 배운 후 곧 상경하여 장 시므온 베르뇌 주교에게 성세성사를 받았다. 그후 고향으로 돌아온 성인은 지난날의 방탕했 던 생활과 아내를 난폭하게 학대한 죄를 속죄하기 위해 신 꼬리로 자신의 몸 을 매질하며 오직 극기와 인내로 생활했다.
그의 아내도 이렇게 변화된 모습에 감동하여 남편의 모범을 따라 입교하게 되었다. 1866년 초 천주교 박해에 대한 소문을 듣고 유정률은 친척들에게 세배하면서 자신의 순교를 예감이나 한 듯 "안녕히들 계십시오. 지금 헤어지 면 언제 다시 뵐 수 있을지 모르겠읍니다"하고 하직인사를 했는데,
과연 그날 저녁 이웃마을인 고둔리 공소에서 교우들과 모여 성서를 읽고 있던 중 들이닥친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이어 같이 체포된 집주인 정 빈첸시오 회장, 우세영 알렉시오 등 5명의 교우와 함께 평양 감영으로 끌려갔다.
평양 감영에서 그는 이미 체포된 100여 명의 교우와 할께 문초를 받았고 혹형과 고문으로 대부분의 교우들이 배교했으나 홀로 신앙을 지켰다. 이에 노한 감사 정지용(鄭芝溶)은 배교 한 교우 100여 명으로 하여금 한 사람이 세 대씩 때리게 했다.
결국 유정률은 체포된 다음날인 2월 17일 300여 대의 매를 맞고 30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이른바 장하치명(杖下致命)을 한 것이다. 유해는 대동강에 던져졌으나 그의 아내가 거두어 논재에 안장했다.
이러한 성 유정률 베드로의 순교 사실은 1876년 평양감사 이재청(李在淸)이 전임 감사 정지용의 천주교 탄압을 치하하기 위해 부벽루 영명사에 세운 척사기적비 (斥邪紀蹟碑)에 잘 기록되어 있다.

▒ 내 사람이기 때문에 ▒

사람이 산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함께'일 때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이지 싶다. 우리 삶의 
모든 기쁨과 슬픔도 결국은 사람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사람이 아닌 다른 모든 것들은
중심이 아닌 조건들에 불과하다.

문득 주위를 돌아보면, 개개인은 모두가 소중하지만 우리들의 관계는 얼마나 메말라가고 있는지 모른다. 인생을 살면서 잊지 않아야 할 한 가지 사실은 사람을 소중히 하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리라.
- 장성숙의《그래도 사람이 좋다》중에서 -
그 사람이 소중한 건 위대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내 곁에 있기 때문입니다. 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내 것이 아닌 금은보화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으며, 백마(白馬)탄 왕자가 있다 한들 강 건너 피안의 세계에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내가 소중히 여겨야 그(녀)도 내 사람이 됩니다.
- 고도원의 아침편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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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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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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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순교자들에게 바치는 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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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땅의 모든 순교자여,
       당신들은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굳은 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나이다.
    <BR>
    ◆ 저희는 현세에서 악의 세력과 치열하게 싸우며
       당신들이 거두신 승리의 영광을 노래하고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찬양하오니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BR>
    ◇ 위대하신 순교자들이여,
       천상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와 함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하느님의 자비를 얻어주소서.
    <BR>
    ◆ 지금도 어둠의 세력이
       교회를 박해하고 있사오니
       하느님께서 전능하신 팔로 교회를 붙들어 보호하시며
       아직 어둠 속에 있는 지역에까지
       널리 펴시도록 빌어주소서.
    <BR>
    ◇ 용감하신 순교자들이여, 특별히 청하오니
       우리 나라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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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들은 이땅에서 
       많은 고난을 겪으며 사시다가
       목숨까지 바치셨사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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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능하신 하느님께 빌어주시어
       교회를 이땅에서 날로 자라게 하시며
       사제를 많이 나게 하시고
    <BR> 
    ◆ 신자들이 주님의 계명을 잘 지키고
       냉담자들은 다시 열심해지며
       갈린 형제들은 같은 믿음으로하나 되고
       비신자들은 참신앙으로 하느님을 알아
       천지의 창조주
       인류의 구세주를 찾아오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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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으로 영광스러운 순교자들이여,
       저희도 그 영광을 생각하며 기뻐하나이다.
       간절히 청하오니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 빌어주시어
       저희와 친척과 은인들에게
       필요한 은혜를 얻어주소서.
    <BR>
    ◆ 또한 저희가 죽을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한결같이 믿어 증언하며
       비록 피는 흘리지 못할지라도
       주님의 은총을 입어 선종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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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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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PRE></UL></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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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녀 이간난 아가다,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IMG src="http://pds.catholic.or.kr/Archives/ncbbs/baltimore/pds1/0/9.78.jpg"> 
    서울의 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난 이간난 아가타는 18세 때 결혼하여 3년만에 
    과부가 되어 친정으로 돌아왔다. 이때 외할머니의 권유로 입교하고 유방제 
    신부로부터 성세(세례)성사를 받았다. 
    <BR> 
    1846년 김대건 신부가 체포되고 병오박해가 일어나자 이 간난은 현석문 
    가롤로 회장이 마련한 집에 피신해 있었으나 7월 11일 피신해 있던 집에서 
    현석문, 김임이, 정철염 등과 함께 체포되어 9월 20일 매를 맞아 반죽음이 
    된 상태로 6명의 교우와 함께 33세의 나이로 교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72, 77, 79와 함께 체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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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녀 정철염 가타리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IMG src="http://pds.catholic.or.kr/Archives/ncbbs/baltimore/pds1/0/9.79.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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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녀 정철염 가타리나는 경기도 수원의 교우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하여 
    포천의 김씨 성을 가진 한 양반집 하인으로 들어 갔는데, 주인집 가족의 
    한 교우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했다. 
    <BR> 
    20세 되던 해 동지날 주인으로부터 미신행위에 참석하라는 지시를 받고 
    이를 거부함으로써 주인에게 혹독한 벌을 받았고, 이듬해 봄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자 그녀는 서울로 피신하여 교우들 집에 몸붙여 살았다. 
    <BR> 
    그후 1845년 김대건 신부의 하녀로 들어갔고, 이듬해 5월 김 신부가 체포 
    되자 현석문 가롤로 회장이 새로 마련한 집에 피신해 있다가 7월 11일 현 
    회장, 이간난, 김임이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BR> 
    포청에서 매우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당했으나 성녀 정철염은 용감히 이겨 
    냈다.9월 20일 매를 맞아 거의 반죽음이 된 상태로 포청에서 6명의 교우와 
    함께 교수형을 받아 30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72, 77, 78과 함께 체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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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인 유정률 베드로,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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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유정률 베드로는 평남 대동군 율리면 답현리(畓峴里. 일명 논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일찍 부모를 여읜 후로 짚신을 엮어 팔아 어렵게 생활 
    했다. 
    <BR> 
    1864년경 천주교를 알게 되자 교리를 배운 후 곧 상경하여 장 시므온 베르뇌 
    주교에게 성세성사를 받았다. 그후 고향으로 돌아온 성인은 지난날의 방탕했 
    던 생활과 아내를 난폭하게 학대한 죄를 속죄하기 위해 신 꼬리로 자신의 몸 
    을 매질하며 오직 극기와 인내로 생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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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아내도 이렇게 변화된 모습에 감동하여 남편의 모범을 따라 입교하게 
    되었다. 1866년 초 천주교 박해에 대한 소문을 듣고 유정률은 친척들에게 
    세배하면서 자신의 순교를 예감이나 한 듯 "안녕히들 계십시오. 지금 헤어지 
    면 언제 다시 뵐 수 있을지 모르겠읍니다"하고 하직인사를 했는데, 
    <BR> 
    과연 그날 저녁 이웃마을인 고둔리 공소에서 교우들과 모여 성서를 읽고 있던 
    중 들이닥친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이어 같이 체포된 집주인 정 빈첸시오 
    회장, 우세영 알렉시오 등 5명의 교우와 함께 평양 감영으로 끌려갔다. 
    <BR> 
    평양 감영에서 그는 이미 체포된 100여 명의 교우와 할께 문초를 받았고 혹형과 
    고문으로 대부분의 교우들이 배교했으나 홀로 신앙을 지켰다. 이에 노한 감사 
    정지용(鄭芝溶)은 배교 한 교우 100여 명으로 하여금 한 사람이 세 대씩 때리게 
    했다. 
    <BR> 
    결국 유정률은 체포된 다음날인 2월 17일 300여 대의 매를 맞고 30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이른바 장하치명(杖下致命)을 한 것이다. 유해는 대동강에 
    던져졌으나 그의 아내가 거두어 논재에 안장했다. 
    <BR> 
    이러한 성 유정률 베드로의 순교 사실은 1876년 평양감사 이재청(李在淸)이 전임 
    감사 정지용의 천주교 탄압을 치하하기 위해 부벽루 영명사에 세운 척사기적비 
    (斥邪紀蹟碑)에 잘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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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사람이기 때문에 ▒
    <PRE><FONT style="FONT-SIZE: 11pt" face=돋움체 color=brown>
    사람이 산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함께'일 때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이지 싶다. 우리 삶의 
    모든 기쁨과 슬픔도 결국은 사람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사람이 아닌 다른 모든 것들은
    중심이 아닌 조건들에 불과하다.
    <BR>
    문득 주위를 돌아보면, 개개인은 모두가 소중하지만
    우리들의 관계는 얼마나 메말라가고 있는지 모른다.
    인생을 살면서 잊지 않아야 할 한 가지 사실은
    사람을 소중히 하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리라. 
    <BR>
    - 장성숙의《그래도 사람이 좋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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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람이 소중한 건 위대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내 곁에 있기
    때문입니다. 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내 것이 아닌 금은보화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으며, 백마(白馬)탄 왕자가 있다 한들
    강 건너 피안의 세계에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내가 소중히 여겨야 그(녀)도 내 사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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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도원의 아침편지입니다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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