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성 베르뇌 시메온,브르뜨니애르 유스또,도리 헨리꼬,볼리외 루도비꼬시여~!
작성자조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5-09-25 조회수745 추천수6 반대(0) 신고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한국 순교자들에게 바치는 기도 ◈
    
    ◇ 이 땅의 모든 순교자여,
       당신들은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굳은 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나이다.
    
    ◆ 저희는 현세에서 악의 세력과 치열하게 싸우며 당신들이 거두신 승리의 영광을 노래하고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찬양하오니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위대하신 순교자들이여, 천상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와 함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하느님의 자비를 얻어주소서.
    ◆ 지금도 어둠의 세력이 교회를 박해하고 있사오니 하느님께서 전능하신 팔로 교회를 붙들어 보호하시며 아직 어둠 속에 있는 지역에까지 널리 펴시도록 빌어주소서.
    ◇ 용감하신 순교자들이여, 특별히 청하오니 우리 나라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 당신들은 이땅에서 많은 고난을 겪으며 사시다가 목숨까지 바치셨사오니
    ◇ 전능하신 하느님께 빌어주시어 교회를 이땅에서 날로 자라게 하시며 사제를 많이 나게 하시고
    ◆ 신자들이 주님의 계명을 잘 지키고 냉담자들은 다시 열심해지며 갈린 형제들은 같은 믿음으로하나 되고 비신자들은 참신앙으로 하느님을 알아 천지의 창조주 인류의 구세주를 찾아오게 하소서.
    ◇ 참으로 영광스러운 순교자들이여, 저희도 그 영광을 생각하며 기뻐하나이다. 간절히 청하오니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 빌어주시어 저희와 친척과 은인들에게 필요한 은혜를 얻어주소서.
    ◆ 또한 저희가 죽을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한결같이 믿어 증언하며 비록 피는 흘리지 못할지라도 주님의 은총을 입어 선종하게 하소서.
    ◇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여,
    ◆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인 베르뇌 시메온,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한국 이름은 장경일(張敬一), 조선교구 제 4대 교구장이다. 성 장 시므온 베르뇌 
주교는 이 땅에서의 10년 간 사목활동 중 배론에 한국 최초의 신학교를 설립하고 
서울에 두 개의 인쇄소를 설치하는 등 훌륭한 업적을 남겼으며 역사상 가장 혹독 
했던 1866년의 병인 대박해로 순교하여 주님의 품에 안겼다. 

프랑스의 ‘르망’ 교구 출신인 장 주교는 1837년 사제로 서품되어 동양 포교지의 하나인 월남으로 건너갔다. 그는 그곳에서 체포되어 2년간의 감옥생활을 치르고 사형선고까지 받았으나 다행히 석방되어 만주 요동지방에서 10여 년 간 활동하였으 며, 그곳에서 조선교구 제 4대 교구장으로 임명되어 1856년 3월 서울에 도착하였다.
천사적인 신심과 깊은 신학 지식을 겸비한 드문 능력가였던 그는 엄한 극기 생활과 당뇨병에서 오는 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쉴 새 없이 사목에 주력했으며 바쁜 주교 직을 수행하면서도 신부 3, 4인이 맡아 볼 그런 넓은 지역을 직접 도맡아 보았다.
과연 한국교회는 그의 밑에서 놀라운 발전을 보았으며 교우들은 더 잘 교육되고 신자 수는 배로 증가하였다. 그러나 그는 1866년 2월 뜻밖에도 모진 박해가 일어나 2월 23일에 체포되었다.
장 주교는 신문을 받을 때 자기가 이 땅에 온 것은 오로지 한국인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따라서 강제로 끌려가기 전에는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을 뜻을 밝혔다. 그는 감옥에서 앞 무릎에 곤장 열 대를 맞았으나 얼굴에 고통의 빛을 조금도 보이지 않았으며 3월 7일 백, 서, 김 세 신부와 함께 새남터 형장으로 향하였다.
당시 군인으로서 장 주교의 순교 장면을 목격한 박 베드로는 그의 순교 사실을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형장에 이르자 주교와 세 신부의 옷을 벗겼다. 이어 사형선고문의 낭독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들은 형벌을 받는 동안 즐거워 보였다. 마침내 망나니의 두 번째 칼날에 당년 52세인 장 주교의 목은 땅에 떨어졌다.”

†성인 브르뜨니에르 유스또,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한국 성은 백(白), 1866년 병인 박해 때 순교한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선교사. 
프랑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1864년 사제가 된 백 신부는 서품되자 곧 동료 
김, 민, 서 신부와 함께 고국을 떠나 이듬해인 1865년 5월, 조선에 입국하였다. 

서울에 도착한 백 신부는 정의배 마르코 회장 집에 머물면서 한국어를 배워 박해가 시작될 무렵에는 교우들의 고백까지 듣게 되었다. 그는 정 회장이 잡힌 이튿날인 2월 26일 장 주교의 하인 이선이의 고발로 체포되어 문초와 형벌을 받은 끝에 3월 7일 새남터에서 장주교와 함께 처형되었다. 이때 그의 나이 28세, 이 땅에 온 지 채 1년도 못되는 이 젊은 사도는 땀보다는 피로써 하느님의 영광을 드높이 현양하였다.

†성인 도리 헨리코,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한국성은 김, 1866년 병인 박해 때 순교한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선교사. 프랑스 
‘뤼송’ 교구 출신인 그는 1864년 5월 21일에 사제로 서품되어 이듬해인1865년 
5월 조선에 입국하여, 용인 손골에 배속되었다. 

김 신부는 순교 때까지 운명을 같이 한 서 신부와 가깝게 지냈으며 천성이 온순 하고 친절하여 한국말은 아직 서툴렀으나 교우들의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는 손골에서 지낸 8개월 간 교우들이 자기를 ‘김 신부’라고 부르는 것을 자랑으로 여겨 기뻐하였는데 그것은 한국엔 ‘김’이라는 성을 가진 순교자가 많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과연 김 신부는 자기의 소원대로 입국한지 10개월 만인 1866년 2월 손골에서 잡혀 3월 7일 한강변 새남터에서 장 주교, 백, 서 신부에 뒤이어 네 번째로 참수되었다. 이 때 그의 나이 겨우 27세에 불과했다.

†성인 볼리외 루드비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한국 이름은 서몰례(徐沒禮), 1866년 병인 박해 때 순교한 프랑스 선교사. 
서 신부는 1840년 프랑스 ‘보르도’ 교구에서 태어나 1864년 파리외방전교회 
사제로 서품되어 이듬해에 백, 김, 민 세 신부와 함께 충청도 내포에 도착 
입국하였다. 

그는 고백을 들을 만큼 한국말을 배운 후 공주지방 전교를 맡게 되었으나 임지 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펴볼 겨를도 없이 박해를 맞았다. 서 신부는 장 주교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경기도 광주 근처 교우집에 피해 있었으나 2월 27일 포졸에게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
그는 모진 고문에도 고통을 감수하였고 한국말이 서툴다는 핑계로 여러 질문에 일절 대답을 회피하였다. 마침내 3월 7일 서 신부는 장 주교를 선두로 동료인 백, 김 신부와 함께 새남터에서 참수되니 그때 나이 26세였다.

▒ 깨달은 사람 ▒
  
깨달은 사람에게는 특별한 표시가 있다.
무엇보다 그들은 자유롭다.
자신의 삶이 두려움, 기쁨, 걱정, 성공 
또는 실패에 휘둘리게 놓아두지 않는다.

- 텐진 빠모의 《마음공부》중에서 -
'자유롭다'는 것, 보통의 경지가 아닙니다. 아마도 깨달음의 최고 경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자유롭다'는 '유연하다'와 통합니다. 자유로운 사람은 마음 씀씀이가, 행동이, 표정이 부드러워집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너그럽고 넉넉해져서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도 휘둘리지도 않습니다.
- 고도원의 아침편지입니다 -
    《함께 연구하고,기도하고 싶습니다.↖클릭》
소스입니다

<PRE><FONT style="FONT-SIZE: 14pt" face=돋움체 color=red><B>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PRE><FONT style="FONT-SIZE: 13pt" face=돋움체 color=brown><B><UL>
◈ 한국 순교자들에게 바치는 기도 ◈
<PRE><FONT style="FONT-SIZE: 11pt" face=돋움체 color=brown>
◇ 이 땅의 모든 순교자여,
   당신들은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굳은 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나이다.
<BR>
◆ 저희는 현세에서 악의 세력과 치열하게 싸우며
   당신들이 거두신 승리의 영광을 노래하고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찬양하오니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BR>
◇ 위대하신 순교자들이여,
   천상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와 함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하느님의 자비를 얻어주소서.
<BR>
◆ 지금도 어둠의 세력이
   교회를 박해하고 있사오니
   하느님께서 전능하신 팔로 교회를 붙들어 보호하시며
   아직 어둠 속에 있는 지역에까지
   널리 펴시도록 빌어주소서.
<BR>
◇ 용감하신 순교자들이여, 특별히 청하오니
   우리 나라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BR>
◆ 당신들은 이땅에서 
   많은 고난을 겪으며 사시다가
   목숨까지 바치셨사오니
<BR>
◇ 전능하신 하느님께 빌어주시어
   교회를 이땅에서 날로 자라게 하시며
   사제를 많이 나게 하시고
<BR> 
◆ 신자들이 주님의 계명을 잘 지키고
   냉담자들은 다시 열심해지며
   갈린 형제들은 같은 믿음으로하나 되고
   비신자들은 참신앙으로 하느님을 알아
   천지의 창조주
   인류의 구세주를 찾아오게 하소서.
<BR>
◇ 참으로 영광스러운 순교자들이여,
   저희도 그 영광을 생각하며 기뻐하나이다.
   간절히 청하오니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 빌어주시어
   저희와 친척과 은인들에게
   필요한 은혜를 얻어주소서.
<BR>
◆ 또한 저희가 죽을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한결같이 믿어 증언하며
   비록 피는 흘리지 못할지라도
   주님의 은총을 입어 선종하게 하소서.
<BR>
◇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여,
<BR>
◆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PRE></UL></B>
<PRE><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움체 color=#32449c><B>
†성인 베르뇌 시메온,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IMG src="http://pds.catholic.or.kr/Archives/ncbbs/baltimore/pds1/0/9.81.jpg"> 
한국 이름은 장경일(張敬一), 조선교구 제 4대 교구장이다. 성 장 시므온 베르뇌 
주교는 이 땅에서의 10년 간 사목활동 중 배론에 한국 최초의 신학교를 설립하고 
서울에 두 개의 인쇄소를 설치하는 등 훌륭한 업적을 남겼으며 역사상 가장 혹독 
했던 1866년의 병인 대박해로 순교하여 주님의 품에 안겼다. 
<BR> 
프랑스의 ‘르망’ 교구 출신인 장 주교는 1837년 사제로 서품되어 동양 포교지의 
하나인 월남으로 건너갔다. 그는 그곳에서 체포되어 2년간의 감옥생활을 치르고 
사형선고까지 받았으나 다행히 석방되어 만주 요동지방에서 10여 년 간 활동하였으 
며, 그곳에서 조선교구 제 4대 교구장으로 임명되어 1856년 3월 서울에 도착하였다. 
<BR> 
천사적인 신심과 깊은 신학 지식을 겸비한 드문 능력가였던 그는 엄한 극기 생활과 
당뇨병에서 오는 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쉴 새 없이 사목에 주력했으며 바쁜 주교 
직을 수행하면서도 신부 3, 4인이 맡아 볼 그런 넓은 지역을 직접 도맡아 보았다. 
<BR> 
과연 한국교회는 그의 밑에서 놀라운 발전을 보았으며 교우들은 더 잘 교육되고 
신자 수는 배로 증가하였다. 그러나 그는 1866년 2월 뜻밖에도 모진 박해가 
일어나 2월 23일에 체포되었다. 
<BR> 
장 주교는 신문을 받을 때 자기가 이 땅에 온 것은 오로지 한국인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따라서 강제로 끌려가기 전에는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을 뜻을 
밝혔다. 그는 감옥에서 앞 무릎에 곤장 열 대를 맞았으나 얼굴에 고통의 빛을 
조금도 보이지 않았으며 3월 7일 백, 서, 김 세 신부와 함께 새남터 형장으로 
향하였다. 
<BR> 
당시 군인으로서 장 주교의 순교 장면을 목격한 박 베드로는 그의 순교 사실을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형장에 이르자 주교와 세 신부의 옷을 벗겼다. 이어 
사형선고문의 낭독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들은 형벌을 
받는 동안 즐거워 보였다. 마침내 망나니의 두 번째 칼날에 당년 52세인 
장 주교의 목은 땅에 떨어졌다.” 
<PRE><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움체 color=#32449c><B>
†성인 브르뜨니에르 유스또,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IMG src="http://pds.catholic.or.kr/Archives/ncbbs/baltimore/pds1/0/9.82.jpg"> 
한국 성은 백(白), 1866년 병인 박해 때 순교한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선교사. 
프랑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1864년 사제가 된 백 신부는 서품되자 곧 동료 
김, 민, 서 신부와 함께 고국을 떠나 이듬해인 1865년 5월, 조선에 입국하였다. 
<BR> 
서울에 도착한 백 신부는 정의배 마르코 회장 집에 머물면서 한국어를 배워 박해가 
시작될 무렵에는 교우들의 고백까지 듣게 되었다. 그는 정 회장이 잡힌 이튿날인 
2월 26일 장 주교의 하인 이선이의 고발로 체포되어 문초와 형벌을 받은 끝에 
3월 7일 새남터에서 장주교와 함께 처형되었다. 이때 그의 나이 28세, 
이 땅에 온 지 채 1년도 못되는 이 젊은 사도는 땀보다는 피로써 
하느님의 영광을 드높이 현양하였다. 
<PRE><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움체 color=#32449c><B>
†성인 도리 헨리코,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IMG src="http://pds.catholic.or.kr/Archives/ncbbs/baltimore/pds1/0/9.83.jpg"> 
한국성은 김, 1866년 병인 박해 때 순교한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선교사. 프랑스 
‘뤼송’ 교구 출신인 그는 1864년 5월 21일에 사제로 서품되어 이듬해인1865년 
5월 조선에 입국하여, 용인 손골에 배속되었다. 
<BR> 
김 신부는 순교 때까지 운명을 같이 한 서 신부와 가깝게 지냈으며 천성이 온순 
하고 친절하여 한국말은 아직 서툴렀으나 교우들의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는 손골에서 지낸 8개월 간 교우들이 자기를 ‘김 신부’라고 부르는 것을 
자랑으로 여겨 기뻐하였는데 그것은 한국엔 ‘김’이라는 성을 가진 순교자가 
많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BR> 
과연 김 신부는 자기의 소원대로 입국한지 10개월 만인 1866년 2월 손골에서 
잡혀 3월 7일 한강변 새남터에서 장 주교, 백, 서 신부에 뒤이어 네 번째로 
참수되었다. 이 때 그의 나이 겨우 27세에 불과했다. 
<PRE><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움체 color=#32449c><B>
†성인 볼리외 루드비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IMG src="http://pds.catholic.or.kr/Archives/ncbbs/baltimore/pds1/0/9.84.jpg"> 
한국 이름은 서몰례(徐沒禮), 1866년 병인 박해 때 순교한 프랑스 선교사. 
서 신부는 1840년 프랑스 ‘보르도’ 교구에서 태어나 1864년 파리외방전교회 
사제로 서품되어 이듬해에 백, 김, 민 세 신부와 함께 충청도 내포에 도착 
입국하였다. 
<BR> 
그는 고백을 들을 만큼 한국말을 배운 후 공주지방 전교를 맡게 되었으나 임지 
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펴볼 겨를도 없이 박해를 맞았다. 서 신부는 장 주교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경기도 광주 근처 교우집에 피해 있었으나 2월 27일 
포졸에게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 
<BR> 
그는 모진 고문에도 고통을 감수하였고 한국말이 서툴다는 핑계로 여러 질문에 
일절 대답을 회피하였다. 마침내 3월 7일 서 신부는 장 주교를 선두로 동료인 
백, 김 신부와 함께 새남터에서 참수되니 그때 나이 26세였다. 
<PRE><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움체 color=brown><B>
▒ 깨달은 사람 ▒
<PRE><FONT style="FONT-SIZE: 11pt" face=돋움체 color=brown>  
깨달은 사람에게는 특별한 표시가 있다.
무엇보다 그들은 자유롭다.
자신의 삶이 두려움, 기쁨, 걱정, 성공 
또는 실패에 휘둘리게 놓아두지 않는다.
<BR>
- 텐진 빠모의 《마음공부》중에서 -
<BR>
'자유롭다'는 것, 보통의 경지가 아닙니다.
아마도 깨달음의 최고 경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자유롭다'는 '유연하다'와 통합니다. 자유로운 사람은 
마음 씀씀이가, 행동이, 표정이 부드러워집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너그럽고 넉넉해져서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도 
휘둘리지도 않습니다. 
<BR>
                           - 고도원의 아침편지입니다 -</B>
<PRE><UL><UL><FONT style="FONT-SIZE: 10pt" face=돋음체 color=#32449c> 
<A href="http://cafe.daum.net/Coreansanctus" target=blank> 
<IMG src="http://image.photo.chol.com/data/Image/27/2762/0000000828759_O.jpg" ? 
 grpid='LOiA&amp;fldid=AqlR&amp;dataid=203&amp;grpcode=asoul&amp;realfile=thumb_h16%255B1%"'></A></UL>
 《함께 연구하고,기도하고 싶습니다.↖클릭》
<EMBED style="WIDTH: 0px; HEIGHT: 0px" src=mms://www2.mariasarang.net/music2/psalmus.wma
 width=0 height=0 hidden=ture autostart="true" loop="true" volume="0">
</FONT></UL></PRE></FONT></PRE></FONT>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