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새벽을 열며 / 빠다킹신부님의 묵상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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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05-09-25 | 조회수728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경축 이동
제1독서 에제키엘 18,25-28
너희는 이 야훼가 하는 일을 부당하다고 한다마는, 이스라엘 족속아, 들어라. 너희가
하는 일이 부당하지 내가 하는 일이 부당하냐?
옳게 살던 자라도 그 옳은 길을 버리고 악하게 살다가 죽는다면 그것은 자기가 악하
게 산 탓으로 죽는 것이다.
못된 행실을 하다가도 그 못된 행실을 털어 버리고 돌아 와서 바로 살면 그는 자기
목숨을 건지는 것이다. 두려운 생각으로, 거역하며 저지르던 모든 죄악을 버리고 돌
아 오기만 하면 죽지 않고 살리라.
제2독서 필립비서 2,1-11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힘을 얻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위안을 받습
니까? 성령의 감화로 서로 사귀는 일이 있습니까? 서로 애정을 나누며 동정하고 있
습니까?
그렇다면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사랑을 나누며 마음을 합쳐서 하나가 되십시오.
그렇게 해서 나의 기쁨을 완전하게 해 주십시오. 무슨 일에나 이기적인 야심이나 허
영을 버리고 다만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저마다 제
실속만 차리지 말고 남의 이익도 돌보십시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
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으로 간직하십시오.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
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
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인
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
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
습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이 예수의 이름을 받들어 무
릎을 꿇고 모두가 입을 모아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 찬미하며 하느님 아버지
를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복음 마태오 21,28-32
그때에 예수께서 대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또 이런 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을 두었는데 먼저 맏아들에
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여라' 하고 일렀다. 맏아들은 처음에는
싫다고 하였지만 나중에 뉘우치고 일하러 갔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 가서도 같은 말을 하였다. 둘째 아들은 가겠다는 대답만 하
고 가지는 않았다. 이 둘 중에 아버지의 뜻을 받든 아들은 누구이겠느냐?" 하고 예수
께서 물으셨다.
그들이 "맏아들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 가고 있
다.
사실 요한이 너희를 찾아 와서 올바른 길을 가르쳐 줄 때에 너희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치지 않고 그를
믿지 않았다."
일삼는 동생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동생이 국법을 어겼습니
다. 그러자 왕은 이러한 명령을 내렸지요.
“왕의 동생으로써 이런 죄를 짓는다는 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 특히 동
생이기 때문에 더욱 더 엄한 벌로 다스려야 할 것이다. 따라서 너를 일주일 뒤
에 사형을 시키도록 하겠다. 그러나 너를 특별히 불쌍히 여겨 일주일 동안이라
도 왕처럼 즐길 수 있도록 해주겠다.”
동생은 기왕 죽을 바에야 실컷 즐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침마다
험악하게 생긴 장사가 나타나서는 “죽을 날이 엿새 남았소이다!”, “죽을 날이
닷새 남았소이다!”라는 식으로 외치고는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 말에 동생은
점점 불안해졌습니다.
시간이 흘러 사형을 집행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왕은 동생에게 잘 즐겼냐고 물
었지요. 그러자 동생은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저기 저렇게 험악하게 생긴 장사가 눈을 부릅뜨고 시시각각 남은 시간을 말
하는데 어떻게 즐길 수가 있습니까?”
그러자 왕이 말했습니다. “보이지만 않을 뿐이지 누구나 죽을 날짜를 향해 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단다.
그러니 어찌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겠느냐?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 시간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들은 매 순간을 충실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들도 한 번 생각해보세요. 내가 이렇게 일주일 뒤에 죽는다면? 그것도
매일 아침에 며칠 남았다고 알려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렇
게 마지막 시간이 언제인지 가르쳐주시지 않습니다. 대신 마지막 시간이 있다
는 이야기만 해주셨지요. 따라서 그 시간을 위해서 지금 내게 주어진 시간을
마지막 시간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다음에 하지 뭐...’, ‘지금은 피곤해.’, ‘조금 기다렸다 하는 것이 더
좋은거야.’라는 식의 안일한 마음을 가지고서 현재라는 시간을 소홀하게 다루
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두 아들에게 똑같은 명령을 내리지요. "얘야, 너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여라."
먼저 맏아들은 처음에는 가지 않겠다고 하였으나, 나중에는 뉘우치고서 일을
하러 갑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말씀에 기꺼이 간다고 말을 하지만
가지 않지요.
이 맏아들의 모습은 하느님의 말씀을 외면하면서 살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한 사람들, 즉 죄인으로 취급당하던 세리나 창녀들이라고 말씀하십
니다. 그리고 둘째 아들의 모습은 하느님의 말씀을 따른다고 하지만 막상 회개
할 것을 촉구하자 예수님을 배척하고 거절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대사제들
이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지요. 이 두 아들의 모습을 통해서 말보다 행동의 실천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특히 지금 당장 행동의 실천을 하라고 주님께서는 부르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떤 식으로 응답하고 있나요? 혹시 둘째 아들의 모습이 우
리들의 모습이 아닐까요? 매주 성당에 나오면서, 그리고 자주 기도하기도 하
지만 실제 우리들 자신의 변화는 이루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변화는 그리고
그러한 실천은 나중에 시간 날 때 하는 것이라고 미루면서, 오히려 성당에 다
니지 않는 사람보다도 더 복음적으로 생활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지
요? "얘야, 너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여라."
이 예수님의 말씀에 우리는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큰
아들의 모습입니까? 둘째 아들의 모습입니까?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맙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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