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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벽을 열며 / 빠다킹신부님의 묵상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09-25 조회수721 추천수2 반대(0) 신고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경축 이동

 

                   

 

 

제1독서 에제키엘 18,25-28

 

너희는 이 야훼가 하는 일을 부당하다고 한다마는, 이스라엘 족속아, 들어라. 너희가

 

하는 일이 부당하지 내가 하는 일이 부당하냐?

 

옳게 살던 자라도 그 옳은 길을 버리고 악하게 살다가 죽는다면 그것은 자기가 악하

 

게 산 탓으로 죽는 것이다.

 

못된 행실을 하다가도 그 못된 행실을 털어 버리고 돌아 와서 바로 살면 그는 자기

 

목숨을 건지는 것이다. 두려운 생각으로, 거역하며 저지르던 모든 죄악을 버리고 돌

 

아 오기만 하면 죽지 않고 살리라.

 

제2독서 필립비서 2,1-11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힘을 얻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위안을 받습

 

니까? 성령의 감화로 서로 사귀는 일이 있습니까? 서로 애정을 나누며 동정하고 있

 

습니까?

 

그렇다면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사랑을 나누며 마음을 합쳐서 하나가 되십시오.

 

그렇게 해서 나의 기쁨을 완전하게 해 주십시오. 무슨 일에나 이기적인 야심이나 허

 

영을 버리고 다만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저마다 제

 

실속만 차리지 말고 남의 이익도 돌보십시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

 

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으로 간직하십시오.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

 

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

 

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인

 

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

 

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

 

습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이 예수의 이름을 받들어 무

 

릎을 꿇고 모두가 입을 모아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 찬미하며 하느님 아버지

 

를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복음 마태오 21,28-32

 

그때에 예수께서 대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또 이런 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을 두었는데 먼저 맏아들에

 

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여라' 하고 일렀다. 맏아들은 처음에는

 

싫다고 하였지만 나중에 뉘우치고 일하러 갔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 가서도 같은 말을 하였다. 둘째 아들은 가겠다는 대답만 하

 

고 가지는 않았다. 이 둘 중에 아버지의 뜻을 받든 아들은 누구이겠느냐?" 하고 예수

 

께서 물으셨다.

 

그들이 "맏아들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 가고 있

 

다.

 

사실 요한이 너희를 찾아 와서 올바른 길을 가르쳐 줄 때에 너희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치지 않고 그를

 

믿지 않았다."




옛날 어떤 왕이 있었는데, 그에게는 형인 왕의 지위를 이용해서 방탕한 생활을

 

일삼는 동생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동생이 국법을 어겼습니

 

다. 그러자 왕은 이러한 명령을 내렸지요.

 

“왕의 동생으로써 이런 죄를 짓는다는 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 특히 동

 

생이기 때문에 더욱 더 엄한 벌로 다스려야 할 것이다. 따라서 너를 일주일 뒤

 

에 사형을 시키도록 하겠다. 그러나 너를 특별히 불쌍히 여겨 일주일 동안이라

 

도 왕처럼 즐길 수 있도록 해주겠다.”

 

동생은 기왕 죽을 바에야 실컷 즐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침마다

 

험악하게 생긴 장사가 나타나서는 “죽을 날이 엿새 남았소이다!”, “죽을 날이

 

닷새 남았소이다!”라는 식으로 외치고는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 말에 동생은

 

점점 불안해졌습니다.

 

시간이 흘러 사형을 집행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왕은 동생에게 잘 즐겼냐고 물

 

었지요. 그러자 동생은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저기 저렇게 험악하게 생긴 장사가 눈을 부릅뜨고 시시각각 남은 시간을 말

 

하는데 어떻게 즐길 수가 있습니까?”

 

그러자 왕이 말했습니다.

“보이지만 않을 뿐이지 누구나 죽을 날짜를 향해 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단다.

 

그러니 어찌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겠느냐?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 시간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들은 매 순간을 충실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들도 한 번 생각해보세요. 내가 이렇게 일주일 뒤에 죽는다면? 그것도

 

매일 아침에 며칠 남았다고 알려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렇

 

게 마지막 시간이 언제인지 가르쳐주시지 않습니다. 대신 마지막 시간이 있다

 

는 이야기만 해주셨지요. 따라서 그 시간을 위해서 지금 내게 주어진 시간을

 

마지막 시간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다음에 하지 뭐...’, ‘지금은 피곤해.’, ‘조금 기다렸다 하는 것이 더

 

좋은거야.’라는 식의 안일한 마음을 가지고서 현재라는 시간을 소홀하게 다루

 

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두 아들에게 똑같은 명령을 내리지요.

"얘야, 너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여라."


 

먼저 맏아들은 처음에는 가지 않겠다고 하였으나, 나중에는 뉘우치고서 일을

 

하러 갑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말씀에 기꺼이 간다고 말을 하지만

 

가지 않지요.

 

이 맏아들의 모습은 하느님의 말씀을 외면하면서 살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한 사람들, 즉 죄인으로 취급당하던 세리나 창녀들이라고 말씀하십

 

니다. 그리고 둘째 아들의 모습은 하느님의 말씀을 따른다고 하지만 막상 회개

 

할 것을 촉구하자 예수님을 배척하고 거절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대사제들

 

이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지요.

이 두 아들의 모습을 통해서 말보다 행동의 실천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특히 지금 당장 행동의 실천을 하라고 주님께서는 부르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떤 식으로 응답하고 있나요? 혹시 둘째 아들의 모습이 우

 

리들의 모습이 아닐까요? 매주 성당에 나오면서, 그리고 자주 기도하기도 하

 

지만 실제 우리들 자신의 변화는 이루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변화는 그리고

 

그러한 실천은 나중에 시간 날 때 하는 것이라고 미루면서, 오히려 성당에 다

 

니지 않는 사람보다도 더 복음적으로 생활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지

 

요?

"얘야, 너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여라."


 

이 예수님의 말씀에 우리는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큰

 

아들의 모습입니까? 둘째 아들의 모습입니까?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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