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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91) 기쁘지는 않아도 행복한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9-26 조회수730 추천수13 반대(0) 신고

2005년9월26일 연중 제26주간 월요일 성 고스마와 성 다미아노 순교자 기념 ㅡ즈가리아8,1-8; 루가9,46-50ㅡ

 

                    기쁘지는 않아도 행복한

                                                이순의

 

 

수능 시험이 두 달도 남지 않았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도록 아직 사설 독서실 한 번을 가 보지 못한 아들녀석이 좁은 집과 학교를 오가며 인생의 가장 행복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행복한 시기라는 말에 아들녀석은 반기를 들어 깃발을 휘둘러 대지만 내 경험으로 볼 때 고등학교 3학년까지가 가장 행복한 시기였던 것 같다. 다음 해에 아버지께서 병이 나셨고 돌아가신 원인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때까지는 별다른 고민이나 장애를 만나도 철저하게 보호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행복했다고 기억 되는 시기는 아들녀석을 낳아서 기르는 일이 행복이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공부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 지지는 않았다. 좀 시켜보고 싶다가도 싫어하는 모습이 보이면 공부 때문에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낸다는 사실을 나는 견디지 못했다. 철이 들고 때 되어서 적성에 맞는 공부가 생기면 하지말라고 해도 하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 탓에 공부에 치중하여 속상하거나 화가나는 일을 엄격히 자제해 왔던 것이다. 그러니까 얼마나 비 현실적인 엄마였던가?! 그런데 하늘의 인도하심도 그러했었다.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여 받아쓰기를 열심히 해야 하는데 한 학기를 마치고 섬으로 이사를 갔다. 그 받아쓰기 때문에 날이면 날마다 날과 밤을 새던 일을 섬마을의 학교에서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농촌의 일손 때문에 엄마들이 아이들을 지도해 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학교 수업이 끝나면 들로 산으로 바다로 쏘다니는 재미에 받아쓰기라는 수업준비가 존재하는지 조차 망각하는 학습을 하느라고 더 바빴던 것이다. 돌아보면 그 시절이 내 아이에게 얼마나 큰 작용점이 되었는지를 실감하고 있다. 

 

어차피 주님께서는 내 아들녀석에게 받아쓰기를 더 잘 하는 훈련을 요구하시지 않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곳에 가서 어미된 나는 엄청난 고난에 봉착하여 어려움을 격게 되었지만 아들녀석은 룰루랄라 신나는 인생을 허락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울로  돌아 와서도 별다르게 경제적 어려움이 해갈 되지는 않았다. 만약에 경제적 어려움이 해갈 되는 형편이었다면 나라고 해서 다른 엄마들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의 관심이 공부에 집중하지 않는데 엄마의 관심은 오직 공부에만 쏠려있는 그런 악순환적인 우리 사회 전형적인 모습을 되풀이 하며 보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일정한 소득이 보장되지 않았다. 그래서 정기적인 학원이나 과외지출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가끔이지만 여유가 생기면 좋은 공연 한 편씩을 보는 것으로 대리만족을 삼아서 위로했었다. 내 아이에게도 사춘기가 있었다. 어미인 나도 그렇지만 내 아이인 아들녀석도 그 사춘기의 소용돌이를 크게 기억하고 있다. 다른 아이들의 엄마들은 아들의 속속들이 박힌 내막을 자세히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나의 경우는 너무나 깊이 알고 대화하며 생활한 결과로 인하여 참으로 견디기 힘든 시간들이었다.

 

덩치에 비하여 심성이 유순하고 순박하며 개구지다 보니 왜 그렇게도 격어야 할 게 많았던지?! 모두가 귀한 대접만 받으며 성장해버린 요즘 아이들의 우쭐한 객기는 때려서도 안되고 맞아서도 안된다는 타생명 존중과 자생명 존중이라는 논리에 훈련 된 아들녀석을 혼란의 도가니로 밀어 넣고 말았다. 그래도 주님의 지휘봉 덕택에 육신 멀쩡하고, 정신 건강하며, 이제야 좀 안심을 놓는다. 그런데 한 가지 시름을 놓고 났더니 입시가 코 앞에 놓여있다.  모든 것이 부족하여 지난 시간들의 흐름을 후회도 해 보지만 그것이 어찌 내 탓이겠는가?! 주님의 탓이지!

 

그렇지만 단 한 번도 가슴으로 부족하지 않았던 자식에 대하여 요즘은 부쩍 그 허전함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결코 내 자식이 못나서가 아니다. 지난 세월의 방황을 돌아보기 때문이다. 일확첨금을 목적으로 삼은 짝궁의 고집을 따라서 섬으로 들어 갔을 때는 얻어간 그 많은 빚을 물 속에 수장 시키고 볼모 아닌 볼모가 되어 2년을 갖혀 살았었다. 그 돈을 갚아 내느라고 또 얼마나 마음의 고생을 삭혀 살아야 했던가?! 그렇게 많은 돈을 자식에게 투자 했더라면.....? 수 없이 많았던 굴곡의 여정을 따라서 살아 내느라고 자식에게 남다른 투자를 해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저 가슴으로만 가슴으로만 싸서 키워버린 자식이 아니던가?! 그래도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상급생이 되면서 부족한 기초를 닦아 줄 요량으로 영수과목에 대한 과외를 지원해 주었다. 어려운 형편에 엄청난 결단을 동원한 결과였다. 그런데 사관학교에서 본고사를 치르고 온 뒤로 그마저 중단해버리는 것이 아닌가?! 기초가 부족하여 엄마가 하자는 대로 따라 해 보았지만 스스로 해내지 않은 공부에 대한 불신이 확실했던 것 같다. 당연히 엄마의 입장은 불안하였고, 걱정이었고, 의지가 없어져버린! 그러나 단호한 아들의 입장은 꺽이지 않았다.

 

"엄마. 세상에 대통령은 한 명 뿐이라고 했잖아요. 생산직 근로자나 어려운 서민들은 오히려 발에 채일만큼 많다고 했잖아요. 그래도 주님께서 주신 몫은 똑같다고 했잖아요. 그 중에 제 몫은 귀하디 귀한 대통령이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발에 채이고 문드러져서 내동댕이 칠만큼 많은 사람들 중의 똑같은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구요. 그러니까 아무리 기초가 부족했어도 어려운 형편에 과외는 하는 게 아니었어요. 그렇다고 후회는 하지 마세요. 그거라도 했으니까 이만큼의 기초는 잡아진 것이라고 위로를 삼으세요.

 

이제부터는 제가 하는 대로 그냥 지켜봐 주세요. 저도 두려워요. 저도 무서워요. 저도 답답해요. 그렇지만 하루하루를 살아야 일 년이 가고 이 년이 가고 죽을 날도 오잖아요. 그러니까 못난 아들이라도 그냥 사랑만 하시고 이제부터는 채우신 마음을 비우도록 하세요. 아주 어려서부터 천재적으로 공부만 해온 아이들 중에서도 살겠다고 말 하는 녀석은 한 놈도 없어요. 그런데 딱 중간에 걸쳐진 제가 살겠다고 하면 그건 역사가 뒤집힐 일이예요. 엄마! 그냥 내 능력만큼만 하루하루를 충실하고 말을께요. 결국 우리는 주님의 지휘봉에 따라서 살아야 하잖아요? 엄마!"

 

그런데 아들녀석의 단언에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그동안 자식을 키우면서 어미인 내가 지껄여 온 그대로 아들도 지껄이고 있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어미의 마음은 늘 제 자식의 몫이 귀하디 귀한 대통령의 몫이기를 빌며 사는건데 그런 자식이 벌써 커서 제 길을 교통정리 하고, 어느 부분은 포기하고, 어느 부분은 새로운 계획을 짜고 있다. 그래서 전혀 경험해 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개척할 구상에 두서도 없는 말들을 쏟았다가 거두었다가 안절부절이다. 그런 아들에게 엄마가 해 주는 말은 항상 똑같은 말이다.

 

"솔직히 엄마는 판단력을 상실해 버렸어. 네게 욕심을 내서라도, 아빠랑 싸워서라도, 조기학습을 꾸준히 시켰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탓만 같아서..... 일생을 숭고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떠한 일이든지 강압하려고 하지 않았지. 다만 심성이 흐트러지는 것에 대하여 너무나 단호한 지주를 요구해왔다는 것을 제외하면 엄마로서 특별히 네게 도움을 준 것이 없어. 그런데 너의 희망사항이 지금에 와서 방향전환 되어버린.... 이럴 줄 알았다면 다른 엄마들처럼 학습에 치중하도록 관심을 달리했을텐데..... 그렇지만 인생을 결정하는 초행길에는 결코 네게 강요하거나 훈계는 물론 부탁조차 하지 않을 것이야. 왜냐하면 네 인생은 네 몫이며, 너의 선택과 결정만이 후회를 하더라도 덜 아플테니까! 다만 그 삶이 기쁘지는 않아도 행복해야 해.

 

사람의 여정이 기쁨일 수만은 없어. 슬프기도 해야하고, 고통스럽기도 해야하며, 즐거움에 신바람도 났다가, 비감에 젖어 좌절하기도 하고, 용기와 희망으로 다시 진취적 기상을 회복하기도 하는! 그러나 그 모두가 행복이어야 해. 엄마가 돌아 본 생활들도 참으로 시련과 아픔들이 많았었지! 다른 사람들 보다는 좀 더 힘들고 무거운.... 그렇지만 행복했었다. 왜냐하면 내 곁에 언제나 네가 있어서 견딜만 했고, 살아낼만 했고, 참을만 했어! 내 인생에도 행복이라는 의미를 지켜낼 이유가 충분했던 것이지! 그 공로가 모두 주님을 믿어서 얻어진 댓가이기도 하고! 주님을 믿지 않았다면.....? 모든 여인들이 자식을 행복으로 삼아서 살아내는 세상은 아니니까 절대적으로 주님의 공로와 이끄시는 섭리가 나에게 행복의 관점을 지켜 주신 것이야.

 

세상에서 소유하며 살아낸 조건은 빈약하였어도 엄마는 행복했다. 그러므로 아빠처럼 너무나 안타깝고 안스러우며 척박한 인생이 내 아들의 앞길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엄마이지만 사람의 명운은 하늘의 뜻에 달려 있으므로 언제나 행복하기를 바란다. 기쁘지는 않아도 행복하기는 해야해. 행복을 위해 기쁨도 존재해야 하는 것이고, 슬픔도 아픔도 괴로움도 모두모두 행복을 위해 그 가치가 존재해야 하는 거야. 엄마는 지금 너와 내가 마주보며 앉아있는 이 순간도 너무나 감사한 행복을 역고 있다고 생각해! 분명히 나누는 대화는 부족한 성적으로 인한 갈등이지만 그렇게 아픈 대화 마저도 우리는 행복을 위해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해. 엄마 아들! 네가 사노라고 힘들 때면 그 힘든 순간에서 좌절하지 말고 행복을 생각하며 일어서기를 바란다. 

 

엄마가 지난 시간 동안 생각해 온 너의 길을 너에게 권하지 않는 이유는 너의 행복을 바라기 때문이야. 주님의 지팡이를 따라서 길을 가는 사람은 엄마가 아니고 네 자신이란다. 그 선택과 따름을 네 자신이 결정하고, 엄마는 그런 너를 지켜 볼께! 그리고 언제나 행복하기를 빌며 묵묵히 바라보며 응원의 박수를 쳐 줄께. 내 아들! 사랑한다." 

 

벌써 내 자식이 다 자라서 어떻게 클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가 되었다. 그것을 걱정하느라고 어미는 행복했었는데 이제는 내가 뚫어 놓은 오솔길의 끝점에 이르고 있다. 지금부터는 제 힘으로 길을 내야 한다. 간혹은 1학기 2학기 수시에 합격하여 즐거운 엄마들의 소식도 들려온다. 축하하는 마음도 깊지만 시샘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럴때면 돌이켜 생각해 본다. 저 아들이 내 아들이라면 나는 더 행복할 것인가?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저 아들이 내 아들이라면 나는 너무 불행하다. 그냥 중간에 딱 걸쳐진 이대로의 내 아들에게 무탈하고 건강한 복을 주셔서 만족이다. 어떤 일을 하든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일만 아니라면 세상에서 발길에 채이도록 많은 소시민으로 사는 운명의 아들이 있어서 나는 너무나 행복한 엄마인 것이다.

 

내 아드님은 꼭 행복하십시오. 

세상의 모든 수험생들은 꼭 행복하십시오.  

아멘!

 

ㅡ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니 막지 말라." 루가 9,50ㅡ      

 

       

학교 운동장의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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