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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음의 대화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5-09-26 조회수852 추천수8 반대(0) 신고

9월 26일 월요일 복음: 루가 9,46-50

제자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지고...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을 아셨다.

그런데 원문에는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의 대화를> 아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겉으로, 입밖으로 나누는 말보다는 그들의 마음 안에 감추어진 대화를 아신다?

 

외면적인 말 그리고 말다툼.

그런데 때로는 그 외면적인 말다툼 안에

참으로 깊고 오래된 것들, 서로가 깊이 의식하지도 못한 채,

은근히 상처를 주고 받은 의외의 것들이 들어있음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말다툼 후에, 자신이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그런 요인이 아니라

보다 더 근원적인 것들과 뿌리깊게 연관된 것들이 있음을 깨닫고

놀라게 되기도 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말장난들, 눈가림들, 말꼬리 잡기같은 그런 다툼의 속을

예수님의 눈으로 면밀히 자기 성찰을 해보면

그 안에는 자신도 모르고 있었거나,

외면하고 있었던 진실이 문득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놀랍게도, 그런 은총을 발견하는 것은

자신에게 상처를 준 그 상대방을 원망하고 그에게 책임을 돌리는 시선 안에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주님의 눈으로 성찰을 해보는 과정 속에서 발견됩니다.

 

<마음의 대화>라니까 생각나는데, 

사실, 누군가와 이야길 하고 있는 순간 조차도

동시에 또 다른 자기 자신(제2의 나)과 대화를 나누고 있으며

그런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억제하거나, 촉진하는 제3의 나를 의식하기도 합니다.

이 제3의 나가 바로 우리의 마음 깊이에서 우리를 이끌고 계신 하느님의 소리.

바로 양심에 호소하시는 그분의 말씀이라고 누군가는 말했습니다.

 

예를 들면,

누군가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가정 한다면

상대방과 대화 하면서도

거짓말을 꾸며내는 나와

자기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알고

그렇게 하면 안되는 것을 알고 있는 내가 

동시에 마음 속에서 대화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의 대화>,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우리 마음의 대화를,

진실로 아시는 그분의 시선 안에서.

우리는 자신을 성찰해야합니다.

 

우리가 사람들과 이야기할때,

어떤 부분은 마음 안에 담고, 어떤 부분은 스쳐지나가듯이

이 마음 안의 소리들도 어떤 소리들은 무시하고 어떤 소리들만 골라 마음에 남겨둡니다.

 

우리는 최종적으로

어떤 부분을 잘라내고 어떤 부분을 남겨둘까요?

마음 안에 상처를 받았던 표피적인 부분을 남겨두고

정말 그분이 깨닫게 해주려는 내면적인 진실된 부분은

회피, 합리화, 왜곡, 투사, 퇴행...등의 잘못된 가위로 싹둑싹둑 오려내지는 않는지요? 

여태까지 우리가 자신도 모르는사이, 발달시켰던 그 기술로

우리의 삶은 여전히 미성숙한 채로 머물러,

늘 비슷한 양상의 실패와 좌절을 거듭하고 있는데도 말이죠.

 

이제는 그분의 시선 안에서 그분의 은총을 청하며 머물 때,

가식없이 내 깊은 심연과 마주 설때,

상대방의 가시돋힌 말들은

바로 그분이 미리 주사해주는 예방 접종으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그 상대방은 그것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아픔를 준 경우일지라도.

 

그런 의식이 내 안에 크게 자리잡고

나를 성숙하게 만들지 못하는 내안의 잘못된 부분을 진심으로 뉘우칠 때,

그것이 바로 회개이고,

그렇게 될 때, 그렇게 나를 아프게 했던 기억은 정말 흔적없이 사라집니다.

오히려 그 상대방에게 감사마저 느끼며 애정어린 시건을 갖게 됩니다.

 

일그러진 자신의 모습에 충만하신 그분의 입김이 불어넣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마치 바람 빠진 풍선에 바람을 불어넣어 동그랗게 팽창하듯이...

 

그렇게 성숙되어가는 나를 느낄 때,

주님의 은총이 내 마음 안에 가득히 들어차

온전히 치유가 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보면,

'어린아이'를 데려다 말다툼으로 서로 상처를 입힌 제자들 앞에 세우시는 주님을 보게 됩니다.

 

'어린아이' 하면 '보잘것 없는 사람', '약한 사람' 으로 늘 그렇게 해석했지만

오늘은 다투면서 커가는, 무럭무럭 성장하는, 그런 '어린아이'들로 제게 다가옵니다.

 

아이들은 매일 싸우면서도 매일 다시 아무일없었던 듯이 만나 사이좋게 놉니다.

아니,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고 옛어른들은 말했지요.

 

다 큰 어른이, 언제나 자기만 옳다는 고집센 어른들이 그런 천진한 어린아이처럼 다시 서로를 받아들이고 사이좋은 모습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위에 열거한 긴 과정.

 

우리 '마음의 복잡한 대화'를 아시며 그 대화 한가운데서 우리를 타이르시는

그분 앞에서의 철저한 자기 성찰의 산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바로 그분의 은총의 선물이겠지요.

 

그 선물을 어린아이처럼 좋아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매일 다툼하고 사는 우리의 몫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이 어린아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곧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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