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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천국과 지옥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5-09-27 조회수778 추천수6 반대(0) 신고

 

 

7. 천상복락과 지옥영벌

 

(위의 6장, "영혼은 죽지 않는 것"에 이어서)

 

그러면 죽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다면, 필경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착한 사람의 영혼은 올라가 상을 받고,

악한 사람의 영혼은 땅으로 들어가 벌을 받습니다.

 

그 상이란 천당의 영원한 복락이요.

벌이란 지옥의 영원한 고통이지요.

 

만약 천당을 못 봤고 지옥을 못 보았다고 해서,

천당과 지옥이 있음을 믿지 못한다면,

이는 맹인이 하늘을 못 보았다고 해서 하늘에 해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어떤 사실이 이치에 합당하면 보지 않더라도 믿을 수 있을 것이요.

이치에 합당하지 않으면 비록 보았다 하더라도 믿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실을 믿을 것이냐 믿지 못할 것이냐 하는 것은

보았느냐 못 보았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오직 이치에 합당하냐 합당치 못하냐에 있을 뿐입니다.

 

정말 이치에 맞도록만 한다면,

천년 뒤의 동짓달도 앉아서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니, 어찌 반드시 눈으로 직접 보아야만 되겠습니까?

 

대개 나라에는 반드시 상과 벌이 있는 법인데,

공을 세운 자는 승격시켜 벼슬을 주고 상금을 내리며,

죄를 지은 자는 내몰아 감옥에 가두어 형벌을 내리지요.

 

나라의 임금도 상벌의 권한을 갖고 있거늘 하물며 천지의 대군께서는 어떠하겠습니까?

그 상이란 이 세상의 벼슬이나 상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영원무궁한 복락이요.

그 벌이란 세상의 감옥이나 형벌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영원무진한 고통이랍니다.

하늘로 오를지 땅으로 내려갈지 한번 정해지면 다시는 옮길 수 없는 것입니다.

 

슬픕니다.

세상 사람들이 영혼은 죽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어느 곳에 머물러야 할지를 모르니

어찌 애통하지 않습니까?

 

이제 영원한 상과 영원한 벌이 있는 즉, 세상사 모두 헛된 것임을 알 수 있지요.

사람의 목숨이 길어야 불과 백년인 것을, 이익과 욕심의 구렁에 빠져

얻지 못하면 그것을 얻으려고 고민하고 이미 얻었으면 그것을 잃어버릴까 근심하다가

늙음이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지냅니다.

 

이 몸 한번 죽어버리면 부귀공명은 모두 헛된 것이 되고 말 것이요.

게다가 일생토록 구해도 다 얻지 못할 부귀공명이란 또 얼마나 헛된 것입니까?

어찌 그리도 앞이 가려져 깨닫기 어려운 것인가요?

 

 

-'위의 글은 '상재상서', 제7장의 말씀입니다.

 

 

 

오늘날, 천국과 지옥의 교리는

'장소'가 아니라 '상태'라는 개념으로 해석하고 있지만

그 당시의 '장소' 개념의 해석을 감안하면서 글을 읽습니다.

 

그럼에도 성인이 강조하시는 것은 '영원한 상과 영원한 벌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하느님의 심판이 있다는 사실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불면하는 진리이고

그에 대한 성인 나름의 증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성인의 글에서 교리교사의 자세를 묵상하고저 합니다.

예비자 교리를 맡고 있는 저로서는 그부분에 관심이 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합니다.

 

성인은 비신자인 사람들에게

천주교의 교리를 설명하면서 이치에 맞는 여러가지 일상의 예화를 들고 계십니다.

어떻게든 그들에게 합리적으로 납득시키려 애를 쓰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신앙은 이성을 초월하는 것이라며 설명이 옹색하면 그저 믿으라는 식의

교육을 시키는 곳은 이젠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교리교사가 위에서 가르치려는 권위적인 태도, 강압적이고 지시적인 자세를 갖고

예비자들과 초중고 학생들을 대하는 식의 교리교육은 사라져야 합니다.

 

백지 상태나 마음 속에 거부하는 자세를 아직도 견지하고 있는 그들의 입장이 되어

미리 모든 것에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그 해답을 얻으려는 긴 숙고 끝에 알아낸 것들을,

어떻게 하면 알아듣기 쉽고, 어떻게 하면 이성적으로도 합리적으로도 이해시킬 수 있을까를

항상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오늘 성인의 글에서 또 느껴지는 것은,

열과 성을 다하여 이치에 맞는 설명을 하시느라 애쓰시는 그 마음의 밑바탕엔

그들 한명이라도 더 참된 진리를 깨닫기를 소망하며

깨닫지 못하는 그들에게 애틋하고 안타까운 사랑의 마음을 품고 있음이 무엇보다 마음에 전해집니다.

 

이런 절실한 마음 자세로

자신이 맡고 있는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교리교사들에게 가장 필요할 마음가짐일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열과 성을 다하되, 마지막엔 자신이 거두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거두어 주시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을 오늘 성인의 글에서 배웁니다.

 

 

성 정하상 바오로여, 저희 교리교사들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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