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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성 황석두,손자선,정문호,조화서,손선지 베드로 성인이시여~!
작성자조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5-09-28 조회수683 추천수6 반대(0) 신고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한국 순교자들에게 바치는 기도 ◈
    
    ◇ 이 땅의 모든 순교자여,
       당신들은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굳은 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나이다.
    
    ◆ 저희는 현세에서 악의 세력과 치열하게 싸우며 당신들이 거두신 승리의 영광을 노래하고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찬양하오니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위대하신 순교자들이여, 천상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와 함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하느님의 자비를 얻어주소서.
    ◆ 지금도 어둠의 세력이 교회를 박해하고 있사오니 하느님께서 전능하신 팔로 교회를 붙들어 보호하시며 아직 어둠 속에 있는 지역에까지 널리 펴시도록 빌어주소서.
    ◇ 용감하신 순교자들이여, 특별히 청하오니 우리 나라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 당신들은 이땅에서 많은 고난을 겪으며 사시다가 목숨까지 바치셨사오니
    ◇ 전능하신 하느님께 빌어주시어 교회를 이땅에서 날로 자라게 하시며 사제를 많이 나게 하시고
    ◆ 신자들이 주님의 계명을 잘 지키고 냉담자들은 다시 열심해지며 갈린 형제들은 같은 믿음으로하나 되고 비신자들은 참신앙으로 하느님을 알아 천지의 창조주 인류의 구세주를 찾아오게 하소서.
    ◇ 참으로 영광스러운 순교자들이여, 저희도 그 영광을 생각하며 기뻐하나이다. 간절히 청하오니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 빌어주시어 저희와 친척과 은인들에게 필요한 은혜를 얻어주소서.
    ◆ 또한 저희가 죽을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한결같이 믿어 증언하며 비록 피는 흘리지 못할지라도 주님의 은총을 입어 선종하게 하소서.
    ◇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여,
    ◆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인 황석두 루가,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일명 '재건'으로도 불리는 성 황석두 루가는 충청도 연풍에서 양반집 3대 독자로 
태어났다. 성장하여 부친의 뜻에 따라 과거보러 상경하던 중, 한 주막에서 
천주교인과 사귀게 되어 입교했다. 

그후 부친의 반대를 무릅쓰고 3년 동안이나 벙어리 행세를 해가면서 교리서적을 탐독하였고 그 결과 박대하던 부친과 가족들도 입교하였다. 이같이 뛰어난 덕행과 교리지식으로 그는 주교와 신부들의 복사로, 또 회장으로 활동했다.
또 고 페레올 주교에게 금욕과 절제를 위하여 아내와 별거할 것을 허락 받고 독신 생활을 하였다. 안 안토니오 다블뤼 주교를 도와 교리서를 번역하여 교회서적 출판에도 참여했다.
1866년 3월 충청도 홍주 거더리에서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는 안 주교를 몇 십리나 따라가 결국 체포되어 주교와 함께 서울로 압송되었다.3월 23일 사형 을 선고받고 3월 30일 충남 보령군‘갈매못’에서 안 주교,민 신부,오 신부, 장주기 등과 함께 군문효수형을 받고 54세로 순교했다.

†성인 손자선 토마스,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손자선 토마스는 충청도 홍주 거더리 마을의 3대째 천주교를 믿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1866년 3월 거더리에서 안 안토니오 다블뤼 주교가 체포된 후 덕산 
관아로부터 안 주교를 체포할 때 압수한 돈과 물건을 찾아가라고 기별을 받았 
으나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어서 그는 혼자서 그 물건들을 찾으러 덕산 관아로 
갔다가 체포되었다. 

덕산 관장은 손자선이 천주교인임을 알고 옥에 가두어 고문하며 배교를 강요 했으나 굴하지 않자 해미로 보냈고, 해미에서 손자선은 두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심한 고문과 심문을 받았으나 배교하지 않았다. 결국 공주 감영으로 이송된 손자선은 5월 18일 공주옥에서 23세의 나이로 교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성인 정문호 바로톨로메오,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일명 '계식'으로도 불리는 성 정문호 바르톨로메오는 충청도 임천 출신으로 
임천에서 천주교를 알아 입교하여 독실한 신앙생활을 했다. 박해로 인해 
고향을 버리고 여러 지방을 유랑하다가 병인박해 때에는 전주지방의 교우촌인 
대성동 신리에 살고 있었다. 

한때 고을의 원을 지내기도 하여 품행이 단정하고 성격이 강직해서 교우들뿐 아니라 외교인들에게까지 평판이 좋았다. 1866년 12월 초 사람을 시켜 박해에 대한 전주 감영의 동태를 살피러 보냈으나 그 소식을 듣기도 전에 12원 5일 대성동과 성지동을 급습한 포졸들에게 손선지, 한재권 등과 체포되어 12월 13일 5명의 교우와 함께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참수되어 66세로 순교했다.
순교하기 전 그는 옥중에서 항상 기도로써 순교를 준비했고 형장에 끌려가면 서도 "오늘 우리는 천국으로 과거보러 가는 날이다. 오늘은 정말 기뻐해야 할 날이다"고 하며 진심으로 자신의 순교를 기뻐했다. (98, 100과 함께 체포됨)

†성인 조화서 베드로,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난 성 조화서 베드로는 1839년 기해박해로 아버지 
조 안드레아가 순교하자 곧 충청도 신창으로 이사하여 한 막달레나와 결혼, 
아들 윤호를 두었다. 

한때 최양업 신부의 복사로 신부를 보좌했다. 그는 1864년 전주지방의 교우촌인 성지동으로 이사했고 아내가 사망하자 김 수산나와 재혼했다. 1866년 병인 박해가 지방으로 확산되어 전라 감사의 지시로 12월 5일 아들 윤호, 이명서, 정원지 등과 함께 체포되어 전주 감영 전면옥에 갇히게 되었다.
옥에서 조화서는 "네 마음이 변할까 염려된다. 관장 앞에서 진리대로 말하여라" 하고 아들을 격려했고, 아들 윤호는 "저는 염려하지 마십시오, 아버님께서도 조심하십시오"하고 격려하며 부자가 서로 순교를 각오했다.
6, 7차의 신문을 아들과 함께 받은 조화서는 후손이 끊어지는 것을 염려하는 척하며 배교를 권유하는 관장의 유혹을 거부하고, 드디어 12월 13일 5명의 교우와 함께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참수형을 받아 52세의 나이로 순교했고, 아들 윤호도 10일 후인 12월 23일 같은 장소에서 순교하여 3대가 순교하는 영광을 얻었다. (102는 아들, 99, 101, 102와함께 체포됨)

†성인 손선지 베드로,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일명 '승운'으로도 불리는 성 손선지 베드로는 충청도 임천의 ‘괴인돌’이라는 곳에서 태어나 어려서 교리를 배워 입교했다. 성격이 온순하고 착해 16세 때 정 야고보 샤스탕 신부에 의해 회장으로 임명되어 순교할 때까지 회장의 직무를 충실히 이행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손선지는 전주지방의 교우촌인 대성동 신리에 살며 자신의 집을 공소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12월 5일 전라 감사의 체포령으로 대성동과 성지동을 급습한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정문호, 한재권 등과 함께 전주 감영 후면옥에 갇히게 되었다.
신문 중 회장의 신분이 탄로나 공소를 거쳐간 서양 신부와 교회서적의 출처를 대라는 관장에게 매우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손선지는 회장답게 혹형과 고문을 이겨내며 함께 체포된 교우들을 위로하고 권면했다.
드디어 12월 13일 예수, 마리아를 부르면서 대성동과 성지동에서 체포된 5명의 교우와 함께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참수되어 47세로 순교했다. (96, 100과 함께 체포됨)

▒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 ▒
 
확신과 힘과 열정을 가진 사람은 
진리를 알고 있어서 쉽게 패배하지 않는다. 
그는 난관에 맞서고, 일을 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간단히 말해, 그는 
저항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 빈센트 반 고흐의 《반 고흐, 영혼의 편지》중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가보지 않은 땅을 밟는 것입니다. 산넘어, 강건너, 생전 가보지 않은 땅을 바라보며 가는 것입니다. 삶은 언제나 새로운 도전과 모험을 요구합니다. 새로운 도전과 모험이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새롭게 창조해 낼 수 없습니다.
- 고도원의 아침편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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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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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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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순교자들에게 바치는 기도 ◈
<PRE><FONT style="FONT-SIZE: 11pt" face=돋움체 color=brown>
◇ 이 땅의 모든 순교자여,
   당신들은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굳은 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나이다.
<BR>
◆ 저희는 현세에서 악의 세력과 치열하게 싸우며
   당신들이 거두신 승리의 영광을 노래하고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찬양하오니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BR>
◇ 위대하신 순교자들이여,
   천상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와 함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하느님의 자비를 얻어주소서.
<BR>
◆ 지금도 어둠의 세력이
   교회를 박해하고 있사오니
   하느님께서 전능하신 팔로 교회를 붙들어 보호하시며
   아직 어둠 속에 있는 지역에까지
   널리 펴시도록 빌어주소서.
<BR>
◇ 용감하신 순교자들이여, 특별히 청하오니
   우리 나라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BR>
◆ 당신들은 이땅에서 
   많은 고난을 겪으며 사시다가
   목숨까지 바치셨사오니
<BR>
◇ 전능하신 하느님께 빌어주시어
   교회를 이땅에서 날로 자라게 하시며
   사제를 많이 나게 하시고
<BR> 
◆ 신자들이 주님의 계명을 잘 지키고
   냉담자들은 다시 열심해지며
   갈린 형제들은 같은 믿음으로하나 되고
   비신자들은 참신앙으로 하느님을 알아
   천지의 창조주
   인류의 구세주를 찾아오게 하소서.
<BR>
◇ 참으로 영광스러운 순교자들이여,
   저희도 그 영광을 생각하며 기뻐하나이다.
   간절히 청하오니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 빌어주시어
   저희와 친척과 은인들에게
   필요한 은혜를 얻어주소서.
<BR>
◆ 또한 저희가 죽을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한결같이 믿어 증언하며
   비록 피는 흘리지 못할지라도
   주님의 은총을 입어 선종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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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여,
<BR>
◆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PRE></UL></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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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황석두 루가,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IMG src="http://pds.catholic.or.kr/Archives/ncbbs/baltimore/pds1/0/9.94.jpg"> 
일명 '재건'으로도 불리는 성 황석두 루가는 충청도 연풍에서 양반집 3대 독자로 
태어났다. 성장하여 부친의 뜻에 따라 과거보러 상경하던 중, 한 주막에서 
천주교인과 사귀게 되어 입교했다. 
<BR> 
그후 부친의 반대를 무릅쓰고 3년 동안이나 벙어리 행세를 해가면서 교리서적을 
탐독하였고 그 결과 박대하던 부친과 가족들도 입교하였다. 이같이 뛰어난 덕행과 
교리지식으로 그는 주교와 신부들의 복사로, 또 회장으로 활동했다. 
<BR> 
또 고 페레올 주교에게 금욕과 절제를 위하여 아내와 별거할 것을 허락 받고 독신 
생활을 하였다. 안 안토니오 다블뤼 주교를 도와 교리서를 번역하여 교회서적 
출판에도 참여했다. 
<BR> 
1866년 3월 충청도 홍주 거더리에서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는 안 주교를 몇 
십리나 따라가 결국 체포되어 주교와 함께 서울로 압송되었다.3월 23일 사형 
을 선고받고 3월 30일 충남 보령군‘갈매못’에서 안 주교,민 신부,오 신부, 
장주기 등과 함께 군문효수형을 받고 54세로 순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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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손자선 토마스,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IMG src="http://pds.catholic.or.kr/Archives/ncbbs/baltimore/pds1/0/9.95.jpg"> 
성 손자선 토마스는 충청도 홍주 거더리 마을의 3대째 천주교를 믿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1866년 3월 거더리에서 안 안토니오 다블뤼 주교가 체포된 후 덕산 
관아로부터 안 주교를 체포할 때 압수한 돈과 물건을 찾아가라고 기별을 받았 
으나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어서 그는 혼자서 그 물건들을 찾으러 덕산 관아로 
갔다가 체포되었다. 
<BR> 
덕산 관장은 손자선이 천주교인임을 알고 옥에 가두어 고문하며 배교를 강요 
했으나 굴하지 않자 해미로 보냈고, 해미에서 손자선은 두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심한 고문과 심문을 받았으나 배교하지 않았다. 결국 공주 감영으로 
이송된 손자선은 5월 18일 공주옥에서 23세의 나이로 교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PRE><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움체 color=#32449c><B>
†성인 정문호 바로톨로메오,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IMG src="http://pds.catholic.or.kr/Archives/ncbbs/baltimore/pds1/0/9.96.jpg"> 
일명 '계식'으로도 불리는 성 정문호 바르톨로메오는 충청도 임천 출신으로 
임천에서 천주교를 알아 입교하여 독실한 신앙생활을 했다. 박해로 인해 
고향을 버리고 여러 지방을 유랑하다가 병인박해 때에는 전주지방의 교우촌인 
대성동 신리에 살고 있었다. 
<BR> 
한때 고을의 원을 지내기도 하여 품행이 단정하고 성격이 강직해서 교우들뿐 
아니라 외교인들에게까지 평판이 좋았다. 1866년 12월 초 사람을 시켜 박해에 
대한 전주 감영의 동태를 살피러 보냈으나 그 소식을 듣기도 전에 12원 5일 
대성동과 성지동을 급습한 포졸들에게 손선지, 한재권 등과 체포되어 12월 
13일 5명의 교우와 함께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참수되어 66세로 순교했다. 
<BR> 
순교하기 전 그는 옥중에서 항상 기도로써 순교를 준비했고 형장에 끌려가면 
서도 "오늘 우리는 천국으로 과거보러 가는 날이다. 오늘은 정말 기뻐해야 할 
날이다"고 하며 진심으로 자신의 순교를 기뻐했다. (98, 100과 함께 체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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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조화서 베드로,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IMG src="http://pds.catholic.or.kr/Archives/ncbbs/baltimore/pds1/0/9.97.jpg">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난 성 조화서 베드로는 1839년 기해박해로 아버지 
조 안드레아가 순교하자 곧 충청도 신창으로 이사하여 한 막달레나와 결혼, 
아들 윤호를 두었다. 
<BR> 
한때 최양업 신부의 복사로 신부를 보좌했다. 그는 1864년 전주지방의 교우촌인 
성지동으로 이사했고 아내가 사망하자 김 수산나와 재혼했다. 1866년 병인 
박해가 지방으로 확산되어 전라 감사의 지시로 12월 5일 아들 윤호, 이명서, 
정원지 등과 함께 체포되어 전주 감영 전면옥에 갇히게 되었다. 
<BR> 
옥에서 조화서는 "네 마음이 변할까 염려된다. 관장 앞에서 진리대로 말하여라" 
하고 아들을 격려했고, 아들 윤호는 "저는 염려하지 마십시오, 아버님께서도 
조심하십시오"하고 격려하며 부자가 서로 순교를 각오했다. 
<BR> 
6, 7차의 신문을 아들과 함께 받은 조화서는 후손이 끊어지는 것을 염려하는 
척하며 배교를 권유하는 관장의 유혹을 거부하고, 드디어 12월 13일 5명의 
교우와 함께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참수형을 받아 52세의 나이로 순교했고, 
아들 윤호도 10일 후인 12월 23일 같은 장소에서 순교하여 3대가 순교하는 
영광을 얻었다. (102는 아들, 99, 101, 102와함께 체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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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손선지 베드로,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IMG src="http://pds.catholic.or.kr/Archives/ncbbs/baltimore/pds1/0/9.98.jpg"> 
<br>
일명 '승운'으로도 불리는 성 손선지 베드로는 충청도 임천의 ‘괴인돌’이라는 
곳에서 태어나 어려서 교리를 배워 입교했다. 성격이 온순하고 착해 16세 때 
정 야고보 샤스탕 신부에 의해 회장으로 임명되어 순교할 때까지 회장의 직무를 
충실히 이행했다. 
<BR> 
1866년 병인박해 때 손선지는 전주지방의 교우촌인 대성동 신리에 살며 자신의 
집을 공소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12월 5일 전라 감사의 체포령으로 대성동과 
성지동을 급습한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정문호, 한재권 등과 함께 전주 감영 
후면옥에 갇히게 되었다. 
<BR> 
신문 중 회장의 신분이 탄로나 공소를 거쳐간 서양 신부와 교회서적의 출처를 
대라는 관장에게 매우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손선지는 
회장답게 혹형과 고문을 이겨내며 함께 체포된 교우들을 위로하고 권면했다. 
<BR> 
드디어 12월 13일 예수, 마리아를 부르면서 대성동과 성지동에서 체포된 5명의 
교우와 함께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참수되어 47세로 순교했다. 
(96, 100과 함께 체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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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 ▒
<PRE><FONT style="FONT-SIZE: 11pt" face=돋움체 color=brown> 
확신과 힘과 열정을 가진 사람은 
진리를 알고 있어서 쉽게 패배하지 않는다. 
그는 난관에 맞서고, 일을 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간단히 말해, 그는 
저항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BR>
- 빈센트 반 고흐의 《반 고흐, 영혼의 편지》중에서-
<BR>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가보지 않은 땅을 밟는 것입니다.
산넘어, 강건너, 생전 가보지 않은 땅을 바라보며 가는 것입니다.
삶은 언제나 새로운 도전과 모험을 요구합니다.
새로운 도전과 모험이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새롭게 창조해 낼 수 없습니다.  
<BR>
                           - 고도원의 아침편지입니다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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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cafe.daum.net/Coreansanctus" target=bl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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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연구하고,기도하고 싶습니다.↖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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