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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순교자 성월을 마무리하면서...†
작성자조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5-09-29 조회수1,080 추천수11 반대(0) 신고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한국 순교자들에게 바치는 기도 ◈
    
    ◇ 이 땅의 모든 순교자여,
       당신들은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굳은 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나이다.
    
    ◆ 저희는 현세에서 악의 세력과 치열하게 싸우며 당신들이 거두신 승리의 영광을 노래하고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찬양하오니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위대하신 순교자들이여, 천상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와 함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하느님의 자비를 얻어주소서.
    ◆ 지금도 어둠의 세력이 교회를 박해하고 있사오니 하느님께서 전능하신 팔로 교회를 붙들어 보호하시며 아직 어둠 속에 있는 지역에까지 널리 펴시도록 빌어주소서.
    ◇ 용감하신 순교자들이여, 특별히 청하오니 우리 나라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 당신들은 이땅에서 많은 고난을 겪으며 사시다가 목숨까지 바치셨사오니
    ◇ 전능하신 하느님께 빌어주시어 교회를 이땅에서 날로 자라게 하시며 사제를 많이 나게 하시고
    ◆ 신자들이 주님의 계명을 잘 지키고 냉담자들은 다시 열심해지며 갈린 형제들은 같은 믿음으로하나 되고 비신자들은 참신앙으로 하느님을 알아 천지의 창조주 인류의 구세주를 찾아오게 하소서.
    ◇ 참으로 영광스러운 순교자들이여, 저희도 그 영광을 생각하며 기뻐하나이다. 간절히 청하오니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 빌어주시어 저희와 친척과 은인들에게 필요한 은혜를 얻어주소서.
    ◆ 또한 저희가 죽을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한결같이 믿어 증언하며 비록 피는 흘리지 못할지라도 주님의 은총을 입어 선종하게 하소서.
    ◇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여,
    ◆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인 이명서 베드로,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일명 '재덕'으로도 불리는 성 이명서 베드로는 충청도 출신으로 박해를 피해 여러 지방을 유랑하다가 병인박해가 일어나기 몇 해 전부터 전주지방의 교우촌인 성지동에 정착했다.
1866년 병인박해의 여파가 지방으로 퍼지고 전라도 지방에서도 전라 감사의 지시로 전주 부근의 교우촌인 성지동과 대성동이 제일 먼저 피해를 입게 되었다. 12월 5일 포졸들이 성지동을 습격할 때 이명서는 조화서의 피신 권유를 뿌리치고 병든 몸으로 체포되어 전주 감영으로 끌려갔다.
전주 감영에서는 병자인 이명서를 배교시키기 쉬울 것으로 생각하고 제일 먼저 신문하고 혹형과 고문으로 배교를 강요했으나 이명서는 "내가 몇 번 죽는 한이 있어도 결코 나의 하느님을 버릴 수는 없읍니다"하고 배교를 거부하고 함께 체포된 교우들과 부지런히 기도하며 순교를 준비했다.
드디어 12월 13일 5명의 교우와 함께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참수형을 받아 46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97, 101, 102와 함께 체포됨)

†성인 한재권 요셉,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한재권 요셉은 태중 교우로 충청도 ‘진잠’에서 태어나 부모의 착한 
모범을 따라 독실한 신앙생활을 했고 또 진잠 지방의 회장으로 활동했다. 
박해로 전주 대성동으로 이사한 후에는 아무 직책없이 교회 일에 충실했다. 

1866년 12월 5일 한재권은 전라 감사의 명으로 대성동을 습격한 포졸들에게 손선지, 정문호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그의 아버지가 친구를 통해 석방 교섭을 벌이는 한편 옥에까지 찾아와 배교 할 것을 간청했으나 한재권은 "아버님, 그 말씀은 따를 수가 없습니다"하고 아버지의 간청을 거절하고, 12월 13일 5명의 교우와 함께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참수형을 받고 31세로 순교했다. (96, 98과 함께 체포됨)

†성인 정원지 베드로,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일명 '원조'로도 불리는 성 정원지 베드로는 충청도 진잠에서 태중 교우로 출생하여 전주 부근의 수널마루에서 살다가 금구지방으로 이사했고,1866년 병인박해 당시에는 전주 성지동 조화서의 집에 셋방을 얻어 노모, 형, 아내와 함께 살고 있었다.
조화서가 체포되던 날인 1866년 12월 5일 정원지는 산에 피신해 있었으나 동정을 살피러 내려 왔다가 조화서 일행을 끌고가는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전주 감영 전면옥에 갇혔다.
지극한 효성 때문에 노모를 생각하고 여러 번 눈물을 흘리다가 함께 체포 된 성지동 교우들의 위로와 권유로 끝까지 혹형과 고문을 참아냈다. 드디어 12월 13일 가족에게 "우리는 천국에서 서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제 죽음을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라는 편지를 남기고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5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21세의 젊은 나이로 순교했다. (97, 99, 102와 함께 체포됨)

†성인 조윤호 요셉,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버지 조화서와 함께 순교한 조윤호는 충청도 신창에서 태중 교우로 태어 
났다. 1864년 아버지를 따라 전주지방의 교우촌인 성지동으로 이사하여 
교우 처녀인 이 루치아와 결혼했다. 

1866년 12월 5일 아버지 조화서, 정원지, 이명서 등과 함께 체포되어 전주 감영에서 아버지와 함께 6, 7차의 심문과 형벌을 받았으나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아버지가 순교한 지 10일 후인 12월 23일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곤장 16도를 맞은 후 19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97은 아버지, 97, 99, 101과 함께 체포됨)

†성인 이윤일 요한,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일명 ‘제헌’으로도 불리는 성 이윤일 요한은 충청도 홍주 출신의 태중 
교우로 경상도 문경의 ‘여호목골’에 살며 회장으로 활동했다. 1866년 
병인박해의 여파가 경상도 지방에까지 미치게 되자 11월 가족, 마을의 
교우 30여 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문경 관아에서 3일 간 혹형과 고문을 받은 후 배교하지 않은 교우들과 함께 상주로 이송되었고 상주에서 한 달에 세 번씩 석 달 동안 가혹한 형벌과 고문을 당한 후 소위 사학의 두목으로 지목되어 다시 김 회장 형제와 함께 대구 감영으로 이송되었다.
대구 감영에서 김 회장 형제와 함께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형이 집행 될 때까지 기쁨과 여유를 갖고 기도하며 1867년 1월 21일 대구 남문 밖 관덕정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니 그의 나이 45세였다.

▒ 꿈은 나누어야 이루어진다  ▒
 
꿈은 나누어야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꿈의 파장은 우리의 가슴에서 
다른 사람의 가슴까지 전달된다.
꿈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면
꿈이 전달된다. 꿈이 생긴다.
꿈은 삶을 변화시키고 사랑은 세상을 변화시킨다.
사랑은 꿈을 만들어주고 그 꿈을 쌓아간다.

- 용혜원의 《사랑하니까》중에서 -
그렇습니다. 꿈은 서로 나누어야 이루어집니다. 한 사람의 꿈이 한 사람의 것으로 머물지 않고 열 사람, 백 사람, 천 사람, 만 사람의 꿈이 될 때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꿈은 꿈을 가진 사람만이 이룰 수가 있습니다. 꿈은 곧 희망이며,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 고도원의 아침편지입니다 -

2005년 순교자성월...

한 달이 이렇게 긴 시간입니까...!
참으로 길게 느껴진 2005년 9월이었습니다.

103위 한국순교성인들과 시작한 9월. 순교자성월을... 이제 하루를 남겨놓고 103위 순교성인분들의 삶을 마무리하면서.. 오늘은 조윤호 요셉 성인께서 거지떼들에게 목졸려 죽임을 당하신 성화 앞에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기나긴...오십여년의 신앙 여정중에서 이렇게 뜨거웠던 때는 드물었습니다. 이렇게 간절한 날이 언제였던가 생각해보니.. 처음 주님을 만났던 그 때와 같습니다.
대로변에서...발가벗고 외치는 마음으로, 야곱의 우물을 내려놓았던 [우리들의 묵상방]과 [야곱의 우물] 홈페이지에서 외쳤습니다.
예전의 제 모습처럼... 아직 많은 분들의 관심이 없음에도... 부끄럼도 잊은채, 그저 안타까운 마음으로 올렸습니다.
고국을 떠나와, 5년이란 세월을 밥데기로 보냈던 그 날에... 순교성인을 만났더라면 그렇게 허송세월을 보내지는 않았을텐데... 참으로 아쉽습니다. 그러나 지나가 버린 시간은 잡을 수 없습니다.
남은 생만큼이라도... 순교자분들에 대해서 연구하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일에 바칠 것입니다.
졸리는 눈을 비비며, 곤한 몸을 곤한 줄 모르고... 카페를 만들었으며, 글을 올렸습니다. 혹시라도 어느 영혼이... 앗! 나처럼 앗! 너변화되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지요.*^^*
앗! 나는... 이제 삶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습니다...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을 모시고 살아가니까요↗
오늘 소개 할 글이 있습니다. [103위 한국순교성인] 카페에 [다사랑] 글라라가 올려놓은 글입니다. 그녀의 언니 소피아가 적어온 강론입니다. 느티나무 신부님 카페에 올려져 있는 글을 [펌]해서 올린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라도 전할 수 있습니다...

103위 시성식에 대하여- 양성성당 그레고리오신부님 강론 

† 103위 시성식에 대하여
돌아가신 요한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103위 시성식을 하러 한국에 오셨을 때 로마교황청이 생긴 이래 교황님이 직접 그 나라에 가셔서 시성을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두 번 째 한꺼번에 103위가 시성 된 것 또한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인들의 기적사화가 짧은 기간(5년동안) 일어났습니다.
프랑스의 쟌 다르크가 시성되는 데 약 450여년이 걸렸다고 보면 얼마나 짧은 기간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103위 성인이 한꺼번에 시성 될 수 있었던 근본원인은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천주를 받아들였으며, 모두 스스로 순교를 원했던 것에 있다고 봅니다.
성 최경환프란치스코 성인께서는 자신의 집에 제단을 차려 놓고 성서를 항상 올려두었습니다.
한 노비에게 "너의 신분을 평민으로 올려주고 먹고 살 수 있도록 재물을 주겠다."고 회유했지만
"저는 천국을 두 번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그토록 높으신 분들이 저를 형제로 대해 주시니 천국이요, 죽어서 천국에 갈 것인데, 제가 왜 배교를 하겠습니까..."
요한바오로 2세 성하께서 로마의 마피아단이 있는 시실리아 섬으로 가신다고 했을 때 그 곳 세계적인 마피아들이 "교황이 오면 암살하겠다." 라고 공개적으로 위협했지만.......
교황님께서는 한국의 103위 성인들께 기도를 드린 다음 그 곳에 가셨습니다. 저는 하느님을 믿고 사랑합니다. 103위 성인들의 그 순교의 믿음과 사랑의 정신으로 그 곳에 가겠습니다...."
또 당신의 조국 폴란드에 가실 때에도 한국의 103위 성인들께 전구를 청했습니다.
그래서 103위 성인 호칭기도를 가장 많이 하신 분은 한국인보다 오히려 요한바오로2세 교황님셨습니다.
우리 선조 103위 성인들의 그 순교정신을 본받는다면 자신과의 싸움에서..... 혹은 세상의 온갖 유혹에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사탄에게 유혹 받으실 때 순교의 정신으로 이겨내시지 않았습니까? 악마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가장 좋은 기도는 103위 순교성인들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그 정신을 이어받는 것입니다.
- 2005. 9월 20일 양성성당 이그레고리오(그레고리오)신부님 강론-
앗! 참...! 또 한가지가 있습니다.
한국천주교회 200년 : 1984년 5월 6일,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신앙대회및 한국순교성인 103위 시성식이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열렸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말했다.

"이제는 여러분이 증거할 차례입니다."

이제 저는 일터로 가기 위해서 준비를 해야 되겠기에...
하고픈 말을 아껴두고 가야만 합니다. 열심히 살아야함을 느낍니다..
매일 밤 근무에서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의 이름을 외워보았습니다.

자꾸자꾸 잊어버리는 나이지만, 이제 저의 안테나는 그분들을 향하여 있기에 잊어도 또 외우고 외울 것입니다.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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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가십시다...
외로운 길이지만, 함께 가노라면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것입니다.
혹시, 저와 함께 동행인이 되지 않는다해도 괜찮습니다. *^^*

제가 처음에 야곱이 물동이를 지고 인터넷 바다를 돌아다님으로 많은 벗들이 야곱이 물동이를 지고 다니게 된 것처럼,
이 일은 더 많은 분들이... 나름데로의 기량을 발휘하여서 연구하고 묵상하여 나누게 되기를 청하면서...오늘도 [103위 한국순교성인]이 알리는 곳을 소개합니다.
    《함께 연구하고,기도하고 싶습니다.↖클릭》 소스입니다
     
    <PRE><FONT style="FONT-SIZE: 14pt" face=돋움체 color=red><B>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PRE><FONT style="FONT-SIZE: 13pt" face=돋움체 color=brown><B><UL>
    ◈ 한국 순교자들에게 바치는 기도 ◈
    <PRE><FONT style="FONT-SIZE: 11pt" face=돋움체 color=brown>
    ◇ 이 땅의 모든 순교자여,
       당신들은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굳은 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나이다.
    <BR>
    ◆ 저희는 현세에서 악의 세력과 치열하게 싸우며
       당신들이 거두신 승리의 영광을 노래하고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찬양하오니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BR>
    ◇ 위대하신 순교자들이여,
       천상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와 함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하느님의 자비를 얻어주소서.
    <BR>
    ◆ 지금도 어둠의 세력이
       교회를 박해하고 있사오니
       하느님께서 전능하신 팔로 교회를 붙들어 보호하시며
       아직 어둠 속에 있는 지역에까지
       널리 펴시도록 빌어주소서.
    <BR>
    ◇ 용감하신 순교자들이여, 특별히 청하오니
       우리 나라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BR>
    ◆ 당신들은 이땅에서 
       많은 고난을 겪으며 사시다가
       목숨까지 바치셨사오니
    <BR>
    ◇ 전능하신 하느님께 빌어주시어
       교회를 이땅에서 날로 자라게 하시며
       사제를 많이 나게 하시고
    <BR> 
    ◆ 신자들이 주님의 계명을 잘 지키고
       냉담자들은 다시 열심해지며
       갈린 형제들은 같은 믿음으로하나 되고
       비신자들은 참신앙으로 하느님을 알아
       천지의 창조주
       인류의 구세주를 찾아오게 하소서.
    <BR>
    ◇ 참으로 영광스러운 순교자들이여,
       저희도 그 영광을 생각하며 기뻐하나이다.
       간절히 청하오니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 빌어주시어
       저희와 친척과 은인들에게
       필요한 은혜를 얻어주소서.
    <BR>
    ◆ 또한 저희가 죽을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한결같이 믿어 증언하며
       비록 피는 흘리지 못할지라도
       주님의 은총을 입어 선종하게 하소서.
    <BR>
    ◇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여,
    <BR>
    ◆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PRE></UL></B>
    <PRE><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움체 color=#32449c><B>
    †성인 이명서 베드로,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IMG src="http://pds.catholic.or.kr/Archives/ncbbs/baltimore/pds1/0/9.99.jpg"> 
    <BR>
    일명 '재덕'으로도 불리는 성 이명서 베드로는 충청도 출신으로 박해를 피해 
    여러 지방을 유랑하다가 병인박해가 일어나기 몇 해 전부터 전주지방의 
    교우촌인 성지동에 정착했다. 
    <BR> 
    1866년 병인박해의 여파가 지방으로 퍼지고 전라도 지방에서도 전라 감사의 
    지시로 전주 부근의 교우촌인 성지동과 대성동이 제일 먼저 피해를 입게 
    되었다. 12월 5일 포졸들이 성지동을 습격할 때 이명서는 조화서의 피신 
    권유를 뿌리치고 병든 몸으로 체포되어 전주 감영으로 끌려갔다. 
    <BR> 
    전주 감영에서는 병자인 이명서를 배교시키기 쉬울 것으로 생각하고 제일 
    먼저 신문하고 혹형과 고문으로 배교를 강요했으나 이명서는 "내가 몇 번 
    죽는 한이 있어도 결코 나의 하느님을 버릴 수는 없읍니다"하고 배교를 
    거부하고 함께 체포된 교우들과 부지런히 기도하며 순교를 준비했다. 
    <BR> 
    드디어 12월 13일 5명의 교우와 함께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참수형을 
    받아 46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97, 101, 102와 함께 체포됨) 
    <PRE><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움체 color=#32449c><B>
    †성인 한재권 요셉,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IMG src="http://pds.catholic.or.kr/Archives/ncbbs/baltimore/pds1/0/9.100.jpg"> 
    성 한재권 요셉은 태중 교우로 충청도 ‘진잠’에서 태어나 부모의 착한 
    모범을 따라 독실한 신앙생활을 했고 또 진잠 지방의 회장으로 활동했다. 
    박해로 전주 대성동으로 이사한 후에는 아무 직책없이 교회 일에 충실했다. 
    <BR> 
    1866년 12월 5일 한재권은 전라 감사의 명으로 대성동을 습격한 포졸들에게 
    손선지, 정문호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그의 아버지가 친구를 통해 석방 
    교섭을 벌이는 한편 옥에까지 찾아와 배교 할 것을 간청했으나 한재권은 
    "아버님, 그 말씀은 따를 수가 없습니다"하고 아버지의 간청을 거절하고, 
    12월 13일 5명의 교우와 함께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참수형을 받고 
    31세로 순교했다. (96, 98과 함께 체포됨) 
    <PRE><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움체 color=#32449c><B>
    †성인 정원지 베드로,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IMG src="http://pds.catholic.or.kr/Archives/ncbbs/baltimore/pds1/0/9.101.jpg"> 
    <BR>
    일명 '원조'로도 불리는 성 정원지 베드로는 충청도 진잠에서 태중 교우로 
    출생하여 전주 부근의 수널마루에서 살다가 금구지방으로 이사했고,1866년 
    병인박해 당시에는 전주 성지동 조화서의 집에 셋방을 얻어 노모, 형, 
    아내와 함께 살고 있었다. 
    <BR> 
    조화서가 체포되던 날인 1866년 12월 5일 정원지는 산에 피신해 있었으나 
    동정을 살피러 내려 왔다가 조화서 일행을 끌고가는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전주 감영 전면옥에 갇혔다. 
    <BR> 
    지극한 효성 때문에 노모를 생각하고 여러 번 눈물을 흘리다가 함께 체포 
    된 성지동 교우들의 위로와 권유로 끝까지 혹형과 고문을 참아냈다. 
    드디어 12월 13일 가족에게 "우리는 천국에서 서로 만날 수 있습니다. 
    <BR> 
    그러니 제 죽음을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라는 편지를 남기고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5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21세의 젊은 나이로 
    순교했다. (97, 99, 102와 함께 체포됨) 
    <PRE><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움체 color=#32449c><B>
    †성인 조윤호 요셉,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IMG src="http://pds.catholic.or.kr/Archives/ncbbs/baltimore/pds1/0/9.102.jpg"> 
    아버지 조화서와 함께 순교한 조윤호는 충청도 신창에서 태중 교우로 태어 
    났다. 1864년 아버지를 따라 전주지방의 교우촌인 성지동으로 이사하여 
    교우 처녀인 이 루치아와 결혼했다. 
    <BR> 
    1866년 12월 5일 아버지 조화서, 정원지, 이명서 등과 함께 체포되어 전주 
    감영에서 아버지와 함께 6, 7차의 심문과 형벌을 받았으나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BR> 
    아버지가 순교한 지 10일 후인 12월 23일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곤장 16도를 맞은 후 19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97은 아버지, 97, 99, 101과 함께 체포됨) 
    <PRE><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움체 color=#32449c><B>
    †성인 이윤일 요한,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B>
    <IMG src="http://pds.catholic.or.kr/Archives/ncbbs/baltimore/pds1/0/9.103.jpg"> 
    일명 ‘제헌’으로도 불리는 성 이윤일 요한은 충청도 홍주 출신의 태중 
    교우로 경상도 문경의 ‘여호목골’에 살며 회장으로 활동했다. 1866년 
    병인박해의 여파가 경상도 지방에까지 미치게 되자 11월 가족, 마을의 
    교우 30여 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BR> 
    문경 관아에서 3일 간 혹형과 고문을 받은 후 배교하지 않은 교우들과 
    함께 상주로 이송되었고 상주에서 한 달에 세 번씩 석 달 동안 가혹한 
    형벌과 고문을 당한 후 소위 사학의 두목으로 지목되어 다시 김 회장 
    형제와 함께 대구 감영으로 이송되었다. 
    <BR> 
    대구 감영에서 김 회장 형제와 함께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형이 집행 
    될 때까지 기쁨과 여유를 갖고 기도하며 1867년 1월 21일 대구 남문 
    밖 관덕정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니 그의 나이 45세였다. 
    <PRE><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움체 color=brown><B>
    ▒ 꿈은 나누어야 이루어진다  ▒
    <PRE><FONT style="FONT-SIZE: 11pt" face=돋움체 color=brown> 
    꿈은 나누어야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꿈의 파장은 우리의 가슴에서 
    다른 사람의 가슴까지 전달된다.
    꿈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면
    꿈이 전달된다. 꿈이 생긴다.
    꿈은 삶을 변화시키고 사랑은 세상을 변화시킨다.
    사랑은 꿈을 만들어주고 그 꿈을 쌓아간다.
    <BR>
    - 용혜원의 《사랑하니까》중에서 -
    <BR>
    그렇습니다. 꿈은 서로 나누어야 이루어집니다.
    한 사람의 꿈이 한 사람의 것으로 머물지 않고 
    열 사람, 백 사람, 천 사람, 만 사람의 꿈이 
    될 때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꿈은 
    꿈을 가진 사람만이 이룰 수가 
    있습니다. 꿈은 곧 희망이며,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BR>
                               - 고도원의 아침편지입니다 -</B>
    <PRE><FONT style="FONT-SIZE: 15pt" face=돋움체 color=red>
    <B>2005년 순교자성월...</B>
    <PRE><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움체 color=#32449c>
    한 달이 이렇게 긴 시간입니까...!
    참으로 길게 느껴진 2005년 9월이었습니다.
    <BR>
    103위 한국순교성인들과 시작한 9월. 순교자성월을...
    이제 하루를 남겨놓고 103위 순교성인분들의 삶을 마무리하면서..
    오늘은 조윤호 요셉 성인께서 거지떼들에게 목졸려 죽임을 당하신 
    성화 앞에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BR>
    기나긴...오십여년의 신앙 여정중에서 이렇게 뜨거웠던 때는
    드물었습니다. 이렇게 간절한 날이 언제였던가 생각해보니..
    처음 주님을 만났던 그 때와 같습니다.
    <BR>
    대로변에서...발가벗고 외치는 마음으로,
    야곱의 우물을 내려놓았던 [우리들의 묵상방]과 [야곱의 우물]
    홈페이지에서 외쳤습니다. 
    <BR>
    예전의 제 모습처럼...
    아직 많은 분들의 관심이 없음에도...
    부끄럼도 잊은채, 그저 안타까운 마음으로 올렸습니다.
    <BR>
    고국을 떠나와, 
    5년이란 세월을 밥데기로 보냈던 그 날에...
    순교성인을 만났더라면 그렇게 허송세월을 보내지는 않았을텐데...
    참으로 아쉽습니다. 그러나 지나가 버린 시간은 잡을 수 없습니다.
    <BR>
    남은 생만큼이라도...
    순교자분들에 대해서 연구하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일에 바칠 것입니다.
    <BR>
    졸리는 눈을 비비며, 곤한 몸을 곤한 줄 모르고...
    카페를 만들었으며, 글을 올렸습니다. 혹시라도 어느 영혼이...
    앗! 나처럼 <B>앗! 너</B>변화되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지요.*^^*
    <BR>
    앗! 나는...
    이제 삶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습니다...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을 모시고 살아가니까요↗
    <BR>
    오늘 소개 할 글이 있습니다. 
    [103위 한국순교성인] 카페에 [다사랑] 글라라가 올려놓은 글입니다.
    그녀의 언니 소피아가 적어온 강론입니다. 느티나무 신부님 카페에
    올려져 있는 글을 [펌]해서 올린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라도 전할
    수 있습니다...
    <PRE><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움체 color=black>
    <B>103위 시성식에 대하여- 양성성당 그레고리오신부님 강론</B> 
    <BR>
     † 103위 시성식에 대하여
    <BR>
    돌아가신 요한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103위 시성식을 하러 한국에 오셨을 때
    로마교황청이 생긴 이래 교황님이 직접 그 나라에 가셔서 시성을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BR>
    두 번 째 한꺼번에 103위가 시성 된 것 또한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인들의 기적사화가 짧은 기간(5년동안) 일어났습니다. 
    <BR>
    프랑스의 쟌 다르크가 시성되는 데 약 450여년이 걸렸다고 보면 얼마나 
    짧은 기간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BR>
    103위 성인이 한꺼번에 시성 될 수 있었던 근본원인은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천주를 받아들였으며, 모두 스스로 순교를 원했던 것에 있다고 봅니다.
    <BR>
    성 최경환프란치스코 성인께서는 자신의 집에 제단을 차려 놓고 성서를 
    항상 올려두었습니다.
    <BR>
    한 노비에게 
    "너의 신분을 평민으로 올려주고 먹고 살 수 있도록 재물을 주겠다."고 
    회유했지만
    <BR>
    "저는 천국을 두 번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그토록 높으신 분들이 
    저를 형제로 대해 주시니 천국이요, 죽어서 천국에 갈 것인데, 
    제가 왜 배교를 하겠습니까..."
    <BR>
    요한바오로 2세 성하께서
    로마의 마피아단이 있는 시실리아 섬으로 가신다고 했을 때
    그 곳 세계적인 마피아들이 "교황이 오면 암살하겠다." 
    라고 공개적으로 위협했지만.......
    <BR>
    교황님께서는 한국의 103위 성인들께 기도를 드린 다음 그 곳에 가셨습니다.
    저는 하느님을 믿고 사랑합니다. 103위 성인들의 그 순교의 믿음과 사랑의 
    정신으로 그 곳에 가겠습니다...."
    <BR>
    또 당신의 조국 폴란드에 가실 때에도 
    한국의 103위 성인들께 전구를 청했습니다.
    <BR>
    그래서 103위 성인 호칭기도를 가장 많이 하신 분은 한국인보다 오히려 
    요한바오로2세 교황님셨습니다. 
    <BR>
    우리 선조 103위 성인들의 그 순교정신을 본받는다면
    자신과의 싸움에서..... 혹은 세상의 온갖 유혹에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BR>
    예수님도 사탄에게 유혹 받으실 때 순교의 정신으로 이겨내시지 않았습니까?
    악마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가장 좋은 기도는 
    103위 순교성인들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BR>
    그 정신을 이어받는 것입니다.
    <BR>
              - 2005. 9월 20일 양성성당 이그레고리오(그레고리오)신부님 강론-                           
    <BR>
    앗! 참...! 또 한가지가 있습니다.
    <BR>
    한국천주교회 200년 :
    1984년 5월 6일,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신앙대회및 한국순교성인 103위 
    시성식이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열렸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말했다. 
    <PRE><FONT style="FONT-SIZE: 15pt" face=돋움체 color=red>
    <B>"이제는 여러분이 증거할 차례입니다."</b>
    <PRE><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움체 color=#32449c>
    이제 저는 일터로 가기 위해서 준비를 해야 되겠기에...
    하고픈 말을 아껴두고 가야만 합니다. 열심히 살아야함을 느낍니다..
    매일 밤 근무에서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의 이름을 외워보았습니다.
    <BR>
    자꾸자꾸 잊어버리는 나이지만, 
    이제 저의 안테나는 그분들을 향하여 있기에 잊어도 또 외우고 외울 것입니다.
    <PRE><FONT style="FONT-SIZE: 14pt" face=돋움체 color=red><B>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103위 한국순교성인들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
    .
    .</b>
    <PRE><FONT style="FONT-SIZE: 12pt" face=돋움체 color=#32449c>
    함께 가십시다...
    외로운 길이지만, 함께 가노라면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것입니다.
    혹시, 저와 함께 동행인이 되지 않는다해도 괜찮습니다. *^^*
    <BR>
    제가 처음에 야곱이 물동이를 지고 인터넷 바다를 돌아다님으로
    많은 벗들이 야곱이 물동이를 지고 다니게 된 것처럼,
    <BR>
    이 일은 더 많은 분들이...
    나름데로의 기량을 발휘하여서 연구하고 묵상하여 나누게 되기를 
    청하면서...오늘도 [103위 한국순교성인]이 알리는 곳을 소개합니다.
    <BR>
    <PRE><UL><UL><FONT style="FONT-SIZE: 10pt" face=돋음체 color=#32449c> 
    <A href="http://cafe.daum.net/Coreansanctus" target=blank> 
    <IMG src="http://image.photo.chol.com/data/Image/27/2762/0000000828759_O.jpg" ? 
     grpid='LOiA&amp;fldid=AqlR&amp;dataid=203&amp;grpcode=asoul&amp;realfile=thumb_h16%255B1%"'></A></UL>
     《함께 연구하고,기도하고 싶습니다.↖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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