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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道란?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5-10-01 조회수497 추천수4 반대(0) 신고

 

(사진은 저희 본당, 금년 '순교자의 밤'(9/27)의 장면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마지막 모습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

 

 

11. 도란 성스러우면 참된 것

 

도리가 참된지 거짓된지,

사리가 굽은지 곧은지 여부는 구석에 던져두고,

얼토당토 않은 말로 밀치고 막는 것은

어쩌면 외국의 道라고 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까?

 

금이 산지에 관계없이 순도만 좋으면 보배가 되듯,

도리 역시 지역에 구애됨없이 성스러우면 참된 것이지요.

그러니 도를 전하는데 어떻게 이 땅 저 땅의 경계가 있겠습니까?

 

중국은 여러나라의 사람들이 서로 오고 가고 하여,

불교도 하는대로 내버려두었으며,

외국인들이 많이 와서 머물러도 일찍이 금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불교의 폐단이 오래되어,

전국의 절과 사찰들은 아주 사치스럽고,

금불상과 동상을 만드른 데에 재력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저 불교란 서역의 종교 중에서도 이단이지요.

천주성교의 문자를 표절해 쓰고 법도를 모방했으나,

뜻과 이치는 비뚤어져 어긋났고, 윤리와 기강은 뒤집혔으니,

이야말로 붉은 색을 흐려놓는 자주색이요.

벼를 망치는 가라지입니다.

화복을 가장하고 백성을 공갈쳐서 이젠 괴상한 폐단이 되었습니다.

 

무당. 풍수쟁이. 점쟁이. 관상쟁이들이 부인들을 꾀어

돈과 재물을 빼앗아가도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면서,

천주교만 유독 포용의 아량을 베풀지 않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집안에 해가 되어서입니까?

나라에 해가 되어서입니까?

그 하는 일과 행동을 살펴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며 그가 지키는 도리가 어떠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저희들이 반역이라고 꽤했습니까?

음란한 짓이라도 했습니까?

도둑질을 했습니까?

살인이라도 했단 말입니까?

어찌 그리 법보다도 지나치게 형벌을 내리며

천주를 배반하라는 것입니까?

 

 

지금은 저보다 열심이신 제 아버지는 입교 하시기 전에 

교회에 나오시라고 하였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 하필 서양에서 들어온 종교를 믿느냐? "

아버지 생각에 불교나 유교는 우리나라 전통 종교라고 생각하셨나봅니다.

 

저는 불교도 인도에서 들어왔고, 유교도 중국에서 들어왔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도 서양이 아니라 서남아시아,

즉 동양의 종교라는 이야길 해드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오늘 정하상 성인은 어떻게 그에 대한 대답을 하시는지요?

금이 보배가 되는 것은 산지에는 하등 관계가 없고

그보다는 순도가 좋아야 보배로써의 가치가 있다는 

기가 막히는 대답을 하십니다.

 

사실 금은 누구나 탐내는 보배로 그 산지를 문제삼지 않듯이

진리 역시 그것이 참되기만 하면 되지

그 유입지를 문제삼는 것이 오히려 어리석을 것입니다.

지역적 경계가 있는 도란 보편적 도가 아니며

참된 道, 진리가 아니라는 말이겠지요.

 

저의 아버지만 그런 생각을 하시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젊은이들 중에도, 그리스도교는 서양종교고,

불교나 유교가 우리의 전통적인 종교라고 믿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대할 때, 성인이 말씀하신 이 비유는 설득력있게 작용할 것입니다.

 

또, 성인이 불교에 대한 혹평을 한 것에 대해서는

당시 우리 조선은 배불숭유의 정책을 썼기 때문에

불교의 폐단에 대해 많이 가르쳤기 때문임을 유념해야 합니다.

 

정통 불교와는 다른 길흉화복을 점치는 곳,

구복적인 염원을 빌어주는 곳으로써 타락했던 면도 없지않습니다.

지금의 불교는 어떤지 그것은 모르겠습니다.

 

오늘 제가 생각해보고 싶은 것은

타종교의 현실이 아니라, 바로 우리 천주교의 현실입니다.

바로 성인이 미신행위를 비난하고, 타종교인들을 고발하고 있는

그 내용을 잣대로 우리 교회의 현실을 재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전국의 절과 사찰들이 사치스럽고,

금불상과 동상을 만드는데에 재력을 낭비하고 있다는 말이 걸립니다.

 

천주교회는 지금 어떻습니까?

건물 짓기에 바빠서, 아까운 재력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 신축금 때문에, 아까운 사람들을 다 잃고 있지는 않습니까?

평신도를 병신도로 여기고, 그 위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교회의 모습은 아닙니까?

선량한 양들을 꾀어 돈과 재물을 빼앗아가는 목자는 없습니까?

인적, 물적 자원이 남아돌아가는 교구와 빈약한 재원으로 허덕이는 교구가

서로  나누고 협동하지 않고 어떤 사회 집단들처럼 서로의 '나와바리' 만 고수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천주교는 할말이 없습니다.

성인이 이야기하시는 금,

그 순도에 있어 함량 미달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더이상 보배가 아닌 셈이지요.

 

성인이 당당하게, 자신있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당당한 자부심을 느끼며 천주교를 증거하고 싶습니다.

 

천주교가 그동안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믿고 싶은 종교'의 우선순위에 들었던 것은

정치적으로 어둡던 시절에 주로 빛을 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평생 희생봉사하는 수도자들의 모습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순위가 불교에 밀려났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늘어난다고 숫적 팽창에만 신이 나,

건물만 늘리고 치장하다가 질적(영적)인 면에 소홀했던 때문입니다.

종교의 순도는 질적인 면에 달려있다고 오늘 성인은 말하는 듯합니다.

이러다가 서양 성당들처럼 건물만 뎅그러니 남고

사람들은 텅텅 비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요즘 배우는 어떤 수업시간에서는,

우리 가톨릭 교회가, 특히 피로 세운 한국가톨릭 교회가 더욱 겸손한 자세로

(그동안의 너무나 오만한 자세들에 대해 배우거든요)

시대의 요청들을, 신자들의 마음을 읽어내야 한다는 사실을

뼈속깊이 느끼고 있습니다.

 

한국의 사제들을 양성하는 학교에서, 새까맣게 어린 미래의 예비사제들에게

'여러분들은 제발 겸손하고 참되고 진실한 목자가(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당신 스스로도 온 몸과 정신에 겸손이 속속 배여있는 老 신부님의 수업 시간에,  

저는 왠일인지 한쪽 구석에서 몰래 손수건을 꺼내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한국의 순교 성인들이여, 한국의 사제들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끔찍하죠? 아마 그자리에 계셨다면

김대건 신부님의 마지막 말씀들 때문에 하나도 끔찍하게 여겨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만큼 다른 것에 신경쓸 여유없이 마음이 숙연하게 젖어서 그자리에들 있었으니까요.

물론 저 머리는 가짜입니다. 미장원에서 쓰는 연습용 머리 입니다. ^^)

'군문효수'된 김대건 신부님의 머리는 후에 3부 미사에서 제대 앞에 모셔지고, 

그 앞에 신부님의 사진을 모셔두고. 신자들 모두 나와 분향과 헌화를 했습니다.

봉헌예절때에, 헌화는 수십개의 <빨간 가시관 위에 빨간 장미>를 올렸는데,

그 가시관은 1부 순교자체험시간에 신자들 모두 썼던 가시관이었습니다.

참 아름답고 감동적인 '순교자의 밤'이었습니다.)

 

 

 

 

2005/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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