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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상재상서, 마지막편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5-10-01 조회수724 추천수5 반대(0) 신고

 

 

12. 목숨을 바쳐 주를 증거함은 마땅한 일

 

 

천주는 만물의 대부모(大父母)요 대주재(大主宰)입니다.

옛날의 성현들도 열심으로 섬기고 제사를 드렸었거늘,

어째서 오늘날 이 사람들만이 이런 능욕을 당한단 말입니까?

 

굶주리고 메말라 나라가 어려운 때가 되면,

우리 임금께서는 밤낮으로 애쓰고 인정(仁政)을 일으키시어

생명을 아끼는 사랑이 민심에까지 젖어드는데,

아니 저 성교를 믿는 사람들은 우리 왕의 자식이 아니란 말입니까?

 

애석하게도 저 사람들이 이런 지경에 이르러도 조금도 불쌍치 않단 말입니까?

옥중에서 죽어가고 성문 바깥에서 처형되는 것이 끊이질 않아 피눈물은 도랑을 이루었고,

통곡소리 하늘에 울리고 있습니다.

아비는 자식을 부르짖고, 형은 아우를 부르짖으니,

마치 궁핍하여 돌아갈 곳 없는 사람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맑고 좋은 세상에 이 무슨 광경입니까?

 

목숨을 바쳐 주님의 참 가르침을 증거하고,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은 우리들이 마땅히 해야할 일이지요.

이 몸 또한 죽고말 것이지만, 외람되나마 말씀을 올릴 수 있는 이 때에 한번

고개를 들어 길게 외쳐보지도 못하고 그냥 묵묵히 죽어버린다면,

산더미같은 이 생각들을 백세 뒤에까지 밝힐 길이 없을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각별히 불을 밝혀 읽어보시고

도리가 참되고 바른지 거짓되고 나쁜 것인지를 자세히 분별하신 뒤에,

위로는 조정에 아뢰고 아래로는 백성들에게 펼쳐야 할 것입니다.

 

또한 최선의 방법으로 일변하여 금령을 늦추고 체포령을 거두며

옥에 갇힌 이들을 놓아 주시어,

온 백성들과 함께 편안하고 즐겁게 태평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천번 만번 바라고 또 바랍니다.

 

13. 제사와 위패에 관한 문제

 

또 아룁니다.

죽은 사람 발 앞에 술과 음식을 바쳐 올리는 것은 천주교에서 금하는 것입니다.

살아있을 적에도 영혼을 술과 음식으로 모실 수 없는 것인데,

하물며 죽은 뒤의 영혼이야 어떠하겠습니까?

 

음식은 육신과 입을 공양하는 것이요.

도덕은 영혼의 양식입니다.

 

아무리 효성이 지극한 자식이라 할지라도 맛있는 음식으로

주무시는 부모 앞에서 공양을 할 수 없는 법이니,

잠잘 적엔 먹고 마실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잠을 잘 적에도 그러한데, 하물며 아주 잠든 때에는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므로 그 쌀밥.기장이며 푸짐한 과일들은 헛된 것이 아니면 거짓된 것이니,

자식된 자가 헛되고 거짓된 예절로 돌아가신 부모를 섬길 수 있는 것일까요?

 

이른바 사대부들의 위패도 천주교에서 금하는 것입니다.

이미 위패는 부모님의 기맥이나 육신과는 아무 연관도 없으며,

낳아 길러주신 은혜와도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부모라는 이름이 얼마나 중대한 것인데,

장인이 깎아 만든 것에 물감과 먹으로 칠하여 놓고는

진짜 아버지고 진짜 어머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까?

 

이치에 맞지않고 양심이 허락치 않는 것이니,

차라리 사대부들에게 죄를 지을지언정 천주교에 죄를 짓고 싶지는 않습니다.

 

 

 

상재상서는 원래 한문 문체로 볼 때, 매우 평이하고 간결한 한문으로 쓰여있답니다.

그래서 한문에 대한 소양이 깊지 않은 사람도 쉽게 읽어볼 수 있습니다.

내용의 전개도 적절한 비유를 들어가며 명확하면서도 곡진하여

신앙을 향한 굳은 의지를 체감할 수 있다고 역자인 김철범 교수님은

이 '상재상서'의 후기에 자신의 소감을 쓰셨습니다.

 

또한 원래는 한문 문장의 특성상 단락의 구분없이 이어 써내려간 것이지만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내용이 달라지는 단락마다 역자 임의로 소제목을 붙였던 것이니, 

각각의 장들의 구분과 소제목은 정하상 성인이 하신 것이 아님을 양해하라고 하십니다.

 

여태껏 '정하상' 성인의 작품으로 소개했던 이 '상재상서'는

1839년 조선교회의 주요 인물들이 체포되어 순교하기 직전,

조정에 올리기 위해 지었는데, 달레의 기록에 의하면,

다가오는 대대적인 박해를 예감하고,

정하상을 위시한 여러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이 문서를 작성했다고 합니다.

함께 참여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일설에는 정하상의 어머니와 누이 정정혜라고 합니다).

 

상재상서의 번역은 여러편 있으나, 요즘 사람들이 읽기에 적당한 김철범 교수님의 것으로

'한국 교회사'를 가르치시던 여진천 신부님이 소개해주신 것입니다.

 

어떻든, 성인이 끊어놓은 단락은 아니지만,

상재상서의 내용상, 편의에 따라 13장으로 구분된 번역본을 오늘까지 소개했는데

늦게 시작하게 되어, 순교자 성월이 다 끝이 났어도 

10월 첫날인 오늘까지 올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성인의 '상재상서'를 소개하면서,

어줍잖은 저의 첨언들이 더 길게 나열된 점을 늘 죄송스럽게 생각하며  

미숙한 저의 소견이 오히려 성인의 순교 영성과 고결한 신앙에 흠이나 내지 않았을까 노심초사했습니다.

 

또한 이미 더 많이 생각하고 더 깊이 알고 계신 분들이 계실텐데도

이런 저런 사족을 붙여 마음을 어지럽히지는 않았는지 그것도 염려됩니다.

그분들께는 너그럽게 양해하여 주실 것을 청하며

혹여 이런 글로나마 신앙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실 분들도 있으실까 싶어 올렸습니다.

 

가르치는 것이 가장 크게 배우는 방법이라는 말도 있듯이.

이런 글을 매일 올리며, 무엇보다 저에게 이번에 순교자들이 크게 마음에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국의 순교자들이여,

우리들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2005/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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