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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비오는 저녁, 창가에 서니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5-10-02 조회수904 추천수14 반대(0) 신고

10월 2일 연중 제 27주일-마태오 21장 33-43절

 

“저자는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이고 그가 차지할 이 포도원을 우리가 가로채자.”


<비오는 저녁, 창가에 서니>

빗줄기가 세차게 유리창을 흔드는 저녁 창가에 서니 지난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특히 언제나 돌아가고픈 수련자 시절의 추억들이. 돌아보니 수련자 시절 아이들에 대한 제 열정은 거의 집착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당시 저희들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해 있던 고등학교 학생들의 종교수업을 한 반씩 담당하고 있었지요. 이렇다 할 재능이 없었던 저는 몸과 마음으로 대신 때우는 수밖에요.

교안을 만들고 나서는 몇 번이고 수정을 거듭했습니다. 결과는 언제나 썰렁했지만 게임 진행을 위해 거울을 바라보면서 예행연습을 수없이 되풀이하곤 했습니다.

분위기를 잡는 데는 노래가 최고라며 손가락에 피멍이 맺히도록 기본코드 잡는 연습에 몰두했습니다. 시청각 교육도 중요하기에 환등기나 영사기도 준비했습니다. 마무리 명상음악을 틀기 위해 녹음기도 필요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을 다 운반하자니 리어카가 한대 필요할 정도였습니다.

한번은 그것들을 잔뜩 이고 지고 또 양손에 들고 학교 정문을 통과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달려 나온 수위 아저씨가 단호하게 출입을 제지하면서 ‘잡상인 출입금지’ 팻말을 가리켰습니다. ‘수도원 식구’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수위 아저씨는 제 말을 믿지 않으셨습니다. 너무나 완강하게 나오셨기에 교무실로, 수도원으로 전화해서 제 신분이 확인된 후에야 간신히 정문을 통과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 그 신뢰한다는 것이 참 힘든 세상이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세상이 하도 흉흉하다보니 사기꾼들도 많아지고, 서로를 속이고 이용해야 살아남는 세상이다 보니 일단 한번 의심해보는 풍조가 보편화된 듯합니다.

이런 풍조는 예수님 시대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생각합니다. 많은 거짓 예언자들이 등장해서 선량하고 무지한 백성들을 끊임없이 현혹시켰습니다. 종교지도자들과 정치인들의 타락과 착취는 백성들을 불신과 의심, 불안의 상태로 몰고 갔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조차도 거부하는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고 맙니다.

믿는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 그 누군가를 신뢰한다는 것, 특히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일생일대를 건 도박과도 같은 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에는 정확한 목표선택과 그 목표를 향한 철저한 투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강한 하느님 체험을 바탕으로 한 확고한 신앙, 그것은 우리 신앙생활의 가장 핵심적이고도 근본적인 조건입니다.

유대인들이 저지른 과오 중에 가장 큰 과오는 가장 값진 보물이 자신들의 손안으로 굴러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보물을 절벽 밑으로 멀리 던져버린 행위였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고대해왔던 메시아, 자신들을 죄와 악에서 구해줄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코앞에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인정하려들지 않고 오히려 십자가형에 처한 사람들이 바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죽어도 예수님 받아들이지 못하고 끝까지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쓸데없는 자존심이나 교만함으로 가득 찬 사람들입니다. 재물이나 권세, 명예에 눈이 단단히 먼 사람들입니다. 가끔씩 밑으로 내려가 인생의 밑바닥 체험도 기꺼이 할 줄 알아야 되는 데, 끝도 없이 올라가려고만 기를 쓰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메시아는 바로 우리 가까이에 계시는데, 천국 문이 바로 우리 일상 안에 자리 잡고 있는데, 진리는 바로 내 발밑에 있는데, 우리의 눈이 너무 높기에, 기대치가 너무 높기에, 너무나 물질 만능주의, 세속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아가기에 이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반대로 단순한 사람, 소박한 사람, 가난한 사람,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언제나 마음이 열려있는 사람,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고 매사에 감사하는 사람...바로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너무도 자연스럽게, 아무런 거부감 없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이 세상 도래로 인해 이제 세상 모든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눠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수용하는 쪽과 거부하는 쪽. 불행하게도 많은 유대인들은 예수님 의 반대편에 서게 됩니다. 이는 유대인들이 저지른 실수 가운데 가장 큰 실수, 일생일대의 대실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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