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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 인간이 위기에 처한 다른 한 인간에게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5-10-02 조회수876 추천수11 반대(0) 신고
10월 3일 연중 제27주간 월요일-루가 10장 25-37절


“사마리아 사람은 그의 옆을 지나다가 그를 보고는 가엾은 마음이 들어 34 가까이 가서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어 주고는 자기 나귀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서 간호해 주었다.”



<한 인간이 위기에 처한 다른 한 인간에게>


의료인들, 사회복지사들, 자원봉사자들과 같은 분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할 때 제가 반드시 선택하는 성서주제가 있는데, 오늘 우리가 들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입니다.


예루살렘은 해발 800미터 정도 되는 고지대에 위치해있고, 예리고는 겨우 해발 150미터 높이에 위치해 있다 보니, 두 도시를 연결하는 ‘내려가는’ 길은 꽤 험했습니다. 강도들이 지나가는 행인들을 대상으로 ‘삥’ 뜯어내기(털기에)에 적당한 장소였겠지요.


어떤 사람이 그 길을 홀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아마도 그 사람은 꽤 많은 돈을 몸에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순순히 돈을 내주었으면 그런 일이 없었을 텐데, 너무나 아까운 돈, 10년 동안 적금을 부은 끝에 만져본 거금이었기에 끝까지 버텼습니다. 결과는 뻔했습니다. 최악이었습니다. 신나게 얻어맞고, 돈도 빼앗기고, 사경을 헤매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나가던 한 사제가 보게 됩니다. 얼마나 얻어맞았던지 성한 곳이라곤 없었습니다. 그를 본 사제의 마음이 몹시 아팠습니다. 그러나 괜히 남의 일에 끼어들었다가 본전도 못 찾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괜히 피투성이인 사람에게 다가갔다가 금방 갈아입은 옷 더럽힐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뿐이겠습니까? 핑계를 대기 시작하니 나름대로 할 말이 많습니다. 빨리 돌아가서 내일 강론도 준비해야 되고, 회의도 주관해야 했습니다. 안됐구나, 정말 안됐구나, 하면서도 사제는 그냥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그 사제의 뒤를 이어 한 레위인이 지나갑니다. 그 역시 강도를 만나 흠씬 얻어맞아 의식을 잃고 길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니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도와주어야 되는데, 하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자기합리화에 바빴습니다. 오늘이 바로 아버님 제삿날인데, 가족들은 다들 모여, 나만 기다리고 있을텐데...참으로 안됐지만 시간관계상 어쩔 수 없지, 누군가가 도와주겠지, 하면서 재빨리 자리를 피했습니다.


이어서 등장하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 그의 머리속에는 다른 어떤 생각도 없습니다. 당장 자신의 눈앞에 죽어가고 있는 그 사람만 생각합니다. 앞뒤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이것저것 잔머리 굴리지도 않습니다. 즉시 소매를 걷어붙입니다. 우선 가까이 다가가 귀를 가슴에 대고 생사를 확인해봅니다. 다행히 아직 숨이 붙어있었습니다. 이 곳 저 곳 상처에 치료약을 발라줍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 사람을 나귀에 태웁니다. 구급차에 태워 후송까지 하는 것입니다. 여관에 데려가 눕힙니다. 시간도 없을텐데, 한참 동안 간호까지 합니다.


어쩔 수 없이 길을 가야 했기에, 여관주인에게 돈까지 줘가며 신신당부합니다.


“저 사람을 잘 돌보아 주시오.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아드리겠소.”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맞은 사람에게 한 행동 하나 하나를 따라가 보십시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대단한 일을 했습니다. 한 인간이 위기에 처한 다른 한 인간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 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누군지도 모르는 그 사람에게 마치 사랑하는 가족에게 하듯이 극진히 대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에게는 상대방이 어떤 사람이든, 어느 나라 사람이든, 남자든 여자든, 노인이든, 어린이든 별 상관없습니다.


오직 한 생명이 지금 강도를 만나 위험에 처해있다는 것, 그 것만이 중요합니다.


오늘도 예루살렘과 예리고 그 사이에 위치한 ‘엘 아마르’란 곳에 여관이 하나 있는데, 그 여관을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여관’이라고 부른답니다.


비유 안에 등장하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누구를 지칭하겠습니까? 물론 당연히 예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사상과 정신, 가치관을 추종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 ‘또 다른 그리스도’, ‘제 2의 그리스도’인 우리 역시 착한 사마리아 사람으로 살아가야할 의무가 생기는 것입니다.


세례를 통해 예수님을 따라 살기로 결심한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의 역할은 다른 무엇에 앞서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한 행동을 추종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 우리의 교회, 우리 수도회는 가난하고 고통 받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기쁘게 맞아들이는 또 다른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여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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