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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벽을 열며 / 빠다킹신부님의 묵상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10-03 조회수639 추천수4 반대(0) 신고

 

 

                         2005년 10월 3일 연중 제27주간 월요일

 

                      


 

제1독서요나 1,1─2,1.11

 

주님의 말씀이 아미때의 아들 요나에게 내렸다. “어서 저 큰 도시 니느웨로 가서 그

 

들의 죄악이 하늘에 사무쳤다고 외쳐라.”

 

이 말씀을 받고도 요나는 주님의 눈앞을 벗어나 다르싯으로 도망가려고 길을 떠나

 

요빠로 내려갔다. 거기서 다르싯으로 가는 배를 만나 뱃삯을 내고 남들과 함께 배에

 

탔다.

 

주님의 눈앞을 벗어날 셈이었다.

 

그런데 주님께서 바다에 바람을 일으키셨다. 태풍이 거세게 몰아쳐 배가 깨어질 지

 

경이 되자, 뱃사공들은 겁에 질려 저마다 저희의 신에게 부르짖으며 배를 가볍게 하

 

려고 배 안에 있는 짐을 바다에 던지기까지 하였다. 그런데도 요나는 배 밑창에 내려

 

가 누워 깊이 잠들어 있었다.

 

선장이 와서 보고 야단쳤다. “이런 판국에 잠을 자다니! 너도 일어나 너의 신에게 부

 

르짖어 보아라. 너의 신이 우리를 생각해서 행여나 살려 주실지 아느냐?” 한편 사람

 

들은 서로 의논 끝에 “누구 때문에 이런 변을 당하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 하

 

면서 제비를 뽑기로 하고, 제비를 뽑아 보니 요나가 나왔다.

 

사람들이 요나에게 물었다. “네가 무슨 짓을 했기에 우리가 이런 변을 당하느냐? 말

 

하여라. 너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냐? 어디에서 왔으며 고향과 국적은 어디냐?”

 

그가 대답했다. “나는 히브리 사람입니다. 하늘을 내시고, 바다와 육지를 만드신 주

 

하느님을 공경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자기는 주님의 눈앞을 벗어나 도망치는 몸이라고 말하였다.

 

그제야 사람들은 곡절을 알고 어찌하여 그런 일을 했느냐며 몹시 두려워하였다. 바

 

다는 거칠어져만 갔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다를 잔잔하게 하려면 너를 어떻게 해야

 

좋겠느냐?” 하고 요나에게 물었다.

 

요나는 자기를 바다에 집어 넣으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래야 바다가 잔잔

 

해질 것입니다. 이렇게 무서운 태풍을 만난 것은 내 탓인 줄 압니다.” 바다는 더욱더

 

기승을 부렸다. 사람들은 물결을 헤치고 육지로 되돌아가려고 애를 써 보았으나 허

 

사였다.

 

하는 수 없이 사람들은 주님께 부르짖었다. “주님, 이 사람의 목숨을 희생시킨다고

 

우리를 멸하지는 마십시오. 우리에게 살인죄를 지우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다 뜻이

 

있으시어 하시는 일 아니십니까?”

 

그러고 나서 요나를 바다에 집어 던지자, 성난 바다는 잔잔해졌다. 이것을 보고 사람

 

들은 몹시 두려운 생각이 들어 주님께 제물을 잡아 바친 후에 다시 서원 제물을 드리

 

기로 하였다.

 

주님께서는 큰 물고기를 시켜 요나를 삼키게 하셨다. 요나는 사흘 밤낮을 고기 배 속

 

에 있었다. 주님께서는 그 물고기에게 명령하여 요나를 뱉어 내게 하셨다.


 

 

복음 루가 10,25-37

 

그때에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서서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선생님, 제가 무슨 일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율법서에 무엇이라고 적혀 있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었느냐?” 하

 

고 반문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여 주님이신 네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였습니다.” 이 대

 

답에 예수께서는 “옳은 대답이다. 그대로 실천하여라. 그러면 살 수 있다.” 하고 말

 

씀하셨다.

 

그러나 율법교사는 짐짓 제가 옳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

 

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 사람이 가진 것을 모조리 빼앗고 마구 두들겨서 반쯤

 

죽여 놓고 갔다.

 

마침 한 사제가 바로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는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또 레위 사람도 거기까지 왔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길을 가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그의 옆을 지나다가 그를 보고는 가엾은 마

 

음이 들어 가까이 가서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어 주고는 자기 나귀에 태

 

워 여관으로 데려가서 간호해 주었다.

 

다음날 자기 주머니에서 돈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잘 돌보아 주시오.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아 드리겠소.' 하며 부탁하고 떠

 

났다.

 

자, 그러면 이 세 사람 중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 준 사람은 누구였다

 

고 생각하느냐?”

 

율법교사가 “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 말씀하

 

셨다.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어제 제가 새벽 묵상 글을 통해서 저의 동창 병문안을 다녀왔다는 말씀을 드렸

 

지요? 그런데 그 병문안에서 발견한 한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네요. 어제도 말

 

씀드렸듯이 저는 입원해있는 동창 신부를 위해서 먹을 것을 상당히 많이 들고

 

갔습니다.

 

세 명이 함께 먹기에도 많아 보이는 양이었습니다. 그 양이 1박스 정도가 되었

 

으니까요. 저희들은 함께 그것들을 해치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

 

들을 다 없어질 무렵, 그 신부님을 어떤 부부가 병문안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

 

부부는 신부님을 위해서 추어탕을 가지고 오신 것입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

 

지요.

 

‘이렇게 많이 먹었는데, 어떻게 또 먹어? 웬만한 대식가도 이렇게는 못 먹을

 

거야.’

그리고 저는 분명히 “지금 많이 먹어서요. 다음에 먹겠습니다.”라고 말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신부님은 달랐어요. 글쎄 그 추어탕 한 그릇을 다 먹는

 

것입니다. 아주 맛있게…….

위대해 보였습니다(위대: 위가 대단히 큰 사람을 의미함). 어떻게 그 모든 것

 

들을 다 먹을 수 있는지... 더군다나 이 병원에서 생활하다보니 활동량이 적어

 

서 식사량이 적어졌을 텐데 말이지요. 그렇다면 그것들을 어떻게 다 먹을 수

 

있었을까요? 바로 음식을 가져오신 분을 위한 배려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분들의 정성을 생각해서, 스스로 힘들어도 웃음을 잃지 않으면서 식사를 했던

 

것이지요(혹시 배탈 나지 않았나 싶어요).

생활 안에서 이러한 배려들. 이런 모습들이 어쩌면 작은 사랑의 실천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 세상 안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받는 아픔과 상처

 

는 커다란 곳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작은 부분에서 더

 

큰 아픔과 상처를 체험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그러한 차원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강조하신 그 사랑도 대단한 곳에서만

 

실천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들의 일상 안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작

 

은 사랑들. 그 사랑들이 바로 주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사랑의 실천이라는 것이

 

지요. 그러나 우리들은 이러한 사랑의 실천을 외면할 때가 얼마나 많을까요?

 

바로 자기 기준에 맞추기 때문에, 그리고 커다란 사랑만을 생각하기에, 주님의

 

사랑에 점점 멀어져가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된 한 여행자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사

 

제, 레위인이 그 앞을 지나갔으나 모두 외면하지요.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 가장 올바르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

 

이 부정해진다는 이유로, 또 의심의 눈으로 여행자를 보면서 외면합니다. 오히

 

려 이스라엘 사람들이 배격한 사마리아 사람만이 사랑을 실천합니다.

내가 커다란 사랑만을 실천하려고 한다면, 어쩌면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사제

 

와 레위인처럼 정작 실천해야 할 사랑을 외면하고 말 것입니다. 사랑의 실천은

 

매 순간에 이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내 앞에서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따뜻

 

한 말 한마디로 건넬 수 있을 때, 그 사람을 위해서 작은 기도를 바쳐 줄 수 있

 

을 때, 사랑을 가지고 주님을 진정으로 따르는 것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사랑의 시작은 지금 당장 이루어져야 합니다.

 

 

                             남을 배려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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