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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웬수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5-10-03 조회수887 추천수5 반대(0) 신고






연중 제27주간 월요일 말씀(요나 1,1-11; 루가 10,25-37)

요나는 주님의 명령을 피해 달아난다.
니느웨에 가서 그들을 회개시키는 일이 그의 임무였다.

그들을 대대로 괴롭혔던 적대국, 아시리아의 수도로 가서
그 원수들을 회개시켜 주님의 징벌을 피할 수 있도록
자신이 앞장 서야 한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요나는 니느웨와는 정 반대 방향인,
다르싯으로 도망가려고 배를 탔다.
그러다 풍랑을 만났고,
요나가 풍랑의 원인으로 지목되어 바닷물에 던져지게 되었다.

시퍼런 바닷물에 던져지게 될 요나의 모습은 차라리 초연하다.
어차피 주님의 손을 빠져나갈 수 없다면
자기 한 목숨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더 나을만큼의 증오가
히브리 사람 요나의 피에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물고기 뱃 속같은 그 증오의 암흑 속에서,
죽음보다 깊은 그 분노 속에서,
끝내 그를 건져내어 당신의 명을 실행하도록 만드신다.

요나가 참된 주님의 종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자신부터
새로운 몸으로 부활해야 했다는 말이다.

오늘 복음에서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나온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다인들의 적대자들이다.
그들에게 '착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는 것은 유다인들에겐 모욕이 아닐 수 없다.

원래는 한민족이었던 이들이 이런 원수가 된 데는 오랜 비극의 역사가 있었다.

기원전 722년경, 사마리아는 아시리아에 짓밟혔다.
당시 북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였던 사마리아에 이방민족들이 이주해오면서
그들은 순수한 혈통, 정통 야훼신앙을 지킬 수 없었다.

남쪽의 유다왕국도 기원전 587년, 바빌론에 끌려가고
그들이 538년 유배갔던 바빌론에서 귀환해 돌아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려 했을 때,
사마리아 사람들은 성전건립을 방해했고
페르샤에 투서를 보내 유다를 침략하도록 모함을 하기도 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그런 짓을 한데에는 그럴만한 원인이 있었다.
포로생활에서 귀환한 유다인들은
자신들만이 순수한 야훼 신앙의 고수자라는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데 동참하겠다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거절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원래는 성조 야곱의 한 후예요 형제였던 그들.
다윗과 솔로몬 시대까지는 한 왕국의 한 백성이었던 그들.

이제는 서로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는 철천지의 원수로 바뀌어버린 비극적인 현실 앞에,
예수는 다시 너희는 한 형제, 한 백성임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는 이렇게
원수와 이웃의 구분으로 얼룩진 세상을 만들어놓은 인간들의 모습과
그것을 새롭게 만들라고 요구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볼 수 있다.

오늘 내 주위의 웬수(^^)는 누구인가?
오늘 나에게 착한 이웃은 또 누구인가?
그것을 굳이 구분함이 없이
바로 내가 또하나의 '요나'가 되길 원하시는 주님.
내 구미에 맞는 이웃을 찾아보기에 앞서, 
원수라 여겨지는 '그'에게까지 
내가 바로 '착한'이웃이 되라는 요구를 
오늘 말씀은 하고 있다. 
아, 
이 좁은 세상, 
이 짧은 세상,
경계를 두지 말고 살라고. 
자유롭게, 
거침없이, 
당신처럼 살라고.
-사진은 이원희 목사님, 홈피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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