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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94) 개천절 아침에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10-03 조회수780 추천수10 반대(0) 신고

2005년10월3일 연중 제27주간 월요일 ㅡ요나1,1-2,1.11;루가10,25-37ㅡ

 

                    개천절 아침에

                              이순의

 

 

 

ㅡ힘ㅡ

 

 

 

개천절 아침이다.

평소와 똑같은 시간에 알람시계가 아우성을 친다.

나는 나의 방에 누워 내 손전화기의 알람을 껐다.

아들은 아들의 방에 누워

아들의 손전화기의 알람을 끄지 않았다.

그것조차도 움직여 끄기가 귀찮은....

그러나 나는 손이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아들의 취향에 따라서

골라 질러대는 그 소리가 귀찮았다.

아들은 몇 번을 불러서 깨워도 응답이 없었다.

아직 밖은 어스름 어둠이었다.

국경일의 아침에는 귀도 잠금장치를 하나보다.

평일 아침에는 알람시계가 고래 고래를 지르기 전에도

눈꺼풀이 선수를 쳐 깔끄러운 아침을 열어 주더니

오늘 아침은 얇은 둔덕이 천 근에 만 근은 되었나 보다.

혼자 울던 알람은 의식 속에서 희미해지고......

헉?!

아침이 늦었다.

입시생의 게으른 아침 공부도 공부라고

어미의 조바심을 놓았다.

감은 눈을 번쩍 뜨지 못하고

게슴츠레한 실눈을 하고

엉금엉금 기어가 의자에 앉는다.

그리고 방문 앞에 서있는 엄마의 그림자를

육감으로 의지한 채

손을 들어 입에 대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가 내려 놓는다.

물을 가져다 달라는 광대의 몸짓이었다.

기침 소리가 예사롭지 않게 튀어 나온다.

모성의 본능은 연출 된 연기력 보다는

무의식의 기침소리에 더 열중한 관객이 된다.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낸다.

작은 냄비에 콸콸 쏟은

한 잔 분량의 물을 가스랜지 위에 놓았다.

단추를 눌렀다.

따 따 딱 따! 따 따 딱 따!

퍼런 불꽃이 활짝 피었다가 자리를 잡는다.

물이 데워지는 잠깐이지만

날자 지난 신문을 펼쳤다.

<"말아톤"도 엄마랑 함께 달려요.>

라고 써져있다.

그리고 자폐증의 발달장애를 가진 청년이

엄마와 함께

훤칠한 미남으로 서서 웃고 있다. 

순간

후회가 푸념으로 흘러 가슴에 담기고 말았다.

<저 엄마의 10%만이라도

내가 내 아이에게 엄격했더라면

지금 내 가슴은 덜 아팠을까?>

처녀적에 장애인들에게 봉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언제나 내 마음은

그런 인내심을 자식에게 조차 배려하고 있었다.

<내 자식은 건강한데.... 이만큼에 감사하자.>

라고!

그런데 그렇게 짦은 사이를

기다려주지 않은 아들녀석이

냉장고 앞에 서서

차가운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있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모든 상황이 말없이 흘러버린 찰라였다.

<너는 기침을 하면서도

어째서 그렇게 엄마의 말을 듣지 않니?>

로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쾅!>

아들의 방문이 닫히고!

그때서야 내 방으로 들어와 생각을 해 보았다.

물을 따끈하게 데워 줄테니 기다리라는 말을

하지 않은!

그리고 화부터 낸!

그런 아침이 슬펐다.

연기자가 보여 준 광대의 몸짓은 보지 않고

기침소리만 들어버린 관객의 일방적인 착오!

후라이팬을 가스불에 달구어

식빵 두 장을 펼쳐 굽기 시작했다.

토스터기가 없는 우리 집의 굽는 풍경이다.

데우다가 식어버린 보리차는 그릇에 옮겨 딸고

그 냄비에 우유를 부었다.

전자랜지가 없는 우리집의 데우는 풍경이다.

바삭 구워진 식빵에

성당에서 사다 놓은 딸기쨈을 발라서 접시에 놓고

보온컵에 따끈한 우유를 따라서 쟁반에 놓고

아들의 방으로 들어가 책상에 올려 주었다.

<치워.>

귀가 어두운 엄마는 잘 못 들었다.

<뭐라구?>

짜증이 높은 음성이 튕겨져 나온다.

<치우라고오~.>

말없이 들고 나왔다.

그리고 내 방에 앉아서 혼자 먹었다.

나만이 격는 아침풍경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엄마든지.

누구의 엄마든지.

다 같이 격고,

다 같이 삭히고,

다 같이 살아지는 아침일 것이라는.....

그래도 자꾸만 자꾸만!

그래도 한 걸음씩 두 걸음씩!

힘 있었던 어미의 자리에서

힘 없는 무기력한 어미의 모습으로

퇴보하는 아침을 맞고 있다.

오늘은 이 만큼!

내일은 더 많이!

이 아침에 엄마가 데워 주고 싶었던

따끈한 물은 아들이 마시지 않았다.

이 아침에 엄마가 구운 빵과 따뜻한 우유는

도로 엄마가 먹었다.

.

.

.

.

한참 후에야

<아까 그 토스트 주세요. 엄마!>

화가 났던 마음이 풀렸을까?

다시 가스불에 후라이팬을 달구기 시작했다.

다시 냄비에 우유를 부었다.

저 말도 곧 멈출 날이 오겠지.

그 때가 되면 제 놈도 차례가 온 것이고.......

 

ㅡ예수께서 말씀 하셨다.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루가10,37ㄴㅡ 

 

 

 

ㅡ아빠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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