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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왜 염려(念慮)하느냐?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10-03 조회수858 추천수13 반대(0) 신고


 

왜 염려(念慮)하느냐?





왜 염려(念慮)하는가


걱정 안 하고 살 수는 없을까.
돈 걱정,  자식걱정, 인간관계, 건강과 노후
그리고 이젠 자연재해까지 하나 더 추가되었다.

염려란 ‘목을 조르다’, ‘숨이 막히다’, ‘분열되다’라는
뜻처럼 가장 은밀하게 침략해 오는 인생의
복병(伏兵)으로 삶을 질식시키고
도려내고 있다.


처음 사람은 옷도 안 입었지만
염려도 할 수 없도록 설계(設計)되었는데,
사람이 불순종(不順從)하면서 이 모든
원래 질서들이 바뀌게 된 것이다.

식물이나 짐승들은 걱정을 모르고 살아가는데,
인간만은 사는 날에 비례하여 염려는 가장 익숙한
친구가 되면서 모든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병의 70%가 심인성(心因性)에서 오듯이,
염려는 몸의 저항력을 떨어뜨리고
모든 질병을 불러들인다.

심리적으론 더 큰 피해를 준다.
곧 시야를 좁게 만들고 소심하고
무능력한 사람이 되게 한다.

결국 염려는 과거도 나쁜 추억으로 만들고
현재도 생각의 노예가 되어 아무 일도
못하게 만들어 미래란 기대할 것이 없는
졸장부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렇듯 염려란
일시적(一時的)인 현상이 아니라
한 평생 행복과 불행한 인생을 결정지을
운명의 여신이건만 사람들은 오늘도 습관적으로
걱정과 염려 속에서 기쁨과 웃음이 있는
행복한 인생을 포기하고 있다.


인생은 선택(選擇)일 뿐이다.
걱정과 두려움 속에 인생을 소진할 것인지
비전을 갖고 개척할 것인지를 날마다 선택해야만 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염려에 예외인 사람은 없다.
다만 사람마다 나름대로 비법을 갖고
극복하고 있을 뿐이다.





첫째로 염려 대신에 일을 하라.

톱밥에다 톱질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
과거와 같이 이미 잘려져 나간
부분을 붙잡고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과거에 묶여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현재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면
염려는 옛 연인처럼 자동으로 찾아온다.


설령 지금 무척이나 걱정되는 일이 있다 해도
몸을 바지런히 움직이면서 행동하면
염려는 자연히 사라지는 법인데,

환경을 탓하고 핑계만 대는 염려중독자들은
가만히 앉아서 지레짐작 할 뿐
일 할 생각은 안 하고
염려의 쓴 열매를 따먹으면서
세상을 달관한 것처럼 쓴 웃음만 짓고 있다.


반면에 수고 자체가 복(福)인줄 알고
땀 흘리며 일하는 사람에게는
염려는 사라지고 웃음이 찾아온다.

행복한 사람은 이렇듯 염려 대신에
열심히 일 하는 사람이다.

만약에 일하면서도 아니
아예 일도 안 하면서도 핑계거리나 찾으며
쓸데없는 잡념에 빠져있다면,

염려의 노예가 되었다는 것과
본인이 게으르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요,
또 내일에 대한 아무 꿈도 없다는 것을
세상에 공개(公開)하는 일이다.


사단은 미세한 틈만 있어도
이쑤시개로 그 틈을 끼워놓고 들어온다.

그들이 들어올 틈이 없도록
오늘도 땀이 나도록 일하고 운동하고 봉사할 때
염려는 사라지고
행복은 미소 지으며 들어오는 법이다.





둘째는 내일보다는 오늘을 택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
매일 아침마다 하루 분량의 만나를 받았다.
남이 모르게 숨겨 놓아도 그 하루가
지나면 그냥 썩어버린다.

우리 인생은
오늘 하루 이상 염려할 능력도
또 대처할 능력도 없는 존재이기에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고 했던 것이다.


우리가 내일 일을 미리 가불(假拂)해서
염려하지 말아야할 이유는,

현재 우리의 염려는 미래에 가서도
90% 이상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위대한 사람들조차도 생을 마감할 때에 가서야
이 사실을 알고 얼마나 후회하는지 모른다.

비가 오기 전까지는 우산을 펴지 말라는 격언처럼
미리 염려하는 일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또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므로,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는 것이 다음 이유다.

아무리 좋은 약(藥)이라도 하루라는 분량이 있다.
행복의 약은 하루에 한 알만 복용해야 한다.
내일 것까지 미리 먹으면 독(毒)이 된다.


대부분 사람들은 과거에 묶여있거나
또 미래를 너무 강조하다보니
오늘을 희생시키는 경우가 많기에
그는 늘 오늘 이 순간(瞬間)을 강조하셨던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허락한 시간은 오직 이 순간뿐이다.
내일과 어제는 우리의 특권도 아니고
그가 허락한 영역(領域)도 아니다.





셋째는 염려 대신에  기도하라는 것이다.

사람은 무슨 일이 잘 되도 걱정이요
안 되어도 걱정을 한다.
염려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없기에
모든 염려를 그에게 맡겨 버리라고 말한다.

맡긴다는 것은 더 이상 내가
가지고 있지 말고 떨쳐 버리고,
내 마음에서 없어지게 하라는 의미다.

그것은 자식이 염려하지 않아도
부모가 대신하여 문제를 해결하듯이
조물주가 대신 권고하기에 맡기라는 것이다.


염려는 환상(幻想)일 뿐이다.
국가 기상대에서 조사한 결과를 보면,
한 도시에 7개 불럭을 100피트나 짙게 깔려 있는
안개라도 실제 압력기로 측정해보면 그 거대한 안개는
한 잔의 물 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염려는 실상 아무 일도 아니지만
확장하면 이렇게 큰 문제가 야기되기에
더 이상 확장되지 않도록 기도(祈禱)하는 것이다.

사람의 생각은 분토(糞土)와 같아서
아무리 고상한 사람일지라도
고작 생각한다는 것이 근심과 걱정이요
자신의 영광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할 줄 모르기에
기도하므로 염려가 자리 잡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때론 신을 잘 믿는 사람일지라도
질병을 만나고 생의 큰 위기를 당한다 해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해야할 이유가 있다.

그것은 척추병, 폐병, 직장암 등으로
고통을 겪었던 미우라 아야꼬 말대로,
병들지 않고는
드릴 수 없는 기도가 있고,
들을 수 없는 말씀이 있고,
가까이 갈 수 없는 성소가 따로 있고,
아니 인간(人間)도 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은
바로 기도하라는 신의 섭리일 뿐이다.

아니 내 생을 다 이해한다 해도
미래를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에
인생은 신에게 기도해야만 한다.





주여,

당신은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요
우리를 기르시는 목자가 되십니다.

그럼에도
왕이 없는 백성처럼
목자 없는 양처럼

아니
아비 없는 자식처럼
염려와 두려움 속에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 때마다
염려가 습관이 아니라
기도가 습관이 되게 하소서

그리고
오늘 이 순간,
당신의 영역 안에서
내 모든 것을 쏟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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