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395) 인연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10-04 조회수685 추천수7 반대(0) 신고

2005년10월4일 화요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 ㅡ요나3,1-10; 루가10,38-42ㅡ

 

   인연

       이순의

 

 

도마를 샀다. 열아홉 해 하고도 몇 달을 더 살은 누더기를 두고 새로 샀다.

 

산적을 꽂을 때랑, 갈비를 손질 할 때랑, 아가리 큰 생선을 손질 할 때랑, 다음에 새로운 인연을 삼을 때는 당신보다 훨씬 크고 잘난 인물을 고를 것이다고.

 

열아홉 해 하고도 몇 달 동안 궁색할 때마다 불평을 늘어놓았는데 진짜로 훨씬 크고 잘난 인물을 만나서 한 눈에 반하는 바람에 아까운 지폐가 아깝지 않고 선뜻 교환이 되었다.

 

그런데 퍼런 비닐봉지에 그 잘난 인물을 모셔들고 돌아 오는데 워째서 그렇게 가심이 허허롭드냐?

 

늙고 늙어서 한쪽이 갈라지고 모서리는 마모 된 못난둥이에게 곰팡이 피우면 버리겠다고 구박에 구박을 했더니만 이렇게도 쉽게 새 인물에 홀려서 묵은 인연을 져버리게 될 줄은 몰랐었다.

 

오래오래 살다보면 손칼질 간데만 움패일 것 같아서 두루두루 돌려가며 고루고루 살펴가며 아픈 칼자국을 분배하느라고 했건만 그래도 세월에 파인 우물은 눈물 그렁그렁 담고서 손길을 기다리더라.

 

내 손질로 쓸어 닦아 가셔주기 전에는 한 가운데 머금고 기다리더니 어느 덧 늙고 늙어서 갈라진 틈새로 요실금을 누고 말더라.

 

우리 함께한 내막도 겁이었고, 우리 나눈 사연도 숱하였는데, 아이고 어찌사끄나. 아이고 섭섭해서 어찌사끄나.

 

수고했습니다. 수고했습니다. 불쌍하오. 불쌍하오. 미안하오. 미안하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래도 명운이 다한 인연인 것을 낸들 어떻게 잡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가는 세월을 낸들 어쩌라는 말입니까?!

 

잘 가시오. 도마!

 

올 가을은 또 쓸쓰을허다.

 

ㅡ"마르타, 마르타, 너는 많은 일에 다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된다." 루가10,38-42ㅡ

 

 

 

지금은 송파동 성당이 된 건물이 19년 몇 개월 전에는 미도파 수퍼 자리였습니다.

얼마 전에 가 보았더니 도마가 있던 자리는 성당 주방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건물은 그대로인데 리모델링하여 거룩한 성전의 주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 도마는 세월을 비켜가지 못하시고...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