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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벽을 열며 / 빠다킹신부님의 묵상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10-05 조회수727 추천수3 반대(0) 신고

 

 

                      2005년 10월 5일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제1독서요나 4,1-11

 

요나는 잔뜩 화가 나서 퉁명스럽게 주님께 기도했다. “주님, 제가 집을 떠나기 전에

 

이렇게 되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는 다르싯으로 도망치려 했던 것입니다. 저는 다 알고 있었습니다. 하느님

 

께서 애처롭고 불쌍한 것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시고 좀처럼 화를 내지 않으시며

 

사랑이 한없으시어, 악을 보고 벌하려 하시다가도 금방 뉘우치시는 분인 줄 어찌 몰

 

랐겠습니까? 그러니 주님, 당장 이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아니,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화를 내느냐?” 하고 주님께서 타이르셨지만, 요나는

 

시내를 빠져 나가 동쪽으로 가서 앉았다.

 

거기에 초막을 치고 그 그늘에 앉아 이 도시가 장차 어찌 되는지 볼 심산이었다.

그때 주 하느님께서는 요나의 머리 위로 아주까리가 자라서 그늘을 드리워 더위를

 

면하게 해 주셨다. 요나는 그 아주까리 덕분에 아주 기분이 좋았다.

 

이튿날 새벽에 하느님께서는 그 아주까리를 벌레가 쏠아 먹어 말라 죽게 하셨다.

 

그리고 해가 뜨자마자 뜨거운 열풍이 불어 오게 하셨다. 더욱이 해마저 내리쬐자 요

 

나는 기절할 지경이 되었다. 요나는 죽고만 싶어서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

 

이 낫다.”고 투덜거렸다.

 

하느님께서 요나를 타이르셨다. “아주까리가 죽었다고 이렇게까지 화를 내다니, 될

 

말이냐?”

 

요나가 대답했다. “어찌 화가 나지 않겠습니까? 화가 나서 죽겠습니다.”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너는 이 아주까리가 자라는 데 아무 한 일도 없으면서 그것이 하루 사

 

이에 자랐다가 밤 사이에 죽었다고 해서 그토록 아까워하느냐? 이 니느웨에는 앞뒤

 

를 가리지 못하는 어린이만 해도 십이만이나 되고 가축도 많이 있다. 내가 어찌 이

 

큰 도시를 아끼지 않겠느냐?”

 

 

 

복음 루가 11,1-4

 

예수께서 하루는 어떤 곳에서 기도를 하고 계셨다. 기도를 마치셨을 때 제자 하나가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같이 저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십시

 

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가르쳐 주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온 세

 

상이 아버지를 하느님으로 받들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날마다 우

 

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오니 우리의 죄

 

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옛날에 어떤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할아버지께서

 

낮잠을 주무시면서 아주 깊은 잠에 빠져 계실 때, 이 할아버지의 장난꾸러기

 

손자 아이가 장난삼아 할아버지의 코밑수염에다가 된장을 발라 놓았습니다.

 

주무시고 계셨던 할아버지께서는 강하게 나는 냄새로 인해서 잠에서 깨신 뒤

 

에 깜짝 놀라 소리치십니다.

“방 안에서 더러운 냄새가 난다! 방 안에서 더러운 냄새가 나~~~”

할아버지는 여기저기 다니시면서,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소리치셨지요.

“세상이 썩었나봐. 세상 어디를 가도 악취가 난다! 온 세상이 썩어 버렸어.”


 

그러나 그 누구도 아무도 할아버지의 외침을 믿어 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

 

람들은 그 할아버지를 보고는 “망령이 드셨군. 정신이 나가셨어.”하면서 혀를

 

찼습니다. 물론 할아버지께서는 이런 세상 사람들이 도리어 미쳤다면서 화를

 

내셨지요.


 

그런데 문제는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바로 그 할아버지의 코 밑에 있었

 

던 것이지요. 그 할아버지는 그 사실을 모르면서도 남을 탓하고, 세상을 탓하

 

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 문제의 해결은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을

 

까요? 그 할아버지의 코 밑만 깨끗하게 닦아주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것입

 

니다. 그러나 그 할아버지가 코 밑 닦는 것을 거부한다면 계속해서 그 문제는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도 이렇지 않을까요? 자기 자신에게 늘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남들에게 문제가 있다면서 남들에

 

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자기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늘 그 문제가 남아 있는 것이 아

 

닐까요?

오늘 복음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주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이 기도를 미사 때마다, 그리고 일상 삶

 

안에서 자주 바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도를 바칠 때마다 약간 찔리는 부

 

분이 한군데가 있습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먼저 내가 용서를 한 뒤에 주님의 용서를 청하고 있지요. 그런데 우리는 살면

 

서 용서하는 것을 거부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내가 용서받는 것은 당연하

 

게 생각하면서, 나를 통해서 다른 이를 용서하는 데에는 얼마나 인색했었나

 

요?

나의 구원에 관한 문제 역시 다른 사람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 구원이란 것도 나의 행동거지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과 용

 

서를 세상에 뿌리면 뿌릴수록 나의 구원이 가까워지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

 

람들의 사랑과 용서만을 청하면서 그 구원에 멀어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내 모습은 어떤가요? 과연 주님의 용서를 받을 만한가요?


 

 

 

          아주 천천히 소리 내어 주님의 기도를 정성껏 바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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