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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396) 뿔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10-06 조회수675 추천수5 반대(0) 신고

2005년10월6일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성 브루노 사제 기념 ㅡ말라기3,13-20ㄱ;루가11,5-13ㅡ

 

         뿔

            이순의

 

 

학교에 갔습니다.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의 엄마를 부르시라고 간청을 드렸건만

그래도 기어이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막상 거절을 못하고 보니

1학기 임원어머니께 죄송하여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 때도 요청을 받았는데 공부를 잘하는 아이의 자모를 뽑으시라고

극구 사양을 해서 제가 이겨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2학기 임원어머니는 제가 지고야 말은!

마지막 중간고사 시험감독관으로 교실에 섰습니다.

작년에도 해 보았더니

그거 엄마들을 벌 세우는 것이드라구요.

어떻게 어미의 심정으로 그렇게 모질은 감독을 한답니까?!

제 생각에는 도저히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냥 눈 딱 감고 말지 어떻게 생때같은 자식을 감시하겠다고

나서라는 말입니까?

그래도 거절하지 못했으니 교실에 섰습니다.

그런데 경험 때문이었는지 매사가 예전 같지는 않았습니다.

시험시작! = 감상시작!

아이들도 제 사활이 걸린 문제라서

저의 신경을 곤두 세워야 할 만큼의 이상한 일은

당연히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저학년 때와 다른점이 있다면

시험시작! 시험 끝!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친구들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밖으로 나가버린......

나머지 전체 친구들은 시간에 쫒기느라고 옆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에는 살펴보지 못한 구경을 하느라고.....

 

모두가 장가를 간다면 식솔들을 거느릴 수 있는 조건입니다.

그런 기운의 친구들이 저렇게 좁은 책상에 의지해

하루 하고도 365일,

유치원을 제외하고라도 12년째 견디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게 있었습니다.

덜렁한 제 아이를 생각해 보더라도

교실 뒷편에 있는 사물함의 문짝들이 온전치 못해야 맞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렇게 많은 사물함의 문고리들은 온전했습니다.

자물쇠가 채워진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그 걸고리가 어작이 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분명히 열쇠를 잊어버린 친구가 있었을 것이고

급하게 필요한 물품이 갖혀있을 때도 있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억센 기운으로 발길질이라도 해서

걸고리 뿐만 아니라

목판으로 된 문짝이 덜레덜레 할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책상도 걸상도 모두가 멀쩡합니다.

그렇다고 아이들의 발육이

순한 탓이라고 보여지지는 않았습니다.

 

우리 집에는 변기 덮개가 자유입니다.

처음에는 낡아서 뜯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새로 사다가 끼우는.

그런데 그걸 몇 번 하다가 보니

덮개 탓이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누군가의 엉덩이에 쇠망치가 달려있을 것 같은.....

그래도 여자인 엄마랑, 그래도 남자인 아들이랑,

둘이 쓰는 변기에 쇠망치를 휘두를 엉덩이는

하나 뿐일거라는 결론에 봉착하고.

새로 산 덮개의 나사를 단단히 조여 놓았습니다.

그런데 또 몇 일이 가지 못하고 미끄러져

그만

차가운 사기 변기통에 어미의 엉덩이가

번지점프를 하고 말았습니다.

<너? 제발 가만히 앉아서 똥 쌀 수 없어? 이게 뭐니? 엉덩이에 뿔 달렸니?>

<나는 가만히 앉아있는데 덮개가 그런단 말이야.>

결국 용변을 볼 사람이

앉을 때 덮개를 바로 놓고 앉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미끄러지지 않고 앉아있어야 하는 몫도

용변자에게 지워진!

진작에 그렇게 할 걸!

그런데 용변을 보다가 자주 미끄러지는 불편을 격는 사람은

여자인 엄마가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에는 제 녀석이 덮개를 고정하느라고

낑낑거리고 있었습니다.

저렇게 좋은 황소의 기운을 동원하지 못하고

맨날맨날 여리디 여린 엄마의 기운을 소진하느라고

힘들었던 순간들이 몹시 아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그 고소함이란! 히~!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아빠가 집에 오셔서

그만

예고도 없이

미끄덩 하고 추락하는 바람에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이게 뭐야?>

<아! 그거요. 용변자 책임용으로 바뀌었으니 당신도 그렇게 알아서 누도록 하세요.>

하하하하하!

 

그런데 그런 아들들이 30명도 넘은 수가 교실에 있는데

그 사물함의 걸고리는 물론 문짝 하나도 발길질 따위로 

작살이 난 게 없어보이니 신기하여!

책상도 살펴보고, 걸상도 살펴보고, 교탁도 살펴보고,

그런데 모두가 멀쩡합니다.

그 때!

시험 중이던 한 친구가 책상을 살짝 움직이느라고

살짝 들었다 놓았습니다.

소란스럽지 않은 작은 동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쇠덩어리 책상이 마치 종이장처럼 가벼워보이는....

내 학창시절로 돌아가 보았습니다.

목재로 된 책상들이 무거워서

둘이씩 짝을지어 뒤로 옮겼다가 앞으로 옮겼다가

다시 정 위치로 줄을 세우던 청소시간이 떠 올랐습니다.

물론 엄마는 여리디 여린 여자 학생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남아도는 기운으로 나뭇잎 한 장처럼 책상을 들어버린!

그러고 보니

우리 시절에는 우리가 기물을 이기지 못해서

막된 노동을 동원해야만 했었던 것 같고.

지금 시절에는 기물들이 아이들에게

고분고분 하도록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장비 또한 마음대로 구할 수 있는.....

 

학교에서 돌아 온 아들의 말!

<엄마! 누가 그거 뿌수느라고 발끝에 힘준데요? 그깟 몇 천원짜리 자물통이야 런치 한 번이면 그냥 절단인데.... 그리고 요즘은 장비가 흔해 빠진 세상이라서 물론 학교에도 런치가 있지만 집에서 가져오는 아이들도 많아요. 그런데 기운 쓸 일 있으면 수학문제  하나라도 더 풀라는 세상이라구요. 엄마때 처럼 물질이 귀하지가 않아서요. 문짝을 부술 만큼 급하게 구할 것도 없구요. 그렇게 급하면 요즘아이들은 주머니에 돈 있는 세상이잖아요. 필요한 걸 가서 사버리든가 아니면 가까운데 가서 그냥 런치 하나 사오고 말아요. 집에 까지 가서 가져오지도 않아요. 그런데 엄마는 야만인 처럼 어떻게 사물함 문짝을 부술 생각을 다 해요? 우리들은 3년 동안 학교를 다녀도 그런 생각을 해 본적이 한 번도 없는데?>

 

시험감독을 다녀와서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 시절에도 어머니 시험 감독이 있었든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아이들이 열쇠를 잊어버리는 일은 다반사 일 것이고....

그런데 구세대 엄마는

잘려나간 알록달록 이쁜 열쇠들이 왜 그렇게 아까운 생각이 드는지요?

그래도 사물함을 뿌수는 것 보다는

확실하게 비용이 절감 되는 조치이기도 합니다.

열쇠집 아저씨네라도 잘 살면 되지요. 뭐!

 

ㅡ너희가 악하면서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루가11,13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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