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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98) 몹시 흥분!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10-08 조회수924 추천수10 반대(0) 신고

2005년10월8일 토요일 ㅡ요엘4,12-19.21,20;루가11,27-28ㅡ

 

     몹시 흥분!

                  이순의

 

 

<지금 몇 시니?>

<몹시 흥분입니다.>

<아이참, 지금 시간이 몇 시냐고?>

<몹시 흥분이라니까요.>

다급해 죽을 지경인데 아들녀석은 장난끼 반에 진담을 반 씩이나 섞어서 시간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냥 다가가서 패대기를 처서 두둘겨 주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진짜로 몹시 흥분을 하고 말았다.

갑자기 산에서 내려온 짝궁이 새벽에 들어왔다가 잠깐 눈을 붙이고 남부터미널에 가야한다는 것이다. 결혼 20년 동안 미운참이야 여러 번 있었지만 살다보면 어쩌다 겪게 마련인 순간이었고, 올해의 내 마음은 주님께서 득단의 조치를 취하시는 관계에 놓여 있는지 오든가 말든가 시큰둥 하고 있었다.

 

입성만 갈아입고 이른 아침에 나서는데 워째서 짠하니.....

<태워다 줄까?>

<그러면 전철 오르락 내리락 안하고 갈아타지도 않고 나야 고맙지.>

그래서 초보운전자가 지도도 보지 않고 짝궁의 오랜 방랑의 경험만 믿고 운전대를 잡았다.

<좌회전 ,우회전, 깜박이 끄라니까......>

남들이 운전하는 차만 그렇게도 많이 평생을 타본 짝궁은 자칭 차에 대하여 박사였는데 깜박등이 회전을 하고 나면 제자리에 자동적으로 돌아 온다는 아주 쉬운 원칙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회전만 하면 깜박등을 끄지 않는다고 구박을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남편이 해 주는 운전연수는 절대로 못한다는 말이 실감이 나려고 했다.

 

그런데 지상과 지하를 오르락 내리락 했을 감각이 그만 엉뚱한데로 인도를 하고 말았다. 터미널이면 군중이 몰리는 곳이므로 여기저기 이정표 뿐만 아니라 도로에도 수 없이 표기가 되어있을 텐데 도무지 남부터미널이라는 ㄴ자도 발견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찾느라고 -우회전을 하라. 좌회전을 하라.- 요구사항만 계속 되고 있었다. 그래서 차를 세우고 택시기사님께 여쭈어 보자고 했다.

 

그런데 이남자?

 

내려서 택시타고 갈테니 그냥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짐작으로 보아서 분명히 근처일게 빤 한데 그거 여쭙는 것이 무슨 자존심에 핵폭탄 떨어질 일이라고 그냥 내리겠다는 것이다. 차마 동반자 낭군님을 낯선 도로에 떨궈 놓는 것 같은 허허로움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다시 원하는 방향으로 U턴을 해 주기로 했다. 그런데 바로 앞의 사거리에는 U턴 표시가 없고 좌회전 표시만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음 사거리에서 U턴을 하자고 말을 했더니 -초보라 어떻구 운전이 미숙해서 저떻구- 마치 면허증도 없는 자기가 교통 법규에 대하여 천재처럼 굴었다.

 

나는 몹시 흥분을 하고 말았다.

<이봐요. 무면허! 좌회전이 뭔지 U턴이 뭔지 표시공부 부터 하고 타시지요? 저는 도저히 기초지식이 없는 아저씨랑은 함께 동승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개도 안먹을 그 갖잖은 자존심 때문에 서있는 택시 기사님께 모르는 길도 묻지 않고 여기서 몇 바퀴를 도는 그런 아저씨랑은 같이 못 다니겠습니다. 그리고 깜박등은 돌고나면 저절로 꺼지거든요. 운전자가 그거 신경쓰지 않아도 되거든요. 내리셔서 평생토록 운전 잘하는 남의 차만 타고 다니시지요?!>

 

이쯤 언어가 거칠어지고 보니 사태의 심각성을 짐작할 뿐만 아니라 직접 운전을 해 보지 않아서 몰랐던 차의 기능을 그제서야 깨우치고 있었다.

<인정함세. 깜박등 모른거랑 좌회전 표시랑 U턴 표시가 다르다는 것을 구별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인정하네.>

그래도 내리기는 싫었던가 보다. 결국 나의 고집으로 직접 택시 기사님께 여쭈어 보았다. 계속 U턴을 할 것이 아니라 직진으로 두 블럭만 가면 되었던 것이다.

 

이정표와 도로 위에 남부터미널이라고 써진 글씨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이정표를 보며 그대로 따라서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새로 나타난 이정표에는 남부터미널이라는 표시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그 근처 어디일 게  빤하니까 또 물어봐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입을 꾹 다물고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이었다. 결국 보행자 신호앞에서 차를 세워 보행자에게 여쭈었더니 10m전방이라는 것이다. 짝궁을 내려주고 돌아오면서 생각에 잠겨 또 몹시 흥분을 하고 말았다.

 

<저 사람이 20년 동안 저렇게 살았을 것이야. 그걸 고치지 못하고 오로지 삭히며 희생해버린 사람은 나였고, 그 불편은 짝궁만의 것이 아니라 고스란히 나와 아들의 불편이었고 우리 가정의 불편었고! 본인은 또 얼마나 더 불편했을....?>

 

지체되는 바람에 성당에 가야할 시간이 늦어졌다.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고... 분주한데 힐끔힐끔 처다보는 시계는 자꾸만 몹시 흥분을 가리키고 있다. 시간은 부족하고, 준비는 안되었는데, 몇 분 남았는지 보려고 자꾸만 자꾸만 시계를 바라보는데 시간은 가르쳐주지 않고 몹시 흥분이라고만 알려준다. 몹시 흥분이 되어서 시계란 녀석을 칵 때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급할 때 더 급하라고 휴대전화기가 소리를 지른다. -몹시 흥분하지 마세요. 몹시 흥분하지 마세요. 바쁜데 미안해요. 몹시 흥분하지 말고 받으세요.- 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발신자 이름이 <짝궁>이라고 써져있다.

 

<여보세요.>

<잘 들어갔는가? 마누라 걱정이 되어서 전화했네,>

<아이참! 성당에 늦었단 말이야.>

<내 기도랑 많이 허소. 나는 예수님 앞에 갈때는 마누라 빽만 믿고 가네.>

그런데 워째 그 말이 그렇게 눈물이 나지?

 

ㅡ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키는 사람이 오히려 행복하다." 루가11,28ㅡ 

 

 

성당에 다녀오는데

재건축 공사장의 높은 천정 벽에

저런 운동화가 걸려있었습니다.

점심밥을 드시러 간 어느 가장의 운동화였습니다.

그 남편은 저 운동화만 지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 켤레의 운동화 값도 지키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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