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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04) 나를 유혹하지 마.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10-19 조회수1,081 추천수11 반대(0) 신고

2005년10월19일 연중 제29주간 수요일 성 요한 드 브레뵈프 사제와 동료 순교자, 또는 십자가의 성 바오로 사제 기념ㅡ로마서6,12-18; 루가12,39-48ㅡ

 

         나를 유혹하지 마.

                            이순의

 

 

 

가을이 땜시!

가을이 땜시 참!

가을이는

유혹하러 오는가 보다.

재건축으로

많은

감나무들이

제 자리를 상실했지만

아직

터가 그대로인 곳에는

제법

연세 출중한 나무들이

길손을 유혹한다.

 

 

전에는

간혹

그 고움이

요사라도 부릴 적이면 

슬쩍

손을 대서

품은 적이 있었는데

사진을 찍고 보니

그게

그렇지 못하다.

혹시

못 이긴 흑심이라도

들킨다치면

분명히

다음 번 만남은

허사일 게 뻔한!

 

 

 

그래서

화려한 냄새와

향긋한 빛깔과

놀다가

놀다가

그만

돌아서는.....

그 달콤한 기억도

그 생생한 입맛도

아이구야~~!

미치갔구나.

너여야만 되는데

상점에서

얼마든지

살 수 있는 가을이 말고

지금

내 혼을 따간

너여야만 하는데

워짠다냐?

 

 

먹고잡다.

대봉!

가을아,

제발

나를 유혹하지마라.

너에게 손이가면

후사를 기약할 수가 없어. 

우리집 화단에는

너처럼 잘난 감나무가 없거든.

가을이 땜시!

가을이 땜시 참!

가을이는 시험하러 오는가 보다.

 

 

 ㅡ생각해 보아라. 도둑이 언제 올지 집주인이 알고 있다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을 것이다. 사람의 아들도 너희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올 것이니 항상 준비하고 있어라. 루가12,39-40ㅡ 

 

.....................................................................................................

 성당에 다녀오다가 올 해도 어린 추억을 떠 올리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

 

 -제 묵상글(187)번을 다시 올려 봅니다. 읽으신 분들은 읽지 않으셔도 되는.....-

               

                올해도 장도감을 샀습니다.

                                                 이순의

 

 

친정 아버지의 기일이 다가와서 연미사를 청하려고 성당에 가는 길이었다. 노상에 작은 트럭이 서 있고 과일에 관한 산해진미를 채우고 있었다. 그런데 맨 앞쪽에 싱싱하고 홍빛이 보드라워 보이는 대봉이 눈길을 끌었다. 곧 터질 듯이 탱글탱글한 살갗이 터지지도 않고 그 신선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벌써 서리가 내렸는지 계산을 해 보았다. 아직 서리가 내리지 않았다면 저 감은 진품도 명품도 아닌 것이다. 장사속에 의해서 카바이트 처리로 땡감을 홍시로 변형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대청봉에는 눈이 오셨다는데 남도의 고향에는 아직 서리가 내리지 않았을게다. 그렇다면 저 감이 설악산 출신이면 진품이고 남도 출신이면 위조품인 것이다.

 

감에도 종류가 많다.

대봉이라고도 하고 장도감이라고도 하는 아가들 머리만 한 것에서 부터 떫은 고약이 도를 넘는 독한 놈도 있고, 풋냄새 풀풀 나는 초록 짙은 때 부터 단 맛을 내는 단감, 심지어는 너도 감이니 나도 감이라고 주장하는 새끼손톱만한 나도감 까지! 감나무 한 그루도 갖지 않은 집이 거의 없었을 만큼 감은 우리 주변에서 풍요했었다.

 

어찌 되었든지 신호등 앞의 트럭에서 장도감 두 개를 샀다. 값도 비쌌다. 그래서 두 개 밖에 못 샀다. 검정 비닐 봉지에 장도감 두 개를 탈래탈래 들고 성당 사무실에서 나를 낳아주신 아버지의 영혼을 비는 미사를 청하고 나왔다. 그런데 로비에서 막 나오니 할아버지가 앉아 계신다.

 

우리 성당의 만남의 방에는 하루도 빼지 않고 성당에서 하루를 넘기시는 할아버지가 계신다. 가끔 커피도 뽑아 드리고 손에 먹을게 있으면 나누어 드리는 할아버지인데...... 순간의 생각이 대봉 두 개가 엄청 아까웠다. 여름 내내 고생하고 와서 야윈 몸으로 쉬고 있는 짝궁이랑 먹을건데..... 할아버지가 달라고도 안했는데 순간이 싫었다. 더구나 봉지도 검정색이라 보이지도 않는데..... 먹을게 있으면 맨날 나누어 먹은 습관이 또 나누어 먹자고 했던 것이다.

 

에라! 그냥 나누어 먹자!

한 개는 짝궁 거니까 남기고 한 개만 그 자리에서 쪼개었다.

강원도 출신 진품인지, 남도 출신 카바이트 작업품인지는 모르지만 그 속살 만큼은 대봉= 장도감 진품이 확실했다. 홍색이 선명하고 실처럼 결이 져 있으며 날랑날랑한 촉감이 입에서 설설 녹게 생겼다. 으~! 맛있것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성호도 안 긋고 한 입에 베어 드신다. 다시 성호를 그으시고 드시라고 잔소리를 했다. 할아버지는 아무렇게나 성호를 그으셨다. 마치 귀여운 악동이 홍색 고운 장도감 앞에서 마음이 빼앗긴 듯이 장난스럽게 웃으셨다. 옆에 앉아서 나도 먹었다. 그런데 진짜 맛이 있었다. 우리네 사람이 하는 일은 별로 없는데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이 장도감을 이렇게 크고 맛있고 색깔곱게 만드시느라고 여름이 바빴을 것이었다.

 

나는 가을이면 언제나 장도감=대봉을 산다.

 

<내 친정에 늙디늙은 장도 감나무가 있었습니다.

너무 늙어서 한 해에 몇 개도 달리지 않았습니다. 감의 크기가 아이의 머리만 하고, 떫은 맛이 고약 한데다가, 너무 너무 오래 살아서 나무의 키가 하늘 밑에 머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 감나무에는 누구도 오르지 못 했습니다.

 

찬서리가 내리고 그렇게 고약한 떫음이 보드란 홍시가 되어 성정이 누그러 질 때면 까치가 날아오시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서야 아버지는 긴 대나무 장대를 들고 그 위험한 하늘 밑까지 올라 가셨습니다. 까치밥 두 개를 남기시고 모두 따셔서 으깨지지 않도록 옆구리에 걸친 작은 자루에 담으셨습니다.

 

너무 보드란 홍시를 들고 방 안에 들어오시면 손으로는 먹여주시지 못 했습니다. 꼭 수저로 떠서 막내딸의 입에 넣어 주셨습니다. 그 맛이 얼마나 차고 달고 시원한지! 나는 그 향기로움이 그리워 질 때면 가끔 시장에서 비싼 값을 내고 홍시 장도감을 사가지고 옵니다. 그리고 아들을 앉혀놓고 내가 아버지 처럼 하늘 밑의 감을 따다가 먹여주는 마음으로 꼭 수저로 떠서 먹여줍니다.

 

그 맛은 분명히 어린시절에 아버지께서 먹여 주시던 그 장도감 맛이 아닙니다. 까치가 쪼아서 먹은 구석은 아버지께서 떠서 드시고, 말짱하게 좋고 깨끗한데는 떠서 저에게 먹여주시던.....!

지금은 그 맛이 아니어도 제 아들에게 외할아버지의 사랑얘기를 들려주면서 먹입니다. 너무 들었던 이야기라서 외웠을 법도 하지만 외할아버지의 사랑 얘기는 아직도 싫증 내지 않고 장도감을 낼름낼름 받아 먹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 가시기 전에 늙은 장도감 나무는 베어 버리셨습니다. 그래도 시장 골목에서 그 장도감을 사야하는 내 마음의 고향은 그 감나무와 함께 아버지가 계십니다.     1998년 가을에>

 

어제 사온 장도감은 아직도 그대로다

짝궁이 아들에게 먹으라 했고, 아들은 아빠더러 드시라 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한 개를 더 사와야 할 것 같다.

 

ㅡ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총과 평화를 여러분에게 내려 주시기를 빕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에페소서1,2-3ㄱㅡ 

 

 

 

 

 

 

성당에 다녀오다가 가을이가 보고 싶어서 바로 집으로 오지 않았습니다. 돌아 돌아서 재건축을 하지 않으신 성당 형님네 단감나무 밑으로 찾아 들었습니다. 그런데 가을이를 사랑하는 것은 저 만이 아니었습니다. 형님네 대문 지붕에는 저녀석이 저를 내려다 보다가 졸다가..... ㅎㅎㅋㅋ

부러웠습니다.

짝궁이 곁에 있을 때면 언제나 성당 형님네라는 미명하에 폴짝 뛰어서 단감을 따 주었는데.... 키가 작은 자케오인 나는 저녀석만 부러워 하다가 이렇게 사진으로만 벗님들께 선물합니다. 맛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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