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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05) 짝궁이 용궁에 다녀왔다는데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10-20 조회수854 추천수9 반대(0) 신고

2005년10월20일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ㅡ로마서6,19-23;루가12,49-53ㅡ

 

          짝궁이 용궁에 다녀왔다는데

                                            이순의

 

 

 

석촌 호수의 이름 모를 콩알 버섯들

 

 

산에서 철수를 준비한다는 짝궁의 전화가 왔다. 내 인생이 아무리 힘들었어도 올 해 여름은 정말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심적인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짝궁은 멈추지 않는 시간이 있어서 다행히 빠저 나오는 듯 하다.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노동이라는 물에 고생이라는 밥을 말아 먹으며 지겨운 여름을 났다는 것을 알고있다. 나는 여기서 물질적 심리적 압박만 받았지 노동이라는 육신적 고통은 없었다. 그러나 짝궁은 그 모두를 살아낸 여름이었다. 그런데....

 

<토끼가 용궁에 갔다왔네.> 라고 전화가 왔다.

 

아들녀석은 그 말의 뜻을 알아듣지 못해서 자꾸 물어온다. 토끼가 용궁에 간 이유는 속아서 갔다. 간을 노리는 자라의 꼬임에 넘어가 용왕님을 알현하는 영예를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토끼가 용궁에서 나오지 못하면 그 토끼는 죽은 것이다. 그런데 토끼가 용궁에서 나왔기 때문에 이야기는 재미가 있고 살만한 내용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짝궁이 여름을 살았을 적에는 그만큼 생사의 기로에서 헐떡거렸다는 말이다. 그런데 용궁에서 나왔다는 말은 죽지는 않았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이다. 어떤식으로든 양호하다는!

 

가을 소출마저 잃게 되면 죽으려고 마음을 먹었다는 것이다. 자식의 고3을 이지경을 만들은 자책감과 망해 먹을 돈은 있었어도, 동생들이랑 같이 살아 볼 욕심은 있었어도, 자식과 아내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가을 소출이 어긋나면 더 이상의 남편과 아비의 자격을 스스로 박탈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그런데 용궁에 갔다왔으니 살아서 돌아온다는 소식이었다. 여름이 그토록 힘들었어도 나는 여기서 주님의 뜻을 가늠하고 있었다. 자식을 가르치는 것도 하늘의 뜻이라고!

 

소출이 봄부터 풍부했다면 나 라고해서 아들에 대한 욕심풀이를 하려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모든 것은 사람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여름이 되면서 얻어 온 돈들조차 바닥이 나고.... 자식이 스스로 두 과목 뿐인 학원을 그만 두는.... 그 지경에 이르자 여름까지는 드렸던 어머니의 생활비를 중단했다. 그게 가장 마음에 걸렸으나 어머니는 막내가 와서 함께 살고있기 때문에 꼭 의무감을 가지면서 까지 생활비를 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올 해도 친정가족들의 도움으로 여름을 살아냈다. 위급할 때 마다 그것이 나의 운명처럼 되어버렸다. 그래도 근년에는 잘 버텨냈는데.... 올 해 다시.....

 

나는 불안해져 버렸고, 또 빌려 온 돈을 못 갚게 된다면 도대체 친정식구들에게 얼마의 금전을 삼켜버리는 몰염치한 공룡이 될지를 모르는! 그동안 이자는 커녕 원금조차 포기하고 사는데 또 올해 덤으로 얼마를 더 덤텡이를 쒸우게 될지 모르는! 나는 득단의 조치를 선택했다. 어머니의 돈이라면 끔찍히도 아껴드렸던 마음을 접었다. 그리고 막내동서를 보게되면 반지라도 해 주려고 둔 돈을 털어냈다. 지금까지 내가 생각해 온 생각들이 잘못된 것이라고 인정한 것이다. 어머니의 돈을 긁어 낼 궁리만 하는 아들들도 있는데 어머니의 돈을 모셔놀 생각만 하는 나의 모순을 덜어내기로 한 것이다. 어머니의 자식들을 위해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팔아서 해 주어봤자 어머니도 모를 뿐만 아니라 시동생들은 더욱 웃기는 짠밥이었고, 그 빚을 지면서도 동생들에게 단 돈 1원 한 장의 걸림이 없도록 배려해 주어 보았자 제 뱃속 생각만 하는.....

 

물론 알아주기를 바라고 배려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마음이 바뀌었다. 나는 그 통장을 털어서 작지만 그 돈을 친정쪽으로 송금을 해 주었다. 그토록 못된 시동생들을 응징해 온 내가 결혼 20년 만에 내 손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가서 그 돈을 털어냈다. 그 돈을 마련해 드리느라고 나는 어머니께서 이사를 하실때 이렇게 저렇게 머리를 굴려서 한 푼이라도 아껴서 만들어 드린 돈이다. 어머니의 막내 아들에게 나처럼 반지 한가락도 못해주는 어머니 되지 말으시라고 마련해 드린 돈이다. 그런데 내 손으로 긁어냈다. 그러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도대체 어머니가 어머니의 자식들이 나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상상도 못하실 것이라고! 어머니 큰자식의 무지한 인생만으로도 살을동 말을동이었을.....

 

수도 없이 마음을 비우며 살아 온 인생이지만 올 해는 더 큰 마음을 비워버렸다. 지난 세월이 내 자식에게 해 줄 것을 못해 주며 시댁식구들이랑 살을 생각만 해 왔다면 이제는 그러지 말자고. 내 자식에게 해 줄 수 없으면 어머니께도 안해도 되는 것이라고! 지금이야 자식이 컸으니 굵은 것은 못해 줘도 잔 돈이 많이든다. 그래도 자식은 자식이지 부모는 아니라는 것을 감안하기로 했다. 앞으로는 짝궁만 어머니의 자식인 것 같은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나만 빚지면서 동생들까지 먹고 사는 그런 무모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 당장 시어머니께서 쓰러져 누우시면 하루 24시간 중에서 자식들 수 만큼 배정하여 돌볼 것이다. 이토록 독하게 나는 변해가고 있다.

 

그들의 이기심인지 무지함인지 모르지만 이기심이든 무지함이든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나도 이기심이 있고, 무지가 있으며, 그들의 수준대로 맞추며 살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짝궁이 용궁에서 어떻게 나온지를 모른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돈은 내 수중에서 나가고 일은 짝궁이 하며, 팔기는 시동생이 판다. 나의 그토록 강력한 반대에도 짝궁을 이겨내지 못했다. 지금 현재의 시점은 도로아비타불이다. 내 수중에 들어 온 돈이 없다. 생활비 겨우.... 그런데 짝궁은 용궁에서 나왔다고 하고! 역시 판매는 시동생이 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무엇인가? 급전이 필요하면 친정식구 동원해서 돈 빌려오는 버러지인생! 그게 20년 동안의 나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동생들에게 떳떳한 형이 되어야 하니까 어서 빨리 어머니 통장에 돈을 넣어드려야 한다는..... 나의 핏대는 거꾸로 흐른다. 내가 내 손으로 그 돈을 채워서 목지어 드린 것이고.... 동생들에게 모범적이지 못할 이유도 전혀 없다. 어머니의 셋째 아들이 내 살림을 거덜을 냈을 적에도 나는 어머니 뿐만 아니라 시동생들의 돈도 단 돈 1원 한 푼 축낸적이 없다. 그 피해자들에게 머리채를 잡혀서 수원 법원의 화단에서 뒹굴을 적에도 나는 어떻게든지 살을 생각만 했다. 누구에게도 분노한 적이 없었다. 포승줄에 묶여 재판 받으러 나와 식구 누구라도 찾느라고 돌아 볼 시동생을 생각해서 그토록 종종걸음을 쳤었다. 짝궁이 지금 어머니의 그 돈을 쓴다고 해서 무엇이 시동생들에게 떳떳하지 못한가?

 

그 세월을 형이랑 같이, 형에게 단 돈 1원한 장, 물 한 모금 드린 적 없이 살았으면 되었지, 짝궁 주제에 뭘 얼마나 더 동생들에게 떳떳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요즈음 형제들이 역어서 빚더미에 무너지는 가족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의 청렴한 결벽증 덕택에 그 만큼이라도 살아낸 것에 감사는 못할 망정 뭘 얼마나 더 떳떳하고 싶다는 말인가? 더 화가 나는 것은.... 왜 우리 친정에서 가져다 쓴 돈은 단 한 번이라도 갚아야 한다고, 그런 모습을 보인적이 없는가? 너네 엄마 돈은 구렁이 알이고, 우리 엄마랑 오빠랑 언니들 돈은 개똥이었냐?는 것이다.

 

더구나 나는 지금 짝궁이 얼마의 돈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물건들을 시동생들이 얼마에 팔았는지 얼마의 이익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내 살림 돌아가는 속내를 시동생은 알아도 나는 모른다는 말이다. 그러고 돈 없으면 친정식구 동원령이나 떨어지고.... 분명히 용궁에서 토끼가 살아나왔다고 했는데.... 나는 아는 것이 없다. 내 자식이 컸다. 짝궁의 그런 모습들이 나로 하여금 짝궁에게서 마음을 돌아서게 한다. 무조건 맹목적으로 내 선한 마음을 동하여 살았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짝궁이 돈을 벌어다 주면서 나에게 정당하게 요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언제나 빚을 먼저 얻어다가 제 단도리 먼저하고 나중에 갚아나가는....

 

용궁에서 살아남은 짝궁이 오면 제 엄마 통장에 돈을 넣어드릴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피해만 보고 사는 큰언니에게 일부라도 갚아 주어야 한다. 그런 돈으로 어머니의 아들 셋이서 먹고 살았다는 것을 그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올 해 여름에도 내 친정에서 돈이와서 내 자식과 내가 먹고 살았다. 혼인성사로 혼배를 했으니 그 계약을 깨뜨리는 일이 나에게는 곧 죽음이다. 그러니 그 계약은 결코 깨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삶의 방식은 나도 내 맘대로 살을 것이다. 나이 마흔 살 다된 시동생이 장가를 간다해도 이미 그 나이는 제 인생 제 알아서 가든지 말든지 할 나이이고..... 그 나이에 어머니가 해 주는 밥 먹고 살면 그 또한 제 알아서 할 일이고.... 내 자식이 컸고, 내 살 붙이가, 내 피 붙이가, 나와 내 자식을 위기에서 살려냈지 언제 시족이 나를 살렸더란 말인가? 짝궁을 살렸더란 말인가?

 

짝궁이 아직도 모르는 것이 있다. 어머니께서 사람이 그립고 사람의 손길이 그리운 연세가 되었다는 것을! 그러나 어느 제수씨도 그런 어머니의 만남이 되어 주지 않는다는 것을! 나에게 짝궁이 그렇게 하면 할 수록 나도 어머니를 거두기 싫다. 전에는 불쌍한 심정으로 라도, 신앙의 양심으로 라도,  돌아보았다. 그런데 내 자식의 고3을 이렇게 보냈을 적에는 나도 할 수 있는 것만 해야 한다는 것을 터득한 것이다. 아무리 마음을 동해도 인력으로 안되는 것은 안된다는 것을 절절하게 체험한 여름이었다. 어머니의 자식이 그 뿐이면 그 만큼만 해야 했는데.... 친정에서 돈을 타다가 시댁에 써 주는.... 받은 그들은 몰라도 내 가슴에는 한이 되어버린..... 이제는 그런 미친 짓은 하지는 않을 것이다. 용궁에서 나왔다는 짝궁은 나에게 비밀이 너무 너무 많다.

 

내가 그토록 발악을 했어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짝궁은 지금도 제 잇속만 차리고.... 제 동생하고 역어지고.... 나는 그들의 속을 전혀 모른다. 이제는 아예 함구불언하고 쉬쉬하여 어떻게 돌아가는지 짐작도 못한다. 그런데 짝궁은 지금 아프다. 오는 대로 병원부터 가야한다. 나는 얼른 지난 겨울을 생각했다. 산에서 내려온 짝궁은 겨울내내 내 곁에 있지 않았다. 돌아 다니느라고... 결국 옻닭을 먹고 병이 나니까 집에 들어와 몇 일 누웠다가 다시 나간! 저 인간은 병이 들어야 내 옆에 누울 인간인가? 그 세월을 그토록.....  말이 안 나온다. 진짜! 내 의지력으로 억지로 억지로 지탱해 온 가정이 아니던가?! 내 자식의 울타리를 상실하기 싫어서 눈물과 한을 삼키며 버티고 버텨 온 가정이 아니던가?! 그런데 용궁에서 살아서 온다는 짝궁이 지금 아프다.

 

<나는 저 인간이 아프면 그렇게도 끔찍히 생각한 제 엄마와 제 동생들에게 돌려 보낼 것이다. 이제는 너희들이 저 불쌍한 형에게 처가에서 돈을 타다가라도 갚아 주어야 한다고! 어머니도 어머니의 큰 자식이 얼마나 불행한지 그 고통을 느껴 보셔야 한다고! 꼭 그렇게 할 것이다. 꼭 그렇게 하고야 말을 것이다.>

 

†주님!

  짝궁이 산에 있는 동안에도

  주일이면 저는

  항상 두 몫의 헌금을 하였습니다.

  짝궁이 늘 함께 주일을 지키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으며

  꼭 두 몫의 헌금을 하였습니다.

  그 마음의 공로를 인정해 주십시오.

  당신을 향해

  변하지 않는 믿음으로

  언제 어디서나 일심동체로 살으려고 애쓴

  혼인 성사의 공로를 인정해 주십시오.

  그래서 아픈 짝궁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아멘.

 

ㅡ내가 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려고 온 줄로 아느냐? 아니다. 사실은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루가12,

 

 

  

이것도 버섯입니다.

상당히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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