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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06) 소식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10-21 조회수965 추천수8 반대(0) 신고

2005년10월21일 연중 제29주간 금요일 ㅡ로마서7,18-25ㄱ;루가12,54-59ㅡ

 

               소식

                    이순의

 

 

 

 

 

마당이 좁은데 마당가로 울타리 삼아서 배나무, 사과나무, 대추나무가 두 그루, 석류, 유자 살구, 탱자, 장도 감나무와 단감 나무는 쌍둥이 처럼 나란히, 그리고 이름 모를 나무들이 즐비해서 감나무 두 그루만 남기고 아저씨를 시켜 베어냈다. 그 뒷정리를 하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너무 우거져 그늘이 컸던 무화과 나무를 여름에 베어 둔 나무 토막까지 경운기에 실어 마을 공터로 날라야 했다. 마을 어른들이 돼지를 잡거나 소를 잡는 날이면 불을 지피고, 털을 태우고, 물을 끓이고, 고기를 삶는데 쓰시라고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

 

그런데 그 남은 잔가지들과 부스러기 이파리들을 태워 없애느라고 하루가 소진 되었다. 해는 서산으로 기울어 늬엿늬엿하고, 종일 덜 마른 잔가지들하고 씨름을 한 지겨움에 싫증이 났다. 그런데 황혼의 붉은 물을 이고서 형식만 경계인 대문 안으로 손님이 오셨다. 이 동네에 집을 사서 이사를 온 뒤로 찾아 오는 손님이 없었는데, 낯이 설기도 하고 찾아오는 이도 많지 않았는데, 해거름의 붉은 바다를 헤엄쳐 내 집 안으로 길손이 들고 있었다. 너무 반가운 얼굴이었다.

 

봇짐장수! 

 

다리를 심하게 절어서 한 발 두 발 걸음을 떼어 옮기는 게 보는 사람의 시각을 불안케 한다. 그런데도 머물지 않은 곳 없고, 가시지 않는 곳 없이, 티끌의 보폭이 태산을 이루며 다닌다. 공소의 우리 성당에 다니는 아짐네! 이 마을 저 마을을 그렇게 불편한 걸음으로 찾아 다니면서 양말이며 속 고쟁이, 베게 호청이랑, 버선 같은 것들을 팔러 다닌다. 어찌나 오랜 만의 반가움이던지 <오매! 아짐, 여그까정 오시요. 잉?> 하고 덥석 손을 잡았다. 그 무거운 짐을 손에서 놓으며 <오매! 이사 했다는 소식은 들었는디 이 집이었든갑네. 잉?>하시며 덥석 부둥켜 안으신다.

 

남은 쏘시불이야 아저씨께 마저 태우시라 부탁을 하고 안으로 들었다. 원래가 옛적부터 봇짐 장수들을 만나면 소식이 많았다. 마을의 인심이며, 여자들의 수다라든지, 가까운데서 부터 먼 산 넘고 바다 건너 온 소식까지, 진실이든 허구이든 바람을 따라서 바람의 생김대로 담아다가 바람의 모양대로 놓고 가는 소식이다. 아짐이 이런 봇짐장사를 하게 된 이유는 영감님이 병이 많으시기 때문이다. 수술을 많이 허셔서 위가 3분지 1도 남아있지 않다고도 하고, 쓸게가 없어서 날 음식을 드시면 절대로 안된다고도 하고, 창자가 몇 센치는 짧고, 뭐는 이어서 연결을 했고....

 

그런데 이번 겨울에도 담석증이 와서 수술을 하고 한 달째 입원 중이라고 한다.

<그런디 영감님 간병은 워짜고 이렇코 댕긴다요? 아짐!>

<수술 허신지 한 달 되야서 우선 허신께 혼자 그냥저냥 움직이실 수는 있어. 한 푼이라도 벌어야 가용을 쓰것은께 나왔제.>

건강하지 못한 영감님의 뒷바라지가 몇 년째인데 당신은 다리만 절름거리지 건강해서 아무렇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그 말씀이 안스러운 나를 안심시키느라고 당신이 절고 다니는 것은 아픈 영감님보다 나은 몫이라고 거듭 주장을 하신다.

 

그런데 객지 사람인 우리만 모르는 소식으로 섬 전체가 온통 시끄러운 소식을 풀어 놓으셨다. 농촌의 모습이 다 그렇듯이 자녀들이 자라면 거의 대부분이 도시에 나가 배우고 일자리를 구한다. 섬의 어느 마을에도 그런 막내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국가경제의 파탄으로 일한 인건비를 지불 받지 못해서 인건비 독촉을 하다가 사장의 부인을 해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 우발적인 양심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차를 타고 나가 자결해 버린 끔찍한 소식이었다. 그러니 바다 가운데 머문 섬마을에 바람은 얼마나 많은 소식을 물어다가 휘돌고 떠돌고를 반복했을 것인가?!

 

<부모네는 송장이라도 찾을라고 갔고.>

<부모라도 변상을 하지 않으면 그 송장을 안준다고 허데.>

<스물 여섯 살인게 미성년자가 아니라서 인건비를 수령해 가지 않으먼 부모헌티 살인죄 협상은 없다고도 허고.>

<그것이 말이여. 이것이고 저것이고 자식의 육신을 거둘려고 허는 것이 부모인디 우째 송장이라고 포기가 되것는가? 잉?>

<고것이 복잡헌갑데....>

<9시 뉴스에도 나와부렀당께.>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나옹께 그 뉴스가 그 사건인지 누가 알았것는가?>

<그랑께 썩을 놈이 노임을 못 받으먼 말임세, 늙은 부모네 둘이서 농사 일을 못 이기시니께 말임세 잉? 여그 들어와서 몇 년만 일을 해 갔고 힘 잡아서 나갔으먼 될 것인디. 뭔 지랄 한다고 도시서만 도시서만 살라다가 그 꼴이 되야 뿌렀는가 모르겟네. 잉?>

이토록 비통한 섬마을의 소식을 전해 주었다. 끔찍한 소식이었다. 객지에 나간 자식들을 그리워 하며 사는 섬마을 어른들의 철렁한 가슴들이 그대로 나에게 까지 전해지고 있었다.

 

<그나저나 아짐이 오셨은께 양말이라도 몇 짝 팔아디레야제라. 잉? 봇따리나 풀어 보시시요. 아짐?>

거친 나무껍질 같이 늙은 아낙의 손에서 두껍고 질긴 거죽 같은 보따리가 풀어지고 있었다. 그 속은 보물상자 속 같다.남여 양말과 색색이 고운 아이들의 양말, 노인들을 위한 두꺼운 스폰지 버선과 촌스러우리 만큼 선명한 색상의 고쟁이들, 그리고 고무줄 몸빼바지! 꼭 사고 싶을 만큼 예쁜 알록이 달록이 상보와 보드란 촉감의 베게호청, 그리고 잡다한 것들이 가득하다.

 

아저씨 드릴 양말 네 켤레와 내 양말 두 켤레, 그리고 연두와 꽃분홍 베게 호청을 골랐다.

<많이 사서 맛이요? 아짐이 오셨은께 정이로 사제. 잉?>

<고맙소, 아조 서울로 이사를 간 것이 아니라서 좋네요. 동네만 앵긴게로 이렇고 만나고 을매나 좋소? 잉!>

커피도 한 잔 타 드리고.

섬마을의 이런저런 소식을 뒤로하고 곧 어두워 질 회색 노을 속으로 발길을 돌리셨다. 봇짐 두 개를 이고 들고 나서는 아짐의 절룩거리는 뒷모습이 시리게 아렸다. 손에 들으신 보따리를 거들어서 들고 마을 어귀까지 따라 나갔지만 차마 돌아서지를 못하는 전율이 무거운 아짐의 고개더러 돌아서라 했나보다. 

 

<병원에 누어있지 않고 가고 싶은디 다 가는 나는 아무렇지도 않어요. 어서 들어 가시씨요.>

말씀을 놓으시라고 내가 그곳에 살을 적 부터 그토록 말씀 드렸건만 우리 공소에 주일학교 선생님이라고 기어이 말씀을 놓지 않으시더니 끝까지 경어를 쓰시며 나를 뒤로 하고 돌아서 가신다.

<주님. 저 아짐의 절룩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십시요. -아멘->

마당의 쏘시불은 다 타고 남은 재만 연기되어 어두운 노을을 따라 하늘에 섞이고 있었다.

 

ㅡ이 위선자들아, 너희는 하늘과 땅의 징조를 알면서도 이 시대의 뜻은 왜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무엇이 옳은 일인지 왜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 루가12,56-57ㅡ

 

 

< 같은 내용의 글을 올린적이 있는지 기억 나지 않고.... 찾아 보아도 보이지를 않고.... 섬마을 이야기를 많이 했어놔서..... 이 글은 97년 국가 경제 위기 후에.... 98년 겨울쯤 써 놓은 글을 옮겨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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