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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직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유일한 이유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5-10-21 조회수1,058 추천수15 반대(0) 신고
10월 22일 연중 제29주간 토요일-루가 13장 1-9절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다른 갈릴래아 사람 보다 더 죄가 많아서 그런 변을 당한 줄 아느냐?”



<아직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유일한 이유>


언젠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을 때, 앞뒤 좌우 온통 고국 성지순례 떠나온 유대인들로 가득 차서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3-4시간에 걸친 비행시간 내내 그들은 잠시도 가만있지 않더군요. 착륙하기 전까지 그들은 계속해서 한 목소리로 기도하고, 그들 특유의 노래를 경건한 목소리로 합창하더군요. 기대와 설렘이 잔뜩 담긴 목소리였지만, 노래 밑바닥에는 깊은 슬픔과 한(恨)이 깔려있다는 것을 즉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찬찬히 살펴보면 우리 민족 못지않게 한(恨) 많은 여정이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흡사하게도 이스라엘 주변에서는 고대부터 여러 강대국들의 부침이 거듭되었습니다. 이집트, 페르시아,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그 틈바구니에서 이스라엘은 늘 이리저리 끌려 다니고, 핍박받고, 굴종하고, 서러움의 눈물을 흘려야만 했습니다.


늘 압제받고 유린당하는 민족들의 가슴에 남게 되는 것이 가슴 사무치는 한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강한 반골기질이 생깁니다. 무릎을 꿇고 굴욕을 당하느니 목숨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번 뒤집어보자는 오기가 생깁니다. 한번 붙어보자는 저항의식이 생깁니다.


특히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의 피는 다른 지방 사람들보다 유난히 뜨거웠습니다. 투사 기질이 충만했습니다. 식민통치로부터 한번 독립해보자는 의식이 유달리 강했습니다.


갈릴래아 사람들은 주로 자신들의 종교 축일을 D-day로 삼았습니다. 축제가 다가오면 사람들은 의례히 성전으로 몰려들지요. 그들은 팀을 짜서 조직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축제가 무르익을수록 그들은 분위기를 점점 폭동의 분위기로 몰고 갔습니다.


역사가들은 이 사건에 대해서 기록하지 않았지만, 갈릴래아 사람들은 대규모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군중들의 협조도 잘 이루어졌습니다. 무장을 시작했고, 당장 뭔가 이루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로마 총독 빌라도 역시 만만치 않았습니다. 미리 낌새를 알아차린 빌라도는 성전 가까운 곳에 대규모 진압병력을 배치시켜놓았습니다. 그리고 폭동의 조짐이 포착되자 주저 없이 초기 진압에 들어갔습니다. 아주 강경하게 대처했습니다. 무자비할 정도의 진압이었습니다.


병사들은 폭동의 주동자들뿐만 아니라, 그냥 평범하게 성지순례 왔던 사람들, 노인들, 부녀자들, 아이들 할 것 없이 눈에 보이는 대로 창검을 휘둘렀습니다. ‘심심한데 뭐 재미있는 일 없나’ 기웃거리던 행인들조차도 처참하게 학살당했습니다.


갈릴래아 사람들이 흘린 피가 제물에까지 물들었다고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전하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전하는 사람들은 성전에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하느님의 진노를 받아서, 죄가 많기 때문에 그렇게 죽은 것이 맞느냐고 예수님께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질문에는 또 이런 의도가 내포되어있겠지요.


성전에서 학살되지 않은 우리들은 아마도 하느님의 벌을 피한 사람들이겠지요? 우리는 그나마 괜찮은 사람들이었기에 로마군대로부터의 학살을 피할 수 있었겠지요?

사실 성전에 온 갈릴래아 사람들의 수효는 전체 갈릴래아 사람들에 비교하면 단 몇 퍼센트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갈릴래아 사람들도 살해된 갈릴래아 사람들과 똑 같은 죄인이었습니다. 그들도 똑같이 하느님의 벌을 받아야 할 인간이었습니다.


학살된 사람은 더 죄가 많기 때문이 아니라 전체 갈릴래아 사람들을 대표해서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죽은 그들이나 살아남아 있는 우리들이나 사실 똑같은 죄인이나 다행히 죽음을 면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 말씀의 요지는 신속히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하느님 자비의 품안으로. 나는 아직 이렇게 살아있으니, 그런대로 괜찮은 사람으로 생각해주시나 보다 하는 착각에서 깨어나라는 것입니다.


오늘 아직 우리가 이렇게 살아있는 것은 천만다행한 일입니다. 회개할 기회가 아직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가 아직 이 세상에 남아있는 유일한 이유,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회개입니다.


회개는 한번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매일 눈을 떴을 때, 매일 새벽 미사를 시작하면서, 매일 아침 기도를 드리면서, 삼종기도 때, 잠자리에 들기 전에, 매일 되풀이되어야 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고, 또 그 맛을 안다고, 회개도 자주 해본 사람이 잘 합니다. 그리고 그 효과도 큽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하느님 품안에 머물기 위해, 끊임없이 성화된 삶을 살기 위한 가장 좋은 도구는 계속 되풀이되는 회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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