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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0월 26일 야곱의 우물 - 신앙 안에서 진정한 첫째는? ◈
작성자조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5-10-26 조회수918 추천수12 반대(0) 신고

연중 제30주간 수요일 - 신앙 안에서 진정한 첫째는?
 
[루가 13,22­-30]
그때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여러 동네와 마을에 들러서 
가르치셨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선생님, 구원받을 사람은 얼마 안 
되겠지요?”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그러니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있는 힘을 다하여라.
집주인이 일어나서 문을 닫아버린 뒤에는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 리며 ‘주인님, 문을 열어주십시오’ 하고 아무리 졸라도 주인은 ‘너희가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할 것이다.
그래서 너희가 ‘저희가 먹고 마실 때에 주인님도 같이 계시지 않았습 니까? 그리고 우리 동네에서 가르치시지 않았습니까?’ 해도 주인은 ‘너희가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악을 일삼는 자들아, 모두 물러가라’ 하고 대답할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들은 다 하느님 나라에 있는데 너희만 밖에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거기서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그러나 사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석할 것이다.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 『야곱의 우물』冊에 나오는 《매일성서묵상》내용입니다. ※

3년째 교구청에 근무하고 있다. 새벽 6시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미사를 
드리고, 7시 30분에 아침식사를 하고, 9시에 출근하여 점심식사 시간을 
빼고 줄곧 책상 앞에 앉아 업무를 본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아간다. 
유일한 낙은 본당 신부 때와는 달리 주일날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괜한 걱정이 생겨나고 있다. 마냥 이렇게 살아도 될까, 세상의 직업인처럼 말이다. 그래도 본당에 있을 때는 영적으로 해이해질 때면 간절히 기도하는 신자나 혹은 한두 시간씩 성체조배를 정성껏 하는 신자들을 보면서 자극을 받곤 했다.
또 인간적인 실수를 할 때면 충고를 해주는 신자가 있어 일상을 되돌아 보고 쇄신할 기회를 갖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기회가 없다. 그래 서일까, 한편으로는 참 잘사는 것 같은데 다른 한편으로는 신앙적으로 꼴찌가 되어가는 게 아닌가 싶다.
사실 신앙인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얼만큼 이루면서 잘 사는가?’ 하는 것보다는 ‘지금 이 순간 주님 앞에 다가와 그분과 얼만큼 하나 되어 살아가는가?’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적어도 세상에선 첫째이면서 신앙에서 꼴찌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비록 세상에서 꼴찌일지라도 신앙에선 첫째가 되어야 하겠다.
깨끗한 물도 한군데 고여 있으면 썩듯이 현세의 삶에 안주하며 살기 보다는 주님의 일상을 돌이켜보면서 매순간 그분과 하나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다. 그럴 때 우리는 신앙의 진정한 첫째로 거듭날 것이 분명할 터이다.
고병수 신부(제주교구청 사목국장)

 
※ 2004년 10월 27일 야곱의 우물 - (복음내용이 같은 날입니다) ※

♣ 꼴찌를 위하여 ♣

자로 잰 듯 정확하고 반듯한 모습이 다른 사람에겐 답답하게 여겨지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범생이’라는 말도 그렇게 똑 부러지는 모범적인 학생들을 
풍자하는 심리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이 범생이들의 특징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답답하다,융통성이 없다,또는 얄밉다 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함께하기엔 뭔지 불편하다는 심기를 드러내는 말이 아닐까 합니다. 질문을 던진 사람에게 하신 대답을 보면 예수께서도 그런 생각을 하신 것이 아닐까 하고 상상해 봅니다.
물론 질문자의 겸손과 걱정을 담은 물음으로도 이해할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러 온 사람이라면 나름대로 자신의 구원에 대해서만큼은 자신하고 있으면서 그런 질문을 던졌을 테니‘나(우리)는 구원받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좀 힘들겠죠?’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일단 그의 말에 동의를 표하신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러고 싶겠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쉽진 않을 것이다”라고 대답하고 계시니까요. 그런데 말씀의 끝부분을 보면 분명히‘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할 많은 사람들’ 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마지막 말씀은 첫째와 꼴찌에 관한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 구원에 가까이 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운명이 뒤바뀔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다시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자면 ‘얄미운 너(희)’와 ‘네가 제외시키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자리가 뒤바뀔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그러니 얄미운 생각은 접고 우리도 그 사람들도 모두 좁은 문을 통과하도록 힘쓰는 데 전력해야겠습니다.
 
                                      이정석 신부(전주 가톨릭신학원) 


†   【 안나의 묵상나누기 】   †

+   :)   +

어제도 고딩동문들과 은사님을 뵈옵는 하루였습니다. 30년 전. 앗!나가 영어선생님을 찾아가서 삶의 한 켠을 열어보여드렸더니.../
"얘야, 너는 하느님의 은총이로구나..."말씀하셨던, 그 한 말씀이 성서를 뒤로할 때도 나침판처럼 힘들었던 순간을 바른 길로 나아가게 했던 세월들을 되돌아보며, 2년전 인터넷을 통해서 세종게시판을 알아냈을 때 은사님명부를 찾아내어 전화도 드리고, 편지도 드렸던 한양여자대학 교수본동 612호까지 은사님을 찾아갔습니다.
강산이 변해도 세 번은 변했을 삼십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었음에도... 은사님의 가슴은 포근하였습니다. 이제는 함께 나이들어가고 있음에도 역시나 고우신 모습을 뵈오며 후배들과 함께 많은 지난 이야기들을 나누며 하하호호,까르르...*^^*
우리가 공부를 잘했다거나 못했다거나 하는 것은 하나도 기억을 못하셨습니다.(?) 공부란것이 그 시절에는 우리의 자존심과도 같았던 것이었지만...세월과 함께 공부란 눔은 우리의 삶에 그렇게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못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학교의 우등생이 사회의 우등생이 될 수 없음을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이 느꼈겠습니까. 인수분해가 혹은 미분 적분이 우리의 삶에 무슨 도움을 주었습니까. 물론 안나에게는 수학 문제 한 개를 더 못맞추어서 간호장교 시험에 떨어지어 삶의 또 다른 길을 걷게 되기는 하였습니다만.../공부보다 중요한 그 무엇이 숨어있었습니다.((*^_ _ _^*)) 하하, 앗!나의 생활기록부를 찬찬히 살펴보니 구석구석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아이라고 써있었습니다.
오늘 묵상글로 돌아갑니다.
 
더군다나 마지막 말씀은 첫째와 꼴찌에 관한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 구원에 가까이 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운명이 뒤바뀔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운명이 뒤바뀔 것이라는 말씀에서 눈길이 자꾸자꾸 모아집니다.
운명이 뒤바뀐다는 말씀은 참으로 무섭게 느껴지기조차 합니다.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있는 힘을 다하여라. 

집주인이 일어나서 문을 닫아버린 뒤에는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인님, 문을 열어주십시오’ 하고 아무리 졸라도 주인은 ‘너희가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고 할 것이다.

상상의 나래를 동원하여 하느님 나라의 잔치날을 그려보니 운명이 뒤바뀐만큼이나 
가슴에 와 닿는 말씀입니다. 나를 모른다고 하실 그분을 생각하니 눈 앞이 캄캄합니다.
어디가 좁은 문입니까. 어서 빨리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을 다하여야겠습니다.

문을 열어달라고 외치는데, 밖에 서서 있는 힘을 다하여 문을 두드리는데, 아무리 졸라도, 아무리 땅을 치며 통곡을 하여두... ‘너희가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고 하실 그 때를 묵상해봅니다.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을 가슴으로 붙들며 주님께 기도합니다.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 누구도, 그 누구도...한 사람씩 이름을 불러봅니다.

제일 먼저 안나의 이름을 넣습니다. 그리고 제 남편의 이름도 넣어봅니다... 그리곤 우리 모두에게 가능성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지금은 꼴찌라도 언젠가 첫째가 될 것임을 확신하고 겨자씨 하나 하나 뿌려봅니다. 묵주 한 알씩 만져봅니다.*^^*
머물다가는 벗 님들께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평화가 가득하기를... 그래서 우리 모두가 손에 손을 잡고 좁은 문으로 머리를 낮추고, 마음을 낮추어 살짝이 들어갈 수 있기를 청해보는...


안나가요*^^*


================== 올해의 생활나눔 ====================

찬미 예수님~! 참...안나 아지매는 수다스럽기도 하지만, 좋은 글도 잘 쓰네요... 글을 쓰는 것과 삶을 살아내는 것과는 얼마나 다른가를 느끼는 날입니다. 지난해, 이 묵상글을 나눌 때에는, 여행중인 밥데기 아짐이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이 넓은 땅, 말이 마음껏 안통하는 이 나라에서... 밤 근무를 하는 아짐이 되어서, 삶을 조잘거리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시모님이 버거운지를 몰랐습니다. 당연히 부모님은 모셔야 된다는 것이 저의 철학(?)인냥 주장을 했던 아지매가, 이제는 기어들 어가는 모기만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습니다...
저희 시모님은 얼마전에, 대구에 사는 글라라가 15단 묵주를 보내줘서 그 묵주를 매일 들고 다니시더니..10년은 회춘을 하신 것 같습니다. 그 전에는 기력이 많이 떨어지셔서, 늘 안타까웠는데..지금은 이곳에 와서 울엄니가 젊으셨을 때의 모습을 말씀해주셨던 분들의 이야기가 생각 날 정도로 60대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신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남편이 한국에 가 있는 부재기간을 틈타서 두 여인이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엄니도, 저도..속에 있는 말들을 다 퍼부었죠.
한국을 떠날 때에... 형님 한 분이 그러시더군요. '고부사이에는 하고픈 말을 다 하기 시작하면 벗나가기 시작한단다...' 이제서야, 그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제서야, 이곳에 사는 아지매들이 왜 부모님을 아니 모시고 사는지... 이해가 가기 시작합니다. 왜, 왜, 라는 질문들이 시원히 답을 해줍니다. 이곳은 뇨자도 일을 하게끔 제도적으로 만들어진 나라요, 자식들도 일찍 독립을 하는 것처럼,부모님도 당신들께서 독립해서 살 수 있게 되어있습 니다. 노인들의 천국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한국인인 우리는... 이노무 때문에...도무지 그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 내 마음이 힘드니..모든 묵상글들이 와르르르~~~내 머리 위에 화롯불처럼 쏟아집니다. 양신부님의 순교성인에 대한 묵상글에서도, 빠다킹 신부님의 묵상글에서도, 양성성당의 그레고리 신부님의 글에서도...
종당에는..그렇게 다짐했던 마음이 힘없이 무너지는 글을 보았습니다.

가시는 꽃과 나무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세상에, 또는 스스로에게 수없이 찔리면서 
사람은 누구나 제 속에 자라나는 가시를 발견하게 된다. 

한번 심어지고 나면 쉽게 뽑아낼 수 없는 탱자나무 같은 것이 마음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뽑아내려고 몸부림칠수록 가시는 더 아프게 자신을 찔러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내내 크고 작은 가시들이 나를 키웠다. 아무리 행복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그를 괴롭히는 가시는 있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용모나 육체적인 장애가 가시가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가난한 환경이 가시가 되기도 한다.
나약하고 내성적인 성격이 가시가 되기도 하고, 원하는 재능이 없다는 것이 가시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가시 때문에 오래도록 괴로워하고 삶을 혐오하게 되기도 한다.
"로트렉"이라는 화가는 부유한 귀족의 아들이었지만 사고로 인해 두 다리를 차례로 다쳤다. 그로 인해 다른 사람보다 다리가 자유롭지 못했고 다리 한쪽이 좀 짧았다고 한다.
다리 때문에 비관한 그는 방탕한 생활 끝에 결국 창녀촌에서 불우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런 절망 속에서 그렸던 그림들은 아직까지 남아서 전해진다.
"내 다리 한쪽이 짧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그는 말한 적이 있다. 그에게 있어서 가시는 바로 남들보다 약간 짧은 다리 한쪽이었던 것이다.
로트렉의 그림만이 아니라, 우리가 오래 고통받아온 것이 오히려 존재를 들어올리는 힘이 되곤 하는 것을 겪곤 한다.
그러니 가시 자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차피 뺄 수 없는 삶의 가시라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스려나가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우리는 인생이라는 잔을 얼마나 쉽게 마셔버렸을 것인가. 인생의 소중함과 고통의 깊이를 채 알기도 전에 얼마나 웃자라버렸을 것인가.
실제로 너무 아름답거나 너무 부유하거나 너무 강하거나 너무 재능이 많은 것이 오히려 삶을 망가뜨리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그런 점에서 사람에게 주어진 고통, 그 날카로운 가시야말로 그를 참으로 겸허하게 만들어줄 선물일 수도 있다.
그리고 뽑혀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가시야말로 우리가 더 깊이 끌어안고 살아야 할 존재인지도 모른다.
나희덕의 산문집 <빈통의 물> 중에서

- 이인옥 세실리아 님이 옮겨놓으신 글 [펌]했습니다 -

오늘 묵상글로 돌아갑니다...

사실 신앙인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얼만큼 이루면서 잘 사는가?’ 
하는 것보다는 ‘지금 이 순간 주님 앞에 다가와 그분과 얼만큼 하나 
되어 살아가는가?’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 한마디에...
그렇게 몇일을 밤새워서 다짐하며, 사람들에게 동의를 구했던 결심을
야곱의 우물가에서 내려놓습니다...

왜 자꾸자꾸 한숨이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힘이 드는게지요..
이곳은 몇 일 내내 비가 내립니다. 날씨까지 한 수 거듭니다. 음악도 꿀꿀한 음악을 골라봤습니다...
후다닥 읽지 마시구여... 차 한 잔 가지고 오셔서...안나 아지매의 살아가는 이야기라고 생각 하시며 들어주셔요. 글이라고 생각하면 넘 긴긴 글이지만, 대화로서 우리 둘이서 나누는 이야기라면...조금 더 마음에 와 닿을 것입니다.
그리고, 읽는 분께서도... 삶의 한 줌 나눠주셔요. 제 이야기만 듣지 마시구여..^ ^ 이제는 저녁 묵고 출근해야 할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뭐니뭐니해도 잠입니다.잠이 부족하면 새벽녁에 '환장'이라는 단어가 밀려온답니다. 잠이 왜 고문으로 사용해졌는지 그것도 알 것 같습니다...
좋은 하루 만들어 가십시오... 오늘은 야곱이 수녀님께서 예전에 말씀해주셨던... "나날의 삶이 하느님을 호흡하는 삶" 되시기를 빕니다.
신앙 안에서 진정한 첫째를 꿈꾸는 것처럼... 말로만이 아니라, 글로만이 아니라, 진정으로 거듭나는 삶으로 살아가기를 두 손을 모으며 갑니다... 이 부족한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주는 그분들이 오늘은 얄미워집니다...
왜...늘 내 생각들은 내려놓게 하시는지 말입니다... 주님도 얄미워지는 날입니다...


《 소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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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연중 제30주간 수요일 - 신앙 안에서 진정한 첫째는?</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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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루가 13,22­-30]</b><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그때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여러 동네와 마을에 들러서 
가르치셨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선생님, 구원받을 사람은 얼마 안 
되겠지요?” 하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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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그러니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있는 힘을 다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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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이 일어나서 문을 닫아버린 뒤에는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
리며 ‘주인님, 문을 열어주십시오’ 하고 아무리 졸라도 주인은 
‘너희가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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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너희가 ‘저희가 먹고 마실 때에 주인님도 같이 계시지 않았습
니까? 그리고 우리 동네에서 가르치시지 않았습니까?’ 해도 주인은 
‘너희가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악을 일삼는 자들아, 
모두 물러가라’ 하고 대답할 것이다. 
<br>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들은 다 하느님 나라에 있는데 
너희만 밖에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거기서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그러나 사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석할 것이다.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br> 
<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b>※ 『야곱의 우물』冊에 나오는 《매일성서묵상》내용입니다. ※</b>
<pre><FONT color=#32449c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3년째 교구청에 근무하고 있다. 새벽 6시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미사를 
드리고, 7시 30분에 아침식사를 하고, 9시에 출근하여 점심식사 시간을 
빼고 줄곧 책상 앞에 앉아 업무를 본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아간다. 
유일한 낙은 본당 신부 때와는 달리 주일날을 기다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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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요즘 괜한 걱정이 생겨나고 있다. 마냥 이렇게 살아도 될까, 
세상의 직업인처럼 말이다. 그래도 본당에 있을 때는 영적으로 해이해질 
때면 간절히 기도하는 신자나 혹은 한두 시간씩 성체조배를 정성껏 하는 
신자들을 보면서 자극을 받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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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인간적인 실수를 할 때면 충고를 해주는 신자가 있어 일상을 되돌아
보고 쇄신할 기회를 갖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기회가 없다. 그래
서일까, 한편으로는 참 잘사는 것 같은데 다른 한편으로는 신앙적으로 
꼴찌가 되어가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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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신앙인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얼만큼 이루면서 잘 사는가?’ 
하는 것보다는 ‘지금 이 순간 주님 앞에 다가와 그분과 얼만큼 하나 
되어 살아가는가?’ 하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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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세상에선 첫째이면서 신앙에서 꼴찌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비록 세상에서 꼴찌일지라도 신앙에선 첫째가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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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물도 한군데 고여 있으면 썩듯이 현세의 삶에 안주하며 살기
보다는 주님의 일상을 돌이켜보면서 매순간 그분과 하나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다. 그럴 때 우리는 신앙의 진정한 첫째로 거듭날 것이 
분명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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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고병수 신부(제주교구청 사목국장)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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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b>※ 2004년 10월 27일 야곱의 우물 - (복음내용이 같은 날입니다)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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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꼴찌를 위하여 ♣</b>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자로 잰 듯 정확하고 반듯한 모습이 다른 사람에겐 답답하게 여겨지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범생이’라는 말도 그렇게 똑 부러지는 모범적인 학생들을 
풍자하는 심리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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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범생이들의 특징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답답하다,융통성이 없다,또는 얄밉다
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함께하기엔 뭔지 불편하다는 심기를 드러내는 말이 아닐까 
합니다. 질문을 던진 사람에게 하신 대답을 보면 예수께서도 그런 생각을 하신 
것이 아닐까 하고 상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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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질문자의 겸손과 걱정을 담은 물음으로도 이해할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러 온 사람이라면 나름대로 자신의 구원에 대해서만큼은 
자신하고 있으면서 그런 질문을 던졌을 테니‘나(우리)는 구원받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좀 힘들겠죠?’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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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대답은 일단 그의 말에 동의를 표하신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러고 싶겠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쉽진 않을 것이다”라고 대답하고 계시니까요.
그런데 말씀의 끝부분을 보면 분명히‘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할 많은 사람들’
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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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군다나 마지막 말씀은 첫째와 꼴찌에 관한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 구원에 가까이 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운명이 
뒤바뀔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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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자면 ‘얄미운 너(희)’와 ‘네가 제외시키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자리가 뒤바뀔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그러니 얄미운 생각은 접고 
우리도 그 사람들도 모두 좁은 문을 통과하도록 힘쓰는 데 전력해야겠습니다. 
<pre><FONT color=purple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b>이정석 신부(전주 가톨릭신학원)</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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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b>†   【 안나의 묵상나누기 】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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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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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고딩동문들과 은사님을 뵈옵는 하루였습니다.
30년 전. 앗!나가 영어선생님을 찾아가서 삶의 한 켠을 열어보여드렸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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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야, 너는 하느님의 은총이로구나..."말씀하셨던, 그 한 말씀이 성서를 뒤로할 
때도 나침판처럼 힘들었던 순간을 바른 길로 나아가게 했던 세월들을 되돌아보며,
2년전 인터넷을 통해서 세종게시판을 알아냈을 때 은사님명부를 찾아내어 전화도
드리고, 편지도 드렸던 한양여자대학 교수본동 612호까지 은사님을 찾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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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이 변해도 세 번은 변했을 삼십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었음에도...
은사님의 가슴은 포근하였습니다. 이제는 함께 나이들어가고 있음에도 역시나 고우신
모습을 뵈오며 후배들과 함께 많은 지난 이야기들을 나누며 하하호호,까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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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공부를 잘했다거나 못했다거나 하는 것은 하나도 기억을 못하셨습니다.(?)
공부란것이 그 시절에는 우리의 자존심과도 같았던 것이었지만...세월과 함께 공부란
눔은 우리의 삶에 그렇게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못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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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우등생이 사회의 우등생이 될 수 없음을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이 느꼈겠습니까.
인수분해가 혹은 미분 적분이 우리의 삶에 무슨 도움을 주었습니까. 물론 안나에게는
수학 문제 한 개를 더 못맞추어서 간호장교 시험에 떨어지어 삶의 또 다른 길을 걷게
되기는 하였습니다만.../공부보다 중요한 그 무엇이 숨어있었습니다.((*^_ _ _^*))
하하, 앗!나의 생활기록부를 찬찬히 살펴보니 구석구석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아이라고
써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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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묵상글로 돌아갑니다.<pre> <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b>더군다나 마지막 말씀은 첫째와 꼴찌에 관한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 구원에 가까이 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운명이 뒤바뀔 것이라는 말씀이지요.</b>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b>운명이 뒤바뀔 것이라는 말씀</b>에서 눈길이 자꾸자꾸 모아집니다.
운명이 뒤바뀐다는 말씀은 참으로 무섭게 느껴지기조차 합니다.
<pre><FONT color=red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b>예수께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있는 힘을 다하여라. 
<br>
집주인이 일어나서 문을 닫아버린 뒤에는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인님, 문을 열어주십시오’ 하고 아무리 
졸라도 주인은 ‘너희가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고 할 것이다.</b>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상상의 나래를 동원하여 하느님 나라의 잔치날을 그려보니 운명이 뒤바뀐만큼이나 
가슴에 와 닿는 말씀입니다. 나를 모른다고 하실 그분을 생각하니 눈 앞이 캄캄합니다.
어디가 좁은 문입니까. 어서 빨리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을 다하여야겠습니다.
<br>
문을 열어달라고 외치는데, 
밖에 서서 있는 힘을 다하여 문을 두드리는데,
아무리 졸라도, 아무리 땅을 치며 통곡을 하여두...
<b>‘너희가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b>고 하실 그 때를 묵상해봅니다.
<pre><FONT color=red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b>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b>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이 말씀을 가슴으로 붙들며 주님께 기도합니다.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 누구도, 그 누구도...한 사람씩 이름을 불러봅니다.
<br>
제일 먼저 안나의 이름을 넣습니다. 그리고 제 남편의 이름도 넣어봅니다...
그리곤 우리 모두에게 가능성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지금은 꼴찌라도 언젠가 첫째가 
될 것임을 확신하고 겨자씨 하나 하나 뿌려봅니다. 묵주 한 알씩 만져봅니다.*^^*
<br>
머물다가는 벗 님들께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평화가 가득하기를...
그래서 우리 모두가 손에 손을 잡고 좁은 문으로 머리를 낮추고, 
마음을 낮추어 살짝이 들어갈 수 있기를 청해보는...
<pre><FONT color=gree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9pt">
<IMG src="http://www.imagestation.com/picture/sraid53/
p1267c37ffdbfe50aca62ebc9cb2ddfb0/fc8b9715.gif" >
<b>안나가요*^^*</b>
<br>
<pre><FONT color=#32449c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b> 올해의 생활나눔 </b>====================
<br>
찬미 예수님~!
참...안나 아지매는 수다스럽기도 하지만, 좋은 글도 잘 쓰네요...
글을 쓰는 것과 삶을 살아내는 것과는 얼마나 다른가를 느끼는 날입니다.
지난해, 이 묵상글을 나눌 때에는, 여행중인 밥데기 아짐이었지요..*^^*
<br>
그러나, 지금은...
이 넓은 땅, 말이 마음껏 안통하는 이 나라에서...
밤 근무를 하는 아짐이 되어서, 삶을 조잘거리고 있습니다.
<br>
그동안은 시모님이 버거운지를 몰랐습니다. 당연히 부모님은 모셔야
된다는 것이 저의 철학(?)인냥 주장을 했던 아지매가, 이제는 기어들
어가는 모기만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습니다...
<br>
저희 시모님은 얼마전에, 대구에 사는 글라라가 15단 묵주를 보내줘서
그 묵주를 매일 들고 다니시더니..10년은 회춘을 하신 것 같습니다.
그 전에는 기력이 많이 떨어지셔서, 늘 안타까웠는데..지금은 이곳에
와서 울엄니가 젊으셨을 때의 모습을 말씀해주셨던 분들의 이야기가
생각 날 정도로 60대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신 것 같습니다.
<br>
그러다보니...
남편이 한국에 가 있는 부재기간을 틈타서 두 여인이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엄니도, 저도..속에 있는 말들을 다 퍼부었죠.
<br>
한국을 떠날 때에...
형님 한 분이 그러시더군요. 
'고부사이에는 하고픈 말을 다 하기 시작하면 벗나가기 시작한단다...'
이제서야, 그 말씀이 생각납니다...
<br>
이제서야, 이곳에 사는 아지매들이 왜 부모님을 아니 모시고 사는지...
이해가 가기 시작합니다. 왜, 왜, 라는 질문들이 시원히 답을 해줍니다.
이곳은 뇨자도 일을 하게끔 제도적으로 만들어진 나라요, 자식들도 일찍
독립을 하는 것처럼,부모님도 당신들께서 독립해서 살 수 있게 되어있습
니다. 노인들의 천국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br>
그러나, 한국인인 우리는...
이노무 <b><big>情</b></big>때문에...도무지 그럴 수가 없는 것입니다..
<br>
아~! 
내 마음이 힘드니..모든 묵상글들이 와르르르~~~내 머리 위에 화롯불처럼
쏟아집니다. 양신부님의 순교성인에 대한 묵상글에서도, 빠다킹 신부님의
묵상글에서도, 양성성당의 그레고리 신부님의 글에서도...
<br>
종당에는..그렇게 다짐했던 마음이 힘없이 무너지는 글을 보았습니다.
<pre><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가시는 꽃과 나무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세상에, 또는 스스로에게 수없이 찔리면서 
사람은 누구나 제 속에 자라나는 가시를 발견하게 된다. 
<br>
한번 심어지고 나면 쉽게 뽑아낼 수 없는 
탱자나무 같은 것이 마음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뽑아내려고 몸부림칠수록 
가시는 더 아프게 자신을 찔러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br>
그 후로 내내 크고 작은 가시들이 나를 키웠다. 
아무리 행복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그를 괴롭히는 가시는 있기 마련이다. 
<br>
어떤 사람에게는 
용모나 육체적인 장애가 가시가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가난한 환경이 가시가 되기도 한다. 
<br>
나약하고 내성적인 성격이 가시가 되기도 하고, 
원하는 재능이 없다는 것이 가시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가시 때문에 오래도록 괴로워하고 
삶을 혐오하게 되기도 한다. 
<br>
"로트렉"이라는 화가는 부유한 귀족의 아들이었지만 
사고로 인해 두 다리를 차례로 다쳤다. 
그로 인해 다른 사람보다 다리가 자유롭지 못했고 
다리 한쪽이 좀 짧았다고 한다. 
<br>
다리 때문에 비관한 그는 방탕한 생활 끝에 
결국 창녀촌에서 불우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런 절망 속에서 
그렸던 그림들은 아직까지 남아서 전해진다. 
<br>
"내 다리 한쪽이 짧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그는 말한 적이 있다. 
그에게 있어서 가시는 바로 
남들보다 약간 짧은 다리 한쪽이었던 것이다. 
<br>
로트렉의 그림만이 아니라, 
우리가 오래 고통받아온 것이 
오히려 존재를 들어올리는 
힘이 되곤 하는 것을 겪곤 한다. 
<br>
그러니 가시 자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차피 뺄 수 없는 삶의 가시라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스려나가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br>
그것마저 없었다면 우리는 인생이라는 잔을 
얼마나 쉽게 마셔버렸을 것인가. 
인생의 소중함과 고통의 깊이를 채 알기도 전에 
얼마나 웃자라버렸을 것인가. 
<br>
실제로 너무 아름답거나 너무 부유하거나 
너무 강하거나 너무 재능이 많은 것이 
오히려 삶을 망가뜨리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그런 점에서 사람에게 주어진 고통, 
그 날카로운 가시야말로 
그를 참으로 겸허하게 만들어줄 선물일 수도 있다. 
<br>
그리고 뽑혀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가시야말로 
우리가 더 깊이 끌어안고 살아야 할 존재인지도 모른다. 
<br>
               나희덕의 산문집 <빈통의 물> 중에서 
<br>
<br>
        - 이인옥 세실리아 님이 옮겨놓으신 글 [펌]했습니다 -</b>
<br>
<pre><FONT color=#32449c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오늘 묵상글로 돌아갑니다...
<pre><FONT color=#32449c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b>
사실 신앙인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얼만큼 이루면서 잘 사는가?’ 
하는 것보다는 ‘지금 이 순간 주님 앞에 다가와 그분과 얼만큼 하나 
되어 살아가는가?’ 하는 게 아닐까 싶다. </b>
<pre><FONT color=#32449c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이 한마디에...
그렇게 몇일을 밤새워서 다짐하며, 사람들에게 동의를 구했던 결심을
야곱의 우물가에서 내려놓습니다...
<br>
왜 자꾸자꾸 한숨이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힘이 드는게지요..
<br>
이곳은 몇 일 내내 비가 내립니다.
날씨까지 한 수 거듭니다.
음악도 꿀꿀한 음악을 골라봤습니다...
<br>
후다닥 읽지 마시구여...
차 한 잔 가지고 오셔서...안나 아지매의 살아가는 이야기라고 생각
하시며 들어주셔요. 글이라고 생각하면 넘 긴긴 글이지만, 대화로서
우리 둘이서 나누는 이야기라면...조금 더 마음에 와 닿을 것입니다.
<br>
그리고, 읽는 분께서도...
삶의 한 줌 나눠주셔요. 제 이야기만 듣지 마시구여..^ ^
이제는 저녁 묵고 출근해야 할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뭐니뭐니해도
잠입니다.잠이 부족하면 새벽녁에 '환장'이라는 단어가 밀려온답니다.
잠이 왜 고문으로 사용해졌는지 그것도 알 것 같습니다...
<br>
좋은 하루 만들어 가십시오...
오늘은 야곱이 수녀님께서 예전에 말씀해주셨던...
<b>"나날의 삶이 하느님을 호흡하는 삶"</b> 되시기를 빕니다.
<br>
신앙 안에서 진정한 첫째를 꿈꾸는 것처럼...
말로만이 아니라, 글로만이 아니라,
진정으로 거듭나는 삶으로 살아가기를 두 손을 모으며 갑니다...
이 부족한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주는 그분들이 오늘은 얄미워집니다...
<br>
왜...늘 내 생각들은 내려놓게 하시는지 말입니다...
주님도 얄미워지는 날입니다...
<br>
<br>
<A href="http://cafe.daum.net/Coreansanctus" target=bl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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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UL>103위 한국순교성인</A></UL></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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