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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09) 양귀비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10-27 조회수873 추천수7 반대(0) 신고

2005년10월27일 연중 제 30주간 목요일 ㅡ로마서8,31ㄴ-39;루가13,31-35ㅡ

 

          양귀비

                   이순의

 

 

어느 분 집에 놀러 갔더니 양귀비 조화꽃이 꽃병에 꽂혀있었다. 그 꽃을 보고 또 생각나는 인생고가 떠올랐으니 얼른 퍼 놓고 가야것다. 시간이 부족하여 죽을 지경인데 그래도 생각날 때 퍼두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서 시간을 쪼개본다.

 

역사의 인물로는 중국의 양귀비와 우리나라의 장희빈이 천민의 신분에서 왕비에 올랐다가 오만한 영욕의 말로를 처참하게 장식한 공통점이 있고, 미인의 기준으로는 양귀비를 대국의 최고 미녀로 전하기는 하나 우리나라의 미녀는 황진이나 춘향이를 꼽는다. 양귀비의 인물값은 비싸고 탐욕적이었으나 결국에는 그 구렁텅이에 빠져 죽게 된다. 그러나 황진이는 기생이었음에도 천하지 않은 절개를 지켜 사모하던 님의 무덤 가에서 비구니의 모습으로 세상의 떼를 벗는 전설 같은 실화를 전하고, 춘향이 또한 인물보다 더 굳은 절개를 지켜 같은 미인이라도 양귀비와는 그 의미조차 달리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양귀비꽃을 처음 본 것은 섬에 살을 때였다. 그 가늘고 얇은 막처럼 투명한 꽃잎이 신기하였으나 그토록 어여쁜 꽃이 양귀비인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섬마을이 온통 소란으로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어느 집 대밭에서 양귀비 몇 포기가 자생을 하여 공중촬영(?)에 걸렸다고 한다. 배를 타고 나가 목포의 경찰서에까지 불려가 조사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의견은 분분하였다.

<어이삼네야. 그것이 어쭈꼬 지절로 났것는가? 종자라도 떤저놨은게 나제.>

<아이고 그럴 사람은 아니담마세. 원래 날아댕기던 종자제 그 삼네가 뭣이 아수워서 험헌 꼴을 저지르것능가?>

 

그랬다.

섬마을에는 내가 갔을 때만해도 작은 똑딱선인 종선이 있었고, 아침이면 배가 선창까지 들어오지 못하므로 똑딱선이 섬주민들을 싣고 물 가운데로 나가서 배에 옮겨 싣고, 내릴 손님을 받아서 돌아왔다. 오후에 들어오는 배는 철선이었으므로 사람은 물론 승용차며 트럭에 중장비도 실을 수 있었다. 그런 불편의 과도기에 내가 살다가 섬을 떠나올때는 그 종선이며 똑딱선은 아주 없어지고 배 한 척에 30억짜리라나 어쩐다나? 그 배의 크기가 수 십만톤인지 수 백만톤인지? 더 큰 배가 생기고 낮에 다니던 철선이 아침배로 자리바꿈을 했다. 

 

그러니까 그런 편리한 운송수단 말고, 돛대 달고 삿대 달은 배를 타고 다니던 시절에는 섬주님의 일상은 커다란 변화나 방편이 없었다고 한다. 그냥 다 알아서 자급자족하며 사는 것이었다. 그러던 시절에 양귀비는 돈이 들지 않고 재배만 하면 얻을 수 있는 상비약이었다. 상처 난데다 바르면 즉시 꾸둑꾸둑 해지며 말끔히 나았고, 배가 아플때 먹으면 배 앓이가 멈추었고, 머리가 아플 때면 머리에 발라 정신이 개운해졌고... 아무튼 만병통치약으로 쓰여졌다고 한다. 그러니 텃밭 가에 양귀비를 심지 않은 집이 없었고, 봉지마다 양귀비 잎을 담아서 시렁에 두지 않은 집이 없었으며, 쇳곽에 담아서 크림처럼 만들어 놓고 언제고 꺼내쓰지 않은 집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모든 약은 그 효능에 맞는 독성을 지니고 있다. 그 효과가 탁월하다보니 언제나 부작용이라는 말썽은 남자들에게서 먼저 발생되었다. 섬주민들 중에서 그 독성에 취한 사내들이 늘어난 것이다. 어느 한 때는 두 집 건너 한 집이 아편장이였다고 한다. 그러니 국가가 나서서 단속을 하기 시작했고, 섬마을이 양귀비로 부터 해방 되는데는 쌍방의 엄청난 혈투로 희생을 동반했다고 한다. 지금은 섬에서 양귀비가 멸종된지가 오래 되었지만 간혹은 숨겨두었다가 발각이 안되었거나, 어디에 숨겨 두었는지를 몰라서 못 찾은 종자들이 떨어져 싹이나고, 그것이 공중에서 촬영 되어 경찰서에 불려다니게 되는 것이었다.

 

그 고의성이 발각되면 징역살이를 해야되고, 참작이 되더라도 섬주민들에게 만만치 않은 벌금형을 선고하며, 그것이 기록되어 과실이 반복되면 향정신성 마약 사범이 되는 것이었다. 그들이 사시나무 떨듯이 떨면서 조심하는 것을 보면 밀주 보다 더 단속이 강력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에는 우리집 마루에 예쁜 열매 한 알이 굴러다니는 것이었다. 그 열매가 처음 본 것이기도 했지만 너무 신기하여 몇 일을 주방에 두고 보았다. 그런데 커피를 마시러 놀러오신 할머니께서 기겁을 하시는 것이었다.

<저것이 워째 저그서 굴러댕긴데야? 얼랑 떤져뿌러라 잉? 큰일난다 잉?>

<예쁘잖아요? 저는 처음보는 열매인데 너무 신기해서요.>

<뭣이 신기해야? 얼렁 땡게뿌러야?>

 

나는 무슨 독초를 줍기라도 한 줄 알고 그것을 집어들 수가 없었다. 지레 겁이나서 어쩔줄을 몰라하는 나를 보시더니 그것을 집어 손으로 으깨어 부수셨다. 그리고 나에게 주시며 얼른 대밭 가에로 가서 뿌리고 오라는 것이었다. 놀라서 시키는 대로 하였다. 나는 무슨 극약이라도 씻어내듯이 손에 비누칠을 하며 싹싹 씻어내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내년에 혹시라도 쩌그서 꽃이라도 피먼 따다가 약이로 써라. 잉?>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도대체 무슨 약이냐고 여쭈었더니 양귀비씨라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진짜로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잘 못 했으면 내가 배를 타고 목포로 나가 경찰서에 갖혀 조사를 받을 뻔 한 것이었다.

 

나는 그 종자가 우리집 대밭에서 꽃을 피울까봐 걱정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단속이 심하여 재배하지는 못해도 연로하신 섬 사람들은 간혹 그런식으로 해서 한두 포기라도 얻으면 비상약으로 쓰기도 하는 눈치였다. 나는 헬리콥타들이 섬 주변을 너무 자주 돌아다닌다는 생각을 할때면 간첩선이라도 침투할까봐서 해안선이라도 살피고 다니는거라고 생각했는데 순전히(?) 양귀비 탓(?)이었다고 고쳐 생각하기로 했다. 하느님께서 태초에 인간에게 주시고자 하신 모든 것은 이롭게 하시려고 주셨을 것이다. 그러나 간혹 선악과를 뭐하러 만들어서 우리로 하여금 죄에 빠지게 하였느냐고, 뱀은 왜 만들어서 하와를 꼬드기게 했느냐고 하는 사람들이있다. 

 

양귀비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식물이다. 그곳 어른들의 말씀을 빌리자면 전기도 없고 병원도 없으며 배라고 해 보아야 종선 한두 척 다니던 시절에는 양귀비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할 정도로 요긴한 약재였다고 한다. 아녀자들이야 꼭 필요한데다가, 꼭 써야할데다가, 쓰고 감춰두지만 남정네들은 그렇지를 못했다고한다. 지금이야 세상이 좋아져서 섬에도 인터넷이 들어오고, 전기에 휴대전화기에 보건지소에는 늘 군의관이 배치되어있고, 약국도 있으니 굳이 양귀비 농사를 짓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다. 마누라없이는 살아도 양귀비 없이는 못 살았다는 세대의 어른들은 거의 생존해 계시지 않은 엣날이야기라고 한다. 

 

내가 뿌린 양귀비는 종자가 나지 않았으나 다른 집 아짐네는 무성한 대나무 밭도 아닌 텃밭에 버젓이 싹이 났을 적에 아짐도 그냥 두는 눈치였다. 그러나 꽃이 피게 되자 하늘에서 보면 그냥 한 눈에 보인다고 뽑아버리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중국의 양귀비는 피부가 아기 피부 보다도 고왔다고 한다. 양귀비 꽃도 그렇게 선명한 색의 고움으로 사람을 유혹하고.... 우리네 인간이 하늘의 노여움을 산 뱀을 보면 처음 보는 아가들도 소스라쳐 놀라게 된다. 그런데 양귀비는 처음 본 열매도 처음 본 꽃도 그 교태로움이 보통은 넘는 솜씨였다. 색이 있으되 투명한 보드라움이었던 꽃도 그 예쁨에 당연히 반하게 되었지만 그 땡글땡글 야무진 씨알도 처음 본 사람의 마음을 끄는데는 타고난 끼가 있었던 것 같다.

 

농사철에 농사일도 못하고 속이 타들어 가던 그 삼네는 다행히 정상 참작이 되었다. 고의성은 없어 보인다고 인정되어 철창에 갖히는 신세는 면했으나, 농사는 농사대로 망치고, 벌금은 벌금대로 나오고, 조사는 조사대로 받으러 다니느라고 마음고생에! 품 고생에! 시간 고생꺼정! 그놈의 양귀비 땜시 되려 진창으로 골병이 들어버렸다. 만병을 통치할 것 같은 명약이라해도 결국은 사람의 신경을 마비시키는 독성을 품은 양귀비보다야 차라리 눈에 보이는 가시를 가진 장미가 훨씬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이든 사람이든 양귀비는 조심해야할 경계 대상 1순위임에는 분명하다. 독이 없으면 그게 명약이지! 해가 없으면 그게 명약이지! 

 

오늘은 어느 집 화단가에 핀 국화향이 명약이지 싶으다.

 

 

 

 

 

 

 

  

 

ㅡ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너는 예언자들을 죽이고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들을 돌로 치는구나!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으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들을 모으려 했던가! 루가13,34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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