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새벽을 열며 / 빠다킹신부님의 묵상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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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05-10-30 | 조회수2,010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2005년 10월 30일 연중 제31주일 가해
제1독서 말라기 1,14ㄴ─2,2ㄷ.8-1014
나는 위대한 왕이다. 만군의 주님이 말한다. 뭇 민족이 나의 이름을 두려워하리라.
2,1 너희 사제들에게, 나 이제 이 분부를 내린다. 2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내 이름을 기릴 생각이 없으니, 너희에게 내릴 것은 재앙뿐이다. 복 대신 저주를 내
릴 수밖에 없다.
만군의 주님이 말한다.
8 너희는 바른길을 떠났다. 법을 가르친다면서 도리어 많은 사람을 넘어뜨렸다. 레
위와 맺은 나의 계약을 깨뜨렸다. 만군의 주님이 말한다.
9 그래서 나도 너희를 동족에게서 멸시와 천대를 받게 하였다. 나에게서 배운 길을
지키지 않았고 법을 다룰 때 인간 차별을 한 탓이다.
10 “우리의 조상은 한 분이 아니시냐? 우리를 내신 하느님도 한 분이 아니시냐? 그
런데 어찌하여 우리는 서로 배신하여, 우리 조상이 맺은 계약을 깨뜨리느냐?”
제2독서 데살로니카 1서 2,7ㄴ-9.13
형제 여러분, 우리가 7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는 마치 자기 자녀를 돌보는 어머니
처럼 여러분을 부드럽게 대했습니다. 8 이렇게 여러분을 극진히 생각하는 마음에서
하느님의 복음을 나누어 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바칠 생각이었습니다.
우리는 그토록 여러분을 사랑했습니다.
9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의 수고와 노력을 잘 기억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
분에게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동안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노동을 했습니다.
13 우리가 늘 하느님께 감사하는 것은 우리가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을
때에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
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이 하느님의 말씀은 믿는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살아 움
직이고 있습니다.
복음 마태오 23,1-12
1 그때에 예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를 이어 율법을 가르치고 있다. 3
그러니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4 그들은 무거운 짐을 꾸려 남의 어깨에 메어 주고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는다.
5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마나 팔에 성구 넣는
갑을 크게 만들어 매달고 다니며 옷단에는 길다란 술을 달고 다닌다. 6 그리고 잔치
에 가면 맨 윗자리에 앉으려 하고 회당에서는 제일 높은 자리를 찾으며 7 길에 나서
면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스승이라 불러 주기를 바란다.
8 그러나 너희는 스승 소리를 듣지 마라. 너희의 스승은 오직 한 분뿐이고 너희는 모
두 형제들이다. 9 또 이 세상 누구를 보고도 아버지라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한 분뿐이시다.
10 또 너희는 지도자라는 말도 듣지 마라. 너희의 지도자는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11 너희 중에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2 누구든지 자기
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
때로는 그 시간이 조금 늦어지는 경우도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인터넷방송을
진행하는 시간 중에 종종 소식이 와서, 청취자들에게 정말로 죄송하지만 본의 아니
게 화장실로 가야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정을 방송을 통해서 말하지는
않고, 대신 방송과 함께 동시에 이루어지는 대화방 안에서 이렇게 적습니다. “저 지금 너무 급해서 어디 좀 다녀올께요.” 이 말에 사람들은 모두 압니다. 제가 어디를 가는지 말이지요. 그런데 어떤 분이 제
게 이런 말씀을 하세요.
“신부님, 아침마다 화장실 가서 일을 보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신부님은 모
르실꺼에요.”
사실 이 말을 이해하기란 그렇게 쉽지 않더군요. 당연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늘
했었고, 때로는 바쁜 아침 시간에 이렇게 화장실에 가야만 하는 제 몸 구조를 원망했
던 적도 있었거든요.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변비로 힘들어 하시는 분들
에게 화장실에서 늘 시원하게 일을 보시는 분들이 얼마나 부럽게 느껴질까요? 우리들의 일상 가운데에서 나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는 커다란 부러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한 부러움을 사는 것은
화장실에서 일 보는 것만이 아닐 것입니다. 노래를 못하는 사람은 노래 잘 하는 사람
이 그렇게 부러울 것이고, 춤을 못 추는 사람은 춤을 잘 추는 사람을 부러워 할 것입
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그 사람은 정작 부러움을
받게끔 하는 자신의 그 능력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 사
람 역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탓하면서 또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는 것을 우리들은 쉽게 발견됩니다. 이렇게 우리들은 늘 나와 다른 사람을 구별합니다. 그러면서 여기서 나오는 아주 못
된 모습은 이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그 사람이 형편없다고 생각되면 한없이 깔보고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또 반대로 나보다 조금이라도 낫다고 생각하면, 어떻게든 그
사람을 그 자리에서 내려 세우려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도 이렇게 우리들처럼 늘 구별을 하실까요? 한 번 생각을 해보세요.
여러분들 앞에 갓난아기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목소리가 큰 아이가 있고, 발을
힘차게 구르는데 재주가 있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또 어떤 아이는 외모가 귀엽고, 또
어떤 아이는 키가 큽니다. 그렇다면 이 중에서 어떤 아이가 가장 사랑스러울까요?
자신의 아이가 가장 사랑스럽겠지요. 하느님의 관점에서도 이렇다는 것입니다. 우
리들이 어떤 능력이 있던 간에 상관없이 우리들이 당신의 자녀이기에 늘 사랑으로
써 다가오십니다. 즉 차별 없이 똑같이 우리들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런데 주님의 자
녀라는 우리들은 왜 이렇게 구별하는 것을 좋아할까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도 이렇게 구별하기를 좋아하는 율법학자와 바
리사이파 사람들을 혼내고 계십니다. 그들은 선인과 악인으로 나누어 누구는 구원
을 받고, 누구는 구원을 못 받는다고 그들 스스로 판단을 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식으로 말만 했던 것입니다. 정작 주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사랑의
실천은 뒤로 한 채 말이지요. 사랑의 실천을 가장 첫 자리에 두면서, 주님 앞에 겸손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그 모
습이 바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으뜸가는 사람입니다.
“너희 중에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과 나를 구별하지 맙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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