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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11-04 조회수1,015 추천수13 반대(0) 신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현대 사회는 복잡하면서도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이기 때문에, 그 특성이 어떻다고 딱히 정의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특징은 “자기 상실의 시대”입니다.

오늘날에는 ‘나는 누구인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라는 물음보다는 다른 것에 정신이 팔여 있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스포츠, 전에는 tv가 ‘바보상자’라 불린 정도로 심각했지만, 요즘은 인터넷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게임이나, 다른 것들을 통해 만족과 기쁨을 찾다보니, 어느덧 자신에 대해... 삶의 의미에 대해 점점 잊혀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자기 상실 시대에 종교는 큰 의미를 지닙니다.

하느님을 믿고 구원을 얻는데 필요할 뿐만 아니라, 자신과 삶의 의미에 대해 늘 되돌아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앞에 선 인간’ 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양심성찰과 반성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올바로 보려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하느님을... 종교를 거부합니다.

심지어 냉담교우가 증가하고 타 종교로 개종하는 사람들 역시 해마다 증가합니다.

물론, ‘큰일이다. 이러다가 교회가 끝장나겠다.’는 심각성 때문에 물음을 제기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에 대해 한번쯤 되돌아 볼 문제인 것 같습니다.


첫째로,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는 많은 이유는 인간의 한계성 때문입니다.

고통과 아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곧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믿으면서도 여전히 고통과 아픔이 생겨납니다.

선하신 하느님께서 창조한 세상은 선하고 좋은 것만 체험되어야 하는데, 늘 전쟁, 재난 등으로 괴로워합니다.

이런 이유에서 하느님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과 세상과 무관한 하느님이라면, 없어도 된다며 거부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종종 이런 말을 하고 또한 듣습니다.

‘저 사람이 성당에 다녀... 저런 사람이 성당에 다닌다면 나는 안가크라!’

물론, 이 말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왜 그렇게 말을 할까?’ ‘왜 이런 말이 생겨났을까?’

세례전이 아니라, 세례 받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이런 말을 듣는다면 한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신앙인인 우리의 모습 속에서 신앙인다운 삶...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는 좋아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좋아하지 않는다.’ 라는 말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생겨나는 말입니다.

또한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 어떠한 틀, 규정, 선입견을 갖고 살아가며 사람들을 대하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신앙인이라 하더라도, 인간적인 모습, 욕망, 나약함, 부족함이 있습니다. 죽는 그 순간까지 자신과 이웃을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갖고 있는 틀, 선입견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또한 사람들을 대하기에 더욱 심각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금지된 사랑도 자신이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고, 자기 방식대로 믿고, 자기 방식대로 사랑을 나누려 하기 때문에, 그런 모습이 사람들에게 옳지 못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자신을 다스리기 위한 틀과 자신만의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그 틀과 생각 안에서만 살아가려 한다면... 그 틀과 생각으로 사람들을 대하려 한다면.. 그때는 문제가 되어 버립니다.

바로 복음에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님을 대하는 모습과 같아 버립니다.


“저것 보십시오. 당신의 제자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왜, 당신은 그런 행동을 합니까? 그렇게 신앙생활을 합니까?’ 라는 말과 같습니다.


물론, 안식일 규정 준수는 당시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안식일 규정 준수가 바로 ‘다른 사람들은 반드시 지켜야 하지만, 나는 지키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과 생각이었기에,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는 안식을 법은 그릇된 틀이요, 선입견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적어도 예수님을 대할 때는.. 예수님을 바라볼 때는 옳은 것을 보지 못하고 그릇된 모습만 보게 하는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여기에서 잠깐 별에 대해 이야기 해 볼까 합니다.

도시에서는 대기 오염 때문에 별을 보기 힘들다고 합니다.

그런데, 도시에서 별을 보기 힘든 이유는 오염보다도 먼저, 가로등이나 아파트의 불빛 그리고 네온사인 때문입니다.

우리 주위의 불빛이 너무 강하면, 별빛을 보기 힘들어 집니다.

시골에 가면, 별이 잘 보이는 이유는 우리의 눈을 어지럽히는 휘황찬란한 다른 불빛이 주위에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에 주님을 보고자 하는 열망보다, 다른 열망들이 휘황찬란하게 불빛을 밝히고 있다면, 우리도 주님을 만나기 힘들어 질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 마음 안에서 별처럼 빛나고 있는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별빛을 막고 있는 가로등과 네온사인을 꺼야 합니다.

곧, 스스로 만들어 놓아 자신과 이웃과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는 그릇된 틀과 선입견을 버려야합니다.


오늘 복음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바라는 것은 나에게 동물을 잡아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역시 진정 예수님이 바라는 제사와 자선을 베풀기 위해서는... 무죄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있는 그릇된 틀, 선입견에 현혹되지 말고, 조금씩 깎아 내며 잘 다스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서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아집, 선입견을 꺼버리려 노력할 때, 항상 우리를 향해 빛나고 있는 예수님의 빛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과의 만남은 우리의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해답을 얻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참된 구원과 기쁨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아멘

 

                                    ▒ 이찬홍 야고보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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