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이리 오너라!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11-06 조회수865 추천수9 반대(0) 신고

           

                                   이리 오너라!

 

                                   



 
오늘 복음에 예수님께서는 ‘열 처녀 비유’에 관한 말씀을 통해 종말에 대해 알려주십니다.

종말은 세상이 끝나는 때와 동시에, 우리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세상이 끝나는 날에 이루어지는 공심판 때든, 우리가 죽은 순간에 이루어지는 사심판 때든, 모두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 앞에 서야 되기에, 폭넓은 의미로 종말을 마지막 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만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 앞에 서서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보여 주어야 하기에, 심판이 되는 것입니다. 그 만남이 처벌을 받는 심판이냐? 보상을 받는 심판이냐?는 어떻게 종말을 준비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종말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복음에 열 처녀 비유를 통해 알려주십니다.


복음에 등잔뿐만 아니라, 기름까지 준비한 슬기로운 처녀 다섯과 기름을 채 준비하지 못한 미련한 처녀 다섯이 모두 신랑을 맞으려 나갑니다.

그런데, 기다리던 신랑이 오지 않자, 지쳐서 잠이 들게 됩니다.

‘저기 신랑이 온다. 어서들 마중 나가라!’는 말에 잠을 깨어 보니, 등잔에 기름이 다 떨어져 가자, 미련한 처녀들은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기름을 좀 나눠 달라고 청합니다.


그런데, 슬기로운 처녀는 이렇게 말하며 기름을 나눠주지 않습니다.

“우리 것을 나누어 주면, 우리에게도, 너희에게도 다 모자랄 터이니, 너희쓸 것은 차라리, 가게에 가서 사다 쓰는 것이 좋겠다.”

이 말에 미련한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갑니다.

그런 사이에 신랑이 오고 잔치집 안으로 들어가 문이 잠겨 버립니다.

기름을 사고 온 미련한 처녀들이 아무리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려도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이렇게 미리 기름을 준비하여 잔지 집에 갔느냐, 가지 못했느냐에 따라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버립니다.


복음을 묵상하며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왜 슬기로운 처녀들은 미련한 처녀들에게 기름을 나눠주지 않은 것일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나눔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나눔의 참된 의미와 실천은 부유한 가운데 나눠주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것을 다 챙기고, 난 그 나머지를 필요한 사람에게...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이 또한 나눔의 한 측면인 것은 분명하지만, 교회가 가르치고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나눔의 의미는 아닙니다. 나눔의 참된 의미는 없음에도 나눠주는 것입니다. 없지만 함께 먹고, 함께 절약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 나누는 것입니다. 곧, 자신의 삶의 일부를 나누는 것이 참된 나눔인 것입니다.


때문에, 미련한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기름을 나눠달라고 청할 때, 나눠주어야 합니다. 혹, 잔치 집에 가다가 등잔불이 꺼져 버리면, 비록 좀 어두움에 불편하겠지만, 신랑의 손을 잡고 잔치 집에 가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모습입니다. 참된 나눔의 실천입니다.


그런데, 슬기로운 처녀들은 이를 거부합니다.

기름은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써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혼인 잔치에 가기 위해... 마지막 날에 하느님 앞에 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지만, 나눌 수 없고, 또한 남과 나누어서도 안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위령의 날, 영원한 안식인 평화에 대해 말씀드릴 때, 기름의 의미를 ‘하느님을 신뢰하는 삶의 방식’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오늘은 다르게 묵상해 보았습니다.

과연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면서도, 남과 나눌 수 없고, 나눠서도 안 되는 것은 무엇 같습니까?

금요일에 서울 공군 중앙 성당에서 신자 분들께 여쭤보니, 어려운지 대답을 잘 안하시더라고요.

여러분에도 여쭤봅니다.

잔치 집에 가기 위해 등잔뿐만 아니라, 등잔을 환히 밝히는 기름이 필요하듯, 우리가 하느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기름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간직하고 있지만, 남과 나눌 수 없고, 또한 나눠서도 안 되는 그 기름은 무엇입니까?


‘십자가’가 아닐까 묵상해 보았습니다.

한 사람이 하느님 앞에 섰을 때, 하느님께서 그 사람에게 이렇게 묻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오 그래, 네가 여기에 왔구나... 그런데, 내가 너에게 지고 오라고 내려준 십자가는 왜 안지고 왔나? 어디에 있니?’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내려주시는 십자가도 남과 나눌 수 없고, 나눠서도 안 됩니다. 십자가를 버리고 싶은 마음과 잘라버리고 싶은 유혹들을 이겨내기 위해 도움을 받을 수는 있어도, 결코 남과 나눌 수는 없습니다.

단순하게 내려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 자신에게만 내려주시는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크기와 넒이, 그 깊이와 무게를 내려주시는 그 사람에게만 꼭 알맞게 내려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단순히 고통, 시련, 아픔, 고난이요, 늘 우리에게 힘들고, 괴로운 것만을 의미합니까? 아닙니다.

십자가는 하느님 나라에 가기 위한 단 하나의 열쇠입니다.

오직 닫힌 천국 문을 열수 있고... 그 사람만이 간직할 수 있는 기름입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인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은.. 예수님이 오시는 종말을 잘 깨어 기다리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로, 자신에게 주어진... 그 자신만의 짊어질 수 있고, 져야만 하는 십자가를 잘 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십자가는 우리가 걸어가야 할 그 길과 살아가야 할 그 삶이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안에는 우리 삶의 의미, 보람, 가치, 모든 것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우리의 구원이 담겨 있고, 이를 우리에게 내려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 우리의 구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하더라도.. 십자가는 여전히 고통, 아픔, 시련을 담고 있습니다.

‘고통을 거부하는 종교는 참된 종교가 아니다’는 간디의 말처럼, 우리는 고통을 통해 자신을 정화하고 단련시키며 고통을 넘어서는 기쁨, 행복을 맛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고통 없는 영광이 없는 것처럼, 십자가 없는 영광은... 구원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구원이 바로, 고통과 시련 아픔을 통해 얻어진 것이기에 더 가치 있고 완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혼인잔치가 열린 천국 문 앞에 서서 ‘문 좀 열어주세요!’ 라는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히 ‘이리 오너라!’ 라고 외칠 수 있게 하는 고통이요,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 이찬홍 야고보 신부님 ▒

 

                              

                                       주여 나를 받으소서-Gell clup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