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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장례 미사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5-11-07 조회수1,268 추천수8 반대(0) 신고

 

 

                                      장례 미사

      

우리는 오늘 이 세상을 떠나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간 윤이녀 데레사 자매의 장례 미사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장례 미사 때와 위령성월인 11월에 죽음에 대해 많은 말씀을 듣습니다.

그토록 자주 죽음에 대해 말하고, 듣는다 하더라도, 죽음의 부정적인 의미 곧, 슬픔, 고통, 허무적인 의미보다는 긍정적인 의미 곧 희망적이요, 구원으로 나아가는 죽음에 대해 말을 합니다.


실제 위령 감사송 1양식에서도 죽음의 대해 이렇게 정의합니다.

“주님,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오니, 세상에서 깃들이던 이 집이 허물어지면 하늘에 영원한 거처가 마련되나이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바오로 사도는 좀 전에 묵상한 1독서에서 알려주는 죽음의 참 의미가 우리가 죽음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자세입니다.

“죽음아 네 승리는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네 독침은 어디 있느냐?”


그런데, 과연 죽음이 정녕 죽음이 아니요,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일까요? 어쩌면 우리는 죽음에 대해,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해서 너무 쉽게 말하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아닐까요?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강론을 준비하며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아직 인생의 절반도 채 살아보지 못한 네가 죽음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안다고, 감히, 사제랍시고, 그렇게 강하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느냐? 실제 부모님이나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죽었을 때... 실제 그런 상황이 너에게 닥쳤을 때, 과연 그때도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것이라 말할 수 있겠느냐? 너 역시 왜 저의 부모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데리고 가냐고... 왜 벌써 데리고 가냐며 하느님께 대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대답에 대신으로 부제 때 돌아가신 할머니의 죽음에 대해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추석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왔는데, 다음날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내려갔습니다. 할머니의 죽음에 고모, 부모님 모두는 깊이 슬퍼하시는데, 저는 할머니의 죽음에 별 느낌이 없었습니다. 아니, 솔직히 하나도 슬프지 않았습니다. 장례가 끝날 때까지 그저 그랬습니다.


이런 저의 태도가 이상하게 느껴져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너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이제 앞으로 할머니를 볼 수 없는데, 슬프지 않느냐? 넌 손자가 아니냐? 근데, 왜 그리 아무 느낌이 없느냐?’ 라고 묻다가 문득, 추석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기 전에 할머니 옆에 앉아 하느님께 드린 기도가 떠올랐습니다.


“하느님, 당신 뜻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면, 저의 할머니가 하루 빨리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더 이상 할머니께서 화장실에 가실 때, 방과 화장실에 연결된 줄을 잡으며 힘들게 가지 않게 해 주십시오. 할머니가 겪는 고통이 너무 힘들어 ‘아이고 아이고 내 팔자야... 어떻허면 좋으리오..하느님 나 빨리 데려가 줍써!’ 라고 기도드리니, 자비를 베푸시어, 할머니께서 겪는 고통이 당신의 벌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 가기 위한 고통임을 알게 해 주십시오. 연옥에서 겪을 고통을 미리 겪고 있는 것임을 깨닫게 해 주십시오. 늘 앞뒤도 맞지 않는 묵주기도를 드리는 할머니의 믿음과 마음, 진실된 정성을 모시어 제발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렇습니다.

제가 할머니의 죽음에 슬퍼하지 않았던 이유는... 할머니의 빠른 임종을 위해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신앙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신앙인이었고, 할머니 역시 신앙인이었기 때문에 그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진정 죽음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지 못한다 하더라도,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라는 말을 하는 데에는... 그러한 말에는 저의 신앙이 담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분명 죽음은 슬픔이요 고통입니다.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을 보지 못하는... 만지지 못하는 아픔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에게는 이런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의미보다는 더 크고 완전한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으로 죽음을 바라보고, 고백하기에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임을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품에 안겨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희망으로 죽음을 대하는 것이기에, ‘죽음아 네 승리는 어디 있느냐? 네 독침은 어디 있느냐?’ 라고 강하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어제 윤이녀 데레사 할머니 장례 미사 강론을 어떻게 준비할까 고심하다가 손녀분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러다가 저도... 여러분도 모르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데레사 할머니는 7년 전에 이곳 광양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데레사 할머니는 세례 받은 후부터 신앙생활을 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40여 년 전부터 신앙생활을 해 오신 분이셨습니다.

비록, 개신교에서 믿어온 신앙이지만, 신앙생활이 얼마나 열심 하셨는지 늘, 성서를 끼고 살 정도로 자주 읽으셨다 합니다.

쉬지 않고 찬송가를 중얼 거렸다고 합니다.

그 열심이... 그 신앙이 얼마나 열심이었던지 집사 직까지 맡아서 봉사하셨다고 합니다. 개신교에서 집사면, 우리의 구역장을 의미합니다. 이를 보아서라도 데레사 할머니의 신앙이 어떠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7년 전 손녀에게 ‘내가 40여 년 성안 교회에 다녔지만, 지금은 네가 다니는 성당에.. 너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싶구나...’ 라며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를 받은 후 2년 동안 광양 성당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몸이 허약하고 병이 생겨 광령에 있는 형제의 집에서 생활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치매가 생겨 제주의료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치매 증세는 자신의 본 모습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젊었을 때, 어떠한 마음으로 생활했는지.. 어떻게 살아갔는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치매 증세가 나타나는 내내 늘 웃음을 잃지 않아, 간병하는 분들에게 ‘천사 할머니’로 통했다 합니다.


우리가 신앙의 눈을 갖고 있기에 죽음의 참 의미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신앙인이기 때문에 죽음이 마지막이 아님을, 강한 확신 속에서 믿을 수 있고, 온 마음을 다해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와 같은 마음과 믿음으로 살아간 데레사 할머니의 죽음입니다.

일생을 주님을 믿고 의미하며, 살아간 신앙인의 죽음입니다.

죽음 후에 영원한 삶을 굳게 믿었고, 온 마음으로 고백하며 살아간 분이 맞이한 죽음입니다.

이런 데레사 할머니의 죽음이 과연 슬픔입니까? 기쁨입니까?

인생의 마지막인 허무입니까?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죽음입니까?


과연 이러한 데레사 할머니의 죽음을 보고 ‘정녕,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이구나... 하느님 품안에서 영원한 안식과 위로를 누리는 또 다른 삶이구나...’ 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의 죽음에서.. 그 어떤 죽음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멘.

 

                                      ▒ 이찬홍 야고보 신부님 ▒

 


 

♬ 주여 임하소서 [가톨릭성가 151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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